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1

        

       “과거에 저지른 업보가 참으로 많구나. 하나하나가 치졸하기 짝이 없고, 음습하고 음험하기 짝이 없으니. 사람의 정신을 툭툭 건드려 무너뜨리려 하는 사악한 소행이라. 괜찮다고 말을 하여도 그 마음에 품은 앙금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아니, 내 직접 이것에게 벌을 주겠다.”

         

       진성은 나루미의 꾸깃꾸깃 접힌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곤 악몽에 신음하고 있는 얼굴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허공에 띄워 구석진 곳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그녀를 괴롭히고 있던 새타니 역시 공을 쫓아가는 강아지처럼 그녀를 따라서 구석진 곳으로 이동하였고, 바닥에 널브러진 나루미의 입가 근처에서 서성이더니 손을 쭈우욱 늘어뜨려 그녀의 입가 양옆을 잡았다.

         

       그리고 양옆을 잡고 그녀의 입을 크게 벌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입가를 찢어버리고 그 안에 자기가 들어가려는 듯 보였다. 새타니는 벌려진 입에 자신의 정수리부터 들이밀며 그 안에 들어가려고 하였고, 그 고통에 나루미는 신음을 연신 내뱉었다.

         

       “그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잠시 멈추도록 하거라.”

         

       진성은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머리통을 나루미의 입 안에 집어넣는 새타니의 행동을 만류했다. 그리곤 자기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는 입김을 부는 듯 작게 후- 하고 불었다.

       그러자 진성의 몸 안에 자리 잡은 태극에서 나오는 음기가 진성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차가운 숨결이 되어 나루미가 있는 곳을 향해 흘러갔다.

         

       그리고 흘러간 차가운 숨결은 그대로 나루미의 주위에 맴돌았다.

       냉기는 식은땀 때문에 흠뻑 젖은 나루미의 체온을 순식간에 낮춰버렸고, 공포가 아닌 추위 때문에 몸을 덜덜 떨게 했다. 게다가 냉기가 고치의 형태로 나루미의 몸 주변을 에워싸자 그녀의 피부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고, 피부가 점차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진성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왼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입가에서 흘러나온 냉기와 상반되는 온기를 품은 바람이 나루미를 향해 날아갔고, 봄날의 따스한 바람처럼 포근한 온기가 나루미의 주변을 에워쌌다. 하지만 온기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는 듯 나루미의 몸을 한 번 에워싸고 잠깐의 따스함을 주었다가 그대로 천장의 위쪽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구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쪽에 한데 뭉쳐서 진성의 명령을 기다리기만 하였다.

         

       “밝은 것 가운데 어두움이 있고, 어두운 것 가운데에 밝은 것이 있으니. 서로의 머리가 꼬리를 잡으며 움직이고, 몸을 휜 채 형상을 그리니 그것이 태극이라.”

         

       진성은 손을 몇 번 휘저어 천장에 모여있는 온기와 나루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냉기를 이어버렸다. 그러자 한데 뭉쳐있기만 한 것이 실에 이끌려 움직이기라도 하듯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나루미의 몸에 따스한 온기와 몸을 얼어붙게 할 것 같은 차디찬 냉기를 번갈아 가며 공급해주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느니라.”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자 진성은 새타니에게 나루미의 몸속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허락하였고, 머리를 반쯤 쑤셔 박은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새타니는 기쁘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꾸역꾸역 나루미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나루미의 볼이, 목구멍이, 위장이 커다란 것이라도 삼킨 것처럼 크게 부풀었다가 순식간에 푹 꺼져버렸고, 경련이라도 하는 듯 몸을 몇 번 크게 튕기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다시 악몽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아까의 악몽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 그녀에게 닥칠 악몽은 상상 이상의 효과를 가지리라는 것.

         

       “되었다. 몸 주변에 양기와 음기를 번갈아 가며 움직이게 하여 체온을 박살을 내버리고, 육체가 혼란에 빠지게 했느니라. 아마 이전에 새타니가 행했던 것보다도 훨씬 강력한 악몽이 덮칠 것이니라. 또한 그 악몽에서 비롯되는 육체의 이상 역시 크게 될 것인즉.”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본전 한쪽 벽에 붙어있는 제세동기(除細動器)를 끌어와 나루미의 옆쪽에 던졌다. 그리곤 몽실몽실 몸을 움직이고 있는 슬라임을 그 옆에 데려다 놓았다.

         

       “악몽 때문에 심장이 멈춰서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

       “네? 네.”

       “기묘한 기의 흐름과 그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육체, 그리고 정신을 강하게 지배하는 악몽. 이 모든 것이 적절하게 합쳐진다면 육체와 정신이 강하지 않은 사람에게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느니라.”

         

       진성은 덤덤하게 리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리세가 놀란 듯 슬쩍 눈을 크게 뜨며 나루미를 바라보았다.

         

       진성은 리세의 표정을 잠시 살펴보더니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걱정 말거라. 제아무리 신력을 잃어버리고, 정신은 개복치나 다름이 없고, 남을 깔보고 괴롭히는 것에서야 제 존재를 확립시키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종자라고 한들 악몽에 의한 심장마비는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니까. 그리고 설령 일어난다고 한들 꿈틀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저것이 즉시 제세동기를 움직여 심장을 뛰게 만들도록 할 것인즉,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리세는 그 말에 조금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악한 짓을 한다고 한들 그 처벌이 과하다면 그 역시 악업이라. 죄의 경중은 쉬이 판단할 수는 없으되 생명을 빼앗는 것만큼은 신중해야 하니. 번뇌가 많은 나의 무녀야, 너는 저것을 싫어하기는 하되 저것의 죄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나는 너의 행복을 위해 그 뜻을 존중하여 저것의 목숨을 해하지는 않을 것이니라. 하지만 명백히 죄는 있으니 괴로움을 주어 과거에 쌓은 악업에서 비롯된 독을 빼내고, 너의 후임으로써의 소임을 다하게 할 것이니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입고 있는 정장 재킷을 벗어 리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곤 입고 있는 와이셔츠의 소매를 적당한 위치까지 접어 올렸다.

         

       “저것에 대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 옷가지를 걸어놓고 뭐라도 마시자꾸나.”

         

       리세는 진성의 말을 듣고 잠시 귀를 쫑긋거렸다가 배시시 웃었다.

         

       “네에.”

         

       그녀는 진성의 저 말과 행동이 자신을 배려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분노하고, 그녀를 대신해 벌을 주었으며, 혹여 그녀가 나루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가질까 장소를 옮기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녀는 기쁘게 정장 재킷을 끌어안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진성을 안내해주었고, 정장 재킷을 옷걸이에 걸고 곱게 편 뒤 포트로 물을 끓이고 찬장에서 귀한 찻잎을 꺼냈다.

         

       진성은 리세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차는 되었다. 커피는 없느냐?”

       “커피, 말씀이신지요?”

         

       리세는 진성의 말에 서랍을 열어 캡슐커피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기계에 캡슐커피를 넣어 두 잔을 추출하고는 자그마한 젤리 같은 것을 몇 개 그릇에 담아 진성에게 가져다주었다.

         

       진성은 리세가 가지고 온 커피의 향을 한 번 맡은 뒤 한 모금 마시고, 그녀가 가지고 온 로쿰(Lokum)을 살짝 베어 물었다.

         

       “제대로 된 로쿰인 것 같은데, 직접 주문한 것이냐?”

       “네에.”

       “가격이 싸지는 않았을 것인데?”

       “요새 오마모리도 잘 팔리고, 여기저기서 기부금이 많이 들어오는지라 여유가 생겼답니다.”

       “흠.”

         

       진성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기부금이라.”

         

       그녀가 말하는 ‘기부금’이 마약 대신에 물귀신과의 귀접에 푹 빠지고, 진성이 준 ‘축복’의 정체도 모른 채 그 효과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주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 그 미끼에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진성은 정치인과 부자들을 생각하자 자연스레 미끼 역할을 하게 될 정치인, 우치카와 료스케를 떠올렸다.

         

       “네에. 특별한 일은 없었답니다. 얼마 전과 같이 동료 의원들에게는 따돌림을 받고 있고, 만들어놓은 인맥은 죄다 산산조각이 나고, 인맥은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있어요. 게다가 집안에서도 의절 당하기 직전이랍니다.”

       “집안에서도?”

       “그 후안무치한 배신자도 명색이 정치인인지라 집안이 훌륭한 것은 맞지만,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모두에게 외면받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호족이니 화족 같은 인맥들이 기피하기 시작하고, 케이레츠(系列)같은 거대 기업들과도 멀어지고….”

         

       리세는 진성의 물음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우치카와 가문은 돈줄과 인맥이 모조리 끊기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족을 끌어안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진 않았나 봐요.”

         

       옛날부터 가진 자들은 핏줄보다, 가족보다도 가문이 우선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당연히 일본 역시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일본이 가문에 대한 영향력이 더 강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옛날부터 일본은 핏줄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성을 바꿔서, 성을 받아서 출세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출신을 위해 성을 바꾸는 것은 기본이었고, 가문을 옮겨 다니며 그 후광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렇게 가문이 중심이 된다면 당연히 구성원들 역시 가문을 위해서 살고, 가문을 위해서 인생을 바칠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를 사랑으로 키우는 대신 가문에 이득이 되게 키우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어주는 대신에 가문에 이득이 되도록 정략결혼을 시키고, 만약 가문에 해가 될 것 같다면 거침없이 잘라내고.

         

       개인보다 전체를 위해서.

       하나보다는 모두를 위해서.

       가문이라는 공동체를 위해서.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없음에도 가문의 후광만으로 당선이 된 작자이니, 제 뒷배를 잃어버린다면 순식간에 고꾸라질 것이다.”

         

       진성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료스케가 맞이할 비참한 미래를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 직접 고른 최악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즉. 야태도아랑류(野太刀餓狼流)와 엮여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니라.”

         

       리세는 진성이 커피를 다 마셔가자 그제야 커피잔을 들어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의 쓴맛이 입에 잘 맞지 않는 것인지 조금만 마시고 로쿰을 들어 조금씩 베어먹기를 반복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야태도아랑류에는 특별한 일은 없느냐?”

         

       리세는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고 로쿰을 베어 물려다가 진성의 질문을 받자 로쿰을 그대로 아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 안에 감도는 쓴맛과 커피의 향기를 그대로 안은 채 답해주었다.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아, 조금 있으면 야태도아랑류의 연례행사(年例行事)가 있기는 해요.”

       “연례행사?”

       “네에.”

         

       리세는 진성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야태도아랑류(野太刀餓狼流)는 시현류(示現流)의 분파랍니다. 그래서 매년 시현류와 교류를 하고 있어요.”

       “교류라? 어떤 식으로 교류하느냐?”

       “으음. 두 유파의 고수끼리 대련하고, 유망주들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그렇다고 들었어요.”

         

       진성은 그녀의 말을 듣고 꺼림칙한 것이 있는지 잠시 고민했다.

         

       “두 유파의 고수라?”

       “저는 무인이 아니라서 얼마만큼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

         

       진성은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일반 사람들과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는 작자가 있느냐?”

       “네? 아, 네.”

       “있다고?”

       “네에. 한 명 있어요.”

         

       리세는 과거의 기억을 뒤져가며 진성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시현류의 초고수라고 하던데. 몸에 용 비늘 같은 것이 나 있고, 키가 2미터 50cm가 넘어요. 그래서 참마거룡(斬魔巨龍)의 카즈오(計夫)라고 불린다고 해요.”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