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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크라슈가 도달한 영역.

     

   멸천수라(滅天修羅)

     

   그날, 메리는 크라슈의 멸천수라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때 당시에 메리는 크라슈를 보며 지금 상태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폐관 수련에 들어간 그녀는 크라슈의 멸천수라를 떠올리며 오늘까지 끊임없이 단련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크라슈와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길 수 있다.

   자신이라면 분명히 이길 수 있다.

     

   마음속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는 자신이 전 신창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상대는 크라슈 발하임.

     

   그녀의 머릿속에서 늘 반푼이로 있었던 남자.

   그런 그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자신을 이긴다는 현실은 존재할 수 없었다.

     

   ‘나는 신창 메리 다이아나 이니까!’

     

   그러한 확신하고 그녀는 분명히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비추는 크라슈는 그때보다도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흑염의 열기는 피부가 타버릴 만큼 강렬했고, 그의 흉흉한 살기는 정신을 조여와 혼미하게 만들었다.

     

   분명 고작해야 몇 주 전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그는 상정한 것 이상으로 훨씬 강해져 있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메리가 강해지는 만큼 크라슈도 끝없이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강화 영약에 개량.

   독혈전을 통한 멸화침식 전보다 더 정교히 다듬고, 크림슨가든과 함께 천살성을 녹스의 밤 속에 걸고자 끊임없이 연마하고 또 연마했다.

     

   메리가 멈춘 시간 동안.

   크라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오직 앞만을 본 채 달려왔다.

     

   그것이 설령 피투성이가 되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크라슈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메리는 크라슈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녀에게 과거 신창의 기억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한 번 무너져 버린 그녀는 크라슈와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짓눌러지는 힘 앞에 꿇려진 무릎이 찢어지며 핏물이 바닥에 번졌다.

   창 너머 비추는 크라슈의 붉은 두 눈동자가 그녀에게 미치게 하였다.

     

   그에게 패배하는 순간 상정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머리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는 그녀라도 알 수 있었다.

   시그린에게 처참히 버려진 채 그토록 사랑하던 아서조차 보지 못하게 될 현실을 말이다.

     

   아서 그라말테.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고, 좋아했던 남자.

     

   그러나 사랑을 속삭여 주던 아서는 그녀의 앞에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불안하고, 또 불안하여 그녀를 계속해서 갉아 먹었다.

     

   메리는 분명 신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아서가 있을 때만 성립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녀 또한 사람이다.

   최전선에서 섰어야 했던 그녀의 창 또한 최흉의 앞에 몇 번이고 깎이고, 깎여 나갔다.

     

   불안전한 정신은 기댈 곳이 필요했다.

   설령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이 사람만큼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는 이가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이 바로 아서였다.

     

   언제나 자신보다 최전선에 서서 나아가는 아서가 있었기에 그녀는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 아서에게 사랑받고 있었기에 그녀는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아서는 이제 그녀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딱 한 번.

   이 순간 딱 한 번.

     

   아서를 볼 수 있었더라면 그녀는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울부짖음 앞에 아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메리의 두 눈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크라슈에게로 향했다.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그 눈은 악귀와도 같았다.

     

   두렵다.

   저 눈이 불러오게 될 결과가 너무나 두렵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왜인지 눈이 멀어 버릴 만큼 크라슈는 너무나 빛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바래진 자신과 다르게 이토록 빛나고 있는 그를 보니 메리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싫, 어.’

     

   싫다.

     

   ‘싫어!’

     

   싫다.

     

   ‘싫어…….’

     

   나는 신창이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제국의 창.

     

   그리고 영웅왕, 아서의 연인…….

     

   “메리 다이아나.”

     

   타오르는 흑염의 안쪽.

   크라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실에서 도망치지 마라.”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던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 그의 말이 파고들었다.

     

   현실.

     

   세계를 지키지 못했고.

   더 이상 신창이 아닌 황녀 시해자이며.

   다이아나 가문에 버려진.

   이제는 아서의 연인조차 되지 못하는.

     

   메리 다이아나

     

   그것이 그녀가 그토록 외면한 현실.

   전회차에만 갇혀 살던 그녀가 처한 현실.

     

   이제는 과거의 영광 따위 없는 범죄자.

     

   “아니야!!!!!!!!!!!!!!!!!!!!!!!!!!!!!”

     

   소리친 그녀의 창에서 일제히 샛노란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순간 멸천수라를 두른 크라슈의 흑염을 꿰뚫을 만큼 강렬했다.

     

   초광천하(秒光天閜)

     

   육체의 모든 가동 속도를 엑셀로 가속 시켜 도달하는 영역.

   그 영역에 도달한 순간 세계가 일순간 정지했다.

     

   시간을 넘어선 속도로 초월한 그녀가 크라슈의 누르기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동시에 눈에 안광을 번뜩인 그녀가 창을 겨눈 채로 기다란 숨을 내쉬었다.

     

   초광천하를 사용한 시점에서 그녀의 육체는 이후 과부하에 걸리며 극심한 격통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만큼은 자신은 최강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지한 시간 속.

   크라슈 또한 시간의 제약에 갇힌 채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메리의 창에 담긴 빛들이 창에 일제히 압축되기 시작했다.

   누르고 또 누르고, 눌러진 빛들이 창에 담겨 나갈 때마다 그녀를 주위로 대기가 뒤틀려 나갔다.

     

   터무니없는 기류가 정지한 세계속 오직 메리를 중심으로 흘렀다.

     

   빛들이 그녀의 창으로 모두 집어삼켜졌다.

     

   새까만 어둠 공간 속.

   이윽고, 정지한 세계 앞에 메리의 창이 울부짖었다.

     

   초광천하(秒光天閜)

   극의(極意)

   초광멸섬(秒光滅殲)

     

   주변 모든 것을 초토화하며 날아든 그녀의 빛의 창이 크라슈를 향해 내질러졌다.

   정지된 시간 속 멈춰져 있는 크라슈는 메리의 초광멸섬 앞에 갈가리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보며 메리의 머릿속에 아주 잠시 후환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크라슈를 죽인다면 더 이상 저주를 받아줄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당장 여기서 크라슈를 지우지 않는다면 살아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죽인다.

   전력을 다 쏟아 그를 죽인다.

     

   이 한순간 메리의 정신이 하나로 통일된 그때.

     

   토옥-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너무나 선명해, 창을 내지르는 그녀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그녀는 얼마 안 가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알아차렸다.

     

   크라슈다.

   그에게서 분명히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어떻게?

   초광천하의 아래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어느 사람도 없다.

     

   그리고 곧 그녀는 이 소리가 크라슈의 정신의 파문 속에서 들려왔음을 깨달았다.

     

   분명 그녀의 초광천하 앞에 세계는 순간적으로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너무 빨라졌을 뿐.

   세계는 아주 느릿하게나마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한 세계 속.

   크라슈의 몸에 지닌 녹스의 밤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크라슈의 밤은 세계와는 독자적인 밤의 세계이다.

   그러한 밤하늘 위, 천살성의 일곱별들이 피어올랐다.

     

   그러한 별들은 제각기 서로의 빛을 토해내며 빛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빛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크라슈의 육체였다.

     

   일곱 개의 별을 지닌 천살성.

     

   일곱 개의 별의 빛이 온전히 크라슈의 육체에 담긴 순간.

   세계 침식의 힘이 일제히 폭주했다.

     

   폭주한 그 힘은 끝내 이그니스와 만나 또 한 번 타올랐다.

   타오르는 육체는 한계선을 넘어 새로운 세계에 도달했다.

     

   그 세계에 도달한 순간.

     

   꿈틀-

     

   정지했다고 생각하는 초광천하의 세계 속.

   크라슈의 몸이 움직였다.

     

   쩌적!

     

   그 순간 메리는 자신의 초광천하가 크라슈를 중심으로 금이 감을 느꼈다.

   그리고 금가기 시작한 것은 이윽고, 초광천하 전체로 퍼져 나갔고.

     

   쨍그랑!

     

   이내 초광천하를 무너트리기에 이르렀다.

     

   크라슈의 머리 위.

   붉은색의 달이 떠올랐다.

     

   그의 살아온 인생이 반영된 심상이 떠올라 비춘 붉은 달 아래.

   크라슈의 흑염은 어느 때보다도 지독하기 그지없는 불길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한 불길 앞에 메리는 자신의 빛이 왜인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광활한 삼라만상의 세계 앞에 질주하는 빛은 고작해야 주변을 잠깐 밝힐 뿐.

     

   삼라만상 전체를 밝힐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진 크라슈의 검에서 쏟아나온 흑염의 불길이 붉은 달을 만나 빛났을 때.

   그녀 또한 끝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오식(五式)

   

   

   

   

   멸천월화(滅天月火)

   

   붉은 달을 휘감은 흑염이 빛을 집어삼키며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숲조차 남김없이 집어삼켜 버린 그 광경은 압도적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되는 것이 없었다.

     

   덕분에 상황을 지켜보던 상황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화면을 비춰야 할 마법들이 크라슈의 멸천월화를 견디지 못하고 전부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휘날리는 검은 연기의 아래.

   크라슈는 앞을 바라보았다.

     

   한 줌의 풀조차 남지 않은 공간 위.

   크라슈는 자신의 앞에 의복과 함께 새까맣게 몸이 타버린 메리가 창 하나를 꼬나 쥔 채 간신히 서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가며 헐떡였다.

   흐려진 그녀의 시야는 제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그나마 그녀가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던 이유는 정말 순전히 타고난 천무지체 덕분이었다.

     

   그녀의 흐릿한 눈에 크라슈가 비추었다.

   붉은색에서 차츰 푸른빛의 눈동자로 돌아오고 있는 크라슈는 조금의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격차.

   그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은 크라슈에게 완벽히 패배했다.

     

   찰카닥!

     

   [ 메리를 ‘무력’으로 꺾을 것. ]

     

   크라슈의 눈앞에 메리의 두 번째 다이얼이 부서져 나갔다.

   동시에 세 번째 다이얼이 떠올랐다.

     

   [ 메리를 ‘고립’ 시킬 것. ]

     

   고립.

   그 문장을 본 시점에서 메리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쿠웅!

     

   검은색의 흩날린 머리카락과 함께 그녀의 육체가 바닥에 닿으며 바람이 살랑였다.

   그리고 메리가 송환되었다.

     

   신창.

   절대로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창이 무너지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크라슈는 아주 조용히 하늘을 향해 숨결을 내뱉었다.

     

   “이겼다.”

     

   크라슈가 승리를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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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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