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1

(*저번화에 삽화를 못보신 분들이 계신거 같아 재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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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그 세계의 주민인 리안 처럼 단숨에 상처가 회복되는 건 아니지만, 마왕이라는 자리에 앉아있는 만큼 상처 회복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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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왕 본인도 제 몸의 회복력을 잘 알고 있는 듯 칼을 엉망이 된 상처를 방치했다. 
    ​
    ​
    [ 아이고.. 저러다 흉지면 어쩌려고.. ]
    ​
    ​
    눈으로 보는 게 더 아파 보인다는 말이 있듯, 리안은 걱정이 가득한 수달 같은 표정으로 마왕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
    ​
    [ 신성력이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도와줄 수 있을 텐데 -… 아, 마왕이니까 도리어 공격이 되려나? ]
    ​
    ​
    혼자서 자문자답하다가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마왕을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
    ​
    [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으음, 당장 할 일도 없으니까 한 번 조사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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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왕성 내부를 뻔질나게 돌아다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경’에 가까웠다. 워낙 공간이 넓어 한곳에 죽치고 앉아 면밀한 정보 수집하기엔 힘이 들었던 탓이다.
    ​
    ​
    막연하게 최종 보스를 찾아내려 하는 것보단, ‘마왕의 사연’을 알아내겠다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게 정보를 얻기 훨씬 쉬울 터였다.
    ​
    ​
    결심이 서자마자 곧바로 정보를 찾을 만한 장소를 돌아다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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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왕이 공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방을 나설 때만 곁에 붙어있다가, 방으로 돌아갈 땐 정보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맸다.
    ​
    ​
    마왕성 간부들만이 오갈 수 있는 장소인 만큼 연관된 자료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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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끄응… 조금만 더어..’ ]
    ​
    ​
    정보를 빠르게 조사하려면 관련된 책을 빠르게 훑어보며 찾아야 하는데 영력이 약한 탓에 책 한권을 꺼내는 것부터 종이를 한장 한장 넘기는 것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
    ​
    그래도 노력이 부질없는 건 아니었는지 전대 마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꽤 놀라운 정보가 적혀있었다.
    ​
    ​
    [ 원작 마왕이 전대 마왕이라고? ]
    ​
    ​
    원작 속 최종 보스 역할을 담당했던 마왕이 전대 마왕으로 기록되어있었다. 그것도 광기에 삼켜져 폭주하다가 마왕의 딸이 직접 처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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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왕에게 딸이.. 있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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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에선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내용에 얼이 빠졌지만 금세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낑낑거리며 겨우 책을 넘기자 이번대 마왕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
    ​
    [ 전대 마왕을 척살하고 피를 물든 왕좌에 앉은 마왕녀라는 말은… 그 애가 마왕의 딸이라는 거구나. 확실히, 닮긴 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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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같이 붙어 다녀서 그런지 내적 친밀감이 쌓여 어느새 마왕을 친숙하게 부르는 경지까지 와버렸다. 리안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고 힘겹게 원래 자리에 꽂아두었다.
    ​
    ​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
    ​
    ​
    어느새 시간이 꽤 흘러 마왕이 업무를 처리할 시간이 된 것 같아 익숙하게 마왕의 방 앞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유령 상태라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곤 했지만, 정이 붙어버린 이후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들어가지 않는 편이었다.
    ​
    ​
    …제 몸을 해하는 마왕의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었다.
    ​
    ​
    [ 응? 여긴 또 처음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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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소처럼 가면을 쓴 마왕이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걷자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최근 제 육체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장소를 옮긴 덕분에 전에는 갈 수 없었던 낯선 장소에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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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변신 기능 같은 거 넣어주면 좋겠다.’ ]
    ​
    ​
    제 육체를 강화하겠다고 녹색 액체가 가득 들어있는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약을 주입하던 흑마법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도적인(?) 강화 방법으로 봐선 변신 로봇 정도의 변화는 겪을 수 없을 것 같긴 했지만 -… 기대감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
    ​
    과거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잡혀 변신 로봇이 되어본 경험을 떠올리며 ‘그땐 정말 즐거웠지.’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마왕의 발걸음이 멈췄다.
    ​
    ​
    악마와 마계의 모습이 화려하게 음각된 문은 음산한 분위기를 진하게 풍겼다. 곳곳에 박힌 보라색 보석이 진짜 눈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험하게 번뜩였다.
    ​
    ​
    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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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이 꽤 무거운지 가볍게 밀린 것에 비해 소리가 무거웠다. 마왕은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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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쪽 공간은 귀족들의 식사 공간 같기도 했으며, 회의실 같기도 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길쭉한 테이블이 긴 방 안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고 붉은색 가죽과 마왕의 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두운 톤의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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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라? 저번에 봤던 사람들이네. ]
    ​
    ​
    리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부를 가득 채운 검은 로브의 사람들 -… 아니 마족들을 바라보았다. 저번과 달리 로브를 뒤로 넘긴 이도 두 명 정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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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마족들과도 다른 눈으로 마왕을 바라보았다. 무시, 혐오, 유희 -… 호의적인 시선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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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왕은 그런 시선들이 익숙한지 무심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리안의 시선이 꽉 말아쥔 마왕의 손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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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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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테이블 옆을 지나가는 마왕의 앞에 불쑥 나무 몽둥이 같은 게 튀어나와 다리를 걸었다.
    ​
    ​
    “윽..!”
    ​
    ​
    정말 순식간에 나타난 탓에 마왕은 피하지 못하고 주춤 비틀거렸다. 그림에 그린 듯한 괴롭힘에 리안은 분노와 함께 호기심이 치솟았다.
    ​
    ​
    [ ‘몸을 옆으로 틀고 앉아있거나 손을 아래쪽으로 내린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저 몽둥이는 어디서 나온 거지?’ ]
    ​
    ​
    뒤늦게 마법을 쓴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호기심이 가라앉지 않아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안쪽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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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헉.. ]
    ​
    ​
    끼긱, 쩌적..
    ​
    ​
    산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두께 있는 나뭇가지들을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불쾌한 꼴을 한 나뭇가지가 테이블 아래에 뻗어나 와 있었다.
    ​
    ​
    나뭇가지가 시작된 부분은 중간 부분에 앉아있던 로브 속이었다. 리안은 로브 안쪽으로 훤히 드러난 나무다리를 보며 ‘저건 알몸이나 다를 바 없지 않나?’라는 생각했다가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낸 후 마왕의 곁으로 돌아왔다.
    ​
    ​
    이때까지만 해도 리안은 별생각이 없었다. 마왕에게 정이 들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동정심이었지 그 이상의 호감은 현저히 낮았다. 거기다 괴롭힘이라고 해봐야 지금처럼 발을 걸거나 짠 음식을 먹게 한다 -.. 정도가 전부일 거라 생각했었다.
    ​
    ​
    그런 생각이 부서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이런 춥나? 설마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할 줄이야..”
    “쯧쯧, 그분의 은총이 없을 땐 열등한 생물체일 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언제나 감사해야 할 것이다.”
    ​
    ​
    검은 로브를 두른 이들이 꼰대 같은 잔소리와 함께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마법을 하나, 둘 발동하기 시작했다. 회의실은 마그마가 흘러내리는 지옥의 모습을 하기도 했고, 눈이 허리까지 차오른 설산의 모습이 되기도 했다.
    ​
    ​
    폭풍이 몰아치거나, 짠 바닷물이 어디선가 밀려오기도 했다. 처음엔 자연재해를 다루는 듯한 어마어마한 마법에 감탄했지만, 이 모든 게 마왕을 괴롭히기 위한 마법이라는 걸 깨닫곤 표정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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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 넘었지. ]
    ​
    ​
    아무리 세상에 사정없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비웃음을 머금은 채 고통을 꾸역꾸역 참고 있는 마왕은 유희 거리 보듯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 속에선 악의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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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이후 개그 필터의 영향을 덜 받게 되어 전보단 조금 더 정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 그 탓에 언제나 어떠한 사건이나 문제를 직면해도 가볍기만 했던 태도가 조금은 묵직해졌다.
    ​
    ​
    [ 괴롭힐 게 없어서 딸뻘인 아이를 괴롭히냐? ]
    ​
    ​
    리안은 눈을 섬뜩하게 반짝거리며 낄낄 웃는 검은 후드를 쓴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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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내가 몸만 있었어도 가르간도아로 108조각으로 나누어버렸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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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속으로 혀를 차며 품에서 개그 세계에서 제 무기가 되어주던 녀석을 꺼내 들었다. 검은색 손잡이가 달린… 쇠 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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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성한 주방 도구를 이런 곳에서 사용하고 싶진 않았는데… 후, 어쩔 수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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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 중얼거린 후 국자를 들어 허공에 떠올라있는 마법진을 깡!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합성이라도 한 것처럼 마법진이 찌그러졌다.
    ​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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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낄낄거리던 검은 로브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리안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손맛에 환하게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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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뭐야, 생각보다 공격력이 좋네! 왠지는 모르겠지만 잘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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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하게 미소 짓는 리안의 얼굴 위로 새카만 그림자졌다. 광기에 찬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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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깡! 까앙!
    ​
    ​
    “이, 이게 무슨! 어억…!”
   “아악! 내,내 무릎이익…!”
    “젠장 어디냐!? 감히 어떤 놈이…꺽!”
    ​
    ​
    리안은 공평하게 몸으로 공격하는 놈들은 몸을 마법으로 공격하는 놈들은 마법을 찌그러뜨려 주었다. 리안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외신들은 그저 개그 필터에 몸을 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까앙! 깡! 깡!
    ​
    ​
    몇 차례의 비명과 대장간에서 울릴 법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
    ​
    ​
    “어..으윽…”
    “아아… 이건, 꿈…인가?”
    “커헉…”
    ​
    ​
    검은 로브 무리가 꼴사납게 널브러지거나 의자에 빨래처럼 널려있게 되었다. 리안은 영체임에도 흘러내리는 땀을 슥 닦는 시늉을 하곤 국자를 품에 밀어 넣은 후 마왕쪽을 바라보았다.
    ​
    ​
    “…”
    ​
    ​
    마왕은 한번도 본 적 없는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엉망이 된 방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마검이 질투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군요.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저번화에 삽화를 못보신 분들이 계신거 같아 재업합니다.)​

개그 세계의 주민인 리안 처럼 단숨에 상처가 회복되는 건 아니지만, 마왕이라는 자리에 앉아있는 만큼 상처 회복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마왕 본인도 제 몸의 회복력을 잘 알고 있는 듯 칼을 엉망이 된 상처를 방치했다.

[ 아이고.. 저러다 흉지면 어쩌려고.. ]

눈으로 보는 게 더 아파 보인다는 말이 있듯, 리안은 걱정이 가득한 수달 같은 표정으로 마왕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 신성력이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도와줄 수 있을 텐데 -… 아, 마왕이니까 도리어 공격이 되려나? ]

혼자서 자문자답하다가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마왕을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으음, 당장 할 일도 없으니까 한 번 조사해볼까? ]

마왕성 내부를 뻔질나게 돌아다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경’에 가까웠다. 워낙 공간이 넓어 한곳에 죽치고 앉아 면밀한 정보 수집하기엔 힘이 들었던 탓이다.

막연하게 최종 보스를 찾아내려 하는 것보단, ‘마왕의 사연’을 알아내겠다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게 정보를 얻기 훨씬 쉬울 터였다.

결심이 서자마자 곧바로 정보를 찾을 만한 장소를 돌아다녔다.

***

마왕이 공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방을 나설 때만 곁에 붙어있다가, 방으로 돌아갈 땐 정보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맸다.

마왕성 간부들만이 오갈 수 있는 장소인 만큼 연관된 자료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있었다.

[ ‘끄응… 조금만 더어..’ ]

정보를 빠르게 조사하려면 관련된 책을 빠르게 훑어보며 찾아야 하는데 영력이 약한 탓에 책 한권을 꺼내는 것부터 종이를 한장 한장 넘기는 것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래도 노력이 부질없는 건 아니었는지 전대 마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꽤 놀라운 정보가 적혀있었다.

[ 원작 마왕이 전대 마왕이라고? ]

원작 속 최종 보스 역할을 담당했던 마왕이 전대 마왕으로 기록되어있었다. 그것도 광기에 삼켜져 폭주하다가 마왕의 딸이 직접 처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 마왕에게 딸이.. 있었다고? ]

원작에선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내용에 얼이 빠졌지만 금세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낑낑거리며 겨우 책을 넘기자 이번대 마왕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 전대 마왕을 척살하고 피를 물든 왕좌에 앉은 마왕녀라는 말은… 그 애가 마왕의 딸이라는 거구나. 확실히, 닮긴 했네. ]

매일 같이 붙어 다녀서 그런지 내적 친밀감이 쌓여 어느새 마왕을 친숙하게 부르는 경지까지 와버렸다. 리안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고 힘겹게 원래 자리에 꽂아두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

어느새 시간이 꽤 흘러 마왕이 업무를 처리할 시간이 된 것 같아 익숙하게 마왕의 방 앞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유령 상태라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곤 했지만, 정이 붙어버린 이후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들어가지 않는 편이었다.

…제 몸을 해하는 마왕의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었다.

[ 응? 여긴 또 처음이네? ]

평소처럼 가면을 쓴 마왕이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걷자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최근 제 육체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장소를 옮긴 덕분에 전에는 갈 수 없었던 낯선 장소에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 ‘변신 기능 같은 거 넣어주면 좋겠다.’ ]

제 육체를 강화하겠다고 녹색 액체가 가득 들어있는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약을 주입하던 흑마법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도적인(?) 강화 방법으로 봐선 변신 로봇 정도의 변화는 겪을 수 없을 것 같긴 했지만 -… 기대감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잡혀 변신 로봇이 되어본 경험을 떠올리며 ‘그땐 정말 즐거웠지.’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마왕의 발걸음이 멈췄다.

악마와 마계의 모습이 화려하게 음각된 문은 음산한 분위기를 진하게 풍겼다. 곳곳에 박힌 보라색 보석이 진짜 눈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험하게 번뜩였다.

쿠궁…

문이 꽤 무거운지 가볍게 밀린 것에 비해 소리가 무거웠다. 마왕은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 공간은 귀족들의 식사 공간 같기도 했으며, 회의실 같기도 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길쭉한 테이블이 긴 방 안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고 붉은색 가죽과 마왕의 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두운 톤의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있었다.

[ 어라? 저번에 봤던 사람들이네. ]

리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부를 가득 채운 검은 로브의 사람들 -… 아니 마족들을 바라보았다. 저번과 달리 로브를 뒤로 넘긴 이도 두 명 정도 보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마족들과도 다른 눈으로 마왕을 바라보았다. 무시, 혐오, 유희 -… 호의적인 시선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왕은 그런 시선들이 익숙한지 무심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리안의 시선이 꽉 말아쥔 마왕의 손을 향했다.

[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겠네. ]

리안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테이블 옆을 지나가는 마왕의 앞에 불쑥 나무 몽둥이 같은 게 튀어나와 다리를 걸었다.

“윽..!”

정말 순식간에 나타난 탓에 마왕은 피하지 못하고 주춤 비틀거렸다. 그림에 그린 듯한 괴롭힘에 리안은 분노와 함께 호기심이 치솟았다.

[ ‘몸을 옆으로 틀고 앉아있거나 손을 아래쪽으로 내린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저 몽둥이는 어디서 나온 거지?’ ]

뒤늦게 마법을 쓴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호기심이 가라앉지 않아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안쪽을 살펴보았다.

[ 헉.. ]

끼긱, 쩌적..

산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두께 있는 나뭇가지들을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불쾌한 꼴을 한 나뭇가지가 테이블 아래에 뻗어나 와 있었다.

나뭇가지가 시작된 부분은 중간 부분에 앉아있던 로브 속이었다. 리안은 로브 안쪽으로 훤히 드러난 나무다리를 보며 ‘저건 알몸이나 다를 바 없지 않나?’라는 생각했다가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낸 후 마왕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리안은 별생각이 없었다. 마왕에게 정이 들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동정심이었지 그 이상의 호감은 현저히 낮았다. 거기다 괴롭힘이라고 해봐야 지금처럼 발을 걸거나 짠 음식을 먹게 한다 -.. 정도가 전부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이 부서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춥나? 설마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할 줄이야..”

“쯧쯧, 그분의 은총이 없을 땐 열등한 생물체일 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언제나 감사해야 할 것이다.”

검은 로브를 두른 이들이 꼰대 같은 잔소리와 함께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마법을 하나, 둘 발동하기 시작했다. 회의실은 마그마가 흘러내리는 지옥의 모습을 하기도 했고, 눈이 허리까지 차오른 설산의 모습이 되기도 했다.

폭풍이 몰아치거나, 짠 바닷물이 어디선가 밀려오기도 했다. 처음엔 자연재해를 다루는 듯한 어마어마한 마법에 감탄했지만, 이 모든 게 마왕을 괴롭히기 위한 마법이라는 걸 깨닫곤 표정을 굳혔다.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 넘었지. ]

아무리 세상에 사정없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비웃음을 머금은 채 고통을 꾸역꾸역 참고 있는 마왕은 유희 거리 보듯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 속에선 악의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리안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이후 개그 필터의 영향을 덜 받게 되어 전보단 조금 더 정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 그 탓에 언제나 어떠한 사건이나 문제를 직면해도 가볍기만 했던 태도가 조금은 묵직해졌다.

[ 괴롭힐 게 없어서 딸뻘인 아이를 괴롭히냐? ]

리안은 눈을 섬뜩하게 반짝거리며 낄낄 웃는 검은 후드를 쓴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 내가 몸만 있었어도 가르간도아로 108조각으로 나누어버렸을 텐데.. ]

리안은 속으로 혀를 차며 품에서 개그 세계에서 제 무기가 되어주던 녀석을 꺼내 들었다. 검은색 손잡이가 달린… 쇠 국자였다!

[ 신성한 주방 도구를 이런 곳에서 사용하고 싶진 않았는데… 후, 어쩔 수 없지. ]

그리 중얼거린 후 국자를 들어 허공에 떠올라있는 마법진을 깡!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합성이라도 한 것처럼 마법진이 찌그러졌다.

“어…?”

낄낄거리던 검은 로브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리안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손맛에 환하게 웃음지었다.

[ 뭐야, 생각보다 공격력이 좋네! 왠지는 모르겠지만 잘됐다! ]

환하게 미소 짓는 리안의 얼굴 위로 새카만 그림자졌다. 광기에 찬 미소와 함께.

깡! 까앙!

“이, 이게 무슨! 어억…!”

“아악! 내,내 무릎이익…!”

“젠장 어디냐!? 감히 어떤 놈이…꺽!”

리안은 공평하게 몸으로 공격하는 놈들은 몸을 마법으로 공격하는 놈들은 마법을 찌그러뜨려 주었다. 리안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외신들은 그저 개그 필터에 몸을 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까앙! 깡! 깡!

몇 차례의 비명과 대장간에서 울릴 법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

“어..으윽…”

“아아… 이건, 꿈…인가?”

“커헉…”

검은 로브 무리가 꼴사납게 널브러지거나 의자에 빨래처럼 널려있게 되었다. 리안은 영체임에도 흘러내리는 땀을 슥 닦는 시늉을 하곤 국자를 품에 밀어 넣은 후 마왕쪽을 바라보았다.

“…”

마왕은 한번도 본 적 없는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엉망이 된 방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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