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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허물어져가는 북한산성 행궁은, 어둠 속에서 고요한 가운데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오스에는 없겠지.”

       

       나는 북한산성 행궁 가운데 세워진 콘크리트 막사와 그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어제 여기로 오지 말라고 얘기해 뒀으니 정말로 안 왔으려나.

       

       “그대는 도진 공녀와도 벗이 아니오?”

       “렌까? 걔랑도 친구긴 하지.”

       “그 오스에라는 여인은 자신의 주군에게 충의를 바치는 이일진대, 설마 주군의 벗과 맺은 신의를 저버리겠소?”

       

       뭐, 그런가. 이유하의 말대로 ‘충의를 아는 자이니 신의를 지킬 것’이라는 믿음과는 별개로, 오스에는 렌까의 부하이니만큼 렌까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을테고, 렌까도 딱히 나에게 선을 넘는 짓은(처음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후에는) 하지 않았으니 오스에 역시 나와의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막사에 들어가며 말했다.

       

       “그래. 그럼,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들어가자.”

       

       복도를 걸어 캠프를 차리려는 방에 들어가, 창문에 천을 씌워서 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막아놓은 나는, 이곳저곳에 촛불을 놓아 방을 밝혀두었다.

       

       바닥에는 모포를 깔아 자리를 펴놓고, 가져온 짐들을 모두 푼 뒤, 방의 한 쪽 구석에는 텐트를 쳐 놓았다. 이 정도면 잠깐잠깐 쉬기에는 나쁘지 않으리라. 

       

       “후우…… 유하야, 잠깐 뒤로 물러서 있어.”

       

       그럭저럭 캠프를 조성한 나는 적석을 꺼내, 마력을 불어넣어 마문을 발동시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좁쌀만한 빛덩이가 확장되며 기이한 색으로 울렁이는 구체가 되자, 나는 이유하에게 말했다.

       

       “거기 있는 케이지랑 밧줄 좀.”

       “여기 있소.”

       

       새장처럼 생긴 케이지 안에 들어있는 것은, 학교에서 몰래 챙겨온 「게다마」 몇 마리였다. 이유하는 나에게 케이지와 밧줄을 건네며 물었다.

       

       “헌데, 이것들은 무슨 소용으로 가져온 것이오?”

       “밧줄을 매달아서 마문에 집어넣어보려고.”

       “……아!”

       

       이유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하 역시 학교 이계생물학 수업에서 배웠던 것이다.

       

       이 게다마라는 하급 소형 마수는 지구와 비슷한 대기에서 호흡하고 일반적인 상온에서 활동하는 마수로, 사실상 실험쥐 취급을 받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이 마문이 출현했을 때 이 게다마를 먼저 들여보내,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인지 먼저 알아보는 용도로도 쓰였던 것이다. 물론, 21세기에선 드론을 썼지만 말이다.

       

       나는 게다마에 밧줄을 묶고, 마문에 던져넣었다. 마문의 표면에 작은 물결이 생기며 게다마가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스르륵, 하고 끌려들어가는 밧줄.

       

       ‘이동하고 있군.’

       

       밧줄이 갑자기 확 끌려가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끌려간다는 것은, 게다마가 다른 마수에게 잡아먹히거나 하지 않고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뜻이었다. 일단 저 너머의 입구 근처에 적대적인 마수는 없다는 뜻.

       

       나는 잠시 가만히 서서, 밧줄이 한참동안 안정적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좋아. 이제 슬슬 꺼내볼까.”

       

       최약체 마수인 게다마가 아직까지 살아있을 정도면 대기나 기온 따위도 사람이 충분히 버틸만 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 정도면 되었다 싶어 게다마를 회수하기 위해 다시 밧줄을 당기려는데,

       

       ‘뭐지?’ 

       

       방 밖의 복도 쪽에서 느껴지는, 무언가의 마력.

       

       느껴지는 마력은, 내가 집중하고있지 않았더라면 눈치채지도 못 할 정도로 미약한 마력이었다. 비각성자보다 조금 나을 정도로 재능없는 각성자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미약한 마력. 

       

       물론, 이 학교도 어느정도의 커트라인은 있기 때문에, 저 정도의 흐릿한 마력을 가진 각성자는 입학을 하지도 못 한다. 그렇다면……

       

       ‘오스에처럼 자신의 기척을 숨길 수 있는 녀석이겠지.’

       

       설마 오스에가 약속을 깨고 여기로 온 건가. 나는 밧줄을 당기다 말고 마문을 황급히 닫았다. 

       

       “왜 그러시오?”

       “밖에 누가 있어. 이유하, 내 뒤로.”

       

       나는 마문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복도로 나갔다. 그런데, 복도의 어둠 속에서, 둥실둥실 떠서 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은……

       

       ‘뭐야, 게다마잖아.’

       

       노란색 게다마 한 마리. 미약한 마력 역시 저 게다마로부터 느껴지는 것이었다.

       

       ‘사람인 줄 알고 놀랬네…… 챙겨온 게다마 중에서 하나가 탈출했나?’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내가 가져온 것 중에 노란색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있던 방에서 탈출한 게다마라면 복도 저편에서 이 쪽으로 다가올 리가 없는 것이다. 

       

       둥실둥실 떠서 다가오던 게다마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기라도 한 듯이 빙글 돌아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어딜!”

       

       그래봐야 사람이 뛰는 것보다 그리 빠르지도 않았기에, 나는 곧장 복도를 달려 게다마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으갹!”

       

       하고, 막사 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바로 칼을 빼어들고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왓! ……고, 곰방와? 시라바야시 군!”

       

       그런데 막사 문 바깥에 쭈그리고 숨어있는 것은 다름아닌 양복자가 아닌가. 그 뒤에는 아이까와도 있었고,  송병오까지.

       

       ‘……어처구니가 없네.’

       

       딱 보니, 양복자가 게다마를 조종해서 막사 안으로 들여보내 염탐(?)을 시도한 모양새였다. 나는 멋쩍은 듯 헤실헤실 웃는 양복자에게 물었다.

       

       “여기서 뭘 해?”

       “그게…… 헤헤.”

       

       심지어 목에 카메라까지 걸고 있던 양복자는, 추궁하는 내 시선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되물었다.

       

       “그런데…… 시라바야시 군이야말로, 밧줄은 왜 들고 있어?”

       “응?”

       

       그러고보니, 마문이 사라지며 끊어진 밧줄을 여전히 왼손에 들고 있었다. 게다마를 잘 다루는 양복자라면, 게다마를 이용해 마문을 탐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을 것.

       

       어쩌면 마문에 대한 것을 들킬까 싶어, 나는 밧줄을 내다버리며 둘러댔다.

       

       “어어. 아무것도 아니야.”

       “헤에-”

       

       양복자는 똑바로 일어나더니,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니글니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시라바야시군이야말로! 여기서 뭘 했던 거야? 응? 류까 쨩이랑 둘이서 뭘 했을까? 응?”

       “아니, 내가 먼저 물어봤—”

       “아베크, 맞지? 그치?”

       

       뭐? 

       

       “류까 상이랑 둘이서! 흐흥……! 그래서 구경왔지!”

       

       양복자는 다 알았다는 듯, 허리에 두 손을 얹고 가슴을 내밀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아니, 뭐, 마문에 대해 들키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베크라니. 얘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했다. 하지만 마문에 들어가려 했다고 솔직히 답할수도 없어,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뭣……! 아, 아니오!” 

       

       내 뒤에 서 있던 이유하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말까지 더듬으며 외치는 것이 아닌가.

       

       “다, 당치도 않은 소리 마시오!”

       “헤에, 맞잖아? 그럼 뭔데뭔데?”

       “그건……”

       

       이유하가 내 눈치를 보며 버벅거리는 사이, 송병오 녀석도 일어나서 나에게 말했다. 

       

       “이야아, 내가 공팔자 그 계집이랑 놀러갈 때는 날더러 좋을 때라느니 뭐니 연애사업이란 남의 얘기인 것처럼 말하더만, 그래 백철연이 자네야말로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듯 화학 작용을 나누고 있었을 줄이야! 자네도 참 제법이야!”

       “아니라니까, 시발.”

       

       나는 그렇게 둘러대며, 막사 쪽을 힐긋거렸다. 지금쯤 마문은 완전히 닫혀 사라졌으리라.

       

       “뭐, 진짜로 아무것도 안 했어. 들어 와.”

       

       이렇게 밖에서 떠들며 서있기도 뭐해서, 나는 다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다행히 마문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마문을 들키진 않았겠군……’ 

       

       마문에 대해서라면 아직은 얘네들 전부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나니나니? 이게 다 뭐야? 뭐야뭐야! 빵도 있고 코히도 있어! 그리고 이부자리도 있고, 촛불도 켜 놓고…… 훙이끼 이이나(분위기 좋네)~”

       

       양복자가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방 안에 가져다놓은 건조식, 커피, 통조림 등의 식료품과, 침낭이며  촛불까지 켜놓은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다.

       

       “허어! 아주 신혼집 살림을 차렸군!”

       

       송병오 녀석도 방을 슥 둘러보더니 씨익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거, 집들이 선물도 없이 빈손으로 와서 미안하네그려! 자네가 미리 말했으면 지리가미라도 사들고 올 것을 말일세!”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내 오늘 아-주 좋-은 구경을 하네그려! 좋-은 구경을 해!”

       

       아니, 진짜 인중 때리고 싶네. 

       

       그러는 와중에 아이까와까지 뭘 상상하는지, 바닥에 펴 둔 모포를 보며 얼굴이 발그레해져서는,

       

       『흐와아……』

       

       하며 두 손으로 뺨을 감싸고 있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양복자는 다시,

       

       “네에네에, 여기서 자고 가도 돼?” 

       

       하고 나에게 묻는 것이다.

       

       “뭐?”

       “늦었는데!” 

       

       그런 양복자의 말에, 송병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것도 그렇네 그려. 자네의 신혼살림에 미안하지마는 시간이 퍽 늦어 돌아갈 것도 걱정이니……”

       “그치그치! 뭐어, 날씨도 따뜻하고, 여기서 다같이 놀다가 자면 재밌겠다! 여행 온 것 같고! 그치그치! 데쇼데쇼? 아이까와 쨩!”

       『응? 으응!』

        

       아이까와는 뜻도 모르고 그저 끄덕끄덕.

       

       ‘아이고……’

       

       내가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느라 미간을 붙들고 서 있자, 송병오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외쳤다.

       

       “이보게 주인장! 객이 왔는데 커피라도 좀 내어주지!” 

       

       거기에 양복자는 더 보태서,

       

       “모오, 시라바야시 군! 코히 말고 비-루는 없어? 신혼집이면 와인은 몰라도 비-루라도 있어야지!”

       

       하고 외치는 것이다.

       

       ‘이것들 보소.’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상전이 따로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이래서야, 마문은 못 들어가겠네.’

       

       고요하던 폐허는 어느새 갑자기 북적북적해져서, 열일곱 살 먹은 꼬마들의 비밀기지 같은 느낌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니 갑자기 쫓아내면 오히려 더 오해를 살 것 같고, 그렇다고 녀석들에게 마문의 존재를 알리기도 뭐했기에, 나는 생각했다.

       

       ‘에라, 모르겠다.’ 

       

       뭐, 마문에 대한 것은 내가 앞날에 대비해 강해지기 위한 필요성에 의한 것이긴 해도, 한시가 급한 사안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 녀석들이 하도 뻔뻔하게 나오니, 나도 곤란함이나 화를 느끼기보다는 어처구니없음에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참 나, 이런 놈들을 친구라고…… 그래, 다들 커피나 마시면서 밤새도록 얘기나 하자.”

       

       이렇게 된 거, 그냥 우리 분대원들간의 우애나 다져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는 새벽 다섯시가 넘어서 자버렸네요. 그래서 오늘은 너무 늦게 일어나 버렸습니다. 으으……

    원래 오늘화는 분량이 좀 더 있을 예정이었지만,
    쓰다보니 시간이 촉박해져서 여기서 일단 끊습니다…… 짧아서 죄송합니당!

    당연히 내일도 이어서 올라갑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요!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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