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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2

       서찰의 필체는 백무혁의 것이 확실했다.

         

       ‘백우진’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필체와 서찰의 필체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기에.

         

       백우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에게 서찰을 건네준 직원이 일하는 곳을 찾았다.

         

       “이 서찰, 언제 도착했습니까?”

       “예? 아, 좀 전에 전해드린 서찰이라면 오전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만….”

         

       하나의 가능성이 삭제된다.

         

       학관 직원의 실수로 오랫동안 처박혀 있다가 뒤늦게 제 손에 도달했을 가능성.

         

       가장 현실성 없는 일이기는 했다.

         

       학관에서 일하는 이들의 일처리가 그리 허술할 리도 없거니와, 서찰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백무혁은 진즉에 학관으로 돌아왔어야 했으니.

         

       모든 걸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해, 그는 직원을 향해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 서찰, 무림맹에서 온 것은 확실합니까?”

       “예, 그럼요. 무림맹과 주고받는 전서구가 직접 가져다주었습니다.”

         

       무림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왔다면 다른 누군가를 의심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아니라고 하니 그마저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직원에게 가볍게 묵례를 한 뒤, 밖으로 나온 백우진은 쨍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난감하네.”

         

       필체는 확실하고, 보내온 곳도 확실하다.

         

       이상한 건 서찰이 도착한 시기뿐.

         

       “만약 누군가가 일부러 늦게 보낸 거라면….”

         

       굳이 왜 그래야만 했는가.

         

       백우진은 손에 쥐고 있던 서찰을 다시 펼쳐보았다.

         

       한 단어가 강하게 시선을 잡아끈다.

         

       “요녕.”

         

       서찰에 전부 사실만이 적혀 있다면, 백무혁은 여름에 요녕으로 떠난 게 된다.

         

       초가을 무렵이면 돌아온다고 했던 말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딘가에 발이 묶였다는 건데….”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곳은 결국 요녕이다.

         

       그곳에 들어갔다가 나오질 못했으니 학관으로 돌아오는 것도 늦어지고 있는 것일 터.

         

       백무혁이 그곳에서 발이 묶인 와중에 자신에게 서찰이 도착했다 건.

         

       “날 부르는 거네.”

         

       형을 구하고 싶으면 이곳으로 오라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서찰이 이제야 도착한 건 자신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날 부르는 건 당연히 마교일 거고.”

         

       그놈들이 아니라면 이렇게 불러낼 만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서찰에 단서도 남아 있지 않은가.

         

       요녕에서 기이한 형태를 한 마물을 보았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신강과 정반대 지역에 위치한 요녕에도, 놈들이 설치고 있다는 뜻.

         

       “슬슬 열 좀 받았나 봐.”

         

       마교 놈들이 이리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부르는 걸 보면 당한 게 제법 뼈 아픈가 보다.

         

       백무혁은 좋은 사람이다.

         

       서찰에도 나와 있듯, 제 동생을 끔찍이도 아낀다.

         

       비록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었으나, 잠시 함께하는 동안 그가 보여준 우애는 따뜻했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형이었으면, 하고 헛된 바람을 가지게 할 정도로.

         

       “가족.”

         

       그래.

         

       진정 가족이란 이래야만 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맛보여준 이.

         

       “살아있겠지.”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무대라면, 마교 놈들이 생각이란 걸 조금도 하지 못하는 빡대가리가 아니라면, 백무혁을 죽였을 리가 없다.

         

       인질이란 건 살아있을 때 그 가치가 가장 높고, 온전한 법이니 말이다.

         

       백우진은 서찰을 고이 접어 제 품에 넣었다.

         

       그리고 곧장 조원들이 훈련하고 있을 연무장으로 향했다.

         

       짝짝짝!

         

       내공이 실린 박수 소리가 그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다들 모여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우진의 앞으로 도열하는 조원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서 떠날 채비를 해두도록.”

         

       뜬금없는 그의 지시에 당선영이 손을 들었다.

         

       “다시 밖으로 나갈 셈이야?”

       “맞아.”

       “언제?”

       “내일.”

         

       내일이라는 말에 모두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뒤이어 장삼이 손을 들었다.

         

       “어디로 가오?”

         

       백우진은 굳은 얼굴로 답했다.

         

       “요녕.”

         

         

       * * *

         

         

       어둠이 짙게 내려 깔린 밀실.

         

       제 주인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이곳에 들어서며, 사내는 기도했다.

         

       ‘오늘도 무사히 나올 수 있기를.’

         

       그가 주인이라 부르는 이는 내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폭군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토록 겁을 먹는 것은 그의 주인 되는 이의 존재 자체가 전율이요, 공포였기에.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 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백우진이 지금 막 요녕으로 떠나겠다고 학관에 보고를 올렸다 합니다.”

       “요녕이라.”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사내는 느꼈다.

         

       제 주인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음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심장이 꽈악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리가 없다.

         

       “제법 멀군.”

         

       무미건조한 음성.

         

       멀어서 귀찮다는 것인지, 그냥 단순히 왜 그 먼 곳에다 그를 불러냈냐고 묻는 건지.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아서 알 수 없었지만, 사내는 곧장 제 이마를 바닥에 내리찧었다.

         

       “송구합니다.”

       “됐다. 추궁하려는 게 아니니 이유나 말해보거라.”

         

       이런 식으로 주인의 뜻을 늦게나마 알 수 있기에.

         

       “예. 속하는 당가의 사건 이후, 백우진을 교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판단했습니다.”

         

       무려 십수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잠입에 성공하여 당가 전체를 먹어 치우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파임에도 유일하게 독을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연구하는 것도 가능한 가문이었기에, 온갖 실험이 난무하는 마교의 거점으로 삼기에는 최적화된 곳.

         

       그런 곳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로 인해 마교는 아까운 인재를 잃었다.

         

       진미연.

         

       그 누구보다 마인 개량에 진심이었던 교인.

         

       그녀로 인해 얻어낸 결과가 적지 않은데, 허망하게 잃고 말았다.

         

       “해서, 백우진이 더 큰 인물로 성장하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리고, 곧장 작전을 수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가에서의 사건이 천운이 겹쳤든, 아니든 백우진은 죽어 마땅한 인물이 되었다.

         

       십수 년의 장계를 수포로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후기지수의 의기에 감명받은 무인들을 청해성으로 모여들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몇 년간 팽팽하게 유지되어 있던 전선이 뒤로 밀리는 굴욕까지 경험했다.

         

       감히 천마신교에 두 번이나 굴욕을 주었는데,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때부터 그들은 백우진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한 작전을 수립했다.

         

       이에 앞서 학관에 틀어박혀 수련에 몰두한 백우진을 확실하게 유인하여 죽일 수 있는 미끼를 마련했다.

         

       그가 오지 않고는 못 배길, 완벽한 미끼를 말이다.

         

       “그 미끼가, 현재 요녕에 있습니다.”

         

       백우진의 형 백무혁.

         

       명가의 자제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서로를 아끼는 우애 깊은 형제.

         

       제 형이 요녕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면 백우진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했다.

         

       실제로 그 결과 또한 예상했던 대로 이루어졌고 말이다.

         

       “알겠다. 이만 나가보거라.”

         

       주인의 짧은 말 한마디에 사내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정중히 예를 갖춘 뒤, 곧장 밀실을 빠져나갔다.

         

       혼자가 된 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의 외유로구나.”

         

       나직이 퍼져가는 말소리.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속하가 모시겠습니다.

         

       “되었다.”

         

       다른 때라면 귀찮은 일에 일일이 손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하 몇쯤 데려갔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내 즐거움을 방해할 수 없음이니.”

         

       어둠 속에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일마(一魔). 일황(一皇), 삼존(三尊).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고 일컫는 다섯의 무인.

         

       그중에서도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에 가장 가깝다고 일컬어지는 이.

         

       천마(天魔).

         

       십만대산에 자리한 천마신교 교인들의 살아 있는 신(神).

         

       어둠 속에서 진득하게 미소 짓고 있는 천마는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내 기대를 충족시켜다오.”

         

       그렇지 않으면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죽어 없어질 테니.

         

       섬뜩한 미소가 어둠마저 가르는 듯했다.

         

         

       * * *

         

         

       요녕 다녀올게요.

         

       실제로 백우진이 과제 보고서에 쓴 전부다.

         

       그럼에도 누구도 막지 않았다.

         

       ‘저 또라이는 막아도 소용이 없다.’

         

       막아봤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뚫고 나갈 또라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에.

         

       그로 인해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거나, 실력이라도 처참하면 당장에라도 내쳤을 텐데, 갈 때마다 명성을 드높이고 오니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는 상황.

         

       해가 중천에 떠오를 무렵, 조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가 백우진의 눈치를 보았다.

         

       백무혁이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자초지종을 들은 탓이다.

         

       “괜찮니?”

         

       당선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백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조원들의 걱정과는 달리, 백우진의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백무혁이 요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그것이 목숨에 영향을 미칠 정도냐고 하면, 글쎄.

         

       말했다시피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교 놈들은 백무혁이 자살을 시도하려고 하면 도리어 막아야만 하는 입장 아닐까.

         

       ‘감각도 조용하고.’

         

       불길함을 기가 막히게 감지하는 육감 또한 오늘은 잠잠하다.

         

       이런 경우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을 위협할 만한 커다란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경우.

         

       또 하나는 자신이 감당 불가능한 수준의 암운이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경우다.

         

       ‘어느 쪽이든 지금은 무의미하지.’

         

       갈 수 있냐, 없냐를 결정할 수 있다면 좀 더 고민을 해보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백무혁을 구하기 위해선 무조건 가야만 했다.

         

       ‘무조건 죽는다는 것도 아니니까.’

         

       인간의 명운은 복잡하여 감당 불가능한 암운이 드리우고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때도 그랬으니까.’

         

       과거 마왕성에 도달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다.

         

       전체가 암운에 휩싸여 자신의 감각마저 고장이 나버린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살았다.

         

       오히려 마왕의 목을 베어내고 당당히 금의환향했다.

         

       호랑이 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백우진에게 걱정이나 위로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럼 가자.”

         

       하지만 그는 모른다.

         

       남들이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 그는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담은 채, 앞서가는 백우진의 뒤를 따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녕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요 두근두근,,,!

    다음 편을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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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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