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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멜리나는 멀어지는 올리비아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이카일 한복판에 위치한 목탑 위로 이동했다.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던 희미한 기척. 올리비아는 눈치채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이 ‘기척’을 여러번 경험해본 멜리나는 알 수 있었다.

         

       “……오랜만이군.”

         

       5층 높이의 목탑 옥상 위엔 복면을 두른,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일렁거리는 그림자.

         

       눈 앞에 있음에도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갈무리 된 기세.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탑을 오가고 있음에도, 누구하나 남자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는 성기사들조차도.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말해야 하나?”

        “내가 지금 질문한 것으로 보이더냐?”

         

       멜리나의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머금었다. 동시에 그녀의 풍성한 황금빛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흩날렸다.

         

       “백 년 전 살려보내줬던 어린 살수와, 이렇게 재회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이 은혜도 모르는 버러지같은 것아.”

         

       모욕성이 다분한 말에도, 암주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멜리나를 바라볼 뿐.

         

       “……당신이 내게 베풀어준 은혜는 저번 생에서 전부 갚았다. 일면식도 없는 황녀를 2년 동안 신줏단 모시듯 섬겼지.”

       “2년? 그러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짓은 무엇이더냐?”

       “이해관계가 좋게 맞아 떨어졌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멜리나가 피식 웃었다.

         

       “이해관계? 전쟁을 벌이지 못해 미쳐 날뛰는 황녀와 말이더냐?”

       “뭐가 되었든 올리비아가 벌였던 만행보다는 못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야 있겠지. 너는 아무것도 모를테니.”

         

       멜리나는 올리비아의 무수한 회차를 ‘보았다’.

         

       그렇기에 직전 회차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올리비아의 잘못이 아님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암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모른다고?”

         

       암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내가?”

       “그래.”

        “도대체 뭘 모르는지……알려줬으면 좋겠군.”

         

       묘한 감정이 암주의 심장을 타고 올라왔다.

         

       “올리비아는 피해자다. 나와 키엘, 그리고 제국을 멸망시킨 당사자는, 그 몸을 지배한 다른 누군가지.”

        “……하.”

         

       암주는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당신, 정신이 이상해졌군.”

       “못 믿을 줄 알고 있었다.”

       “이제야……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알겠군.”

         

       정신 계열 마법.

       

       “검성도, 성녀도 당신과 같겠지.”

       

         

       *****

         

         

       에스티는 저 멀리서 계곡물을 타고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느리군. 무왕은 이죽거리면서 큼지막한 바위를 들고 와 올리비아의 앞에 던지듯이 놓았다.

         

       아무래도 의자 대신 사용할 모양이었다.

         

       촤아악!

       

       에스티가 물 아래서 솟아올랐다. 그녀는 짜증이 가득한 기색으로 머리의 물기를 쫙 짜내고서 올리비아를 노려보았다.

         

       “나쁜 새끼. 어떻게 5년 동안 얼굴 한 번을 안 비출 수가 있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올리비아를 쏘아본 뒤에, 옆자리에 털푸덕 주저앉는다.

         

       “……사정이 있었어.”

       “당연히 사정이야 있었겠지. 내가 그걸 몰라? 아니까 참는거지.”

         

       에스티는 히스테리에 걸린 사람처럼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운 좋은 줄 알아. 사흘만 늦었어도 내가 다 뒤집어놨을테니까.”

       “…….”

         

       도대체 뭘 뒤집어 놓는다는 걸까. 올리비아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계곡물이 마구 출렁거렸다. 아무래도 그녀의 감정에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일단 이것부터 받아.”

        “……이게 뭔데?”

       “텔레포트 스크롤.”

       

       올리비아가 즉답했다. 그녀는 곧바로 스크롤을 건네며 설명을 시작했다.

         

       “입력된 좌표는 신성 왕국 인근이야. 물론 너희들이 이걸 사용할 때 쯤에는, 거긴 전선(前線)으로 바뀌어 있겠지만.”

        “크하하! 지금 당장 전사들을 모아 황궁을 쳐부수러…….”

       “닥쳐봐 좀! 올리비아가 얘기하는 중이잖아!”

         

       하지만 무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좌가 선봉에 서서 제국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다! 크하하하하!”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게 느낀 건 에스티도 마찬가지였는지, 곧바로 계곡 물을 끌어와 수십미터 크기의 물감옥을 만든 다음, 무왕을 그 안에 처박아버렸다.

         

       “어린 놈의 새끼가. 닥치라면 좀 닥치라고.”

         

       무왕은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에스티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스티의 말에 반박하지도 않았다.

         

       뭐, 설정상으로 보면 에스티의 나이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외모만 보면 무왕 쪽이 훨씬 연장자인데.

         

       “저대로 내버려둬도 돼?”

        “안 죽어. 예전에도 몇 번 해봤어.”

        “…….”

       “진짜야. 요즘은 수련도 평범하게 안하고 물 속에서 한다고.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느낌이 좋다나 뭐라나.”

         

       에스티는 투덜거리면서 물감옥을 폭포 아래로 떨궈버렸다. 무왕의 비명 소리가 흐릿해지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제국군을 만났어.”

         

       에스티의 말에 올리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단으로 위장해서, 군수물자를 가득 싣고 가더라.”

       “죽였어?”

        “죽였지.”

       “…….”

         

       에스티가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해도, 아무나 막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쪽에서 먼저 빌미를 제공했으니 죽였을테지.

         

       하지만 아리아가 이 일을 그냥 넘길 것 같지도 않았다.

         

       원래 다툼이 치열해질수록 사소한 일에서도 명분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

         

       제국 기사들은 개인용 통신구를 하나씩 들고다니는 만큼, 이 소식은 이미 아리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명분은 주어졌다.

         

       이쪽에도, 그리고 저쪽에게도.

         

       “황녀를 구슬리는 데 실패한거야?”

        “실패는 아니야.”

       

       올리비아가 즉답했다.

         

       “아직 제대로 시도해 본 적도 없으니까.”

       “5년 동안?”

       

       에스티의 이죽거림에 올리비아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만큼 심각한 일이 있었다고만 알아줘.”

         

       올리비아의 진지한 대답에, 에스티 또한 진지한 눈으로 올리비아를 응시했다. 항상 무료함으로 가득했던 녹안이 총기를 머금은 순간, 올리비아는 그녀가 한때 한 나라의 왕족이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제기랄. 너 무슨 개 같은 일에 엮였었구나.”

         

       그제서야 올리비아의 사정을 눈치챈 에스티가 욕설을 뱉어냈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면 스크롤로 따로 준비한 것도 그것 때문이겠네? 우리가 성녀 쪽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 우리를 설득할 수 있는 건 너 하나뿐이니까.”

        “……맞아.”

        “젠장할. 황녀 이 망할 년이. 무슨 짓을 벌인거야?”

         

       에스티가 고개를 홱 돌려 올리비아를 노려보았다.

         

       “나중에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안 말해주면 황녀 그년의 입을 통해서라도 들을테니까. 알았어?”

         

       에스티의 녹안이 부라리듯 빛을 발했다. 그녀는 절벽을 엉금엉금 기어 올라온 무왕을 다시 한 번 발로 차 떨구면서 내뱉었다.

         

       “지금 당장은 네 장단에 어울려줄게.”

       “누구 맘대로!”

         

       기어이 다시 올라온 무왕이 대뜸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에스티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됐어. 이미 얘기 다 끝났으니까 다시 내려가.”

       “갈! 본좌는 아직 마술쟁이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에스티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물을 범람시켰지만, 웬일인지 무왕은 이번에는 밀려나지 않았다.

         

       ‘아니, 그동안은 일부로 밀려나준 거겠지.’

         

       촤아아악!

       

       무왕은 압도적인 수압을 뚫고 성큼성큼 올리비아를 향해 다가왔다.

         

       “하나만 묻지. 마술쟁이. 키엘 그 애송이는 어느 쪽 편이지?”

        “왜, 그 반대편에 붙어먹으려고?”

       

       무왕의 말에 에스티가 팔짱을 끼고 빈정거렸다.

         

       “그럴리가.”

         

       무왕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비열한 마술쟁이에게 빚을 지워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만큼, 얻어낼 수 있는 건 전부 얻어낼 생각이었다.

         

       자고로 전사라면 이 무왕이 제안하는 대련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거늘, 키엘 그 애송이만큼은 달랐다.

         

       원래라면 그런 애송이에게 관심을 주는 일은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전쟁의 신은 키엘에게 지고의 무재(武才)를 내렸다.

         

       내로라하는 전사들도 무왕의 한 합조차 버텨내지 못하는 지금, 그에게는 누구보다 키엘과의 대련이 절실했다.

         

       키엘이 이 자리에 없는 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애송이는 마술쟁이의 말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

         

       그래서 키엘이 어느 쪽 편이냐고 질문한 것이다. 만약 올리비아와 다른 쪽에 붙어먹었다면 이 계획은 즉시 박살날테니까.

         

       “키엘은 내 편이지.”

         

       올리비아의 말에 무왕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찢어졌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그 모습에, 에스티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저나 연락은 어떻게 할거야?”

       “일단은…….”

         

       올리비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카가가가각!

         

       도시 방향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마나의 폭발.

         

       “……!”

       

       황금빛 마력과 검은색 마력이 게걸스럽게 서로를 탐한다.

         

       “……스승님.”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올리비아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박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 블랙베리0 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 졸려맨이야님 1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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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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