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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후우…….”

         

         코가 마비될 것 같은 비릿한 냄새와 신발 밑창에 낀 나무 조각이 참 거슬렸지만 애써 도리질치는 걸로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추적자가 무더기로 죽어 나간 마당인 만큼, 지금부터 작전 실패는 ‘아차! 다음엔 더 잘해보죠!’ 같은 희망찬 얘기가 아니라 ‘저런 유감이군요. 뎅겅!’ 에 가까운 결과로 이어질 인과가 현저히 높아졌으니.

         

         기왕 승부가 나는데 한 손 거드는 거 그래도 나중에 도움이 돼 줄 수 있는 쇼우가 득을 보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게 맞겠… 아, 근데 이럼 카이쥰도 재미보는 셈이긴 하네. 씁, 그거야 뭐 각오한 부분이니까.

         

         잠긴 문을 노려본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닌-자 대전을 구경하긴 했어도 내 본분이나, 아까 입수했던 단편 정보를 잊지는 않았다. 이제부터 그걸 중앙 시스템에 침투하면서 얼핏 엿본 센서 모식도와 결합해, 이 안에 설치된 보안 설비들을 무력화하고 증빙 문서들을 닥치는 대로 훔치면 끝.

         

         그리고 속전속결이 중요하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행사를 진행하던 카사네가 누워있는 애들이랑 통신만 시도해도 바로 좋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는 걸 눈치챌 수 있기에.

         

         인이어(In-ear) 헤드폰 같은 걸로 연락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면 내가 어떻게 중간에서 교란이라도 시도했을 텐데, 아무래도 나처럼 체내 통신 임플란트로 연결된 독립 회선인 모양이라… 시신에 손을 박아 넣고 어디 박혀 있을지도 모르는 그걸 뒤적거리는 건 좀….

         

         만약 그랬는데 착용자의 활력 징후(Vitals sign; 맥박, 체온, 호흡, 혈압 등등의 생명 활동 요소)가 사라졌을 때 파기되는 물건이었으면. 거기 투자한 시간이 다 낭비가 되는 것이기에 자중했다.

         

         …절대 할 짓이 못된다고 여긴 게 아니다. 그저 논리적으로 타산이 안 맞는다고 계산했을 뿐이다.

         

         “어디, 해볼까…!”

         

         마치 관절을 푸는 것처럼 몸 내부로 찌릿한 에너지를 한 바퀴 돌린 뒤.

         대부분 전자식 슬라이딩 도어를 채용한 에나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옛날 금속 손잡이 위에 손을 얹어 놓고 슬쩍 신호를 흘려서 간부터 봤다.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에 먹물을 한 방울 떨어트리고 관찰하듯.

         연결된 회로, 교차점, 더 나아가서는 거기에 엉켜 있는 각종 비밀들을 밝혀 주기를.

         그 모든 것을 내가 불어넣은 흐름이 낱낱이 드러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뭐야, 왜 허공으로 흩어지냐.

         

         혹시 완전 기계식?

         

         딸깍….

         

         어라, 심지어 잠겨있지도 않아…?

         

         “……크흠! 날이 좀 덥네.”

         

         환기가 좀 안 되는 것 같아서 자켓을 펄럭였다.

         

         여차하면 자기 부하들이 열고 들어가야 하는 데다가, 정예 요원들이 틀어막고 있어서 방치한 거라면… 나야 고맙다. 오히려 이런 문에 구식 잠금 장치가 있었다면, 권총 손잡이로 열릴 때까지 낑낑대며 내려쳐야 했을 텐데.

         

         아무튼! 문은 별 까탈스러움 없이 열렸지만 곧바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있는 게 확실한 알람부터 끄는 게 먼저지.

         

         쨍그랑!!

         

         여러 실전 안전성 검사를 통과한 수트를 믿고, 팔꿈치를 휘둘러 방 바깥쪽 벽에 있던 유리 커버를 부쉈다. 실상은 전투의 여파로 반쯤 엉망이 된 녀석을 손이 긁히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확장하는 작업에 가까웠지만.

         

         “…….”

         

         고개를 내려 이제 그 연약한 속살이 얼핏 드러난 회로판을 눈높이를 맞추고 조심스럽게 확인한다.

         

         무작정 접촉하고 능력을 발동했다간, 내가 미처 제어권을 확보하기도 전에 외부 접속을 탐지한 경보가 작동해서 사방으로 비명을 내지를 수 있기에.

         최대한 정상적인 입력 장치와 부착된 부분을 찾아서 거기를 통해 본격적인 해킹을 개시하는 게 맞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면. 전에 선생의 가게에서 얹혀 지낼 때, 정작 임플란트에 대해서 내가 너무 게임적인 지식만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어서.

         

         조금 살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샵 컴퓨터를 건드렸다가 가게문도 갑자기 폐쇄되고, 보안 회사 직원도 찾아오고…… 좋아, 이 얘기는 그만하자.

         

         중요한 건 지금은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거 아닐까?

         

         [ 위키드 앤솔로지(Wicked Anthology) 프로덕션 컴퍼니-제작사-의 전방위 탐지형 레이더 센서 제어 모듈 관리용 요약 데이터를 ‘나중에쓸지도모름’ 폴더에 저장하였습니다. ]

         

         [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의 스마트 리빙 프리미엄 홈 에디션의 작동 매뉴얼 및 감독 권한 계정을 ‘별로안중요함잡동사니’ 폴더에 저장하였습니다. ]

         

         …안다. 아마 정리정돈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규칙성이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기겁할 만한 광경이겠지. 하지만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 번 파지직! 하고 땡이 아니라 내 사이버웨어에 명령권을 옮겨올 경우.

         

         능력을 쓸 때마다 매번 전혀 새로운 코드 뭉치나 프로그램이 완성되고, 또 그게 해킹과 관련된 경우였으면 듣도 보도 못한 결과물을 집어와서 언제든지 조종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남긴다. 그게 내가 얘들을 만든 목적이기는 하다만.

         

         혹시나 능력을 짜내는 시간이 없는 급한 상황이 올까 봐 함부로 삭제하지도 못하고… 날짜별로 저장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그건 직관성이 없고….

         

         아무리 내가 이쪽 주민이 되어서 24시간 컴퓨터 화면을 끼고 살고, 사이버웨어도 능력을 이용해서 관리할 수 있는 만큼 조금 화면이 엉망이어도 괜찮다지만 약간의 규칙은 확립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항변하겠다.

         

         딱 폴더 이름을 보자마자 감이 오지 않나? 대강 뭐가 들어있을지.

         아니라도 굳이 반박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일단 타협하고 쓰고 있으니까.

         

         게다가 처음에 약간 실수가 있긴 했어도 이 정도면 어엿한 엔지니어 티가 나지 않나?

         고작 1분이라는 시간과 체감 상 수백 칼로리 내외의 투자를 통해, 독립적인 망을 방패로 존재하던 사장실의 진입로를 확보했는데? ……이거 완전 좀도둑 새끼 아니냐고? …닥쳐.

         

         “읏… 차!”

         

         쪼그리고 있던 무릎을 털고 안쪽으로 발을 내디딘다.

         

         감압 센서 같은 걸 작동시키지 않는다든가, 숨겨진 히든 카메라 같은 걸 경계할 필요도 없다.

         이미 따로 락이 걸린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홈 시스템과 보안망에 묶여 있어서 서비스처럼 같이 넘어와버렸으니까.

         

         …그래도 아예 카사네의 사이버웨어로 추측되는 연결을 잘라낼 순 없어서, 진짜로 숨겨진 CCTV 자체는 건드렸다. 그나마 필터를 씌울 것도 없이, 그냥 정지된 화상을 무한히 송출하게 설정하는 걸로도 충분해서 다행이네.

         

         하여간 재실 중임을 나타나는 디지털 문패가 부착되어 있는 데다가 그녀가 잠깐 내비친 화면을 보고, 정확히는 몰라도 내부 인원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을 줄은 알았는데.

         

         무슨 문틈에 카운터 센서나 실내용 동작 감지 센서가 깔린 수준이라 예상했지, 설마 방 전체에 빼곡하게 비싸디 비싼 레이더 센서를 도배해 버리다니?

         

         그녀처럼 감각적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각도 용납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추적자가 네 명이나 바글바글하게 대기 중이던 복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올가미였는지 체감된다.

         

         아마도 실제 전투를 상정하고 ‘오는 적들을 전부 죽여!’ 같은 명령을 내린 게 아니라, 그 광경을 본 침입자가 차마 뭔가를 시도할 엄두도 못 내게 만드는 경고성 짙은 시위였으리라.

         

         “…하지만 세상에 절대란 없네요.”

         

         당사자에겐 들리지도 않겠다만, 지위적으로 말소될 카사네에게 변명처럼 중얼거리고는.

         시야를 쓰윽 돌려서 방의 단면도를 살폈다.

         

         누구라도 골동품이나 예술품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꽉 들어찬 장식품들.

         내가 여태까지 봤던 기업 관계자 몇몇의 방은 고급품을 사용했을 뿐. 외형보다는 내실, 실용성에 중점을 둔 것이었구나~ 하는 감상이 절로 들었다.

         

         …여유가 좀 생기면 나도 21세기, 그러니까 원래 시간대에서 쓰던 물건들이나 모아볼까?

         특별한 용도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방에 가지고 있으면 가끔 치솟는 향수가 좀 줄어들까 싶어서.

         

         어쨌거나.

         대강 살핌으로써 핵심이 되는 것을 얻었다. 배치가 바뀔 수 있는 가구나 기타 잡동사니들의 오차를 제외하면 사전에 전달받은 설계도와 똑같이 생겨 먹은 방이라는 확신을.

         

         그렇다는 건… 만들어진 위치를 이동시키는 게 거의 불가능한 금고실도 제자리에 잘 있을 것이고.

         복잡하게 여기저기 뒤적거리면서 진짜 도둑놈처럼 발발거릴 필요없이, 빠르고 깔끔하고! 인텔리전트하게 목표를 확보해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엣헴!

         

         쿠궁…! 덜컹….

         

         모든 걸 다 안 상태로 찾아온 밤손님답게. 나는 헤매지도 않고 곧장 테이블 기둥 중 하나의 안쪽에 숨겨진 개방 버튼을 누르고 서서히 좌우로 벌어지는 벽으로 직행.

         

         그러자 무려 슈나이더 씨 댁에 숨겨져 있던 그것보다 부피가 두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형 금고로 향하는 금속문이 그 위용을 드러냈으니.

         

         왜 그 영화보면 나오는 삐죽삐죽한 철봉 같은 게 잔뜩 달린 툭 튀어나온 요철이 있지 않나? 그거 크기만 해도 나랑 얼추 맞먹었다.

         구조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뚫는 입장에서는 보기만해도 숨이 턱 막히는 효과를 준다는 건 분명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비밀번호나 다이얼 넘버도 모르는 건 물론. 정말 협소하고 희귀한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금고 따기의 ‘ㄱ’ 자도 안 배운 사람이 어떻게 무지막지한 쇳덩어리의 아가리를 벌리게 할 셈이냐.

         

         당연히 스스로 항복하게 만들어야지!

         

         “자자… 착하지…?”

         

         내게 승산이 있다 생각하게 된 점은 세가지다.

         

         첫째, 이게 기계식 금고지만 아무래도 사이즈가 좀 있어서 전자동화된 부품이 좀 섞여 있다는 것.

         둘째, 또 강도剛度와 도난 문제 때문인지 정확한 비중을 알 수 없는 합금 재질로 이루어졌는데 덕분에 전기가 아주 잘 통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홈이나 소켓 없이도 나는 얼마든지 무차별적인 신호 방사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

         

         직… 지직…!!

         

         지향성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서 중간중간 스파크가 튄다.

         서서히 강도強度를 높여 나가며 내 영향권을 확대한다.

         

         요령 자체는 방 입구에 있던 알람 패널이나 똑같다.

         맞닿은 손을 일종의 청진기이자 신호기(Beacon). 침략 거점이라 여기고 차근차근 주변을 나의 색채로 물들이며, 머릿속에 청사진을 완성하면 끝.

         

         다만 요 철뭉치는 내가 내리는 복잡한 명령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중추 운영체계나 메모리 같은 게 설치된 회로가 아닌.

         단순히 기어를 어느 방향으로 회전시킨다거나, 어느 서킷에 차단되어 있던 전류를 흘려서 전원을 공급한다… 정도만 간신히 알아듣는 안타까운 아이래서 조금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지만.

         

         설령 반대로 작동시켜서 잠기게 되더라도 다시 그 부분만 억지로 반전시키면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자기 집에 있는 금고가 몇 번 정답을 틀렸다고 영원히 잠기게 해 놓았을 리가 없지 않나…? 제발요.

         

         …찰칵, 철컹.

         쿠구구궁…… 덜컹!

         

         다행이었던 점은 조합의 가짓수가 숫자 네 자리만 되도 만 단위로 넘어가는 정면 돌파와는 전혀 다르게.

         나는 내부 기어가 움직이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중요한 분기점에서 0 아니면 1의 간단한 방향만 골라주면 되었다는 것이리라.

         

         끼이이이이이이익…….

         

         “……방음이 잘 되어있어야 할 텐데.”

         

         막 회전하고 철컹거리면서 여기저기가 끼워 맞춰지더니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문짝을 보면서 입구 쪽을 불안하게 힐끔거렸다.

         

         예상보다 소음이나 진동이 좀 큰데, 설마 이걸 듣고 누가 찾아오지는 않겠지?

         아, 그럴 만한 사람들은 다 기절했던가 참. 이러다 주방에서 왜 서빙할 직원이 다 사라졌냐고 난리치는 건 아닌가 몰라.

         

         머리를 살짝 숙이고 마침내 그 속을 드러낸 금고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제 여기에 고이 모셔진, 카사네 아마기의 부정부패나 밀거래 내역과 그 상대가 빼곡히 적힌 장부와 서로를 옭아매기 위해 나눠가진 증서들을 싹 쓸어서 나가면 체크 메이트… 으…?

         

         “어라…?”

         

         왼쪽을 확인한다. 오른쪽을 살핀다.

         선반에 올려진 작은 상자들을 열어본다. 밑에 있는 조금 큰 수납함과 보관고를 개방한다.

         능력을 너무 써서 피곤한가 하고, 소매로 눈을 비비적거린 뒤 다시 크게 뜬다.

         

         …뭐여. 왜 없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러언….

    또 상하편으로 나눠서 죄송합니다….

    제가 진짜 개멍청하게 휴대폰을 침대랑 벽 사이 틈새로 빠트려버려서, 그거 꺼내겠다고 팔 쑤셔넣다가 손 다치고. 매트리스 들어내다가 전선 건드리고.
    이거 설마 침대를 부숴야 하나…? 하고 튀김용 젓가락 가져다가 다우징 하듯이 들고 집어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옷걸이로 올가미를 만들어서 건져냈습니다.
    이 헛짓거리에만 두 시간 낭비하고 정리하고 나니까 참 자괴감이….

    여러분도 좁은 틈새에 뭐 안 떨어트리게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안 그러면 저처럼 몇 년 어치 먼지로 목욕하게 됩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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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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