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2

   메리를 꺾고, 초토화된 지대 위.

   크라슈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겨 나무숲에 도착해 등을 기대었다.

     

   정신이 혼미하다.

   몸에서 오는 통증들이 여기저기 쑤셨다.

     

   메리의 초광천하 속에서 움직이기 위해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탓이었다.

     

   “……하여튼 괴물 같은 녀석.”

     

   죽기 살기로 아등바등 노력하여 여기까지 도달했는데도 그 선이 꽤나 아슬아슬했다.

   새삼, 신창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금 체감했다.

     

   그리고 저런 메리가 발끝에 미치지도 못했던 전성기 신창이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조차 막지 못한 멸망.

     

   이제는 그녀의 창을 꺾어 버린 자신이 막아야만 했다.

     

   [ 그 꼴로 시험이나 치르겠느냐? ]

     

   크림슨가든이 묻자 크라슈는 식은땀을 쏟아내며 간신히 숨을 내뱉었다.

     

   “좀 쉬면 나아.”

   [ 퍽이나. ]

   “찍찍.”

     

   주머니에서 고개를 내민 시체 쥐도 덩달아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의복에는 데미지가 안 갔으니까 상관없겠지.”

     

   한계까지 쥐어짜 낸 집중력으로 메리의 공격을 다 막아내서일까.

   의복에는 데미지가 없었지만, 정신이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썩을, 자꾸 눈이 감기는데.’

     

   크라슈는 혼미한 정신을 털어 낼 겸 고개를 저었다.

     

   ‘점수 쪽이 문제인데. 어쩐다.’

     

   지금까지 오는 길에 나름대로 침식종들을 잡아 온 크라슈다.

   거기에 메리 또한 이곳까지 오는데 침식종들을 꽤 잡은 만큼 그녀의 점수도 크라슈에게 치환되었다.

     

   덕분에 하늘에 적힌 등수는 현재 크라슈가 1,632점으로 일등이었다.

     

   하지만 2기생들도 마냥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거다.

   레드 라인은 불가능할지언정 분명히 오렌지 라인에 도전하는 녀석들도 있을 터.

     

   ‘특급과 놈들이라면 반드시 한다.’

     

   그렇다면 점수가 한순간에 역전되는 것도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다못해 오렌지 라인에서 몇 마리 더 잡아두고 싶은데.’

     

   회복되는 대로 움직여야 할 듯싶었다.

   그렇게 크라슈가 마음먹던 순간이었다.

     

   움찔-

     

   크라슈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제 육감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알아차린 것이다.

     

   안 좋다.

   여기서 마주친다면 십중팔구 상대가 공격해 올 것이 분명했다.

     

   지친 1등을 사냥할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테니까.

     

   ‘운도 지지리도 없네.’

     

   크라슈가 우뢰성을 다시금 쥐었다.

   하지만 멸화침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검날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점에 여기까지 오는 놈들이라면.’

     

   2기생 중에서도 실력 있는 이일 게 분명했다.

   크라슈가 긴장된 눈으로 숲을 바라볼 때였다.

     

   사각-

     

   풀을 밟는 소리와 함께 크라슈가 기습을 위해 자세를 잡던 찰나였다.

     

   팍!

     

   수풀을 뚫고 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크라슈가 동시에 발을 내디딘 순간 크라슈의 눈에 검은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머리카락과 핀이 보였다.

     

   그러자 상대의 얼굴에 바로 웃음꽃부터 피어올랐다.

     

   “크라슈!”

     

   기뻐하는 음색을 담아 외치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우뢰성을 내렸다.

     

   “하링.”

     

   설마하니 그녀가 여기까지 왔을 줄이야.

   메리와의 격전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 전에 크라슈도 전심전력으로 달렸다.

     

   그런 크라슈를 어느 정도 따라왔다는 셈이니 그녀의 실력이 얼마나 일취월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만 성장하는 건 아니라는 소리겠지.’

     

   크라슈는 왜인지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꼈다.

   하링의 최근 훈련에 자신의 영향이 없잖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크라슈가 그 이름을 부르자 하링은 크라슈에게 달려오다가 그의 몸 상태를 눈치챘다.

     

   “싸운 거야?”

     

   하링의 질문에 크라슈는 자기 옷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보시다시피.”

   “침식종이 아니지.”

     

   눈치가 상당히 빠르다.

   크라슈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자 하링이 크라슈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녀는 독주머니를 열어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원기 회복을 복돋아 주는 종류야. 먹어두면 좀 괜찮을 거야.”

     

   얼떨결에 하링에게서 영약을 받은 크라슈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링은 얼른 먹으라는 듯이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하링, 하나 잊지 않았냐?”

   “뭐를?”

     

   하링은 크라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 얼굴이 너무 순진해 보여 순간 크라슈도 지금이 시험임을 망각할 뻔했다.

     

   “지금 중간 평가 중이잖아. 너나 나나 서로 경쟁자야.”

     

   하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하링은 이제야 크라슈가 무슨 말을 한지 눈치챈 반응이었다.

     

   “나 독 같은 거 안 탔어.”

     

   그러고는 건넨 영약을 걱정하지 말고 먹어도 된다는 듯이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당차게 말했다.

     

   라그렌 가문인 하링이 독을 타지 않았다는 말은 어떨까 싶지만.

   아무래도 하링은 중간 평가인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중간 평가에서 누군가를 돕지 말라는 말은 없었잖아.”

     

   확실히 그 말이 맞긴 하다.

   하링의 말마따나 누군가를 돕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거기에서 크라슈는 한 가지 맹점을 눈치챘다.

     

   ‘……침식종을 같이 사냥했을 때 점수는 어떻게 취급되지?’

     

   당장은 메리가 급해서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오렌지 라인의 6성급만 되어도 2기생 중 대부분이 침식종을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물며 레드 라인의 7성급 침식종의 경우에는 손조차 대지 못한다.

     

   정말 말 그대로 크라슈가 아니고서야 단 한 명도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교수인 가논은 사전에 학생들의 경쟁을 붙였을 뿐 서로에게 협력하지 말란 말은 하지 않았다.

     

   ‘라인마다 점수의 폭이 왜 이리 큰가 했더니.’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크라슈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점수는 균등 분배일지도 모른다.’

     

   점수의 폭이 크다면 균등 분배라고 할지라도 협력해서 침식종을 잡을 가치가 충분했다.

     

   그리고 아마 이 부분에서는 은연중에 가논 교수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라면 학생들이 서로를 죽어라 싸우기보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서로의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을 바랐을 테니까.

     

   크라슈가 하링이 건넨 영약을 즉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우적우적 씹으며 목을 삼킨 크라슈는 하링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하링, 네 말대로야.”

   “으응?”

     

   자기 어깨에 올라온 손을 의식한 하링이 움찔거리며 되묻자 크라슈는 눈을 반짝였다.

     

   “협력, 그게 교수가 의도한 바다.”

     

   두 번째로 만난 시험생이 하링이라 다행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시험의 맹점을 알아차릴 수 없었을 테니까.

     

   “너랑 나랑 같이 레드 라인으로 간다.”

     

   크라슈의 말을 들은 하링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이내 바로 두 주먹을 꽉 쥐며 의지를 보였다.

     

   “응, 나 최선을 다할게.”

     

   크라슈가 자신에게 의지해주는 것이 무척이나 기쁜 표정이었다.

   그러는 순간 몇 개의 기척이 동시다발적으로 더 느껴지기 시작했다.

     

   슬슬 상위권 녀석들이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크라슈는 하링이 준 영약 덕에 조금은 회복된 몸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오왁, 사람, 어라, 크라슈!”

   “크라슈라고?”

   “크라슈 님!”

     

   그러자 세 명의 인물이 동시에 불쑥 나타났다.

     

   발락 호그마

   글렌 다이아나

   카란디스 포세우스

     

   아니나 다를까, 특급과 세 명이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곤 주춤거렸다.

     

   그들도 일단은 서로가 적이라는 자각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셋 다 마침, 잘됐네.”

     

   가장 필요한 녀석들이 모였다.

   크라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세 사람이 동시에 의문을 보였다.

     

   그러던 순간 글렌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곳으로 올 때 크라슈 말고도 강렬한 기척을 하나 더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 기척은 메리의 것이었다.

   그러던 글렌의 눈이 크라슈와 마주쳤다.

     

   크라슈가 고개를 끄덕이자 글렌은 그 뜻을 알아차리곤 창을 꽉 쥐었다.

     

   “……그랬군.”

     

   메리가 크라슈에게 패배했다.

   마음속 저편, 한때나마 우상이었던 메리를 늘 담아 두고 있던 글렌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크라슈, 너라면 또 무언가를 하려는 거겠지.”

     

   늘 엄청난 짓을 벌이던 그다.

   이번에도 심상치 않은 짓을 벌이려 할 터.

     

   “그래, 한 가지 좀 저질러 보려고.”

     

   원래는 혼자 하려 했던 일이지만 이렇게 됐으니 가논 교수의 의도에 맞춰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너희 나랑 7성급 침식종 좀 잡자.”

     

   어디, 임시 창공의 세대 한번 만들어 보자.

     

     

   * * *

     

     

   상황실에 겨우 복구가 된 화면 너머.

   가논은 뭉치기 시작하는 학생들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시점에서 뭉치기 시작할 줄이야.’

     

   크라슈 쪽에 하링이 합류한 뒤로 빠른 속도로 아이들이 뭉치고 있었다.

   분명 시험의 맹점을 눈치챈 거겠지.

     

   ‘상황을 읽는 게 빠르군. 게다가 능력도 능력이지만 사람을 모으는 법을 알아.’

     

   이번 시험을 낸 의도 중에는 실력이 우수한 학생을 가리는 것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망을 보기 위함도 있었다.

     

   세계 침식 안에서 실력은 과하면 과할수록 좋다.

   그러나 실력이 좋다 해서 언제나 인망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라는 게 존재한다.

   이러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이 카리스마가 독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다.

     

   선장이 배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여 배가 침몰하듯.

   카리스마를 지닌 이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를 따라온 이들과 함께 침몰하게 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만큼이나 이끌어 나가는 방향을 정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크라슈는 그 방향 또한 확실하게 잘 알고 있었다.

     

   재능이 너무 뛰어난 이들은 아래의 사람을 이끄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야, 재능이 없던 적이 없는데 자기보다 모자란 이들을 어찌 다룰 수 있겠는가.

     

   하지만 크라슈는 그 부분에서 천재들과 명백히 달랐다.

   타고난 눈치가 뛰어난 건지 아니면 그러한 눈치를 어디서 길러 오기라도 한 건지.

     

   크라슈는 능숙하게 인원을 배치하고, 개인의 전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았다.

     

   지금 화면에서 6성급 침식종을 사냥하는 모습만 보아도 그 부분이 두드러져 보였다.

     

   ‘예전에 반푼이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었지.’

     

   가논은 크라슈의 과거를 떠올렸다.

     

   반푼이 시절이 있었던 것에 비해 너무 강하지 않은가 싶긴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어쩌면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걸지도 몰랐다.

     

   ‘가장 강한 이가 가장 사람을 잘 이끄는 이가 되었다라.’

     

   가논은 왜인지 학장인 듀란달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별 중에서도 수많은 별을 이끌어 나갈 별이었다.

     

   ‘이번 세대는 특출난 이들이 유난히 많은 세대니까.’

     

   오죽하면 위에서 이번 세대를 창공의 세대라며 부르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을까.

     

   ‘창공의 세대.’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갈 그들의 앞에 선두에 서게 될 이가 누가 될지는 결국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번 세대는 뛰어난 이들이 많아도 너무 많으니까.

     

   어쩌면 크라슈라고 할지라도 재능의 한계점에 부딪혀 다른 누군가를 따라 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가 창공의 세대에서 가장 선두에 선 채 달려 나간다면…….

     

   어쩌면 정말로 최강의 세대가 나올지도 모른다.

   세상을 뒤바꿔버릴 세대가 말이다.

     

   ‘나원, 라헬른 아카데미의 교수로 초청될 때까지만 해도 애들이나 돌보겠거니 했는데.’

     

   세상을 바꿔버릴지도 모를 녀석을 보게 될 줄이야.

   왜 듀란달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이제는 조금 알겠다.

     

   “교수님, 크라슈와 특급과 일원들이 레드 라인에 진입했습니다.”

     

   기어코, 오렌지 라인을 뚫고, 다섯 사람이 레드 라인에 진입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