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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171화. 북부 원정대 ( 1 )

       

       

       

       

       

       “… 어디로 원정을 간다고?”

       

       프리가의 의문 가득한 되물음. 그 안에는 약간의 신경질적인 어투가 담겨 있었다. 

       

       괜히 움찔한 셀리나가 다시 한번 또박또박 반복했다.

       

       “공녀님이랑 용사님, 그 외의 사도님들과 성기사분들 그리고 제국의 기사들은 북부의 몬테그로스로 원정을 떠나게 될 거예요.”

       

       “우리 집으로? 아니, 잠깐. 그 외의 사도라면 이스칼이나 뭐 이런 애들 전부 다?”

       

       “네, 사도님들 전부 다요.”

       

       간만에 도둑고양이 같은 셀리나 없이 이스칼과 붙어 있을 구실이 생겼다. 살짝 기분이 좋아진 프리가는 마주 앉은 셀리나를 바라봤다.

       

       자신이야 오랜만에 집에 간다니까 좋기야 하다만,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이 한번에 움직일 일이 있던가? 움직이는 구성과 머릿수만 늘어놓고 보자면 전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뭐, 좋아. 다 좋은데 가는 이유는 알고 가야지.”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어차피 대사제님들이랑 황제 폐하께서는 원정대 소식이랑 함께 곧 발표할 내용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공녀님한테만 특별히 먼저 알려 드릴게요.”

       

       그리 말하며 셀리나는 문서 두 장을 프리가에게 내밀었다. 휙- 채간 첫 장의 문서에는 익숙한 필체가 가득했다. 특유의 힘 있게 휘갈겨 쓰는 필체.

       

       그녀의 아버지, 닉스 공작의 필체다.

       

       빠르게 문서를 훑어본 프리가의 표정이 점차 기이해졌다. 눈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손이 파르르 떨리고 미간이 점점 좁아지며 깊은 계곡이 만들어진다. 

       

       “이 미친 똥개 새끼들이. 진짜 돌아버렸나…”

       

       누가 봐도 터지기 일보 직전의 활화산처럼 부글거리고 있다. 셀리나는 괜히 움츠러들며 한발 물러서려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당당히 허리를 곧추세웠다.

       

       지금의 자신은 그녀에게 꿀릴 게 없다.

       

       “지금 이게 전부 사실이야?”

       

       “밑, 밑의 인장을 보시면 닉스 공작님의 인장이….”

       

       도끼가 없음에도 프리가가 무서운 건 매한가지. 집채만 한 늑대가 제 목에 이빨을 들이밀고 침을 질질 흘리는 기분이다.

       

       셀리나의 까만 고양이 꼬리가 강아지풀처럼 잔뜩 부풀어 올라 삐쭉 솟았다.

       

       “그리고 두, 두 번째 문서를 보시면 엘프라는 종족의 에스텔 님이 증, 증언하신 내용이 있거든요.”

       

       “엘프? 아ㅡ 전에 그 도마뱀이랑 같이 문에 들어간? 귀가 길쭉한 애들 맞지?”

       

       “네, 그중에서 에스텔 님은 유일하게 지상에 남은ㅡ”

       

       “아아. 됐고. 잠깐만 기다려봐. 이것 좀 읽자.”

       

       프리가는 짧게 대꾸하고는 문서를 빠르게 훑었다. 

       

       “불? 악마? 황금 나무… 관문?”

       

       중얼거리는 프리가의 입에서 짧은 단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이윽고 끝까지 읽었는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ㅡ 악마가 도망친 관문의 맞은편에 설원이 보였다는 거네? 설마 그것 때문에 이렇게 원정대를 보낸다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설원이 보였다는 증언 하나로?”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그것 말고도 공교롭게도 북부 쪽에서 노예 상인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수인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거든요. 조만간 움직였어야 했는데 때마침 이렇게 여러 가지가 겹쳤죠.”

       

       “수인을 노예로? 이거 겁대가리 없는 놈들이네.”

       

       “그러게요.”

       

       마주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두 여인. 둘 모두 직접 신을 마주한 경험이 있기에, 감히 신이 보살피라 명한 이들을 납치하는 노예 상인들의 만행에 대해 감탄할 수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뭐 좋아. 그건 그렇고. 왜 나한테 따로 알려주는 거야? 넌 싸우지도 못해서 원정대에 따라오지도 못할 거잖아. 이걸 나한테 미리 말해준다고?”

       

       팔짱을 낀 프리가가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어차피 떠날 원정, 구태여 자신에게만 말해주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 도둑고양이 같은 년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흐응ㅡ 왜일까요?”

       

       셀리나가 언제 겁먹었냐는 듯 능청스럽게 눈웃음을 흘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까만 꼬리가 요사스럽게 흔들린다. 정신 사납게 흔들리는 모양새가 갈대와도 같다.

       

       녹빛 눈동자에는 이유 모를 장난기가 가득했다. 프리가의 눈썹이 까딱 움직였다. 지금 떠보는 건가?

       

       같잖은 수작에 어울릴 필요는 없다. 프리가는 의자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말해줄 생각이 없다면 됐어. 원정대 미리 말해준 건 고맙다.”

       

       “네에~ 나중에 또 봬요. 공녀님.”

       

       등 뒤로 셀리나의 웃음기 가득한 작별 인사가 들렸다.

       

       ‘또 보자고?’

       

       그 말이 괜히 신경 쓰이는 이유는 뭘까.

       

       

       

       

       

       *****

       

       

       

       

       

       성지에 새로운 일꾼으로 엘프들이 도착한 지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가장 먼저 활의 자동 제작을 습득한 알랜시아를 시작으로, 다른 엘프들도 줄줄이 자동 제작이 가능해졌다.

       

       처음의 노가다가 필요했던 것은, 아마 알랜시아가 엘프 중에서 처음이라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 따각 따각

       

       “…음.”

       

       화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나막신을 신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엘프들이 보였다. 이전에 봤던 엘프들의 상태 이상, 거주지의 제한과 원거리 무기의 제한.

       

       이제 슬슬 저것도 풀 방법을 찾아 줘야 한다. 언제까지 나막신을 신고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 “그쪽 나뭇가지 좀 건네줘.”

       

       – “잘 받아, 던진다!”

       

       – 콩!

       

       – “아야!”

       

       맨발로 나무 위를 돌아다니는 엘프들은 그야말로 원숭이가 따로 없다.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점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인데, 과연 땅에서는 얼마나 날쌔게 다닐지 기대가 된다.

       

       ‘이걸 어떻게 풀어주지?’

       

       상태 이상이니까 해주 스킬을 사용하면 될 것 같기는 한데…

       

       개인에게 걸린 상태 이상이 아니라, 종족 단위의 상태 이상이라 조금 애매하다. 

       

       일단 엘프 한 놈을 붙잡고 시험이라도 해봐야겠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면… 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띠링ㅡ!

       

       《’침착한 정신’ 발동! 대상의 모든 상태 이상이 해제됩니다. 이후 짧은 시간 동안 상태 이상에 대한 면역이 됩니다.》

       

       뾰로롱ㅡ

       

       앙증맞은 효과음과 함께 귀여운 천사 두 명이 나타나 엘프의 머리 위에 빛 가루를 솔솔 뿌리다가 사라졌다. 졸지에 빛 가루를 맞은 엘프는 어안이 벙벙한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빠밤ㅡ!

       

       《상태 이상 : 거주지 제한, 원거리 무기의 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오.”

       

       어쩐 일로 한 번에 성공이다.

       

       – “어, 어어…”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걸까. 엘프는 나무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두면 안 내려올 것 같아서 그냥 직접 드래그해서 끌어 내렸다.

       

       – “우와앗?! 와, 우와아!! 와하하하! 이것 좀 봐! 내가 날고 있어!!”

       

       엘프는 조금 발버둥 치는가 싶더니 금방 즐기는 자 모드가 됐다. 드워프들이 비명만 질렀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몇 바퀴 빙빙 돌리다가 초원 한복판에 내려놓았다.

       

       – “어, 어어?! 자, 자자잠깐만요!!”

       

       땅이 가까워질수록 엘프가 요란하게 발버둥 치기 시작한다. 반응만 보면 초원이 아니라 용암에 빠지는 중이라 해도 믿겠는데.

       

       – “으아아아아!! 으아… 어?”

       

       초원에 발이 닿은 엘프는 눈을 꼭 감고 오들오들 떨다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발밑을 열심히 둘러본다. 나무에서 내려온 게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 “어? 어어?! 나, 나무에서 내려왔ㅡ”

       

       그것도 잠시.

       

       미친 듯이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 “나무에서 내려왔어!! 나무에서! 이게, 이게 땅이구나!!”

       

       달리는 것만 보면 사바나의 얼룩말이나 가젤 뺨친다. 엘프는 그렇게 한참 동안 초원을 뛰어다녔다.

       

       상태 이상이 스킬로 해주 된다는 건 알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남았다.

       

       “이걸 다 언제 하나씩 해주냐.”

       

       한 명한테 스킬 써주고 쿨타임 기다리고, 또 한 명한테 스킬 써주고 쿨타임 기다리고. 답답해서 언제 하겠는가.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부우웅ㅡ!

       

       [WEB발신] 카드 9,900원 일시불 승인.

       

       소소하게, 정말 아주 소소하게 스킬 딱 하나만 샀다. 그것도 정말 사려는 스킬 딱 하나만. 그야말로 현명한 소비의 극한.

       

       “…”

       

       그런데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남는 이 찝찝함은 뭘까. 뭔가 불완전하게 연소된 듯한 이 찝찝함.

       

       가슴에 쌓여가는 불완전 요소의 찌꺼기들을 애써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무시한다. 나는 흑우가 아니라, 현명하고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현명한 신이니까.

       

       더 이상 충동적인 과금은 없다.

       

       …아마도.

       

       빠밤ㅡ!

       

       《’순수한 안개’ 발동! 안개에 닿는 모든 캐릭터의 상태 이상이 해제됩니다.》

       

       시전한 구역을 중심으로 하얀 안개가 빠르게 퍼져나간다. 엘프들이 주로 모여있는 황금 나무 주변에서 사용했기에, 엘프들은 빠짐없이 안개의 범위 안에 있었다.

       

       사아아아ㅡ

       

       옛날 공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뿌연 안개가 쉴 새 없이 퍼진다. 퍼지고 또 퍼지면서 점점 넓게 퍼져나간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면서 메시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우우웅ㅡ!

       

       빠밤ㅡ!  

       

       《상태 이상 : 거주지의 제한과ㅡ》

       

       빠밤ㅡ!

       

       빠밤ㅡ!

       

       …

       

       빠밤ㅡ!

       

       그야말로 무수한 메시지의 향연. 300명 정도 있는 단톡방에서 시끄럽게 떠들면 이 정도 되지 않을까?

       

       안개가 사라진 장소에는 얼떨떨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엘프들이 가득했다. 이 녀석들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 놈 잡아다가 초원으로 끌어내렸다.

       

       – “꺄악! 꺄아아아…앗? 어? 어어?”

       

       앞선 녀석처럼 발버둥 치다가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엘프.

       

       그제야 다른 엘프들도 하나둘 천천히 나무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반응도 제각각이다.

       

       맨발로 초원을 달리는 녀석,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풀의 감촉을 즐기는 녀석, 엎드려서 풀을 뜯어 먹는…

       

       “아니, 얘는 또 이러네.”

       

       풀 뜯어 먹는 엘프를 들어서 저 멀리 온천에 떨어트렸다. 

       

       – 첨벙!

       

       – “아하! 하하하하!!”

       

       홀딱 젖어서 몰골이 엉망이지만, 녀석은 그런데도 좋은지 밝게 웃음을 터뜨렸다.

       

       ‘보기 좋네.’

       

       나막신에서 벗어난 것이 그렇게나 좋을까. 뿌듯함이 몰려온다. 오늘도 신다운 일을 하나 해냈다.

       

       일일 일신(一日 一神) 달성!

       

       아마 이런 업적이 하나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성지에 있는 엘프들의 상태 이상을 모조리 해주한 다음 날.

       

       엘프들은 여전히 나막신을 신고 돌아다녔다.

       

       “…왜?”

       

       상태 이상에 걸린 것도 아닌데, 계속 나막신을 신는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신선우’님!!! 노릇하게 익어가는 소고기처럼 살살 녹는 후원!!! 감사합니다!!! 좋은 악마는 죽은 악마 뿐입니다. 이건 수박도에도 잘 나와있는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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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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