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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EP.170

     

   한 무인의 일생을 다 들은 나의 기분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참 ‘유익’했다.

     

   천하제일이라는 별호를 사용할 정도로 강한 사람의 과거는 듣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돌아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 줬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내가 11층에서 장막 뒤의 감시자에게 받은 임무는 량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로부터 감사를 받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량’이 도산검림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12층은 어떻게 가야 하는데?”

     

   나의 물음에 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대충 봐도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 게다가 이어진 말을 들어 보니 더욱 가관이다.

     

   “허, 자네는 감정이 없나?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 들었는데 감상이 그게 뭔가? 일단 좀 감동도 받고 [아아 도산검림에는 참으로 멋진 영웅이 있었구려.] 정도는 나와 줘야지.”

     

   녀석의 말에 나는 인상을 구겼다. 그가 감성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클리어가 불가능한 임무를 내 앞에 꺼내 놓은 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으니까.

     

   “내가 네 녀석에게 받은 임무가 뭐지?”

   “량에게 호의를 베풀라는 내용이었지.”

     

   새삼스럽게 뭘 물어보냐는 말투.

     

   “그런데 량은 이곳에 없지?”

   “그러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임무를 클리어하지?”

   “그러게.”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을 보니 그가 입은 하얀 도복이 신선보다는 미치광이에 가까운 분위기로 변질됐다.

     

   나는 잠시 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충분히 변명할 시간을 줄 테니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뭐든지 해 보라는 의미였다.

     

   표정이 슬금슬금 변하는 그의 모습. 어찌나 그 변화가 자연스러웠던지 원래부터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인 것 같았다.

     

   “하핫. 사실 다 방법이 있네.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그가 나에게 기다리라는 제스쳐를 취한 뒤, 주변에 보이는 큼지막한 바위에 적당히 걸터앉는다.

     

   “후우……”

     

   가부좌를 틀고 눈을 지그시 감은 11층의 성좌. 그리고 잠시 후, 익숙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11층의 성좌, ‘장막 뒤의 감시자’가 탑에게 임무의 오류를 보고합니다.]

   [탑이 성좌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가 도전 중인 11층을 확인합니다.]

     

   [오류를 확인 중……]

     

   띠링.

     

   [11층의 임무가 클리어 불가능함을 확인. 장막 뒤의 감시자에게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파지직.

     

   메시지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주변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시각적으로 대단한 무언가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기운이었다.

     

   “따끔따끔하군. 상당히 불쾌해.”

   “그게 다냐?”

   “좀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말이야. 근데 나는 다른 메시지도 떴는데 혹시 자네도 보이나?”

     

   뭔가 기분이 묘한지 몸을 긁적이던 그가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는 짧은 콧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흠. 도전자를 기만했으니 그만한 보상을 지급하라는군. 혹시 나에게 원하는 게 있나?”

     

   뜻밖의 횡재였다.

     

   그는 나와 달리 탑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지금의 세계에 머물기를 선택한 성좌. 경험의 차이도 연륜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했다.

     

   “음……”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한철검과 무명검이 있으니 특별히 무기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고 그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기도 애매하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 그럼 내가 제안을 할 테니 한 번 들어볼 텐가?”

     

   나의 고민을 알아챈 것인지 그가 먼저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자네의 요구에 따라 딱 한 번 무엇이든 도움을 주도록 하지. 힘이든, 지혜든, 기술이든, 병력이든 나의 능력 밖의 일만 아니라면 힘이 닿는 데까지 자네를 도와주겠다는 말이네. 아, 물론 죽으라는 것도 안 되네.”

     

   예상치 못한 그의 제안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말은 가볍게 했지만 실상은 도산검림 전체를 한 번 활용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를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자네를 응원하고 있네. 자네가 꼭 이 탑의 정상에 올라줬으면 해.”

   “……왜지?”

   “자네는 이 탑의 끝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나?”

     

   모른다. 하지만 어렴풋이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은 느끼고 있었다.

     

   “대충 감은 잡았다는 표정이군. 내가 11층 보다 높은 층을 올라본 건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탑이라는 것이 절대자를 선별하는 과정은 아닐까 추측이 된다네.”

     

   세상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

     

   탑을 오르며 우리는 우리의 한계에 부딪친다. 그 과정에서 성장을 하고 새로운 시련을 맞이하고 계속해서 발전을 도모한다.

     

   때로는 한 나라의 왕이, 때로는 누군가의 구원자가, 때로는 세상의 기적이 되는 과정을 반복중인 도전자들.

     

   “이미 많은 일을 겪어왔겠지만 앞으로 탑을 오르며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네. 나처럼 호의적인 성좌가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성좌도 분명 있을 거고.”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튜토리얼의 시작에서부터 나에게 후원을 했던 ‘장막 뒤의 감시자’나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 같은 성좌들은 몰라도 다른 존재들의 꿍꿍이는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호의적인 성좌와 그렇지 못한 성좌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성좌들이 나를 속이고 가짜 임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임무를 클리어하는 거 말고 포탈을 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나? 앞으로도 너 같은 성좌가 없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

     

   나의 물음에 장막 뒤의 감시자가 찔리는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흠! 사실 다음 층으로 가는 포탈을 여는 방법에는 3가지 방법이 있네.”

     

   의외로 다양한 경우의 수. 하지만 그 과정은 그냥 임무를 클리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까다로운 방법밖에는 없었다.

     

   “첫 번째는 정석적으로 탑이나 성좌가 준 임무를 클리어하고 포탈을 ‘제공’받는 방법이 있네. 뭐 이건 설명이 딱히 필요할 것 같지는 않으니 넘어가고.”

     

   그가 잠시 나의 눈치를 보며 뜸을 들였다. 이걸 말을 해도 되나 싶은 표정. 하지만 이내 고민을 마친 그가 입을 열었고 나는 그가 뜸을 들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법은 과격하긴 한데 상대 성좌를 죽이는 방법이네.”

   “……뭐?”

   “말 그대로네 층을 관리하는 성좌를 죽이는 거야. 하지만 이 방법은 권하지 않네. 해당 층을 관리하는 성좌가 도전자보다 약한 경우도 거의 없을 뿐더러 첫 시도에 실패하고 성좌가 숨어 버리면 평생 그곳에 갇힐 수도 있으니 최후의 최후가 아니라면 절대 하면 안 될 도박이라고 말할 수 있지.”

     

   그의 말을 들으니 두 번째 방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그 성좌의 층에는 그의 군대가 있을 것이 당연한 사실.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에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될 게 뻔한 일이니 성공률도 거의 0에 수렴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은 좀 방법이 특이한데 해당 층을 관리하는 성좌에게 마력을 제공하고 포탈을 ‘구매’하는 방법이네.”

   “포탈을 구매한다고?”

   “뭐…… 사실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대여’에 가깝네. 혹시 자네 5층에 있었을 때를 기억하나?”

     

   마왕성이 있던 5층.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일을 떠올리라고 하면 역시나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나를 찾아온 일이었다.

     

   “고층을 다스리는 성좌에게는 간혹 저층을 관리할 권한이 생긴다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자신의 마력을 일정량 사용해서 그곳을 넘나들 권한도 함께 따라오지.”

     

   13층의 성좌인 그가 5층으로 내려왔던 방법. 하지만 그의 설명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근데 그걸 생각해서 한 성좌가 문을 강제로 여는 방법을 고안했다네.”

   “문을 강제로 연다고?”

   “쌓아둔 격과 마력으로 탑의 규칙을 뒤틀어 버리는 게지. 하지만 그 마력양이 진짜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네. 나는 일단 불가능하고…… 음, ‘탈람바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의 이름.

     

   “그런데 최근에 그가 팔 한쪽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그리고 그가 팔이 날아간 이유가 한 성좌와의 대결 때문이라는 것도 말이야.”

     

   그가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당연히 그 ‘한 성좌’라는 게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가 탈람바르의 팔을 자른 건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벌어진 기적에 가깝다네. 그가 최근에 14층의 성좌에게 볼일이 있어서 상층을 방문했던 것만 아니었어도 5층을 막 클리어했던 자네는 딱밤 한 방으로 삼도천을 건넜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포탈을 열어서 다음 층을 억지로 뚫을 수 있다는 말.

     

   장막 뒤의 감시자는 본인의 마력으로 본인이 넘어가는 일은 ‘방문’이지 ‘통과’가 아니었기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존재가 사라진다는 말을 덧붙인 뒤,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다음 층을 뚫을 마력을 해당 층의 성좌에게 제공하고 그 성좌가 ‘임무 클리어’라는 탑의 규칙을 속여 주는 게 세 번째 방법이네. 하지만 이것도 쉽진 않아. 사용되는 마력이 많다 보니 본인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데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나?”

     

   그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내가 포탈을 여는 방법은 임무를 클리어하거나 상대 성좌를 죽이는 방법뿐이라는 것.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알려준 정보는 충분히 유용한 정보였다.

     

   “아, 이제 슬슬 시간이 된 모양이군.”

     

   우웅.

     

   그의 설명이 끝나자 스멀스멀 12층으로 가는 포탈이 나타났다.

     

   “건투를 비네. 그리고 이거.”

     

   그가 손을 뻗더니 동전만한 구슬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은은한 마력이 담긴 금빛 구슬.

     

   “이걸 깨트리면 자네가 불렀다고 생각하고 한걸음에 달려가도록 하지. 마력은 좀 많이 필요하겠지만 뭐, 약속한 건 지켜야 하니 말일세.”

     

   그가 나를 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언제 그의 힘을 쓰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반드시 유용하게 써먹어 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12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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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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