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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2

       정말이지, 부조리한 대치다.

        

       지하 깊은 곳. 이제 겨우 다섯 번째 플레이해보는 도적으로 눈앞의 붉은 기사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었다.

        

       상대는 전형적인 방어형 기사였다. 거대한 방패를 들고, 공격력은 아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만 확보하는. 누구를 상대로도 선수(先手)를 잡을 수 없는 느릿한 빌드지만, 반대로 건드리기도 어렵다.

        

       저 견고한 자세를 어디부터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반면, 아군 기사는 가벼운 버클러만 착용하고, 공격력 특성에 상당한 투자를 한……전형적인 돌파형 기사. 월즈에서 바이오가 보여준 모습은 아니지만, GP는 애초에 2지하를 상대해본 적도 없지 않냐며 고른 특성이었다. 2대2는 딜싸움이니, 맞 2지하로 붙으면 공격형이 더 좋아 보인다며.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아직 뭐가 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판떼기니. 한판 정도 지더라도 정보를 얻어내면 나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그렇다고 진짜 바이오 본인이 상대방에 잡히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2대1로 달려들면 뚫을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경험이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과거엔 지하에 온갖 잡놈들이 다 오곤 했고- 그 때는 지하에서 기사를 만나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기동력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으니, 적당히 상대하며 스태미나만 교환하다가 빠져버리면 그만이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1대1과 2대1, 2대2는 교전의 구조 자체가 다르니. 거기에……저 뒤 어딘가에 숨어있을 ‘그 도적’은, 아직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게 그 무엇보다도 신경쓰였다.

        

       상대 도적은 하필 바로 전판에도 상대팀으로 걸렸던 아따먹이었다. 게임 내내 기기묘묘한 포지션을 잡고 있다가, 조금 틈이 생겼다 싶으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킬을 따내던-

        

       [가디단(성기사): 그냥 뚫죠?]

       [가디단(성기사): 시간 끄는 거 같은데]

        

       답답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채팅. 하기야, 앞에 기사 하나 보이니까 뭐 당장 들이받고 싶을 터였다. 무식한 멧돼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그러나 뭘 모르는 소리 말라고 일갈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지금으로선 달리 뾰족한 선택지도 없었다. 천천히 진입하면서, 숨어있던 상대가 언제 난입하는지 잘 보는 수밖에.

        

       별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도적은 고개를 끄덕이고-

        

       “후진입할게요.”

        

       -쿵!

        

       대답을 듣고 들어가기는 한 건지. 채 1초도 지나기 전에 충돌음이 들려왔다.

        

       기사와 기사의 격돌. 아군, 푸른 휘장을 두른 기사의 첫 일격은 방패에 쉽게 가로막혔다. 피하기는 어려웠던 걸까. 아니면 일부러일까.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달래며, 도적은 바이오의 우측으로 돌았다. 방패가 없는 방향에서 압박을 넣는 걸로 충분하고- 여차하면 후방까지 돌아갈 수 있으니. 모름지기 방패 뒤에 숨는 놈은 뒤에서 패야 제 맛인 법이다.

        

       -부웅!

        

       그런 움직임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강렬한 횡베기가 허공을 찢으며 지나갔다. 절묘한 타이밍의 강공격. 피하기 어려운 공격은 아니지만, 위치를 강요당했다.

        

       마지막까지 궤도를 확인하며 한 걸음 물러나자, 날카로운 검끝이 아슬아슬하게 도적의 허리춤을 스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바이오 역시 한 걸음 물러나며, 뒤를 점하기 위해 좁혀야 할 거리는 다시 벌어져있었다.

        

       포위당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건가. 도적이 근처에 없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격형 기사를 눈앞에 두고 허공에 검을 휘두른 대가를 치를 차례. 채 회수하지 못한 바이오의 오른손을 향해 기사의 검이 내려쳐졌다. 빠르고도 간결한 움직임. 성공한다면 전황을 뒤집을 수도 있는 한 수다.

        

       그러나 과연 프로라는 걸까.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바이오의 몸이 뒤틀렸다.

        

       -채앵!

        

       기사의 검은 다시 한번, 옆으로 서다시피 한 자세로 전환한 바이오의 방패와 충돌했다. 완벽한 타이밍의 가드를 알리는 청명한 소리. 바이오는 스태미나조차 별로 소모하지 않고 방어에 성공했다.

        

       2대1로 버티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간 보지 말고 쏟아부어서 타격을 줘야 하나. 제법 위기였는데도 안 나온 걸 보면……아니, 아니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전판, 아따먹은 심지어 동료 몸에 칼이 박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튀어나왔으니.

        

       상자부터 달렸다면, 최소 1개는 열었을 타이밍. 무슨 아이템을 얻었는지 모를 도적 위치가 파악되기도 전에 섣불리 방어형 기사에게 스태미나를 쏟아붓는 건 자살행위다.

       

       하물며, 저 어둠 속에서 숨어있을 지도 모를 도적은 그냥 평범한 도적도 아니다. 같은 캐릭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지경이니.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대치를 하는 게 맞나.

        

       ‘은발 그 개 같은 건 진짜 너프를 좀 해야지, 이게 뭔…….’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시 견고하게 방어 자세를 잡는 바이오. 정말로 수세에 몰린 건지, 아니면 공격을 유도해서 도적과 역습을 하려는 건지.

        

       방패 위로 슬쩍 뻗어 둔 검은 호응을 위한 준비인지, 아니면 필사적으로 세우는 가시인지. 검 끝이 까딱까닥,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모양새가-

        

       ‘아니, 저거…… 들어오라는 도발 모션이잖아.’

        

       프로게이머가 할 짓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채팅은 부담스러운 프로게이머니까 하는 짓인가.

        

       허세일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도적 때문에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차라리 홀로 우회하며 상자 사냥에 나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버려진 아군 기사가 2대1 상황에 처할 수는 있겠지만, 상대처럼 버티면 될 일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도적의 눈에, 아군 기사의 좌수에 장착된 조그만 버클러가 들어왔다. 빈약한 방어력의 상징이다.

       

       ‘그래. 저거 때문에 안 되지. 저 새끼는 왜 굳이 2지하를 공격형 기사로 한다고 해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료를 탓할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레드 팀이 리치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드 팀 미니언에 해골 병사가 합류합니다!]

        

       [사디냐(마법사): ???]

       [사디냐(마법사): 뭐야 시1발]

       [사디냐(마법사): 지하 뭐해 @$*!]

        

       맵 내 유일의 에픽몬스터가 처치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2명의 지하 요원은 나란히 정치대상이 되었으니.

        

       * * * *

        

       『와 솔리치가 되네 ㅋㅋㅋㅋ』

       『이거 소울라이크였음?』

       『이게 어케 가능……?』

       『랜턴 씹사기템이네 진짜』

       『도적상자 템 다 이렇게 사기임?』

        

       흘긋 확인한 채팅창은 아이템 얘기로 들끓고 있었다. 사기……사기라고 할 것 까진 없는 것 같은데. 랜턴 효과라고 해봐야 몬스터 상대 공격력 버프 정도고, 결국 피하고 때리는 건 플레이어가 해야 되니까.

        

       특히 마지막 5연타 모두 칼회피하고 카운터 넣은 건, 나도 키마로는 자신 없을 정도의 파인 플레이였는데…….

        

       왜 내 얘긴 없지.

        

       ……내가 잘한 거라고 얘기하면 안 되겠지. 잘 해놓고는 자기가 직접 자랑하는 것만큼 점수 깎아먹는 짓이 없으니까. 이런 건 남이 얘기해줘야 하는 법인데.

        

       솔직히 파머라면 이런 것도 제때 제때 챙겨줘야-

        

       [GP 바이오(성기사): 역시 아따먹 선생님]

       [GP 바이오(성기사): 믿고 있었습니다!]

       [GP 바이오(성기사): 솔리치 판단 진짜 쩔었어요]

        

       -흐흫.

        

       “역시 바이오님. 너무……너무, 잘 하시네요. 저런 게 진짜 멋있는 거예요.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잖아.”

        

       과연, 월드시리즈 우승자다. 파머 재능으론 세계에서 손꼽히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파머를 판지는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된 것 같은데 이 정도라니……눈물이 날 것 같아.

        

       『그만해라』

       『뿔이 너무 아파…』

       『바이오가 밉다 너는 우승도 했으면서 여자팬도 많으면서 돈도 벌면서 나는 아따먹밖에 없는데 왜』

       『아드득 까드득 빠드득 아드득 까드득 빠드득 아드득 까드득 빠드득』

       『GP홈페이지에 글쓰러 간다』

       『GP씨1발 우승했다고 리그가 만만함? 연습 안 해?』

        

       나도 모르게 가볍게 박수를 치며 감동하고 있자니, 채팅창은 조금……음.

        

       “자. 진정하세요. 여러분도 할 수 있……있으려나. 잘 모르겠……긴 한데. 바이오님은 프로니까, 비교대상으로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잘하긴 하네요. 응.”

        

       혼자서 3분만 버텨달라고 하니까 ‘시간을 끄는 것도 좋은데, 뭐. 쓰러트려도 되는 거겠죠?’같은 소리를 해서, 좀……기겁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조금 그렇네. 평소에도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역시, 듀오는 하지 말아야지. 저런 말에는 내성이 없다.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이 텐련 목소리 떠는 거 왜케 꼴받냐ㄹㅇ 아주 그냥 유니콘 뿔로 녹용가루를 만드네】

        

       하지만 기껏 잘해준 파머를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을 뿐이었다.

        

       “아. 아아. 아아아- 음. 모르겠는데……많이 떨리나요. VR을 하느라 힘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런 거 같은데. 이번 판 끝나면 잠시……한 이틀 정도 쉬면서 목소리를 회복해볼까요.”

        

       잘 되지는 않았지만.

        

       “여러분, 욕설은 3줄까지만 써주세요. 그만큼만 써도 충분히 보이니까.”

        

       용서의 물약을 마시면 마음이 절로 평온해졌을 텐데.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 * * *

       

       시즌 1 종료까지 남은 시간, 21시간.

       

       ‘아따먹’의 최고 랭킹, 72등.

       

       그리고 시청자수, 37,200명.

       

       그야말로 정신나간 속도의 등반에, 나오나 유동층은 일제히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의 방송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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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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