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71

       갈 곳을 잃어버린 게임 속 본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이 샜다.

       

       또 다른 자기 자신이 나타난 것도 신기한 일인데 그 자신이 게임의 플레이어라니.

       

       나였어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저기서 당황하고 있는 것도 나이니 나였어도 라는 말은 이상한가?

       

       흐음. 거 복잡하군.

       

       점혈을 한 탓에 몸 안에서 미친 듯 부풀어 오르고 있는 내기를 주변에 퍼트리며 생각을 이어나간다.

       

       방금 전 가벼이 주먹을 나누어 보며 깨달은 것이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자는 본인이 맞다.

       

       본인이 지녔던 버릇과 본인이 지녔던 생각과 본인이 지녔던 깨달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데 어찌 본인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나와 완벽히 같지는 않다.

       

       저 시절은 지금의 내겐 오래 전의 이야기인지라 정확히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미혹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던 나에 비하면 눈앞에 존재하는 게임 속 본인은 활기가 있어보였으니 말이다.

       

       이 또한 외부인이 끼친 영향일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게임 속의 변수인 그 한서우라는 자겠지.

       

       현대를 사는 그를 만나서 친구라도 된 것일까.

       

       하긴 무림의 험악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가 내 전생과 비슷한 세상에서 살던 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 험악함에서 조금 벗어날 수도 있겠구나.

       

       이 시절의 난 현대에 대한 미련을 많이 버리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고.

       

       궁금한 부분이 여럿 있긴 하다만 그것은 지금의 대련이 끝나고 나서 물어볼 일이다.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게 신경을 써야겠지.

       

       물론 내 앞에 있는 저놈도 본인만을 신경 써야 할 터이고.

       

       주변으로 퍼트렸던 내기를 몸 안에 집약시킨다.

       

       이런 짓거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신의 경지는 게임 속 내가 한참은 위다.

       

       그럴 수밖에 없지.

       

       수많은 수라장을 거치며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수련을 해온 나와 게임에 접속하고서 채 한 달이 될까말까한 나.

       

       후자 쪽이 더 높은 경지를 지니고 있다면 불공평하지 않은가.

       

       대놓고 말하자면 지금 내가 도달한 육신도 불공정함 그 자체이기는 하다만 본인이 도달한 경지가 있는데 공정할 이유가 있느냐?

       

       격차는 분명하나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게임 속의 내가 걷는 길은 본인이 오래 전에 걸어왔던 길이다.

       

       이미 지나쳐 온 길에 추월을 당할 정도로 본인은 허약하지 않으니라.

       

       “이 세상의 천마여.”

       “…무어냐.”

       “내가 나인게 중하더냐?”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보다 더 중한 게 있지 않은가.”

       

       그대의 앞에 그대가 넘어야 할 산이 있느니라.

       

       그대가 부수어야 할 하늘이 존재하느니라.

       

       그것 이외에 무어가 중요한 것이 있는가.

       

       부딪혀서 박살이나 낙하를 하건. 아니면 부수고 더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가건.

       

       천마신공을 다루는 자라면. 파천의 의지를 지닌 자라면.

       

       위를 올려다보고 그를 부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본인은 신교의 제일인이었다.”

       “동시에 본인은 무림의 제일인이었고.”

       “천하의 제일인이었다.”

       

       내가 현대로 떠나오기 전까지 본인은 그 자체만으로 무림에 존재하는 신화라 여겨졌다.

       

       세상의 위에 군림하는 공포였고, 그 누구도 천마신교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억제력이었다.

       

       “그대는 어떤가? 그대는 지금 무림의 하늘로 군림하는가?”

       

       아니겠지.

       

       그대는 지금 무림의 최강자 반열에 들어섰을 지언정 모든 하늘을 깨부수진 못했다.

       

       아직 걸어야 하는 길을 멀고도 험하며 얻어야 할 깨달음은 너무도 많아 올려다볼 수 없을 지경이리라.

       

       “보라. 그대의 앞에 하늘이 있다.”

       “절정에도 달하지 못한 몸으로 하늘을 지칭하는가.”

       “물론. 그대는 스스로가 허언을 내뱉을 인간이라 생각하는가?”

       

       다른 부분은 어떨지 몰라도 본인은 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일말의 거짓도 담지 않는 인간이다.

       

       그것은 그대도 알 것이다.

       

       그대는 본인이니까.

       

       게임 속의 나는 부정을 입에 담는 대신에 몸 안에 내기를 돌리더니 자세를 취했다.

       

       증명해보라는 것이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자아. 춤을 춰보자꾸나.

       

       그대에게 본인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겠다.

       

       *

       

       기이하다고 백화령은 생각했다.

       

       본인이라 자칭하는 외부인에게 자신이 밀릴 요소는 없다.

       

       육신의 경지는 백화령 쪽이 몇 수는 더 높은데다가,

       

       둘이 사용하는 무공은 천마신공으로 완전히 동일하며, 둘이 추구하는 것 또한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둘이 전투를 하는 동안에 앞서야 하는 쪽은 백화령이어야 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둘의 접전은 백중세를 이루었다.

       

       무엇의 차이가 이것을 만들어 내는가.

       

       백화령은 마음 속으로 부정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머리는, 무인으로서의 가슴은, 그녀에게 정답을 외치고 있었다.

       

       경지의 차이.

       

       또 다른 자신은 고했다.

       

       자신이 천하의 제일인이었다고.

       

       그것은 오만한 이야기였다.

       

       정파를 박살내며 무림 최고수의 자리를 오른 백화령이지만 아직까지 천하의 제일인을 자칭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여전히 무림에는 살아있는 신화라 불리우는 삼존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여전히 세상에 은거한 기인들도 넘쳐나는 마당이었으니.

       

       백화령이 신교의 제일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없으나 무림의 제일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이는 차고도 넘친다.

       

       아직까지는 그러했다.

       

       허나 또 다른 자신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이미 지나쳤다고 말했다.

       

       백화령은 알았다.

       

       자신이 이런 부분에서 허언을 내뱉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자신이 아무리 내로남불이 심한 인간이고 편의를 위해서라면 거짓을 서슴치 않는다고는 하나 무라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다르다.

       

       그녀는 무에 있어서만큼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또 다른 자신은 진정 천하를 자신의 아래에 둔 것이었다.

       

       권과 권이 부딪혔으나 이번에도 백화령은 또 다른 자신을 부수는 것에 실패했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으나 또 다른 그녀는 웃고 있는 반면에 백화령의 마음은 서서히 조급함으로 물들었다.

       

       기이했다. 실로 기이했다.

       

       쫓기는 것은 또 다른 자신이어야 한다.

       

       지금의 대치는 어디까지나 점혈로 이루어낸 기적일 따름이니 저것이 끝나는 순간 또 다른 자신은 패하게 될 터.

       

       그러니 대치가 이어진다면 유리한 쪽은 백화령 자신이어야 했다.

       

       빠르게 승부를 내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그녀여야 했단 말이다.

       

       그런데 왜!

       

       “신교에서 보낸 세월 탓에 많이 헐렁해졌나 보구나.”

       

       내지르는 권에 조급함이 묻어났던 것일까. 또 다른 그녀가 웃음을 흘렸다.

       

       “언제까지고 부정만 하고 있을 셈이더냐.”

       

       또 다른 그녀가 내지른 권에 처음으로 백화령이 밀려났다.

       

       백중세가 조금이나마 백화령의 반대편으로 기운 것이다.

       

       그를 본 백화령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백중세는 서로의 실력이 같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

       

       눈이 좁아지긴 했구나.

       

       신교에 머무르는 세월 동안 동면을 취한 것이 본좌를 이렇게 무디게 만들었던가.

       

       “하하하.”

       

       상대가 수를 접어주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고?

       

       그래. 그대의 말이 옳다. 본좌는 헐렁해진 모양이야.

       

       “하하하하하.”

       

       웃음이 샜다. 멍청한 자신 탓에.

       

       그를 보고서 한심하다 생각했을 또 다른 자신의 생각이 추측이 되는 탓에.

       

       웃음이 새어서 멈출 줄을 몰랐다.

       

       “인정하마.”

       

       그대는 본좌의 하늘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본좌가 걷고 있는 길을 한참 전에 지나쳐 버리고 본좌로서는 감히 올려다 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무인이다.

       

       천마신공을 익힌 자로써.

       

       파천의 길을 택한 자로써.

       

       하늘이 눈앞에 있다면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뿐.

       

       숨을 들이킨다.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뒤를 생각해도 괜찮은 것은 강자 뿐.

       

       약자가 생각해야 일은 오롯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

       

       주변에 퍼트려두었던 신공의 내기를 끌어 모아 몸 안에 집약시킨다.

       

       “다시 가지.”

       

       상대의 경지가 높은 것이 사실일지언정 이길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육신의 경지가 훨씬 더 드높다는 유리는 여전하니 뒤를 염려하지 않는다면 얼마든 백중세를 이어나갈 수 있다.

       

       권과 권이 부딪힌다.

       

       천마신공과 천마신공이 만난다.

       

       파천과 파천이 서로를 부수고자 한다.

       

       그 속에서 백화령은 또 다른 자신이 도달한 경지를 보았다.

       

       과연. 그대의 천마신공은 신교의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군.

       

       신교의 무공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무공일 지언정 자신이 옳다 생각한다면 받아들인 것인가.

       

       옳다. 무공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는가.

       

       있는 것은 강함과 약함이요. 효율과 비효율 뿐일지언저.

       

       권을 부딪치던 중에 백화령이 미소를 지었다.

       

       그랬구나.

       

       그대는 자신이 걸었던 길을 어찌하면 따라올 수 있는 지를 알려주려 하는 것인가?

       

       그로써 지금의 나에게 이정표를 제시해주려 하는 것인가?

       

       그것 참 배려심 넘치는 행동이구나.

       

       허나 그대도 본인이니 알겠지.

       

       자신이 반골기질을 타고난 인간이라는 것을.

       

       너무도 노골적인 배려는 오히려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걸.

       

       어디 한 번 겨루어 보자꾸나.

       

       나의 필살이 그대가 주장하는 하늘에 닿을지.

       

       아니면 그대라는 하늘이 너무도 높아 허공을 때릴 뿐일지를.

       

       백화령이 진각을 밟는다.

       

       노리는 것은 하늘에 닿을 일권.

       

       그녀에게 권이라는 것은 따로 생각을 하고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권이라는 것은 백화령이란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생각도 고민도 필요치 않았다.

       

       그녀라는 사람이 곧 권일지언데 무슨 생각이 필요하겠는가.

       

       호흡을 하는 것도.

       

       내기를 움직이는 것도.

       

       근육이 움직이는 것도.

       

       모두가 권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으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의지를 거기에 새기는 일 뿐이었다.

       

       그를 보고서 또 다른 그녀가 눈을 살짝 치뜨더니 미소와 함께 진각을 밟는다.

       

       백화령은 보았다.

       

       그녀의 몸 안에서 미친 듯 날뛰던 내기가 한 군데로 압축되는 것을.

       

       언제 터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내기가 진각과 함께 무릎을 타고 허리를 지나쳐 팔에서 손으로 향하는 것을.

       

       점혈로 인해 흉포해졌던 기운이 하나로 합쳐졌으며, 그것이 그녀의 몸을 타고서 증폭되어 하늘에 닿을 권이 완성되는 것을.

       

       백화령은 그를 보고서 허탈하여 숨을 내뱉었다.

       

       내가 찾기를 바라던 정답을 이런 식으로 알려주면 어쩌자는 것이냐.

       

       배려가 넘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그냥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게로구나.

       

       하아. 빌어먹을.

       

       무림의 강자라는 놈팽이들은 다 저런 놈들 뿐인가.

       

       저렇게 늙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거늘 결국에 나도 똑같은 놈이 되는가 보구나.

       

       뭐어. 그래도.

       

       본인이 저만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저 미래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가.

       

       내질러지는 권에 담긴 기운을 본 순간 백화령은 패배를 직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포충 극혐!

    —–

    사서님 3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라고 하면 호불호 그 자체지만 민초파피라고 하면 어감이 괜찮죠.
    응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