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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엘프의 숲을 떠난 지도 3주.

    우리는 트러블 없이 제국령으로 돌아와,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황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와 씨 이게 뭐야.”

     

    궁에 들어서자마자 발렌이 입을 떡 벌리고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느라 바빠졌다.

    화려하게 장식된 고층 건물과 널찍한 광장을 태어나 처음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

     

    “쟤 좀 봐. 완전히 넋이 나갔네.”

     

    아셀라가 피식 웃었다. 오랜 여행에도 그녀에게 지친 기색은 없었다.

     

    “아니, 이게… 집이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반듯한 돌을 어디서 구해? 아까부터 풍기는 맛있는 냄새는 뭐야? 야, 의사 선생.”

     

    문화 충격을 받은 발렌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거 다 환상 마법인지 뭔지 아냐? 우리를 활만 쏘는 원시인으로 아나 본데, 엘프야.”

     

    “마나의 흐름에 굉장히 민감하시지요. 하하, 잘 알고 있습니다. 가짜도 뭣도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브루노, 여기 안내해드려.”

     

    천둥족과 친한 브루노가 엘프도 잘 상대할 게 분명했다.

     

    그를 붙여주고 나는 아셀라와 함께 월광궁으로 복귀했다.

     

    “이후 황녀님 일정은 어떻게 되시죠?”

     

    “목휘궁과 회담이 계십니다. 저녁에는 개인 시간을 가지실 예정입니다.”

     

    시녀장 누님이 내게 대답해주었다.

    아셀라가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땐 주로 마법 관련인데, 돌아오자마자 연습이라도 할 생각인가.

     

    “황녀님.”

     

    나는 아셀라에게 병을 하나 건넸다.

     

    “마나 보충제입니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참이니 무리하지 마세요.”

     

    에너지드링크까진 아니고, 타우린과 비타민을 넣어 마나 생성을 도와주는 음료다. 연금술 경험치를 올리려 심심하면 만들어 먹고 있다.

     

    아셀라는 장갑 낀 손으로 병을 건네받고는 내게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며 귓속말을 속삭이는 아셀라.

     

    “밤에 봐.”

     

     

     

    리셰는 기사단과 함께 던전 토벌에 나가 있느라 며칠 후에 귀환한다고 했다.

    나도 궁에는 오랜만에 돌아왔기에 일단 내의원으로 향했다.

     

    “아, 고트베르크 선생! 돌아오셨군.”

     

    가장 먼저 팔켄하인의 보고를 받았다. 그와 휴고 덕분에 파벌은 근 한 달 반 동안 문제없이 운영됐다.

     

    “그러고 보니 게오르크가 돌아왔는데 경께서는 여기 남아계셔도 괜찮습니까?”

     

    팔켄하인은 게오르크의 주치의였다. 그의 퇴궁 때 직책이 해지되었나 본데, 월광궁 파벌에 남아있기에는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안 그래도 복직을 권유받고 있었소이다.”

     

    “역시 그랬군요.”

     

    “그에 대해서도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소만.”

     

    팔켄하인인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슬슬 은퇴를 고려하려 하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세를 생각하시면 이미 시기를 넘기셨지요. 그간 내의원에 공헌해주신 일만으로도 충분히 수고하셨습니다.”

     

    “당장 급한 안건은 책임질 생각이오. 무엇보다도 연무회에 참가할 치유사 선발 건으로 내의원이 시끄러웠소.”

     

    “연무회 말이죠. 저희 파벌은 얼추 선발을 마쳐놓지 않았습니까?”

     

    “그랬소만 나중에 소식이 알려지고 온갖 파벌이 끼어들었소. 애거사 공주나 게바드 친왕 파벌 등, 벌써 다섯이 넘었소.”

     

    주로 자신만의 귀족 세력을 구축한 황제의 형제자매, 그 자식들이다. 그들의 주치의도 내의원에서는 발언권이 나름 있는 편이다.

     

    승계권자인 아셀라나 헤이케야 당연히 참가하지만, 그들은 비교적 약소 황족이다. 자신의 파벌이 연무회에 출전한 사실만으로도 귀족들에게 위상이 높아진다.

     

    운 좋게 좋은 성적을 내 최종 후보로 뽑히기라도 하면 큰 명예겠지. 기회라 여기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나.

     

    “알베리치도 다섯 자리는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마저도 협상해야 할 판인데요.”

     

    “내 말이 그 말이오. 연무회에선 온갖 국가의 치유사들이 경합을 벌일 테니 우리 제국 치유사는 한 팀으로 활약을 펼칠 필요가 있소이다.”

     

    “흠.”

     

    다른 출전 자리는 궁마다 자리가 정해졌으니 아셀라가 헤이케와 협상한다 쳐도 치유사는 내의원에서 자체적으로 결정된다.

     

    “국가의 체면이 걸린 자리지요. 왕국도 왕국이지만 법국에 뒤처지면 말이 아닙니다.”

     

    “맞는 말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차분히 협상해 보죠. 안 그래도 연무회로 차출되기도 하고 의사는 계속 필요한데. 작년부터 내의원 각 파벌에서 계속 인원을 확충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현황은 어떤가요?”

     

    팔켄하인이 바로 자료를 준비해주었다.

     

    “선생이 만든 프로그램대로 각지의 육성소 졸업생들을 데려다 인턴으로 쓰고 있소이다. 인원 자체는 많이 확충됐소. 다만 얘기했던 대로 다른 파벌은 당장 연무회에 자리를 만드느라…”

     

    “만드느라 뭐요?”

     

    내 질문에 팔켄하인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실적에만 집중하느라 인턴들을 특정 구역으로 몰아넣고 방치해 버렸소.”

     

    “실적은 귀족이나 일반 진료에서 나오고. 집계가 안 되는 현장이라면.”

     

    무슨 말인지 바로 감이 왔다.

     

    “응급실이요?”

     

    “그렇소이다.”

     

    “아니 원.”

     

    나는 즉시 일반 진료 구역으로 내려가 클로에를 찾았다. 마침 환자 진료가 끝나 텀이 있었다.

     

    “클로에, 최근에 응급실 가봤어?”

     

    “허업, 선생님! 으, 응급실이요.”

     

    클로에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상황을 개략적으로 설명해줬다.

     

    환자의 안정성을 위해 일반 진료 구역과 응급실이 분류되었다는 것. 위치는 내의원이 아니라 성 외곽이라고 한다.

     

    기존 완전 예약제로 돌아가는 일반 진료에 비해 응급실은 위급한 환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기에 24시간 바빠졌다는 것.

     

    안 그래도 치유사들에게 시프트가 기피되고 있었는데 이번 연무회를 계기로 아예 인턴밖에 안 남았다는 얘기였다.

     

    “아이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 안 봐도 뻔했다.

     

    나는 즉시 내의원을 나서서 응급실로 향했다. 광장을 나서서 남쪽 성벽의 다른 건물에 위치한 장소였다.

     

    “와.”

     

    정문으로 들어선 나는 경악했다.

     

    “의사는 대체 왜 안 나와!”

    “열 시간을 기다렸소, 열 시간을!”

    “아파 죽겠다니까 왜 말을 안 들어줘?”

     

    상상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다.

     

    내가 만들었던 응급실의 시스템은 진작에 마비되어서 기능을 멈추었다.

     

    건물 안은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온갖 사람이 가득 차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침상은 진작에 꽉 찼고, 바닥에 누운 환자도 있다.

     

    상태가 안 좋은 이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위급해 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소리를 지르면서 두 발로 서 있으면 참을 만한 거잖아.

     

    인턴 치유사들은 대충 보이는 게 오십 명 정도. 차출된 우리 파벌도 몇 있었다.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환자의 숫자가 몇 배는 됐다. 전문의나 선임 치유사도 없으니 자기가 뭘 해야 할지도 잘 몰라 보인다.

     

    “어어, 백의! 당신도 의사요?”

     

    남자 한 명이 인상을 구기고는 내게 다가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기 오면 치유 받을 수 있다면서, 벌써 여섯 시간을 기다렸소! 대체 안에서 뭘 하는 거요? 바쁜 사람 시간 낭비하게 하고 말이야. 설명 좀 들어봅시다!”

     

    남자를 필두로 다른 이들도 나에게 뭐라 항의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글씨 읽을 줄 모르쇼?”

     

    “뭐요?”

     

    내가 바깥에 적힌 간판과 응급실 안에 보이는 주의사항을 가리켰다.

     

    “응급실, 증상이 위급한 응급환자 전용. 일반 환자는 일반 진료를 이용해 주십시오. 안 보여?”

     

    내가 똑똑히 가리키기까지 했는데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어허, 이 사람이. 나도 아파 죽겠다니까?”

     

    “위급의 뜻을 모르나?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쓰러질 환자만 오는 곳이라고. 행패 그만 부리고 썩 꺼져.”

     

    “뭐? 당신 지금 진료 거부해? 내가 다 알아. 당신 아직 정식 의사 아니잖아. 내의원에 고발하는 수가 있어, 어?”

     

    내 이럴 줄 알았다.

    권력이라곤 없는 인턴들만 배치하니 이 사단이 나지.

     

    일반 진료는 예약이 몇 달씩 밀려있으니 성질 급한 놈들이 바로 진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죄다 응급실로 밀려 들어온 실정이었다.

     

    “아프긴 뭘 아파 이 자식아. 진단해보니까 그냥 근육통이구만. 당신은 목감기고, 그쪽은 좀 긁혔네. 장난쳐? 이러고 입구 막고 있으면 진짜 급한 환자가 못 들어오잖아.”

     

    내가 정확하게 병명을 짚으니 항의자들이 잠시 멈칫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멈추진 않았다. 이쯤 되면 자존심 싸움이라는 태도였다.

     

    “어허, 이 사람이 그래도 계속…!”

     

    그가 나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자 그의 앞을 막아서는 그림자가 있었다.

     

    타냐였다.

     

    “그 이상 다가오면 안전을 보장하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기세를 보고 남자가 주춤하며 물러섰다.

     

    “아니, 웬 기사가…”

     

    그때 뒤에서 환자를 보던 인턴 한 명이 헐레벌떡 내게 달려오며 다급하게 외쳤다.

     

    “세상에, 주치의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의 말에 항의자들의 표정이 싹 굳었다.

     

    주치의라는 호칭과 눈앞에 나타난 호위기사에 비로소 내가 누군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주, 주치의… 시라굽쇼?”

    “주치의가 뭔데?”

    “예끼, 조용히 하게!”

     

    그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허리를 비굴하게 굽혔다.

     

    나 원. 개판이구만.

     

    인턴은 우리 파벌 소속이라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현장에 전문의는 한 명도 없어?”

     

    “월광궁 전문의는 계시긴 합니다만 일손이 부족합니다. 안에서 급한 환자를 보고 계십니다.”

     

    “이따위로 돌아가니 부족할 수밖에. 잠깐만 고생하고 있어. 다른 파벌을 삥뜯어서라도 차출해 올 테니까.”

     

    “아, 예…!”

     

    몸을 돌려 내의원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쾅!

     

    응급실 문이 열리고 수송기사들이 다급하게 들것에 환자를 싣고 들어왔다.

     

    “응급환자입니다!”

     

    척 보기에도 이번엔 진짜였다. 몰린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나올 정도였는데, 기사들은 피투성이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어이, 보여줘.”

     

    바로 환자에게 달려가 진단을 사용한다.

     

    이쪽도 기사다. 훈련 도중 사고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

    · 이름 : 파비안

    · 체력 : 1 / 35

    · 상태 : 치명적인 부상

    · 부상 : 자상, 대량의 출혈, 혼수상태

    · 위치 : 흉부 및 우측 폐

    ※ 경고 : 심정지까지 12초 남았습니다

    ―――――――――――

     

     

    “망할.”

     

    빠르게 판단했다. 몰린 인파 때문에 장비가 있는 안쪽까지 옮기기에 10초는 더 걸릴 게 분명했다.

     

    “인턴, 안에서 제세동기랑 혈액팩 가져와, 전부 다!”

     

    “아, 예!”

     

    인턴이 즉시 뛰어간다. 나는 한 손에 주사기를 꺼내들며 다른 손에 신성력을 감았다.

     

    “여기 내려. 바로 처치한다.”

     

    기사들이 환자를 바닥에 내린다. 산소가 끊긴 상태. 강제 호흡 포션을 주입하며 체력이 바닥나지 않도록 치유주문을 시전한다.

     

     

    [ · 응급처치 B가 발동합니다]

     

     

    “죽지 마라.”

     

    체력이 0이 되는가, 회복되는가.

     

    아슬아슬하게 걸친 순간.

     

    “혈액팩입니다!”

     

    인턴이 팩을 가져온 덕에 즉시 혈관에 거칠게 꽂아 넣는다. 혈액형은 확인했다.

     

    일차 지혈해놓은 흉부에서 붉은 선혈이 새어나온다. 손으로 눌러 억제하니 얼굴에 피가 튀었다.

     

     

    [ · 체력 : 2 / 35]

     

     

    다행히 응급처치 덕에 심정지는 막았다. 체력이 회복되는 걸 확인한 후 환자를 안쪽 수술실로 옮겼다.

     

     

     

    ***

     

     

     

    내가 수술실에서 나온 건 한 시간 후였다.

     

    기본적인 처치 후 후발로 도착한 치유사에게 바톤을 터치했다.

     

    응급실은 내가 들어올 때와는 달리 조용해져 있었다. 백의를 핏자국으로 물씬 적신 나를 보고 군중은 정숙을 지켰다.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위급한 환자만 오시라고.”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내의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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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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