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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그리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내가 납치된다는 큰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나 사라에게 큰 트라우마가 된 것도 원인이다. 솔직히 나로선 그게 제일 크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 나나 사라가 최나경을 다시 보면 평소의 정신으로 만나기는 어려울 테니까.

        

       당연히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건 큰일이었다. 내가 의도했다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사실 내 주변은 확실히 나를 중심으로, 사라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늘이, 수아, 소희도 전부 나를 친구로 여기고 있었고, 사건 사고도 나를 중심으로 터지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나와 사라에게 터진 사건 사고가 우리 관계의 중심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 사람들에게 터진 사건 사고들도 ‘나’, 혹은 ‘사라’가 원인이긴 했다. 파고들다 보면 결국 나오는 것은 ‘예사라’라는 이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나는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오로지 돈뿐이었지.

        

       그렇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존재들은 당연히 내 주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선생들을 말하고 있는 거다.

        

       ……하긴 뭐, ‘물리적인 거리’로 따지자면 그럭저럭 가까웠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내가 학교로 돌아간 것은, 병원에서 퇴원한 지 이틀 뒤였다.

        

       당연하다는 듯 하늘이, 소희, 수아도 그동안 학교를 빠졌다.

        

       “정말로 괜찮겠어? 무단결석은 태도점수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나?”

        

       그렇게 학교를 이틀…… 아니, 첫날에 수업 듣기도 전에 납치되었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3일을 연속으로 결석한 뒤 드디어 등교하는 길에서, 나는 하늘이에게 그렇게 물었다.

        

       솔직히 몹시 걱정되었다. 소희와 수아는 성적 상관없이 어떻게든 등록금을 낼 방법이 있었지만, 하늘이는 아니었으니까.

        

       오로지 자기 성적만으로 그 학교에 들어가고, 막대한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감당하고 있는 하늘이는, 성적에 영향이 오면 큰 문제가 생긴다. 장학금은 학기별로 나오니 1학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지금은 괜찮다고 쳐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1등을 유지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장학금을 유지하기 위한 합격선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물론 내가 감당할 수는 있다. 감당하더라도 내 재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금액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하늘이가 그런 도움을 받고 싶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요 몇 개월 동안 하늘이의 성격을 파악해본바, 하늘이는 그런 큰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사실 내가 일방적이지 않다고 생각해도, 하늘이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거절할 가능성이 컸을 뿐이지만.

        

       “상관없어.”

        

       하지만 하늘이는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아무 고민 없이 바로 그렇게 대답했다.

        

       “상관없다고?”

        

       그리고 그 반응에 조금 충격받은 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응.”

        

       하늘이는 아예 시원하게 웃어 보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뭐랄까, 고민거리가 하나 시원하게 풀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왜?”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하늘이는 이 학교를 정말 오고 싶어 해서 왔다. 이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원작 게임에서도 엄청나게 기대하면서 이 학교에 왔다는 것이 초반부에 확실하게 묘사된다. 들어오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중학생 때 있던 친구들과 헤어지면서까지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루트에서, 하늘이는 금방 현실을 깨닫는다.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온 학교에서 진짜 진지하게 공부하는 아이들은 같은 외부 입학생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학교 수업보다는 과외로 성적을 유지했다.

        

       사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성적을 유지하면 다행이고, 대부분의 학생은 성적 유지보다는 관계 확립에 열을 올렸다. 그게 건전한 친구 관계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졸업 후에 재산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계급 나누기’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뒷돈이 오간다.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부모가 상대 부모에게 건네는 뇌물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주고받는다.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나중에 그 ‘돈 많은’ 학생들에게 고용되어보려고 열심히 아부하고, 자연스럽게 제일 아래의 계급이 된다.

        

       그전까지 평범한 학교에서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던 하늘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더럽다’라고 표현할만한 학교.

        

       하지만 소희 루트를 제외한 다른 루트에서, 하늘이는 끝까지 학교에 남는다. 이어지는 대상이 학교에 있으니까.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련을 끝끝내 극복하고, 이어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대와 이어지는, 문자 그대로 성장형 주인공인 하늘이었기에, 대놓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글쎄…….”

        

       나의 되물음에, 하늘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환상이 산산이 조각났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쓰게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간다.

        

       “뭐, 그 학교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최악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우리가 겪어본 게 있잖아.”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이 함축된 말이었다.

        

       그랬다. 우리가 ‘당한 게’ 있다.

        

       그리고 하늘이는 그런 것을 그냥 넘어갈 성격도 아니고.

        

       단순히 자기만 당하는 거라면 꾹 참으면서 힘을 길러 이겨내겠지만,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이 전부 당하면, 아무리 하늘이라도 참기가 힘들 것이다.

        

       당연히 그딴 학교에 정 따위 남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딴 학교에서 정한 규칙을 따르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음.

        

       그런데, 그러니까…… 학교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말일까?

        

       원작에서의 소희 루트처럼?

        

       하지만, 하늘이는 그렇게 말한 뒤에는 구체적인 말을 더해주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보고 방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 얼굴에 대고 ‘학교 그만두려고?’라는 질문을 차마 할 수 없어서, 나도 그저 쓴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

        

       하늘이가 ‘학교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당당했던 이유는, 학교에 간 뒤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어……?”

        

       우리가 교실에 들어갔을 때, 반에 가득해야 할 학생들 중 거의 절반 정도가 학교에 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수업을 몹시 불성실한 자세로 듣긴 했지만, 그래도 출석은 꼬박꼬박, 늦지 않고 하는 편이었다.

        

       그야 당연히, 출석과 결석은 그저 돈을 먹여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라의 경우에는 학교 학생들과 선생들을 포함해서 모두 최나경에 대한 공포심이 퍼져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 정도까지 학교를 장악할 돈과 권력이 없는 학생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한다는 소리다.

        

       교내의 계급은 돈으로 정해진다.

        

       하지만 그 계급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법으로 정해지거나 명확한 교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학생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로 정해지는 거니까.

        

       그렇기에, 당연히 반발심도 있다.

        

       굳이 돈이 없는 서민 가정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돈 많은 사람끼리도 질투를 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법이다.

        

       만약 결석했는데 출석 체크가 된 것을 누군가가 퍼뜨려버리면, 그건 큰 스캔들이 될 수밖에 없다. 아주 유명한 학교에 다니는 유명한 집안의 아이에 대한 스캔들일 테니까.

        

       그렇기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꼬박꼬박 학교에 보냈다. 당연히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지각도, 결석도 없다.

        

       그럭저럭 이른 시간에 등교하는 나였지만, 교실에 들어올 때면 언제나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것을 보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

        

       심지어, 내가 반으로 들어가자마자 교실이 쩌적 얼어붙었다.

        

       음, 솔직히 이런 적은 꽤 있어서 뭐라고 하긴 조금 그렇다. 내가 이 학교에서 친 깽판이 한두 개여야지.

        

       내가 회장 만나러 갈 때랑은 분위기가 다르네.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떼어내는 데 성공한 사라가 그렇게 평가했다.

        

       그러게. 무슨 일일까.

        

       사실, 나는 아직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니까. 사라에게 이야기를 전달받긴 했어도 기억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

        

       일단은 말없이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소희가 그 옆에 앉았고, 하늘이는 그 옆에 앉았다.

        

       그렇게 자리로 걸어가는 시간 동안,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사람의 감정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시선들’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고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알아보기 쉬운 눈빛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희와 하늘이 쪽을 봤더니, 둘 다 묘하게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혹시 이 둘이 뭐라도 한 건가?

        

       아니면 양혜인이 암약이라도 한 건가? 아이들 집에 장도리 들고 찾아가기라도 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꽤 오래 앉아있었다.

        

       그동안 교실은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예비종이 울리고—

        

       교실에 선생이 들어왔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온 선생은 언제나 보던 담임이 아니었다.

        

       다소 젊은 여선생이다. 이 교실의 수업 시간인데도 들어오는 사람이라 얼굴은 알았다.

        

       그 선생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얼굴이 바로 새파랗게 질렸다.

        

       ……아니, 그러니까 이유가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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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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