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2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잠깐 몰려온 두통을 넘기고자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도 똑같다. 물건이 없다.

         

         “뭐, 이런 개떡 같은…. 하.”

         

         이 커다랗고 비밀스러운 메가 코프 고위 간부님의 금고가 아예 텅텅 비었다는 뜻이 아니다.

         

         어디의 호사가에게 인기 있을 법한 금화나 기념 주화 같은 물건이 빼곡하게 박힌 전시대.

         내가 미술에 깊은 조예가 없어서인지, 세계가 달라서인지 원인은 특정할 수 없어도, 고풍스러운 느낌만은 철철 흐르지만 생전 처음 보는 그림이 담긴 액자들.

         요사스러운 빛깔을 내뿜는 여러가지 잉곳(Ingot; 거푸집에 넣어서 일정한 모양으로 굳혀진 금속 덩이) 형태의 쇠붙이 무더기 등등.

         

         전자 화폐가 기본이 된 세상인만큼 돈다발이 탑처럼 쌓여 있다거나, 무식한 졸부처럼 황금과 귀금속으로 언덕이 만들어져 있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보관하면 밑의 부분에 있는 재화들은 썩어서 버려야 한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캐럿(Carat; 보석의 무게 단위)이 어마어마하게 책정될 것 같은 보석들이 따로따로 예쁘게 모셔진 함이 있기는 했는데 나는 이런 걸 훔치러 온 게 아니니까.

         

         “아오…! 카이쥰 이 어설픈 놈이,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라 분명 눈에 띄는 위치에 놔뒀을 거랬잖아…!!”

         

         이 재보 목록 중에서도 가장 흔하며,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물건인 종이가 보이지 않았기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과 좆 됐다는 다소 적나라한 감정을 억제하기가 영 어려워서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어봤으나… 아쉽게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뭐, 그냥 저기 방에 있는 컴퓨터로 가서 시원하게 한 번 뒤집어 엎으면 끝나는 일 같은데, 웬 종이 쪼가리를 찾고 앉았냐고?

         

         그렇다면 잠시 배움의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주제는… 우리의 삭막하기 그지없는 네오 헤이븐의 23세기 상식에 대해서가 좋겠네. 음.

         

         이건 어디까지나 나도 최근에 공부-웹 서핑-하면서 알게 된 토막 상식 겸 배경 역사 같은 거라, 대략적인 핵심 줄거리만 아는 점 양해 바라겠다.

         

         때는 바야흐로 2160년대 후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대규모 전산화가 한창이던 당시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엘리시움과 에나마에서 공동 연구하던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인공 두뇌학) 분야에서 특이점 폭발이 일어난 이후, 기존 질서와 윤리 위에 서는 직종과 직군이 우후죽순 생겨나 기회가 생겼다고 사람들이 열광하던 것도 잠시.

         

         그 가치를 정하던 기업에게 칼침 놓고 도망가는 걸 훈장이자 일종의 실력 보증서처럼 생각하는 힙스터 해커나 로그 엔지니어들이 만연해진 세태를, 집권 계층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유능한 이들을 자사로 영입하고, 철없는 것들을 어르고 달래서 사회 시스템 안에 다시 끼워 맞추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날이면 날마다 문제가 발생하니 데이터와 사이버 세상에 관련된 범죄 행각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찰나….

         

         

         기어이. 당시 실력으로 따지자면 상위 0.1%를 달리던 넷 해커들이 뭉친 조직, 데드 링크(Dead Link; 사라진 웹사이트로 연결된 하이퍼링크를 뜻함)에서 대형 사고를… 그것도 역사에 길이 남을 정변을 일으켰으니.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기업과 단체들의 전자 사문서, 그리고 명령서를 위조.

         가까스로 상관에게 연락이 닿은 일부를 제외, 그걸 전달받은 현장과 즉응 부대들은 검토 결과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움직였기에 대참사가 발생.

         

         각 지휘 계통에 엄청난 혼선을 초래하고, 지독한 이간질을 병행하는 것으로. 누구도 먼저 발을 빼기 힘든 늪-정면 무력 충돌-을 현실화한 그것은 과거 지구 세력도를 깡그리 뒤바꾼 대전쟁 이후 최초로 재발한 전쟁, 기업 전쟁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하여간… 어찌저찌 분쟁이 마무리되고 진상이 드러난 뒤로는.

         

         실시간 통신 보급에 조금 더 박차를 가한다던가, 고위층 분쟁에 있어서는 조작 여부를 검토하는데 장시간이 소요되고 섣불리 판가름하기도 위험한 파일이나 전자 문서류 외에 무조건 물질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게 규칙이 되었단다.

         

         결국 지금 애타게 찾던 게 그거다.

         다소 부풀려지긴 했어도, 카사네의 내통죄를 확정 짓고자 한다면 필수적으로 제출해서 채택되야 하는 자필 장부와 관련 서류 뭉치들.

         

         확보하기만 한다면. 그녀가 자기 변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도 않고, 바로 내규 위반으로 거세시키는 게 가능해지는 마법의 물건.

         

         “…그런데, 그게 안 보이네?”

         

         아, 스트레스로 뇌정지가 올 것 같았지만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

         귀중한 시간을 당황했다고 낭비할 수야 없지, 언제는 뭐 일이 얼마나 잘 풀렸다고.

         

         일단 메인 디쉬의 행방은 묘연해도 곁들일 사이드부터 먼저 준비하고… 이걸 무대에서 선보일 놈에게 연락하는 게 먼저라는 결론에 다다른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방에 있던 개인 컴퓨터 앞에 착석했다.

         

         포옥…!

         

         정말 말 그대로 ‘사장님 의자’의 감촉을 한껏 돌려주는 푹신한 녀석에 등을 파묻은 채로.

         급하게 컴퓨터에 전원을 넣고, 입에 맛대가리 없는 칼로리 캔디도 하나 까 넣은 상태로 카이쥰 놈에게 긴급 메시지를 송신했다.

         

         [ 금고 말고 목표물이 있을 법한 장소, 되는대로 그냥 다 말해 봐. 가능성이 낮아도 상관없어. ]

         

         [ …설마, 안에 없었습니까? 저도 단편적으로 입수한 정보인지라 그녀의 사생활이나 버릇을 세세하게 아는 건 아니기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확실합니까…? ]

         

         [ 워낙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어서 착각은 절대 아냐. 적어도 한 번 더 숨겼어. 아니면… 아예 들고 나간 거거나. ]

         

         종이나 책 정도는 쉽게 들어갈만한 액자의 뒷편이나, 잠금 서랍(Secure Drawer) 등은 일찌감치 더듬어봤다.

         정답을 코앞에 두고 못 찾았다고 호들갑 떠는 바보짓을 대비한 최소한의 보험인 셈이었지만… 막상 진짜 단서가 없다고 생각하니 좀 쫄리는데요 이거!

         

         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해 주길 기대한 것과 달리.

         초조함을 억누르느라 바쁜 나처럼, 저쪽도 만만치 않게 복잡한 신경전이 한창이었던 모양인지. 내 어깨에 짐을 한가득 올려주는 답이 돌아왔다.

         

         [ 본인이 직접 소지하고 있다면 이쪽에서 알아서 마무리하겠으나… 본부에서 나온 집행팀이 당장 추적자 넷의 생명 신호가 끊긴 점을 해명하라고 제 목을 조르는 와중인 만큼, 혹시 모르니 확실하게 처리해주시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

         

         “……뭐라고?”

         

         진짜 그 말을 마지막으로 회신이 뚝 끊어졌다.

         채널 자체는 유지되고 있었지만 계속 떠들고 있기 곤란해진 게 분명.

         

         들킨 게 펄스를 내뿜은 시점인지, 아니면 진짜 마사나리가 칼춤을 춘 직후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바깥 상황이 얼마나 난장판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나에게까지 영향이 없는 지금이 골든 타임이라는 뜻이리라.

         

         그렇지만….

         

         “공짜로 부려먹으면서 뭐 이리 시키는 게 많아!?”

         

         악당보다는 악덕 고용주에 가까운 놈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안 기분이다.

         

         아무리 해킹과 관련된 일은 이것저것 다 도와줄 수 있다는 식으로 내가 두루뭉술하게 말했어도 그렇지, 이렇게 전부 떠넘기다니?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의 밑천마저 다 뽑아 먹으려 드는 게 아니꼽기는 한데. 본인도 썩 좋은 상황에 놓인 건 아닌 것처럼 말했으니 뭐… 더 갈궈봐야 답이 나올 리도 만무하다.

         

         이번만 내가 관대하게 책임을 져주겠다. 진짜 이번만…!

         

         즛, 즈즛!

         

         자판을 두들겨서 입력할 사용자 패스워드 따위는 모르니, 대신 컴퓨터 본체의 전면 허브에 손가락이 마스터 키라도 되는 것 마냥 끼워 넣고 로그인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걸로 접속 문제는 넘어간 줄 알았다.

         여지껏 그래왔고, 기교로 속여넘기던 힘으로 관철하던. 설사 저항이 있더라도 신경 써서 맞받아친다면 항상 내가 이겨왔으니까.

         

         “…?”

         

         허나 무심코 넘기기엔 수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내 의지와 반대되는 역류하는 흐름, 팔씨름을 하고자 손을 마주잡았는데 갑자기 룰을 무시하고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는 억지를 부리는 상대방.

         

         가해진 폭력에 반항하기 보다는 순응하고 휩쓸려 나가는 도중에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쪽을 떠보려는 시도라 할까.

         

         마치 그물질을 통해 육지로 끌어낸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다고 해야 하나? 으, 정확히는 작살로 몸을 꿰뚫어서 숨이 끊어져가는 무언가가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는 듯한 기분이….

         

         [ Breaching process confirmed. Highly Functional Bio-Arithmetic Operation Module detected, tracing consecutive numbers & model type…. ]

         [ 침입 시도 확인. 고기능성 생체형 연산 모듈 감지, 역산을 통한 완성품 유형 및 내부 일련 번호를 추적합니다. ]

         

         [ ………Error. Fatal error occurred. Sending stress signal to Elysium Main Report Controller M.E.D.E.A…. ]

         [ ………오류. 치명적 오류 발생. 엘리시움 주 정보 통제관 메데이아에게 부정 평가를 송신 중…. ]

         

         “큽! 야 이, 당장 멈추지 못해…!?”

         

         희미하게 뻗어 나가 저 방대한 네트워크의 바다로 사라지려는 실낱 같은 촉수를 전부 도려냈다.

         흠, 이 경우엔 이미 이 단말기를 포기하고 피드백 데이터를 회수하려는 시도를 막아낸 거니까 무단 탈출선을 격추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러고보니 여태 이런저런 전자기기나 프로그램, 더 나아가서는 방화벽을 넘어트려 봤어도 엘리시움 산 보안망에 마수를 뻗어본 건 처음일진대.

         

         오히려 저항하는 강도만 본다면 다른 때보다 더욱 약한…… 이런 말을 하면 실례 같기는 한데 자동문 수준의 타격감이 느껴지는 게 맞나?

         

         물론 근무하던 전문가들이 실시간으로 대응하던 파라다이스 지하 시설과 단순한 컴퓨터 운영 체제를 비교하는 건 동일선상에 놓을 경우가 아니겠지만.

         

         띠링…!

         

         어쨌거나 접속 자체는 무사히 성공.

         카사네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볼 준비가 끝났으니 미심쩍은 엘리시움 소프트웨어에 대한 걱정거리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우선은 관련이 있어 보이거나 약점이 될 만한 자료들을 모조리, 닥치는 대로 긁어내서 채널을 통해 보낸다.

         

         헤이롱이란 키워드가 들어간 것 일체, 제약 라인 회계 보고서, 잔인하게 메신저 기록도 전부.

         …심지어 그 어두운 사교회장을 몰래 촬영한 것 같은 스캔들 동영상까지. 겉으로는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태연하게 이런 짓을 하고 있었네.

         

         “후우….”

         

         미친듯이 창이 열렸다가 닫히고, 자료가 복사되고, 간혹 잠금이 걸린 폴더가 나오면 최대한 열람은 가능한 수준까지 쪼개서 전송한다.

         

         눈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신식 모니터의 입체 화상을 멍하니 쳐다보면서도, 머리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 넓은 방을 혼자서 다 살펴야 하나?

         

         아니, 내가 바보처럼 못 찾은 거라면 차라리 낫지.

         허나 이중 삼중으로 보안을 굳혔던 것으로도 모자라 아까 방에 왔었을 그녀가 문서를 완전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그만두자. 전혀 엉뚱한 장소를 상정한다면 이 저택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 유의미한 결론이 나올 수 없는 가정이란 뜻이다.

         

         게다가 그녀가 과연 그랬을까?

         

         잘 생각해보자.

         

         의심암귀에 사로잡혀서 호위까지 전부 떼어내 방 앞에다 하염없이 경계 근무를 서게 만든 당사자가, 정작 지켜야 할 물건은 본인이 직접 가져간다? 앞뒤가 맞질 않는다.

         

         더군다나 그녀의 드레스는 워낙 그 타이트하고 뇌쇄적인 라인이 강하게 드러나서 두꺼운 종이뭉치를 숨길만한 부위는 없었다. 그 약봉투처럼 자그마한 물건은 또 몰라도.

         

         카사네 아마기는 우수하다. 그녀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죽어간 부하들처럼 약간 방심은 할지언정 우수하다는 사실은 다름없다.

         

         그렇다면 아직 이 방 안에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왜냐, 그녀라면 조금이라도 안전한. 승산이 높은 길을 택했을 테니까.

         

         다만 모든 방비가 무너진다면 가장 먼저 철저히 수색당할 금고에서 빼돌린 것뿐이리라.

         

         “…분명 이 안에 있어.”

         

         찾으면 나올 것이다. 단지 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방청소를 끝낸 계집이 무사히 빠져나갈 시간이 충분하냐는 문제지.

         

         결국 다시 일손이 모자라다는 원점으로 돌아온 셈인데….

         

         “…위키드 앤솔로지 레이저 센서 전체 재가동.”

         

         아직 해킹이 종료되지 않았지만 컴퓨터에서 손을 뗀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탐지 목표 재설정, 비전도성 매체 일절…… 그냥 종이만 설정할 수는 없나? 쯧,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장비가 아니네.”

         

         방 중앙으로 이동한다. 지금부터 뇌리에 그려지는 입체 조감도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려면 거기가 제일 대조하기 쉬울 테니까.

         

         모 비밀 결사의 소녀 해커 씨는, 혼자서도 조악한 사운드 데이터만 가지고도 전투 현장을 생생하게 재구성하는 것으로 필요한 정보를 뽑아냈었다.

         

         허면 그것보다 더 훌륭한 품질의 장비와 무수하고 뛰어난 협조성을 가진 기계 조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나는 빌어먹을 보물찾기쯤은 간단히 이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탐색 개시…!!”

         

         거친 기침이라도 한 것처럼 두뇌 한 쪽에 욱신! 하는 감각이 스쳐 지나가고 유체이탈이라도 하듯이 시야가 확장된다.

         

         레이더 센서 설비의 주의점으로 투과성이 극악이고 해상도가 굉장히 낮을 수 있다는 단점이 적혀 있었으나 문제도 되지 않았다.

         전방위에 걸쳐서 매설된 압도적인 센서와 안테나 숫자가 사각을 해결해 주었고, 부족한 해상도는 내 머리가 멋대로 육안이 보는 세계를 떼어내서 실사화를 그려냈으니까.  

         

         몸은 움직이지조차 않으면서 방 구석구석을 누빈다.

         

         실제로는 그 어떤 물건도 건드리지 않는데 의식하는 것 만으로 이불과 침대 사이, 정돈된 옷가지들의 주머니 안 등등 온갖 구석진 곳을 들추다 보니 가상의 전능감이 현실까지 침범한 것 같아서 아주 짜릿했… 크흠!

         

         어쨌거나 사람의 손은커녕 바늘도 들어가기 어려울 틈새도 전자파를 집중시켜 낱낱이 탐색한다.

         

         그것도 동일한 순간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나’가 능동적으로 찾아보고, 그 결과만을 취합하니 시간 대비 효율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치솟았거늘.

         

         ‘정말? 정말 이래도 안 나온다고?’

         

         입을 꽉 다물고 자꾸만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추론에 논리적 결함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매몰된 시간이 아찔해서 붙잡고 늘어지는 것 아니냐는 속삭임도 애써 뇌리에서 지웠다.

         

         발견하느냐, 못 하느냐.

         막연하지 않은. 오직 두 가지 결론만 존재하는 쟁점에 대해 나는 정답을 확실할 만큼의 정황 증거를 모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왜 없는 걸까, 도대체 왜….

         

         “……아으.”

         

         도리질치는 시야에 뿌연 상자가 보였다.

         머리를 흔든 탓에 실재하는 하얀 색감과 파장으로 구성된 모델링이 괴상하게 겹쳐져서 공백 지대처럼 보이는 무언가.

         

         금고도 호쾌하게 열어놓은 마당에, 내가 전력을 다해 수색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전자파가 제대로 침투하지 못하는 반밀실 상태를 유지하는 물건이 뭐지?

         

         …아, 그래. 냉장고구나. 안이 잘 안 보일 만하네.

         …………어.

         

         “…….”

         

         미간을 찌푸린 채로. 침실과 욕실, 거기에 따로 설계된 금고방을 제외하면 벽면조차 없이 쾌적한 오픈형 구조를 자랑하는 방을 가로질러 주방 근처로 다가갔다.

         

         범위가 닿는 센서들의 방출 방향성을 전부 이쪽으로 돌려버렸다.

         카사네가 다급하게 움직였던 흔적이라도 찾아보고자 온신경을 집중해서 바닥과 선반을 살핀다.

         

         그리고 살짝… 아주 미세하게 열린 주방 서랍 안에 들어있던 건 얇고 투명한, 카사네가 정성스럽게 따로 가지고 있던 약을 건네줄 때도 사용했던 물건.

         

         인류의 보존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편의성 물품, 다양한 크기의 진공 포장용 비닐 백 상자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 잠깐 사이에, 의심병이 도져서 발휘한 것치고는 너무 기발한 임기응변이 아닐까 그건…?

         

         

         …….

         ….

         하.

         

         

         “와… 참 지독한 계획가네, 당신도….”

         

         그렇게 나는 냉장고 가장 아랫칸, 그것도 제일 깊은 곳에서 밀봉된 낡은 장부 한 권과 약간 꾸깃꾸깃 구겨진 상태로 닫힌 계약서 봉투들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덤으로 윗칸에서는 소모한 칼로리를 메꿔주고도 남을 걸로도 모자라, 쓰린 속도 달래 줄 게 분명한 고급스러운 디저트도 몇 종류 찾았고.

         

         ……다른 사람이 만졌다는 흔적조차 안 남게 스스로 포장해준 걸 고마워해야 할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결국 전뇌대마왕에게 덜미를 잡혀 고로시를 당해버린 카사네 사쵸.

    원래는 다음 장면까지 포함된 게 이번 화 마무리였는데….
    제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흑흑.

    살짝 넉넉한 분량으로 부디 만족해주시기를.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추천,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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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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