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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2

   메네스테일과 같은 대형 던전은 여타 던전을 공략하는 것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전에 내가 던전을 공략할 때는 거의 예언을 하는 것처럼 스피드런을 뛰었잖아?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던전에 존재하는 변수를 나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은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긴 하지만 동선이 제한적이고.

   

   함정이 나타나는 위치가 변화하긴 하지만 그 위치가 정해져 있어서 외우면 대처할 수 있고.

   

   길이야 모든 경우의 수를 외워버리면 되니까 문제없지.

   

   이런 부분은 대형 던전도 비슷한데 결정적인 부분이 하나 달라. 던전 안을 돌아다니는 모험가들의 존재가 추가되거든.

   

   여타 던전 같은 경우에는 공략을 할 때 하나의 파티만이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한 번에 4명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인원 수 제한이 걸려 있으니까.

   

   아카데미 던전도 이 부분을 고려해서 한 번에 4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제작되었지.

   

   그러니 던전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다른 변수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허나 대형 던전은 다르다. 이 곳에는 인원수의 제한이 없다. 던전에 들어가길 원하는 파티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알겠어? 이 던전 안에는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고 제멋대로인 판단에 따라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멍청이 NPC들이 한 가득이라는 거야.

   

   아아. 대형 던전을 설명하고 있으려니까 열이 오르네.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 모험가라는 변수는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던전을 공략하는 난이도를 어마어마하게 올려놓는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소울 아카데미를 처음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보통 대형 던전에 들어섰을 무렵이면 게임 중반에 들어섰다는 이야기거든?

   

   어지간한 던전은 다 공략해보고 게임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란 이야기지.

   

   그 때 모험가라는 새로운 기믹을 넣으면서 신선함을 선사하는 거야.

   

   게임에 몰두할 수 있는 새로운 요소를 마련해준다는 거라고.

   

   나도 게임을 처음 즐길 무렵엔 이 모험가라는 요소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니까?

   

   가끔 위기의 순간에 다른 모험가가 도움을 줄 때도 있어서 모험가 최고다! 라고 소리 지른 적이 있을 정도로.

   

   근데 왜 생각이 바뀌었냐고?

   

   네가 스피드런을 하는 입장이 돼 봐. 욕이 안 나오나.

   

   공략 시간을 1초라도 줄여야 하는 입장에서 통제할 수 없는 변수라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아?!

   

   이번에 드디어 기록 세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모험가가 튀어나와서 트롤링을 했을 때의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네.

   

   내 스피드런 기록과 키보드와 모니터의 원한을 담아 그 모험가를 조져 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라진 게 돌아오는 건 아니었지.

   

   그리고 지금도 내 앞에 있는 모험가 무리가 트롤링을 하려고 하네.

   

   “꺄아아아악!”

   “죽기 싫어어어어!”

   “거기. 거기! 도와주세요!”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몬스터에게 어그로를 끌어 필사의 도주를 하는 이들.

   

   속칭 몬스터 트레인.

   

   내가 가장 혐오하는 스타일의 변수였다.

   

   저 개자식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스피드런은 실패한거나 마찬가지니까.

   

   “아가씨.”

   

   칼이 나를 부르면서 자세를 취한다.

   

   어찌할 지를 결정해달라는 거겠지.

   

   이게 게임이라면 망설임 없이 버리자고 했을 거야. 쟤네한테 당한 게 워낙에 많아야지.

   

   허나 이건 현실이고 내가 외면하는 순간 생겨날 네 개의 시체는 자연스레 내 어깨 위에 올라타 짐이 되리라.

   

   그리고 난 그 짐의 무게를 견딜 자신이 없고.

   

   ‘싸울 준비를 하죠.’

   “준비해. 저 주제를 모르는 민폐 좆밥 쓰레기들을 도울 거야.”

   

   저 놈들의 등 뒤에 따라 붙은 건 헬하운드인가.

   

   하아. 짜증나.

   

   안 그래도 더워서 불쾌지수가 끝까지 차오른 상태인데 트롤을 만났고 거기에 그 트롤들이 끌고 온 게 저 놈들이라니.

   

   심호흡을 하고서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개새끼들이 주제를 모르고 왕왕 거리는 게 재밌네♡ 좆밥들을 사냥하다보니 자기가 늑대라고 착각하는 걸까?♡ 저기 있잖아♡ 너희들은 인간 앞에 배를 까뒤집고 끼잉거리는 게 어울리는 개새끼들이거든?♡”

   

   내가 말을 내뱉음에 따라 불멍멍이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메스가키 스킬의 도발 능력은 절대적. 지금 이 순간 저들의 사냥감은 멍청한 쓰레기 모험가들이 아니라 나로 바뀌었다.

   

   “이 내가 특별히 못 생긴 주제에 사나운 허접 개새끼들을 교육해줄게♡ 감사하도록 해♡”

   

   그 선두에 선 늑대가 방향을 바꿔 나를 향해 달려든다.

   

   내 목을 물어뜯을 생각으로 가득한 녀석의 이빨을 본다.

   

   그것은 분명 날카롭다. 잘만 한다면 철을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허나 녀석이 가진 것은 그 뿐이었다.

   

   프레이의 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 따위 속도로 달려들어 봐야 내게 자그마한 위협도 되지 못한다.

   

   나를 물어뜯기 위해 뛰어오른 녀석을 향해 방패를 움직였다.

   

   그에 따라 철벽이 내게 무어라 고했지만 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철벽의 뜻이 같아서는 아니었다.

   

   단지 막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패가 헬하운드의 얼굴을 후려침에 따라 녀석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이윽고 박살나버린 이빨과 함께 바닥에 널부러진 녀석은 경련을 하다 명을 달리했다.

   

   선두에 선 녀석이 허무하게 박살난 탓일까.

   

   맹렬하게 달려오던 헬하운드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하. 진짜. 거슬리게 하네.

   

   저 놈들의 몸에 붙어 있는 불은 장식이 아니다.

   

   근처에 있으면 안 그래도 더운 공기의 온도가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멍청한 개새끼들♡ 겁먹은 거야?♡ 푸하핫♡ 자존심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좆밥 개새끼들답네♡”

   

   빨리 덤벼.

   

   그리고 뒈져.

   

   너희들 때문에 더위로 탈진해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

   

   알새틴은 루시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그녀와 함께 아카데미 인근에 존재하는 여러 야생 던전을 공략해 본 입장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모든 던전의 길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다.

   

   또한 던전에서 나오는 마물이 무엇이며 그 마물이 어디에서 어떤 무장을 가지고 몇 명이서 대기하고 있는지 안다.

   

   당연하게도 던전에 존재하는 함정이 어디에 어떤 식으로 설치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를 어찌 해제하면 되는 지도 숙지한 상태기도 하다.

   

   던전의 보스? 던전의 모든 걸 아는 루시가 그걸 모를 리 없지 않은가.

   

   그녀는 모든 던전의 보스를 낱낱이 해체해 보기라도 한 것처럼 완벽한 공략법을 그에게 내밀었다.

   

   알새틴이 어디 한 두 번 던전 공략을 해보았겠는가.

   

   그는 파티원의 입장에서도, 파티장의 입장에서도 수도 없이 던전에 들어가 보았다.

   

   그렇기에 정상적인 던전 공략이 어떤 것인지, 그 안에서 설명하는 유능함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알새틴이 보기에 루시 알른은 단순히 뛰어난 지휘관 같은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신으로부터 던전의 모든 것을 전해 듣는 예언자라 부르는 편이 옳아 보였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보 팔이.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넌 저기 좆밥 무리에 물약 던져주고 와.”

   “알겠습니다.”

   “허접! 언제까지 시간 끌 거야! 내 기사라면서 그 정도에 고전하는 게 말이 돼?!”

   “죄송합니다!”

   “10초 안에 처리해! 안 그러면 벌을 줄 거야! 이 허접 쓰레기!”

   

   대형 던전 안에 들어와서 여러 모험가 파티와 마주하게 되며 혼란이 발생하는 이 순간에도 루시는 완벽한 지휘를 선보이고 있었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화하며 수많은 변수가 난립하는 이 지옥 같은 환경에서 냉정을 잃지 않고 최선의 선택지를 내밀고 있었다.

   

   지휘 능력이 괜찮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휘관보다는 예언자에 가깝다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양쪽 다였어.

   

   그녀는 능력 있는 지휘관이자 신의 목소리를 듣는 예언자였던 거다.

   

   하. 저게 이제 막 아카데미에 들어간 사람이 내리는 판단이라고?

   

   심층을 공략하는 모험가 파티 대장의 것이라 해도 믿을 것 같은데?

   

   경이롭고 경외롭군.

   

   저건 단순히 알른 가문의 핏줄을 이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순히 루시 알른이라는 인간이 너무도 특별한 존재일 뿐.

   

   믿고 따라온 보람이 있어.

   

   그래.

   

   그녀라면.

   

   신의 사랑을 받는 그녀라면.

   

   여태까지 자신의 호언장담을 모두 진실로 만들어낸 그녀라면.

   

   분명 나를 스승님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리라.

   

   “정보 팔이! 너무 느려터졌어!”

   “죄송합니다! 지금 조치 끝났습니다!”

   “그럼 당장 후방에 뛰어오는 개새끼들을 향해 화살을 쏴!”

   

   스승님. 곧 그 존안을 뵈러가겠습니다.

   

   부디 오랜만에 만난 제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십시오.

   

   *

   

   메네스테일 던전의 10층.

   

   층계 보스가 도사리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반쯤 탈진한 상태였다.

   

   여기가 대형던전이라 아카데미 던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넓은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까지 지칠 일은 아니었다.

   

   모험가들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로 녹초가 되진 않았으리라.

   

   제기랄. 멍청한 모험가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출현 빈도가 너무 잦잖아!

   

   게임을 할 적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덕분에 던전을 공략하는 데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하아. 이래서야 오늘 안에 20층까지 가는 건 무리야.

   

   내일도 더위 속에서 던전을 공략해야겠네.

   

   빌어먹을 모험가놈들. 나중에 길거리에서 만나면 엉덩이를 걷어차 줄 테다.

   

   그런 후에 무릎을 꿇히고나서 여자애보다 못한 좆밥 같은 실력으로 모험가 생활을 왜 하냐면서 매도할 거야.

   

   그래야 조금이라도 분이 풀릴 것 같으니까!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괜찮아보여요?’

   “너는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야? 내가 괜찮아 보여?”

   

   안 그래도 더워서 짜증나는데 모험가들 트롤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머리 위에서 킁킁거리며 헤실거리는 얼빠 여우 때문에 열 받고.

   

   아아. 더 이상 못 견뎌. 오늘은 10층 보스까지만 처리하고 내일 11층부터 다시 시작하자.

   

   알새틴의 말에 따르면 저런 멍청한 모험가들이 넘쳐나는 건 여기가 개나 소나 드나들 수 있는 저층이라서 그런 거라니까.

   

   보스가 사람을 선별해주는 11층 넘어서부터는 좀 낫겠지.

   

   “아가씨. 그렇게 힘드시다면 좀 쉬는 것이 어떻습니까?”

   

   ‘싫어요.’

   “허접. 시끄러워.”

   

   이 더위에 노출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실시간으로 체력이 깎여나가는 느낌인데 여기서 휴식을 취하라고?!

   

   싫어! 쉴 거라면 바깥에 나가서 쉴 거야!

   

   “허나 이 상태로 보스룸에 들어간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요.’

   “허접. 네 주인이 누군지 몰라? 그런데도 날 걱정한다고?”

   

   “예? 그게 무슨.”

   

   ‘전투 다운 전투가 없을 거거든요.’

   “보여줄게. 이 문 너머에 있는 좆밥이 아무것도 못하고 비참하고 한심하게 쓰러지는 꼴을.”

   

   다른 누구도 아닌 칼 네가 이렇게 바보처럼 굴면 곤란해.

   

   너는 내가 아카데미 던전을 박살내는 걸 봤잖아.

   

   “…무언가 방법이 있으십니까?”

   

   ‘당연하죠.’

   “허접. 이제야 눈치챈 거야? 하아. 우리집 강아지는 진짜 멍청하고 느려터졌다니까.”

   

   내가 던전의 보스랑 전면전을 해줄 리가 없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칼이라면 우리집 강아지라는 이야기에 내심 기뻐하고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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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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