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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부드러운 햇살. 춥지 않을 정도로 서늘한 공기. 그리고, 켜져있는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백색소음이 어우러진-

        

       정말로 간만에 맞이하는 숙취 없는 아침.

        

       “아…….”

        

       첫 감상은, 온 몸의 근육통이었다.

        

       천상 아침엔 고통을 받을 운명인 건가. 숙취에서 벗어난 대가라고 하기엔 수지타산이 안 맞는 느낌인데.

        

       ……숙취도 근육통도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욱씬거리는 팔다리를 가볍게 주무르며 컴퓨터로 다가갔다.

        

       -톡톡.

        

       “아. 잘 들리시나요.”

        

       채팅창은 비교적 조용했다. 그래도 2천명이 넘는데……잠든 사람들이 많은가. 하기야, 어제 새벽 4시까지 있었으니까. 보다가 잠들었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리 한 번 질러보고 싶은데.

        

       ……아무리 그래도 곤란하려나. 단독주택도 아니고.

        

       음…….

       

       그러면, 뭔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아빠 안 잔다』

       『자다 깬 목소리 ㅁㅇㅁㅇ』

       『바로 달리시나요』

       『엥 이분 4시간 전에 자러 가지 않음?』

       『진짜 돌아왔네 ㅁㅊㄷㅁㅊㅇ』

       『나 진짜 노방종 휴방할까봐 너무 불안했어』

        

       고민을 너무 길게 한 건지. 그리 고민하는 사이에 채팅창은 어느새 살아나고 있었다.

       

       작은 소리였는데. 잠귀가 밝은 사람들이 많구나.

        

       머리속에서 차근차근 정립되던 계획을 다시 조용히 정리해 넣었다. 이미 다들 일어났으면……별 의미 없잖아.

        

       다시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 빠른 시일 내에.

        

       “다들 잘 주무셨나요. 저는 조금 전 일어났는데……죽을 것 같네요. 역시 VR은 취향에 안 맞아요.”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선생님 애초에 누가 VR을 6시간씩 합니까……】

        

       “……근성이 부족하시네요.”

        

       누가 게임을 겨우 한두 시간씩 한다고.

        

       아무튼, 오늘은 어떻게 할까. 등산은 계속할 예정이지만- 몸은 아프고. 그래도, 원래 이런 근육통은 같은 운동을 해서 풀어줘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일단 좀 준비하면서 생각할까.

        

       “그러면, 저는 씻고……아침 좀 가져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

       .

        

       아직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방으로 나오자 마자, 따스한 샤워로 달궈진 몸에서 김이 조금씩 피어 올랐다. 따뜻한 물줄기도 좋지만……이 대비도 좋더라. 

        

       머리가 축축한 미역마냥 등을 건드리지만 없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머리……많이 길었네. 슬슬 잘라야 하려나. 드라이기를 켠 채 거울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처음 하는 고민은 아니다. 긴 머리란 상상 이상으로 귀찮은 짐이어서, 머리를 감아야 하거나 말려야 할 때면 언제나 이런 고민에 빠지곤 했으니.

        

       그렇게 한 손으로 드라이기를 들고, 남은 한 손으로 주변 미용실을 검색하다가-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젠 그냥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하는 루틴 같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면, 처음엔 훼손하는 게 두려워 그리하였지만……이제는 그저, 긴 머리가 제법 잘 어울리기는 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린다는 점이겠지.

        

       ……아침이나 먹을까.

        

       토스트 가운데를 살짝 파내고, 냉장고에서 계란 하나를 꺼냈다. 이어서 파여진 부분에 계란을 까서 넣고, 포크로 살짝 찌른 후……전자레인지로 직행하면 끝이다.

        

       서양에서 아침밥을 차리니 어쩌니 가지고 안 싸우는 게 다 이유가 있다. 조제에 1분 걸리는 아침이 있는데, 싸울 이유가 뭐가 있겠어.  

        

       혹여 토스트만 먹기 허하다고 불만을 표한다면, 여기에 냉동 야채 조금이랑 베이컨 두어 줄 후라이팬으로 볶아다가 접시에 늘어놓고, 커피 한 잔 내리면 그게 서양식 풀코스 아침이다. 요리보다 조리에 가깝기는 하지만……문화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사과 하나까지 깎아다가 두면 가히 1등 신부감이라고 칭찬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띵!

        

       물론, 혼자 먹는 사람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다.

        

       혼자…….

       

       “아. 다들 계신가요.”

       

       그리 말하기엔 조금, 애매한 것 같기는 하지만.

         

       * * * *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오늘은 드리프트 몇 번 꺾을 예정입니까 세엔세에】

        

       느물느물거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평소라면 ‘부당한 음해’라거나 ‘억울하다’고 읊조렸을 스트리머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제 방송은, 차마 그런 반박을 하기 머쓱할 정도로 급커브가 난무하는 방송이었으니.

        

       세상 신난 목소리로 괴상한 강의방송을 시작해 놓고, 도중에 급격히 우울해졌다가……다시 결의에 차더니, 갑자기 VR까지 착용해가며 솔로 랭크에 매진하는 운전솜씨에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시청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정작 도적은 몇 번 하지도 않았더랬다.

        

       도적부흥운동을 방제에 건 어제의 방송에서 가장 자주 나온 장면은, 대검에 짓이겨지는 도적이었다.

        

       ‘그렇게 하면 이길 수가 없어요.’ 따위의, 애정이 어려 있다 주장하는 조언과 함께.

        

       물론, 불만을 가지는 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실, 이예나의 방송을 찾아온 이들이 가장 보고 싶은 그림이었으니. 호쾌한 대검기사의 학살극에, 질릴 틈 없이 한 번씩 조미료처럼 뿌려지는 절묘한 도적까지. 그야말로 모두가 제발 좀 방송을 이렇게 하라고 울부짖던 조합이었다.

       

       우측 하단 정도에 큼지막하게 캠화면까지 있었으면 더할나위 없었겠지만-

       

       아따먹의 시청자라면, 욕심을 과하게 부리면 화가 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기뻐한 시청자들이 방송이 지속될수록 오히려 불안해하던 이유였다.

        

       모두가 입을 모아 원하던 방송이 길게 이어짐에도, 오히려 고아원 보내기 전에 짜장면 먹인다던데 대체 며칠 휴방을 하려고 이러냐, 아주 은퇴라도 하려는 거냐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 건……어디까지나 스트리머 본인의 업보라고 밖에 할 수 없으리라.

        

       그러한 불안감은, 그녀가 ‘조금……조금만 자고 올게요.’라고 말하며 사라진 시점에 절정을 찍었다.

        

       노방종 선언만 없었지, 전형적인 노방종 방송 아닌가.

        

       정작 노방종을 선언했을 때도 (핫)(생)(녹)을 올렸던 스트리머가 과연 정말 돌아오기는 할지. 방송 켠 채로 일주일쯤 노방종휴방을 하는 것 아니냐는 도네이션에 누구 하나 말이 되냐고 일갈하지 못하더라.

        

       물론, 이 역시 ‘아. 그런 방법이…….’라며 말을 흐린 스트리머의 탓이긴 했지만.

        

       고로, 오히려 정말로 눈만 붙이고 돌아온 지금의 상황이 가장 놀라웠더랬다. 그 어떤 악질짓을 하더라도 그러려니 했을 시청자들조차, 혹시나 해서 있었는데 진짜 올 줄은 몰랐다며 당황했을 지경이다.

        

       《뭐 먹냐……캐비아에 필라델피아 크림 치즈를 얹은 바게트예요. 여러분이 기부한 도적부흥운동 기금은 운영진의 생계를 위해서도 쓰여야 해서.》

        

       『캐비아 ㄷㄷㄷ』

       『식비를 아껴 도네한 보람이 있구나 따먹따먹아 난 삼각김밥이 맛있어서 괜찮아』

       『또 지랄을 시작했구나』

       『전기세 낼 돈은 도네하지 말걸 그랬네 차가운 식빵은 목이 막혀서 먹기 힘들구나』

       『먹방하자』

       『사진 올려주세여!!!』

        

       -와삭

        

       무언가를 먹는 소리와 함께, 우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예나 본인이 의도한 건 결코 아니었지만, 사시사철 ASMR을 외치던 사람들이 몹시 만족할 방송이었다.

        

       물론, 24/7 먹방을 요구하던 사람들로서는 감질맛만 나는 방송이었지만.

        

       《사진……잠시만요.》

        

       그리 말하며 화면을 전환한 이예나는, 검색사이트에서 캐비아 사진을 검색해서 올릴 뿐이었다.

        

       《……이렇게 생겼네요. 신기하지 않나요. 아이스박스로 배송된다고 해요.》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먹고 있다면서…….】

        

       《먹으면서도 신기할 수 있으니까요. 왜,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순대국밥을 한 술 크게 떴는데, 다데기와 고기국물, 미리 넣은 밥에서 적절히 풀린 녹말, 그리고 함께 딸려온 머리고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서 놀라는……신기해할 만한 순간인데.》

        

       이어서, 검색창에 순대국밥이 쓰여지고- 화면을 각양각색의 순대국밥이 가득 메웠다.

        

       《요즘 잘 먹지는 못했는데……보니까 좋네요. 마음도 편해지고. 오늘 맵가리개는 이걸로 할까요.》

        

       우측 하단, 미니맵이 떠오를 자리에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순대국밥 사진이 올라오고-

        

       《아직은 피곤해서……키마로 조금 하다가 VR로 전환할게요. 얘 왜 갑자기 친절하게 설명하냐……오해가 있네요. 저는 항상 친절과 고객만족을 제1 모토로 삼아왔어요. 음……너무 심한 욕설은 짧게 써주세요. 채팅창은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니라니까. 공공장소에서 그런 말 하시면 곤란해요.》

        

       군불과 함께, 다시 등반이 시작됐다.

        

       * * * *

        

       세기말.

        

       한판 한판에 예민해지는 건 아래 티어만의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민감한 건 더 이상 승급을 할 티어도 없는 챌린저였으니.

        

       영원히 남을 등수 아닌가.

        

       100등이나 10등 따위의 의미있는 숫자 안에 내 아이디가 새겨질 수 있는지 여부는, 게이머들에게는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법이다. 상위 0.01% 미만에 들어갈 정도로 게임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메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히 챌린저들이었다. 실험은 당연하다는 듯이 부계정으로 했지만.

        

       그러나 챌린저 티어에서 최근 가장 핫했던 건 도적이었으되,

        

       시즌 종료를 31시간 남긴 시점에 가장 뜨거운 주제는, 밑에서 모든 걸 파괴하며 올라오고 있는 탱크였다. 최적의 도적 빌드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피할 수 있으리라 믿고 큐를 돌려야 하는가.

       자연재해가 지나갈 때까지 참으며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같은 팀이 될 가능성에 기대어 보아야 하는가.

        

       400등대에서 플레이하는 챌린저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이내, 300등대에서 하는 고민이 되었고- 이윽고,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라는 심정으로 지켜보던 200등 대의 유저들도 하게 된 고민이었으니.

        

       프로게이머의 비중이 급증하는 구간이었다. 동시에, 시즌이 끝나기 전에 100등 안에 들어가고 싶은 이들로 가득한 구간이었고.

        

       그러나, 태풍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파괴적이니.

        

       《음……슬슬, VR로 해볼까요. 키마가 한계가 있긴 하네요. VR하기 전엔 생각 못했었는데. 이거 마공같은 거 아닌가……몸이 상하는 걸 대가로 실력을 뻥튀기 시켜주는데. 다같이 금지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VR에 비해 한참 불리하다는 키보드와 마우스로 그 구간조차 짓밟으며 주파한 이예나는, 어느덧 100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GP 바이오: 팬입니다!!!!!!!!!!!!!!!!!!!!!!!!!!!]

       [GP 바이오: 아따먹님이랑 검방기사 파머 한번만 가도도리까요]

       [GP 바이오: 될까요]

        

       [아따먹: 아……]

       [아따먹: 감사합니다]

       [아따먹: 저도 바이오님 좋아해요]

       [아따먹: 마음같아선 듀오하고 싶은데]

       [아따먹: 솔랭으로 등반해야 하는 게 아쉽네요]

        

       곧 정복될 고지에 불과했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월요일이네요. 사실 어제, 잦아진 휴재를 조금씩이라도 만회하고자 휴재일임에도 업로드했는데…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 최근 연재주기가 너무 불규칙했기 때문이겠지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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