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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버멜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세상이 뒤집힌다. 땅과 하늘,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풀썩! 버멜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땅바닥에 걸레처럼 나뒹굴었다. 

       

        “크흑….”

        “로멜!”

       

        메릴다가 이번에는 오르간을 꺼내 연주했다.

       

        [─ SYSTEM : ‘회복의 가락’의 적용으로 인해 받은 물리적 피해가 치유됩니다.]

       

        사뿐.

       

        “뭐야.”

       

        에테르는 땅에 내려와 신음을 되삼키는 버멜을 바라보았다. 당혹감과 한심함이 반반씩 섞인 눈동자였다.

       

        “이걸 못 막네.”

        “끄흑, 씨발…. 큭…….”

       

        아프다. 너무 아파서 욕이 안 나오려야 나올 수밖에 없다. 

       

        버멜은 잇새를 꽉 깨물었다. 피가 나더라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고통을 참고 일어나야 한다.

       

        이건, 벌이다.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이 의지했던 유일무이한 동향 사람을 오랫동안 혼자 두게 한 벌.

       

        “메릴다!”

        “에리카, 제롯은 그대로 앞으로 가세요! 여긴 제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에테르는 스태프를 붕붕 휘두르며 메릴다에게로 걸어갔다. 회전시키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꿀꺽, 하고 메릴다의 목울대가 넘어갔다. 무의식 속에서 두려움이 꿈틀거린다.

       

        “미친…. 당신 도대체 뭐야.”

        “스태프로 한 번 때린 것 가지고 뭐냐니.”

       

        에테르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이 학교 수석이다.”

        “…방금 사용한 거, ‘공간이동(Teleportation)’이죠? 그거, 금안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용할 수 없을 텐데요.”

       

        공계마도는 오직 녹빛이나 연둣빛 눈동자를 지닌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 적어도, 스크롤이나 마법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메릴다의 시선이 에테르의 품 구석구석을 훑었다. 스크롤을 사용하거나 한 흔적은 없었다.

       

        그 정도로 마력의 밀도가 집중되어 있지 않았다.

       

        “편법이라니까.”

       

        에테르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변했다. 메릴다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꾸 편법, 편법 하시는데…….”

        “알고 싶으면 날 쓰러뜨려 보라니까?”

        “그 말, 후회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메릴다는 있는 대로 마력을 끌어모았다. 잎사귀처럼 싱그러운 빛을 머금은 마력이 그녀의 몸 주변을 감싼다.

       

        만들어지는 것은 인간의 형체. 그녀의 어깨 위로 나뭇잎을 옷감으로 짜 입은 영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

       

        아리따운 소녀의 형상이었다. 에테르는 저것이 어떤 존재인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중급 공계정령, ‘에코(Echo)’. 음과 압을 관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꼬마 아가씨다.

       

        [으응? 너, 이상한 기운이 폴폴 나네.]

       

        메릴다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에코가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너 뭔가 숨기고 있지?]

       

        “얼씨구.”

       

        에테르는 스태프를 고쳐쥐었다. 메릴다도 신속히 영창할 준비를 끝마쳤다.

       

        상대방은 ‘버퍼’, 주로 중간이나 후열에 서서 아군 전체에게 버프를 걸어주는 포지션.

       

        단번에 근접하면 메릴다가 불리해진다.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메릴다는 재빨리 거리를 벌려 에테르에게 멀어졌다.

       

        [메릴다! 위험해!]

       

        패착이었다.

       

        “두 번은 못 쓸 줄 알았나 봐?”

       

        뒷덜미가 서늘했다. 제 주인을 걱정한 에코가 즉시 ‘보호의 선율’과 ‘싱그러운 생명의 가락’을 걸었다. 버프가 주력인 그녀로서는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퍼억! 스태프 끝자락이 날갯죽지를 강타했다.

       

        “꺄아악!”

        “메릴다아아!!”

       

        에리카가 경악성을 내지르며 뒤로 후퇴했다. 그녀는 로테와 경합을 다투던 중이었다.

       

        “야, 너 괜찮아?”

        “주, 죽을 맛이에요….”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가 당했다. 에리카의 서늘한 눈동자가 에테르를 향했다.

       

        “너!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급소는 피했다. 못해도 보건실에 가면 반나절 안에 나아.”

       

        빠득. 이가 갈린다.

       

        벌써 두 명이 당했다. 불과 1분 안에 후열 두 명이 나가떨어졌단 말이다!

       

        솔직히 말해, 에리카는 제롯의 말에 내심 동의하고 있었다.

       

        자신들도 일류 아카데미의 재학생이다. 틸레트와 동급이라 생각했다.

       

        거기에 정령마도도 다룰 수 있었으니, 여기까지 고려한다면 자신들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실비아!”

       

        에리카의 외침과 함께 주변 공기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중심으로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이윽고 에리카는 자신의 정령을 바람과 함께 현현시켰다. 날렵해 보이는 인상의 소녀가 그녀의 곁에 나타났다.

       

        [와와와! 에리카, 저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야!]

       

        “알아.”

       

        [저거 그냥 마수 아니야? 사람 때려패는 게 너무 무자비한데?]

       

        에리카를 비호하는 정령, ‘실비아’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에테르는 최대한 태연하게 움직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가 마수였으면 너희들을 이렇게 후드려 패겠냐?”

        “그럼?”

        “진작 도망쳤겠지.”

        “그, 그런 건가?”

       

        [에에에…. 저거 거짓말 같은데.]

       

        미친 새끼. 거 더럽게 예리하네.

       

        이래서 로즈마리가 정령마도를 다루는 엘프를 두려워했던 거구나. 완전 카운터잖아, 이거.

       

        “크흑!”

        “약하군.”

       

        때마침 제롯이 클리온을 쓰러뜨렸다.

       

        “항복이다, 항복. 못해먹겠군.”

       

        이걸로 틸레트 측에서도 한 명이 쓰러졌다. 클리온은 혀를 차며 운동장 밖으로 나갔다.

       

        경기 조건은 단순했다. 항복하거나 기절하면 그대로 밖에 나가기. 링 안에 최후까지 남아있는 팀이 이기는 것이다.

       

        “아오, 저 황자놈은 방해만 돼! 비켜 봐! 단번에 날려버리게!”

       

        프레이는 씩씩거리며 로켓포를 연성했다. 제롯은 꼬맹이를 향해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영거리에서 쏘면 쏜 사람도 피해를 본다. 특히나 프레이는 후열 특화였다. 제롯의 선택은 합당했다.

       

        “간다.”

        “프레이!”

       

        후우욱!

       

        “우왁!”

       

        로테가 재빠르게 프레이를 낚아챘다. 제롯의 스태프가 허공을 갈랐다. 맥없는 파공음이었다.

       

        프레이의 모자가 두둥실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몸이 뒤로 젖혀진 탓이다. 프레이의 얼굴이 일순 새파랗게 질렸다.

       

        “아, 안돼!”

       

        프레이는 서둘러 무기를 버리고 모자를 눌러썼다. 에리카와 입씨름을 벌이던 에테르는 그 모습을 보고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허어.”

       

        하마터면 친구 하나 잃을 뻔했다. 이 세상에서 수인족의 취급은 영 좋지 못하니 말이다.

       

        “미치겠군….”

       

        버멜은 끄으으, 하는 신음을 뱉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스태프는 역수로 쥐었다.

       

        푸욱! 땅에 내리찍으며 무게를 지탱한다. 지금은 서 있는 것조차도 아슬아슬했다.

       

        “커, 커헉…!”

       

        그 사이에 에리카는 복부를 얻어맞고 날아갔다. 최대한 기교를 부리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보다 못한 제롯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저 녀석, 대체 뭐야?”

       

        두 명까지는 어떻게든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세 명째부턴 아니다. 저건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 마법은 언제 쓰지?”

        “응? 공간이동 썼잖아.”

        “그거 말고, 다른 공격계 마법은 안 쓰느냐 이 말이야.”

       

        제롯은 프레이와 로테를 경계하며 본진으로 천천히 복귀했다. 메릴다는 모르겠지만, 로멜은 회복하고 있으니 아직 승산이 있다.

       

        그야 그렇겠지. 저 녀석, 아까부터 스태프만 줄곧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즉, 다른 금안족과 비슷하게 마법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있다.

       

        “혹시, 원거리 공격은 못 하는 건가?”

       

        제롯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역시.”

        “아니, 할 줄 아는데?”

       

        슈우욱!

       

        뻐억!

       

        “크허억!”

       

        이마에 명중이었다. 제롯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쓰러졌다. 마치 클리온에게 했던 것처럼.

       

        각운동량 보존을 몸소 체험한 제롯 앞으로 인영이 드리웠다. 번뜩이는 금빛 눈동자가 그의 안경에 굴절되어 들어왔다.

       

        “미, 미친…….”

       

        등골이 서늘하다. 몸이 파리하게 떨려온다. 다리의 후들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래, 마치.

       

        절멸급 마수를 눈앞에 두고 있는 느낌이다. 

       

        “다들 일격에 나가떨어져서야 원.”

       

        에테르는 한숨을 내지르며 떨어진 캘리퍼스를 주웠다. 그녀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아닌가?”

       

        그곳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버멜이 있었다.

       

        [─ SYSTEM : ‘흑주’ 에테르가 당신을 응시합니다. 대륙 존망의 위협으로부터 대비하십시오.]

       

        ‘스, 스테이터스.’

       

        [겨울 하늘(上天) : 흑주(黑晝) 에테르]

       

        [체력 : 666/1000]

        [공격력 : 766/1000]

        [방어력 : 828/1000]

        [마도 감응력 : 0(+999)/1000 (르퀴네스 제약)]

        [지력 : 1000/1000]

       

        [특이사항 : 이 개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속여넘길 수 없습니다.]

       

        사천(四天) 중 공격력이 최약일 텐데, 평범한 타격만으로도 이 정도다.

       

        전신에 형용할 수 없는 탈력감이 감돈다. 맞은 부위는 골절된 것처럼 빠개질 듯하다. 메릴다가 말한 대로다. 죽을 맛이다.

       

        그래도.

       

        한 번은 더 해야 한다.

       

        [스트레스 수치 : 60(위험함)]

       

        이런 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되기에.

       

        버멜은 제 한 몸 건사하기로 했다.

       

        그것이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루트이자, 기다려 준 동향인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으니까.

       

        “정 못할 것 같으면 너도 항복하든가.”

        “…아니, 아직 괜찮다.”

       

        버멜은 땀이 흐르는 손으로 스태프를 꼬나쥐었다.

       

       

        **

       

       

        “아.”

       

        낯선 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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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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