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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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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튼이 쳐져 빛 한점 들어오지 못하는 방 안에 가녀린 여성의 울음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오싹할 정도로 서글픈 목소리에 흠칫 몸이 굳었던 리안은 이내 치솟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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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성 내에서 비통한 울음이나 비명을 울려 퍼지는 건 흔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왕성 외곽 쪽에 해당하였다. 간부들이 머무는 마왕성 심층부는 오싹할 정도로 조용했기에 이런 울음이 도리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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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숨겨져 있던 노예 감옥이나 실험실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방 안의 모습이 침실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거로 봐선 실험체나 노예의 울음소리는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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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왕군에게 잡혀 온 공주님이라도 갇혀있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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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에서 그런 내용이 언급된 적은 없지만, 원작이 얼마나 어그러졌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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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님이라면 도와주고 싶은데 -…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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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약하긴 하나 사물에 영향을 줄 수 있긴 하기에, 커튼을 살짝 밀어 방안에 빛이 들어오게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남는 게 시간이었기에 방 주인이 방을 밝힐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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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귀신이면 -… 나야 좋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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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가 악귀일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걱정되진 않았다.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된 이후부터 이상하리만치 머릿속이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다크 판타지 속 존재가 개그 주민인 자신을 먹어봤자 결국 토해낼 수밖에 없다는.. 경험이 쌓인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유추해 낼 수 있는 결론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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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언제나 다크 판타지 세계와 개그 세계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온갖 착각과 갈등을 유발해왔던 걸 생각해본다면, 이 같은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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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변화를 리안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반응은 너무나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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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서 지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슬슬 적응할 때도 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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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판타지 세계 완전 정복! 일타 강사 리안!’ 따위의 문구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잘 놀다 보니 어느새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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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 울고 있는 와중에 장난이나 친 못된 놈이 된 것 같아 눈을 도르륵 굴리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스르륵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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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가 보이기라도 해야 눈물 닦을 휴지라도 가져다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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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번진 그림처럼 형태만 겨우 보여 뭘 해보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것도 한참 동안 어두운 공간을 노려본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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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작게 한숨을 쉬며 울고 있는 여자의 옆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앉았다.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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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음이 잦아들고도 가느다란 숨을 거칠게 삼켰다가 길게 뱉기를 반복하며 울음을 찾아내던 존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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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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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파드득 떨었다. 놀란 건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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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헉..! 누,누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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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 앉아 있던 리안은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나다 못해 허공으로 붕 날아오르고 말았다. 리안이 놀란 마음을 다독이기도 전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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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 나가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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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목소리 중에서도 꽤 낮은 톤의 목소리는 굉장히 섹시해 순간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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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이 애니화가 된 적이 있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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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전까지 울음소리를 흘리던 여자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듣기 좋았다. 순간 억눌리지 않은 울음소리도 듣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을 치고 들어왔다가 빠르게 고개를 저어 음험한 생각을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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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크흠.. 아직 얼굴도 모르는 사람으로 무슨 생각을 -… 아니, 그것보다 인질이 아니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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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화제를 전화한 리안은 창문 쪽으로 이동하는 기척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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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반말로 대답하는 거 보면 간부는 확실한 거 같은데. 도대체 누구지? 끙… 목소리가 좋다는 정보 같은 건 일반적으로 작품에 묘사되진 않으니까 예측 가는 인물이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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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여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걸까 싶어 기억 속을 뒤적거리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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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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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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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튼이 활짝 열리면서 새하얀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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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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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을 닮은 깊고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넘어 부드럽게 흘러내려 찰랑거렸다. 달빛을 머금은 새하얀 얼굴 위로 붉은 눈동자가 누군가를 홀릴 듯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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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하고 정교한 이목구비가 마치 신이 직접 빚은 듯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순간 숨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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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꽃잎을 연상시키는 입술이 고혹적이었다. 무심한 표정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군주의 지루함과 같아 오만해 보이면서도 그 모습이 너무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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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까지 서글프게 울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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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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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침대 옆까지 걸어가 탁자 위에 놓인 가면을 들어 익숙하게 제 얼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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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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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른한 포식자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낮은 한숨이 들려오고 나서야 리안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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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아아..! 이거 내성이 없었으면 며칠은 넋을 놓고 있었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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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두 손으로 연신 마른세수를 하며 지금까지 자신에게 달라붙어 주었던 제스와 아이리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반쯤 헐벗은 상태로 딱 달라붙어 오던 노아의 모습을 반사적으로 떠올렸다가 화들짝 놀라 얼굴을 드릴처럼 빠르게 저었다. 영체임에도 얼굴을 따끈하게 달아오른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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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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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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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속으로 호들갑을 떠는 사이 가면을 쓴 미녀가 방을 빠져나갔다. 허겁지겁 그 뒤를 따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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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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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뒤따라 나오자마자 리안은 또다시 헛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문 앞에 서 있던 건 마왕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에르보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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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찾을 땐 머리카락 한 올도 안보이더니..!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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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에서 온갖 흑막 짓이란 흑막 짓은 이놈이 다 저지르기에 정보라도 얻어볼까 싶어 미친 듯이 마왕성을 돌아다녔지만,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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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충격적인 건 에르보안이 정중한 목소리로 가면을 쓴 미녀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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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시겠습니다, 마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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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누군가 대충 그린 그림처럼 망가진 형태로 [ 어? 에? 응? ]같은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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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이… 미녀분이.. 마..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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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말하자면, 원작 속 마왕은 성인 남성이었다. 그것도 중년의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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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충격에 리안의 정신이 우주 어딘가를 헤매는 듯 멍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 리안의 상태와 상관없이 마왕과 에르보안은 예정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바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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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멍한 상태로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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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제대로 된 이성을 붙잡고 이상함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며칠 동안 마왕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 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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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가.. 이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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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 거스러미처럼 거슬리는 감각에 리안은 어두운 방에 둥둥 뜬 채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느껴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답은 쉽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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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봐도 마왕이 최종 보스 같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에르보안이 숨겨진 진짜 흑막 보스 같지도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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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서 생존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고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건 리안의 초월적인 감각이었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 ‘왠지 이럴 것 같다.’라는 직감은 언제나 정답에 한없이 가까웠기에 리안은 작은 의문조차 가볍게 넘기지 않고 생각에 잠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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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간섭하지 않았다고 해도 외신이란 존재들 때문에 원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최종 보스도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당연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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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생각을 막고 있던 어떠한 막이 벗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리안은 거침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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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럴 경우 최종 보스는 당연히… 원작에 언급되지 않았던 존재인 외신인게 당연할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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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쉽게 찾아진 답에 리안은 미간을 더욱 구긴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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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끙… 이걸 왜 이제야 떠올렸지? 다크 판타지 신이 신의 인장을 건네줄 때 외신에 대해 언급해줬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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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 찾던 물건을 들고 방 안을 마구 헤집고 다닌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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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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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기억 속을 더듬어 외신을 잡고 정보를 탈탈 털어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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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들었던 정보가 사실이라면 최종 보스라 불릴 만한 외신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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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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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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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소리만 겨우 뱉어내고 있던 마왕이 갑작스럽게 신음을 뱉어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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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헉! 설마… 새끼발가락이라도 찧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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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자 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 질리진 않았다. 영체였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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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옆에 있어서 크게 다쳤을 수도….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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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곁으로 다가가자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칼날이 시선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칼날이 마왕의 여린 허벅지를 사정없이 헤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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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이 유한한 다크 판타지 주민의 진짜 자해에 리안은 딱딱하게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리안은 자신이 짐작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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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10화 안에 아이리스, 노아가 다시 나올 것 같습니다. ‘ㅂ’9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커튼이 쳐져 빛 한점 들어오지 못하는 방 안에 가녀린 여성의 울음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오싹할 정도로 서글픈 목소리에 흠칫 몸이 굳었던 리안은 이내 치솟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마왕성 내에서 비통한 울음이나 비명을 울려 퍼지는 건 흔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왕성 외곽 쪽에 해당하였다. 간부들이 머무는 마왕성 심층부는 오싹할 정도로 조용했기에 이런 울음이 도리어 낯설었다.

처음에는 숨겨져 있던 노예 감옥이나 실험실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방 안의 모습이 침실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거로 봐선 실험체나 노예의 울음소리는 아닌 듯했다.

[ ‘마왕군에게 잡혀 온 공주님이라도 갇혀있는 건가?’ ]

원작에서 그런 내용이 언급된 적은 없지만, 원작이 얼마나 어그러졌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었다.

[ ‘공주님이라면 도와주고 싶은데 -…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네.’ ]

미약하긴 하나 사물에 영향을 줄 수 있긴 하기에, 커튼을 살짝 밀어 방안에 빛이 들어오게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남는 게 시간이었기에 방 주인이 방을 밝힐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만약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귀신이면 -… 나야 좋지!’ ]

상대가 악귀일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걱정되진 않았다.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된 이후부터 이상하리만치 머릿속이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다크 판타지 속 존재가 개그 주민인 자신을 먹어봤자 결국 토해낼 수밖에 없다는.. 경험이 쌓인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유추해 낼 수 있는 결론을 떠올릴 수 있었다.

리안이 언제나 다크 판타지 세계와 개그 세계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온갖 착각과 갈등을 유발해왔던 걸 생각해본다면, 이 같은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같은 변화를 리안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반응은 너무나 가벼웠다.

[ ‘여기서 지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슬슬 적응할 때도 됐지!’ ]

‘다크 판타지 세계 완전 정복! 일타 강사 리안!’ 따위의 문구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잘 놀다 보니 어느새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남이 울고 있는 와중에 장난이나 친 못된 놈이 된 것 같아 눈을 도르륵 굴리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스르륵 날아갔다.

[ ‘뭐가 보이기라도 해야 눈물 닦을 휴지라도 가져다주지.’ ]

물에 번진 그림처럼 형태만 겨우 보여 뭘 해보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것도 한참 동안 어두운 공간을 노려본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리안은 작게 한숨을 쉬며 울고 있는 여자의 옆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앉았다.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울음이 잦아들고도 가느다란 숨을 거칠게 삼켰다가 길게 뱉기를 반복하며 울음을 찾아내던 존재는.

똑똑.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파드득 떨었다. 놀란 건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 ‘헉..! 누,누구지?’ ]

옆에 앉아 있던 리안은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나다 못해 허공으로 붕 날아오르고 말았다. 리안이 놀란 마음을 다독이기도 전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방 나가지.”

[ …?! ]

여자 목소리 중에서도 꽤 낮은 톤의 목소리는 굉장히 섹시해 순간 말을 잃었다.

[ ‘이 작품이 애니화가 된 적이 있었나…?’ ]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전까지 울음소리를 흘리던 여자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듣기 좋았다. 순간 억눌리지 않은 울음소리도 듣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을 치고 들어왔다가 빠르게 고개를 저어 음험한 생각을 털어냈다.

[ ‘크,크흠.. 아직 얼굴도 모르는 사람으로 무슨 생각을 -… 아니, 그것보다 인질이 아니었네?’ ]

옆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화제를 전화한 리안은 창문 쪽으로 이동하는 기척을 바라보았다.

[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반말로 대답하는 거 보면 간부는 확실한 거 같은데. 도대체 누구지? 끙… 목소리가 좋다는 정보 같은 건 일반적으로 작품에 묘사되진 않으니까 예측 가는 인물이 없네.’ ]

혹여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걸까 싶어 기억 속을 뒤적거리려는 순간.

촤르륵.

[ …! ]

커튼이 활짝 열리면서 새하얀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 와.. ]

밤하늘을 닮은 깊고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넘어 부드럽게 흘러내려 찰랑거렸다. 달빛을 머금은 새하얀 얼굴 위로 붉은 눈동자가 누군가를 홀릴 듯 매혹적이었다.

섬세하고 정교한 이목구비가 마치 신이 직접 빚은 듯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부드러운 꽃잎을 연상시키는 입술이 고혹적이었다. 무심한 표정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군주의 지루함과 같아 오만해 보이면서도 그 모습이 너무나 어울렸다.

조금 전까지 서글프게 울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윽.

그녀는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침대 옆까지 걸어가 탁자 위에 놓인 가면을 들어 익숙하게 제 얼굴을 가렸다.

“하아…”

나른한 포식자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낮은 한숨이 들려오고 나서야 리안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 으아아..! 이거 내성이 없었으면 며칠은 넋을 놓고 있었을 거야… ]

리안은 두 손으로 연신 마른세수를 하며 지금까지 자신에게 달라붙어 주었던 제스와 아이리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반쯤 헐벗은 상태로 딱 달라붙어 오던 노아의 모습을 반사적으로 떠올렸다가 화들짝 놀라 얼굴을 드릴처럼 빠르게 저었다. 영체임에도 얼굴을 따끈하게 달아오른 게 느껴졌다.

달칵.

[ 엇!? ]

리안이 속으로 호들갑을 떠는 사이 가면을 쓴 미녀가 방을 빠져나갔다. 허겁지겁 그 뒤를 따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 허억…! ]

그녀를 뒤따라 나오자마자 리안은 또다시 헛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문 앞에 서 있던 건 마왕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에르보안’이었기 때문이다.

[ 찾을 땐 머리카락 한 올도 안보이더니..!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

원작에서 온갖 흑막 짓이란 흑막 짓은 이놈이 다 저지르기에 정보라도 얻어볼까 싶어 미친 듯이 마왕성을 돌아다녔지만,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더 충격적인 건 에르보안이 정중한 목소리로 가면을 쓴 미녀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는 것이다.

“모시겠습니다, 마왕님.”

“…”

리안은 누군가 대충 그린 그림처럼 망가진 형태로 [ 어? 에? 응? ]같은 말을 내뱉었다.

[ 그러니까 이… 미녀분이.. 마..왕님? ]

참고로 말하자면, 원작 속 마왕은 성인 남성이었다. 그것도 중년의 남성.

예상치 못한 충격에 리안의 정신이 우주 어딘가를 헤매는 듯 멍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 리안의 상태와 상관없이 마왕과 에르보안은 예정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바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리안은 멍한 상태로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따라다녔다.

리안이 제대로 된 이성을 붙잡고 이상함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며칠 동안 마왕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 후부터였다.

[ ‘뭔가.. 이상해.’ ]

손톱 거스러미처럼 거슬리는 감각에 리안은 어두운 방에 둥둥 뜬 채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느껴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답은 쉽게 나왔다.

[ ‘아무리 봐도 마왕이 최종 보스 같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에르보안이 숨겨진 진짜 흑막 보스 같지도 않고.’ ]

개그 세계에서 생존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고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건 리안의 초월적인 감각이었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 ‘왠지 이럴 것 같다.’라는 직감은 언제나 정답에 한없이 가까웠기에 리안은 작은 의문조차 가볍게 넘기지 않고 생각에 잠겨 들었다.

[ ‘내가 간섭하지 않았다고 해도 외신이란 존재들 때문에 원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최종 보스도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당연하겠지.’ ]

리안의 생각을 막고 있던 어떠한 막이 벗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리안은 거침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 ‘이럴 경우 최종 보스는 당연히… 원작에 언급되지 않았던 존재인 외신인게 당연할 거야.’ ]

너무나 쉽게 찾아진 답에 리안은 미간을 더욱 구긴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 ‘끙… 이걸 왜 이제야 떠올렸지? 다크 판타지 신이 신의 인장을 건네줄 때 외신에 대해 언급해줬었는데..’ ]

손에 찾던 물건을 들고 방 안을 마구 헤집고 다닌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지.’ ]

리안은 기억 속을 더듬어 외신을 잡고 정보를 탈탈 털어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 ‘그때 들었던 정보가 사실이라면 최종 보스라 불릴 만한 외신은 -…’ ]

리안이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기 직전.

“윽…”

[ …? ]

숨소리만 겨우 뱉어내고 있던 마왕이 갑작스럽게 신음을 뱉어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 헉! 설마… 새끼발가락이라도 찧었나…?! ]

개그 세계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자 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 질리진 않았다. 영체였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 내가 옆에 있어서 크게 다쳤을 수도….어? ]

마왕의 곁으로 다가가자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칼날이 시선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칼날이 마왕의 여린 허벅지를 사정없이 헤집고 있었다.

생명이 유한한 다크 판타지 주민의 진짜 자해에 리안은 딱딱하게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리안은 자신이 짐작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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