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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성유물이란 마신의 힘을 대표하는 강력한 마도구를 의미했다.

         

       보석 ‘트릴’은 그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마신 키르쿠스의 성유물이었다.

         

       키르쿠스의 눈.

       트릴에 그러한 별명이 붙은 이유는 그것이 지닌 특징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보석은 앞에서 공연이 벌어지면 붉은빛을 발했다.

       그 공연이 크고, 화려하고, 웅장할수록 빛은 강해졌다.

         

       그 현상은 공연의 규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연기력이 뛰어날수록, 어려운 곡예를 할수록, 서사가 부드러울수록, 전개가 파격적일수록, 대본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강한 빛을 발휘했다.

         

       과거 서커스 그랑프리에서는 이것으로 원더 스테이지에 오를 서커스단을 추려냈다고 한다.

       트릴 앞에서 공연을 펼치고 그 밝기가 기준을 넘으면 본선에 진출하도록 한 것이다.

         

       본선에 오른 서커스단끼리도 누가 더 보석을 밝게 빛냈냐는 걸로 신경전을 펼쳤다는 기록이 있었다.

         

       이처럼 키르쿠스가 이 보석을 통해 공연을 지켜본다는 의미로 이것에 키르쿠스의 눈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키르쿠스의 눈은 2회 서커스 그랑프리의 테러 이후로 소실되고 말았다.

         

       기사에 나온 보석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원래 마도구나 성유물은 마도사가 제사를 통해 마신과 거래함으로써 받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마도학자들 덕분에 제물, 문자, 문양, 노래, 춤 등을 조합하여 마신의 힘을 끌어다 쓰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었다.

         

       애초에 마신 신앙은 ‘규율의 준수’와 ‘거래’라는 특성 덕분에 신앙의 영역과 상업의 영역 사이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상업에 좀 더 가까워진 것이다.

         

       기사에서는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트릴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카스티유의 마법 아카데미 학자들의 덕분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그곳은 마야가 졸업한 학교였다.

         

       나는 3번째 메인 퀘스트의 내용을 다시 살펴봤다.

         

         

       *메인 퀘스트-트릴

       : 당신이 손에 넣기를 원했던 그것입니다.

         

       달성조건

       : 트릴이 완전한 붉은색이 된 이후에 그것을 먹어치우십시오.

         

       성공 시 보상

       : ‘마인화 페널티’ 없이 ‘고유 특성’ 조작 가능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퀘스트는 트릴이 ‘완전한 붉은색’이 된 이후에 먹어치우라고 하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트릴은 뛰어난 공연을 보면 붉은빛을 발했다.

         

       그러나 서커스단 하나의 공연으로 그것을 완전한 붉은색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사에 따르면 20여 년 전, 판도라 마술쇼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극단들이 모여 그 앞에서 공연을 펼쳤지만, 붉은빛은 보석의 절반도 채 차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즉, 트릴을 완전한 붉은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축제가 필요했다.

       세계 최고의 서커스단들을 선발해 한 자리에 모아 그 앞에서 최고의 공연을 보여야 했다.

         

       그것이 바로 서커스 그랑프리였다.

         

       원더스타인이 이 대회에 매달린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저 보석이 최고의 빛을 발휘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원더스타인의 목적이 이 보석이라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트릴은 제목에도 나오듯이 게임의 중심 소재였으니까.

         

       다만, 붉은빛을 발휘하는 조건이라든지 얽힌 이야기 같은 것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사를 반복해서 읽어도 이 이상은 알아낼 수 없었다.

         

       왜 키르쿠스의 눈에 고유 특성을 조작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데볼루트와 원더스타인, 키르쿠스는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밤새 그것에 대해 고찰해봤지만, 더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나는 키르쿠스의 눈에 대한 걱정은 털어버렸다.

       어차피 그것이 완전한 붉은색이 되는 것을 보려면 본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시간을 들여 차차 생각해도 될 문제였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마인화 페널티에 관한 것이었다.

         

       “단장님, 출발할 시간이에요!”

         

       유라크네가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는 문을 붙잡고 나머지 네 손으로는 문을 두드렸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 얻은 정보들을 정리하느라 밤을 새우고 말았다.

         

       괘종시계가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별장을 떠날 시간이었다.

         

       마차를 타고 학교까지 가려면 1시간 반이 걸렸다.

       엘라와 마야가 지각하지 않으려면 지금 출발해야 했다.

         

       유라크네는 손에 들린 꾸러미를 나에게 내밀어 보였다.

         

       “가는 길에 먹을 토스트와 우유, 그리고 단장님에겐……짠! 차를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추운 지방에도 특산 차는 있더라고요!”

         

       그녀가 보온병을 내밀었다.

       나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에이, 차 타주는 것으로는 그런 말 안 하기로 했잖아요.”

       “그랬죠…….”

         

       나는 망토를 걸치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붙어 섰다.

         

       “엘라 양과 마야 양은 준비가 끝났나요?”

       “벌써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근데 마야 양은 좀 너무했어요. 일어난 그대로 머리카락 부스스하게 그냥 가려는 거 있죠? 그래서 제가 붙들고 직접 머리를 감겨주고, 세수까지 해줬어요. 그대로 내보냈다간 단장님이 욕먹을 수도 있잖아요. 저렇게나 예쁜 애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이죠.”

         

       나는 유라크네와 함께 걸으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모습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에는 살짝 피곤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단원들의 식사를 준비하랴, 애들의 등교 상태를 봐주랴, 그리고 내 편의까지 봐주랴 새벽부터 고생이 많았다.

         

       아니, 오늘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서커스단 안에서 엘라 다음으로 언제나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엘라가 무대 위의 영역에서 서커스단을 이끌어 왔다면, 그녀는 무대 밖의 영역에서 서커스단을 받쳐왔다.

         

       “죄송합니다. 유라 씨는 늘 고생이군요.”

       “네? 네네? 아하하,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니 쑥스럽네요. 제가 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제 욕심이죠. 후후, 그래도 말씀을 그렇게 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좋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제 그녀의 마인화 페널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3번째 메인 퀘스트의 보상 항목을 봤다.

       이것 역시 중요한 내용을 암시하고 있었다.

         

       키르쿠스의 눈이 있어야 ‘마인화 페널티’ 없이 ‘고유 특성’을 조작할 수 있다.

       그것은 반대로 이런 말도 됐다.

         

       키르쿠스의 눈 없이 고유 특성을 조작하려 들면 마인화 페널티가 발생한다고.

         

       나는 문뜩 한 달 전쯤에 입학시험에서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 절대 단장님의 능력을 못 믿는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그냥……이대로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유라 씨는 지금 몸이 좋으신가요?

       -아, 아니에요. 저도 되도록 평범한 몸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치료에 부작용이 있다면…….

       -부작용이요?

         

       그때, 그녀는 뭔가를 아는 눈치였다.

       나는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캐물으려 했지만, 알렌과 조가 시험장에 들어오겠다고 소란을 피우면서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짐작이 갔다.

         

       마인화.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고유 특성을 조작하려 들다가 받는 페널티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치료를 시도해본다는 내 제안에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단원 관리 창을 확인했다.

       현재 그녀의 마인화 진척도가 22%였다.

         

       다음과 같은 단서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켰다.

         

       그녀는 예전에 고유 특성을 한 번 없애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그것이 실패했고 그 부작용, 즉, 마인화를 몸소 경험한 것이다.

         

       거미 여인.

       게임에서 나왔던 마인화된 그녀의 모습을 보면 굳이 설명을 읽지 않아도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을 납치해서 고치에 가두고 교미한 후 그들을 잡아먹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의 머리를 씹어먹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전형적인 검은과부거미의 이미지였다.

         

       나는 그녀의 마인화 페널티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특성: 마인화 페널티-에로스와 타나토스

       적용 대상: 유라크네

       효과: 에로스적 감정과 타나토스적 감정을 구분하는 데 혼동이 발생합니다.

         

         

       예전에 한 블로그에서 거미에 대한 사색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에로스적 감정이 사랑과 탄생이라면, 타나토스적 감정은 파괴와 죽음이었다.

         

       거미가 수컷 거미를 잡아먹는 살육 충동은 교미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나타난다고 했다.

         

       즉, 에로스적 감정이 극에 달하는 순간, 타나토스적 감정으로 치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유라크네에게 작용하는 마인화 페널티는 그런 것이었다.

       거미 여인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마인화 증상을 보인 일이 있던가?

         

       그것은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은 그녀의 마음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예전에 그녀에게 품었었던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악스빌 장터에서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엘라를 제외한 단원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녀는 고작 호감도 3의 상태에서 나에게 다가왔다.

       비록 두려움에 떨기는 했지만, 함께 감자를 깎고 함께 장을 보러 나갔다.

         

       엘라는 증오로 그 공포를 극복했지만, 그녀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냥 원래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좋아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녀가 내게 표하는 호감의 정도가 시스템에 표시되는 호감도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단원들 전체에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라 그녀가 다가와 준 것이 그저 고마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녀는 내게 호감을 품을 수 있었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내세울 만한 한 가지 가설이 있었다.

         

       마인화 페널티-에로스와 타나토스.

       그것은 에로스적 감정과 타나토스적 감정을 구분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즉, 당시 그녀는 나를 두려워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그날 밤 나와 마주하는 순간 나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그것이 호감도로 치환된 것이다.

       그것은 암컷 거미의 경우와는 정반대였다.

         

       “단장님?”

         

       유라크네가 나를 돌아봤다.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나는 계단 앞에서 멈춰 서버리고 말았다.

         

       “무슨 생각 하셨나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갈색 피부에 비녀로 묶어 올린 보라색 머리카락.

       4개의 팔을 숨기기 위해 펑퍼짐하게 입은 상의도 그녀의 굴곡진 몸매를 숨기지 못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호기심에 찬 표정은 20대 중반의 유부녀라기에는 귀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그 아래로 보이는 몸매와 간간이 올라오는 끈적한 살 냄새는 농익은 여인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평범하게 태어났으면 어딜 가나 사랑받았을 그녀가 원더스타인이라는 악귀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천대받는 외형을 타고나 남편을 잃는 비극을 겪다가 끝내 마인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죽어가면서 원더스타인을 찾으며 구해달라고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사이코패스 악당에게 빠져서 매달리는 악녀의 이미지였는데…….

         

       괴물 단원 중 유일하게 원더스타인에게 애정을 보였던 그녀의 마음도 사실 그가 그녀의 정신적 약점을 이용해 길들인 것일지도 몰랐다.

         

       나도 본의아니게 비슷한 짓을 저질러버린 셈이고…….

         

       나는 그녀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느꼈다.

         

       “……아뇨. 아닙니다.”

         

       계단 아래에는 체육복을 착용한 엘라와 마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라크네는 그새 헝클어진 마야의 머리를 보고 달려가 그것을 다시 정리해주었다.

         

       키르쿠스의 눈이라.

       그것이 완전한 붉은빛으로 차오르는 것은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이 시작된 이후였다.

       즉, ‘메인 퀘스트-서커스 그랑프리’가 완료되고 나서다.

         

       그리고 ‘메인 퀘스트-프리퀄’에 의한 강제 귀환이 발동되는 것은 대회 진행 중 어디쯤이었고.

         

       ‘메인 퀘스트-트릴’을 해결하려면 그 두 메인 퀘스트 사이밖에 없었다.

         

       키르쿠스는 결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장님!”

         

       유라크네가 두 사람을 마차 속에 밀어 넣고 나를 불렀다.

       그녀는 자기 옆에 빈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평범한 몸.

       나와 함께 2년을 함께할 단원들에게 줄 선물은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새로운 목표를 머릿속에 새기며 일행들의 뒤를 따라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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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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