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3

        나는 로테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제군에게 맡길 임무가 있다.”

        “가, 갑자기?”

       

        겉으로는 시치미 떼고 있지만, 입꼬리 올라가는 거 다 보인다.

       

        “우리 여름방학 때 했던 약속 기억나?”

        “…다 끝나면 우리 영지에서 같이 살자고 한 거?”

        “그 전에.”

        “마수 다 잡는 폭탄 만든다고 한 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권태로움 그 자체였던 로테의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난다. 오랜만에 생기가 도는 걸 보니 좋다.

       

        내 친구에겐 세상의 모든 마수를 토벌하여 민생을 안정시키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걸 이쪽에서 이뤄주면 나에 대한 로테의 신뢰도는 한층 올라가겠지. 물론 집착도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원자폭탄 제조 자체가 로즈마리와 거리를 두는 일이다. 로테 입장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얘가 로즈마리의 정체를 안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다.

       

        “백야는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완성했어. 작은 물체를 플라스마로 만드는 일은 이제 껌이겠지.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아?”

       

        로테가 기뻐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얼마든지 작업할 수 있다는 거잖아.”

        “정확히는, 그런 환경을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뿐이지만.”

       

        기가파스칼 단위의 고압 환경을 아주 잠깐은 만들 수 있다. 유지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상관은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폭탄은 완성 가능하다.

       

        재료는 전부 갖춰졌으니까.

       

        나는 베릴륨으로 포장된 포장지를 벗겼다. 그러자 거무스름한 빛을 띠는 원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레이, 피치블렌드 산에 올라갈 때 무슨 마법 썼더라?”

        “청결 유지해주는 거?”

        “그것 좀 부탁해.”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이는 즉발연성을 사용해 방사선 방지 스크롤을 조립하고 사용했다.

       

        이걸로 피폭 대비책은 세웠다.

       

        이론적인 부분은 설명을 마쳐놓았다. 남은 건 두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을 할당하는 것뿐. 

       

        내 시선이 방추형 구조물을 향했다.

       

        [철제 구조물(소형)]

       

        [핵분열탄을 담을 만한 크기의 철제 구조물입니다. 이 그릇을 사용할 시 예측되는 폭발력은 6~21kt입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폭탄의 위력이 15kt였다. 딱 그 정도라는 소리인데.

       

        이걸로 마왕은 못 잡는다. 

       

        그래도.

       

        “어지간한 절멸급 마수는 일격에 끝나겠지.”

       

        플레어 수천수만 발을 동시에 격발할 때 나오는 에너지가 이 폭탄 하나에서 나올 예정이다. 나나 요르문간드는 몰라도, 3석 아래부터는 확실하게 조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내부에 들어갈 폭발물을 만들 거야.”

       

        나는 손가락을 셋까지 펼쳤다. 

       

        “필요한 건 세 가지.”

        “뭔데?”

       

        우선 첫째.

       

        “90퍼센트 이상으로 농축된 우라늄, 아니면 플루토늄.”

       

        이건 이미 있다.

       

        나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둘째는 핵분열탄을 활성화할 또 다른 기폭제.”

       

        핵분열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려면 ‘압축’이 중요하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고압으로 짓눌러야만 비로소 폭탄이 터진다.

       

        과학자들은 고압을 만들어내기 위해 TNT 같은 다른 폭탄을 사용했다. 무식하고 단순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우린 그럴 필요가 없지.

       

        “화계마도에서 적당히 골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맞아.”

       

        화계마도에는 당연히 폭발형 마법도 있다. ‘레드 스톰’이라든지, ‘딜리버리 샷’이라든지. 둘 다 TNT나 RDX 대용으로 쓰이는 마법들이다.

       

        이러한 마법들의 스크롤은 그 구조가 잘 밝혀져 있다. 가져다 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이게 유일한 문제점이다.

       

        “폭탄 최심부에 중성자를 공급해 줄 점화 플러그가 필요해.”

       

        중성자,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입자다.

       

        당연히 연구나 이런 게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제국인들은 중성자는커녕 양성자 추출하는 법도 모른다.

       

        애초에 지금 시대상이 20세기 초다. 양성자는 막 발견됐다.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 중에 마소 말고도 뭔가 있다! 현재 학계는 딱 이런 분위기였다. 그런 마당인데, 중성자 점화 플러그 기술이 있겠냐고.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폭약을 압축한 상태에서 중성자를 처음에 공급해 줘야 해. 이 공급기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고.”

       

        이 점이 약간 아쉽다. 1번, 2번까진 완성했는데 마지막 3번에서 턱 걸려버리다니.

       

        다만 큰 문제는 아니다.

       

        왜냐?

       

        어떻게든 답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그걸 같이 만든다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방법은 두 가지야.”

       

        내 시선이 공중에 떠 있는 양장본으로 향했다.

       

        [중성자를 얻어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원자로를 건설한 뒤 우라늄 원자핵을 쪼개어 얻는다.]

        [2. 고에너지로 가속된 입자를 특정 시료에 충돌시켜 나온 부산물로써 얻는다.]

       

        1번은 각하다.

       

        1번 같은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건데 무슨. 이러면 주객전도밖에 안 된다.

       

        결국 2번인 파쇄법을 이용해야 한다.

       

        [역시 2번을 선택하셨군요.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글쎄. 일단 생각해 보자.

       

        저기서 ‘고에너지로 가속된 입자’는 주로 양성자를 의미한다. 양성자를 시료에 쏘아서 중성자를 튀어나오게 만드는 기법.

       

        이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내 고유마도인 ‘팔정도’에 있다.

       

        1식과 2식은 전계를 다루고, 3식과 4식은 자계를 다룬다.

       

        그렇다면 나머지 5식부터 8식까지는?

       

        뻔할 뻔 자다. 약력과 강력을 다루겠지.

       

        8식까지 전부 배우면 양성자를 중성자로 만들거나, 원자핵을 묶고 풀어버리는 기술까지 전부 다루게 된다. 사실상 중력을 제외하면 자연계의 모든 힘을 다 다루는 사기적인 능력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진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하나를 알려고 할 때마다 에테르의 기억을 어느 정도 불러와야 하기 때문이다.

       

        팔정도를 전부 해금한다? 그때 가면 내 인격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를 모른다. 아마 배신이나 그런 거 없이도 에테르에게 먹혀 있지 않을까.

       

        불확실한 건 만들고 싶지 않다. 조금 돌아가는 수밖에.

       

        나는 손을 휘적거리며 양장본에 몇 자 적어넣기 시작했다.

       

        [시료 표면에 조사할 입자를 얻어내는 방법]

       

        일단 양성자의 경우.

       

        [수소를 이온화한다.]

       

        이렇게 하면 존나 간단하다. 수소 시료를 가져와서 플레어나 백야 같은 걸로 흔들어 주면 되는데, 뭐가 어렵다고.

       

        그래, 그러면 이걸로 할까…….

       

        “잠깐, 프레이 너 뭐해?”

        “연성하고 있는데?”

       

        프레이는 말해주기 전부터 재료들을 가지고 폭탄을 압축할 챔버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것도 무영창으로.

       

        즉발연성.

       

        프레이만이 가진 편리한 마법 능력이었다.

       

        저것도 언젠가는 배워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아.”

       

        순간 머릿속에서 좋은 루트가 떠올랐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양장본을 넘겨보며 지계마도에 뭐가 있는지를 훑었다.

       

        [최상급 지계마도 ─ 자유연성]

       

        [설명 : 연성술의 최고 경지. 해당 마법을 배우면 재료와 머릿속에 든 청사진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스크롤 없는 연성이 가능하다. 지계마도사들 증 극소수만이 이 마법을 이해했다.]

       

        플레어를 완성한 이후 화계마도를 익히는 게 한층 편해졌었으니, 지계마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자유연성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난다면 다른 것들도 쉽게 넘어가겠지.

       

        “프레이, 너처럼 자유롭게 연성하는 거 말인데. 혹시 비법이라도 있어?”

        “비법? 으음…….”

       

        폭탄 내부구조를 지점토처럼 조물딱거리던 프레이가 침음을 흘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있어!”

        “뭔데?”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끝내겠는데.

       

        “많이 연성하면 돼.”

        “…뭐?”

        “많이 연성하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연성하면 된다구.”

       

        하이고 머리야. 얘한테 설명을 요구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를 많이 하면 되는 것이고, 게임을 잘하고 싶으면 게임을 많이 하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법을 잘 쓰려면 일단 많이 공부하고 연습해야겠지.

       

        이론 때문에 막힐 이유는 없다. 1학기 때 수업을 들었으니 연성술이 뭔지 기초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지계마도 적성이 아니라는 건데.

       

        “지계마도사가 아니면 연성을 못 하나?”

        “꼭 그렇지만도 않아.”

        “뭔 방법이 있어?”

       

        프레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수라는 걸 마시면 돼.”

       

        마력수라면 나도 안다. 온갖 정령의 가호를 받아 성수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전해지는 신비로운 물. 잠시나마 다른 계통의 마도를 쓸 수 있게 해준다.

       

        “근데 마력수는 비싸잖아.”

        “스크롤 혁명이 일어난 다음부터는 가격이 많이 내려갔대!”

        “그래도 비싼 건 비싼 거야. 사대정령이 전부 마력을 불어넣어야 만들어지는 물이라잖아?”

       

        무엇보다, 마력수를 구매하려면 재력 말고도 구매자에게 명성이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잘못해서 마수의 손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정령 약점 연구에 요긴하게 쓰일 테니까.

       

        시발, 이 사실을 내가 왜 아는 걸까.

       

        “왜, 연성은 내가 해주면 되잖아. 마력수가 필요해?”

        “아주 세세한 구조는 내가 직접 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에이, 설계도만 잘 짜서 주면 된다니까?”

        “너 고생시키는 것도 미안해서 그래.”

       

        무심하게 내뱉은 진심이었다. 내 말에 프레이는 갑작스레 감동을 먹은 듯 손을 덜덜 떨었다.

       

        “노, 노랭아….”

       

        꼬맹이가 눈물 닦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나 맛있는 거 사줘.”

       

        그럼 그렇지.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맥주?”

        “가장 비싼 스토라이프산 맥주로!”

       

        나는 한숨을 쉬며 알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친구 상대로 술 하나 못 사줄 만큼 각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주는 친구를 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릇 기술자는 굴리는 만큼 우대해 줘야 하는 법이다.

       

        “프레이는 만들던 거 마저 하고, 로테랑 나는 중성자 생성기나 고민하자. 그거랑 이거, 두 개만 되면 설계는 다 해놓은 거나 마찬가지야.”

        “응!”

       

        로테는 들뜬 목소리로 대꾸했다. 비록 나는 버멜처럼 상태창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로테의 스트레스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집착에는 집착이다.

       

        나한테 집착하는 걸 막으려면 도리어 연구에 집착하도록 만들어버리면 될 뿐이다. 보라. 로테의 저 세상 행복해하는 얼굴을!

       

        그 뒤로 우리는 언제나처럼 연구에 매진했다. 세 명 모두 열심히 할 의지는 남아돌았다. 남은 건 체력이 받쳐주는 것뿐.

       

        이날은 우리 모두 의욕이 체력보다 앞섰다. 그렇게 기숙사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부실에서 잠들고 말았다.

       

       

        **

       

       

        그리고 다음 날, 이변이 찾아왔다.

       

        “……뭐야.”

       

         부실 문 앞에 마력수가 잔뜩 담긴 상자가 놓여있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