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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2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내가 대놓고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제이크에게서 로티를 빌려서 옆에 끼고 다니거나—물론 정말로 ‘끼지는’ 않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아니면 우리 ‘귀족 그룹’에서 계속 데리고 다니거나 하는 식으로 행동했으니, 적어도 1학년 아카데미 학생이 죄다 모여있는 호텔 안에서는 소문이 안 퍼지려야 안 퍼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단순히 그런 식으로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했던 것은 아니다.

        

       “기사 작위…… 말씀이십니까?”

        

       “황녀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 정도 포상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설령 아랫대에 이어지지 못하는 한시적인 작위라고 하더라도 내리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런 작위를 내리는 데는 황제 폐하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사랑하시는 딸을 구한 자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가시리라 생각하십니까?”

        

       내 말에 로티는 입을 다물었다.

        

       옆 테이블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앨리스가 콧방귀를 뀔까 말까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뭐, 어차피 황제는 이런 제안은 재미있어하며 받아들일 거다.

        

       ‘차기 린드버러 공작’에게 은혜를 입혔다는 명분이 될 수 있으니까.

        

       평소라면 나는 식당 자리를 선택할 때 창가나 벽 쪽에 붙어있는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끄는 위치에 있는데, 식당 한가운데에 앉아서 주변의 시선을 모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이 모이면 모일수록 좋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 성가심도 꾹 참은 채 일부러 가운데 자리를 고른 것이다.

        

       “하지만, 황녀님, 그때의 그 사건은—”

        

       “베이커 양.”

        

       나는 로티의 말을 끊은 채, 마침 우리 테이블 옆을 지나던 릴리를 불러세웠다.

        

       “네…… 네네네네, 네!?”

        

       갑자기 황녀인 내가 불러세우자, 릴리는 바로 사색이 되었다.

        

       조금 전부터 자꾸 눈에 띄는 것을 보니, 아마 일부러 그랬던 모양이다. 내가 로티와 단둘이서 테이블을 잡고 있으니 신경 쓰일 만도 하지. 로티를 괴롭히는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귀족들 사이로 뛰어들 정도였으니까.

        

       다만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조금 다른 것이었으므로, 지금 이 행동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으리라.

        

       일부러 접시에 음식을 적게 덜어 먹고, 우리 옆을 슬쩍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최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리라.

        

       “베이커 양은 마침 그때 근처에 있었지요.”

        

       “네? 아, 네…….”

        

       나와 로티를 향했던 시선이 조금 떠올라 자길 향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릴리는 엄청나게 불편한 기색으로 몸을 이리저리 꼬았다.

        

       “그때 로티가 저를 구하는 것도 보지 않았습니까?”

        

       “그, 그렇죠?”

        

       “그렇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하듯 말하고, 로티를 보았다.

        

       “이렇게 증인까지 있으니, 누가 반박할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앨리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나의 말을 반박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앨리스 맞은편에 앉아있는 클레어, 그리고 앨리스와 클레어 사이에 앉아있는 레오는 입을 헤 벌린 채 내 쪽을 보고 있었다. 클레어가 레오의 팔을 찰싹 때리고 나서야 레오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움직인 나머지 소스가 옷에 후두둑 떨어졌다.

        

       왜, 탐나냐?

        

       그럼 언제 한 번 기회를 만들어서 레오한테도 주도록 할까?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레오도 재미있을 것 같다.

        

       심지어 레오는 남자니까 괜히 열애설 같은 게 나올지도.

        

       “아무튼, 제 마음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도련님은…….”

        

       “제이크에겐 이미 말해두었습니다.”

        

       “…….”

        

       로티의 표정이, 내가 보고 나서 처음으로 흐려졌다.

        

       “도련님도 찬성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나는 로티의 흐려진 표정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왜? 기뻐야 하는 게 아닌가? 제이크는 로티 외에 다른 여자한테는 시선도 주지 않을 텐데.

        

       나는 잠깐 머리를 굴리다가, 근본적인 부분에서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러니까……

        

       그런 건가?

        

       혹시 로티는 제이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확신을 못 가지는 건가? 그래서 메이드로서 제이크 옆에 붙어있는 지금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거고.

        

       흠.

        

       그런데 그렇다면 그 이상 내가 뭘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제이크는 로티가 설령 메이드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로티를 데리고 다니겠지만, 로티 본인이 거기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면…….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 몇 마디 정도는 더 덧붙여 놓는 쪽이 보험이 될 것 같아서 나는 입을 열었다.

        

       “일자리를 잃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작가가 남작가의 여식을 시녀로 부리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로티는 남작이나 준남작의 지위도 아닌, 그저 기사 작위를 받게 될 뿐이니 아마 일부러 그만두지 않는 이상은 그 일을 계속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로티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그러니까 내 생각이 맞는 모양이네.

        

       이 커플, 생각보다 훨씬 성가신 커플이었다.

        

       ……뭐, 나는 해줄 일은 다 해줬으니까, 나머지는 제이크가 알아서 하겠지. 이 시대에서는 그게 상식이잖아?

        

       난이도 조금 낮춰준 것으로 만족하도록 할까.

        

       *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메이드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메이드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린드버러 공작가의 시녀’라고 소개했으니 아마 메이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고급스러운 양복을 빼입은 그녀는 나에게 역시 고급스러운 모양의 편지 봉투를 주면서 말했다.

        

       “린드버러 공작이 황녀님과 차 한잔 마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황녀님께서 머무르시는 동안 언제나, 장소와 시간을 정해주시면 바로 달려오겠다는 전언입니다.”

        

       그 자리에서 편지 봉투를 열어보기 전에는 가지 않을 것 같은 기세라서 바로 열어서 내용을 확인했다.

        

       확실히, 편지의 쓰인 내용은 몇 가지 장식용 문장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같은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메이드는 내 쪽으로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렇다면 지금도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장소는—”

        

       “제가 찾아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당신이 돌아가는 길에 함께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기왕 이야기 나온 김에 바로 대화를 나누면 서로 편하고 좋잖아.

        

       하지만 나의 말에 메이드는 곧장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린드버러 공작은 지금 저택에 있지 않습니다.”

        

       “어디에 계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지금 농장에 계십니다. 그곳에도 저택이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괜찮습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일을 해결하는 쪽이 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내 말에 메이드는 마음을 정한 듯했다.

        

       ‘언제, 어디서건’ 괜찮다고 했으니까.

        

       “지금 시간에 공작을 만나러 가겠다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앨리스가 말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내가 물어보자, 앨리스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가 바로 말했다.

        

       “그래, 나도 같이 가.”

        

       “하지만 그러시면—”

        

       “이야기는 저만 나누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앨리스의 말에 조금 당황했던 메이드도 무려 황녀가 하는 말에 토를 달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어머.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서 구경 좀 해도 될까요?”

        

       샤를로트가 곧장 끼어들었다.

        

       “이곳에 와서 농장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제국이 자랑하는 대규모 농장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

        

       메이드는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나를 보았다.

        

       “그렇다면, 공작께 확인해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메이드는 다시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뒤로 돌아 전화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을 보며, 나는 문득 저 메이드는 백인이네 하고 생각했다.

        

       *

        

       사람들은 무기를 판다는 이유로 군산복합체가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축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야 무기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고, 만드는데 첨단 기술이 필요한 법이니까. 설령 반도체가 개발되지 않은 이곳이라고 해도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것은 역시 군수 사업이었다.

        

       사람의 신기술이 가장 먼저 투입되는 곳이 전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실 총 만들고 대포 만드는 놈들이 파는 물건은 언제나 사는 놈들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사는 놈들이 구매처를 바꾸는 순간 쫄딱 망하고, 그렇기에 언제나 하나라도 먼저 팔아보려고 바닥이라도 굴러다니는 것이다. 언제나 고객에게 맞춰주고 굽신거리는 쪽이 바로 군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양반들이 세상을 지배한다니, 말이 안 되지. 멱살 잡혀 끌려다닌다면 또 몰라도.

        

       진짜 세상을 지배하는 기업들은 과일을 판다.

        

       누구나 쉽게 사다 먹을 수 있고, 먹어야 하고, 누구 하나가 사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아쉬운 것 없는 과일을. 남는 것과 땅에 떨어진 것은 갈아서 과즙을 내어 팔고, 재고로 남은, 거의 상하기 일보 직전인 과일들은 땡처리하듯 식민지 원주민에게 넘겨버린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다. 배를 두 번 타고 바다를 두 번이나 넘긴 가격을 확실하게 받아낸다.

        

       덕분에 과일 장사는 언제나 남는 장사다. 과일 말고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다. 본국과 식민지의 거래는 언제나 본국이 남겨 먹는 구조였다.

        

       공작의 본의와는 다르게 손님이 몇 명이나 늘어나는 바람에 이동 수단은 버스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버스를 타고 대규모 농장에 들어온 뒤로, 차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농장의 규모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규모였으니까.

        

       “……대단하네요. 제국에 돌아다니는 오렌지가 전부 여기서 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모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샤를로트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해가 거의 저물었는데도, 농장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거의 다 식민지 원주민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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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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