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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이 시대의 실내장식은 어디를 가도 굉장히 화려했다.

        

       심지어 새로 지은 집도 그렇다. 이건 아마도 원작 설정이 충실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리라. 벨 에포크 시대라고 하면 바로 생각나는 특유의 빅토리아풍 실내장식을 그대로 활용했기에 그렇겠지. 사실 게임에서는 그렇게 꾸며두어도 엄청나게 화려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픽이 그걸 모두 확실하게 보여줄 만큼 대단하지 못했으니까.

        

       이 세계에 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실제로 그런 것들을 본 감상은…… ‘신선하다’였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살던 세상에서 보는 빅토리아 시대의 유물은 대부분 ‘헌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맛이 있어도 물건 자체가 오래되면 새것의 느낌은 많이 사라진다. 그건 역사 깊은 제도의 황궁에서도 똑같이 느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이곳이 식민지가 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기저기 새로운 집과 농장이 지어지고 있었고, 이 농장의 저택도 지어진 지 그렇게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어딜 봐도 조금 과하게 번쩍거리는 실내장식을 보고 있는 것도 여러모로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졸부’라는 느낌은 또 들지 않으니, 이 시대의 실내장식 전문가들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들인지도 알 것 같고.

        

       “황녀 전하.”

        

       우리 둘 사이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조금 과하게 예의를 차리며 공작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성격을 어디서 들은 것일까. 아니면 저번 연회에서 대충 파악한 것일까. 공작은 앞뒤 자르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나의 말에도 별로 기분 나쁜 표정은 지어 보이지 않았다.

        

       공작이 부드럽게 손바닥을 펼쳐 의자를 가리켜서, 나는 그 의자에 앉았다. 작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 둘이 마주 앉자, 메이드가 재빠르게 우리 두 사람 앞에 홍차를 한 잔씩 따라주었다. 그리고 찻주전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두고는 얼른 자리를 비켰다.

        

       저 메이드도 백인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황녀 전하께서…… 로티를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

        

       음.

        

       ‘아낀다’고 한다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우리 둘이 무슨 영혼의 단짝이라는 듯 이야기할 정도로 친한 것은 아니지만, 로티도 내가 살리고 싶은 인물 중 하나에 해당하니까.

        

       사실 로티 본인이 죽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선택지에 따라서 제이크가 로티를 구하고 사망할 뿐이지.

        

       제이크가 히로인은 아니다만, 그래도 나는 순애 커플이 죽음으로 깨지는 꼴을 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제가 그녀에게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사 작위는 정말로 수여가 가능한 것입니까?”

        

       공작은 다시 한번 그렇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뭐, 빙글빙글 돌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네.

        

       하지만 직설적이라고는 해도 저 말에 다른 의미가 없을 리는 없다. 저 안에는 ‘식민지인도 작위 수여를 받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있으니까.

        

       “불가능할 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딱 잘라서 말했다.

        

       “우선, 황제 폐하께서는 저를 신임하고 계십니다. 그런 제게 도움이 된 인물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실 만큼 인정 없는 분은 아닙니다.”

        

       내 말에 공작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제 오라버니이신 제이든 팬그리폰 황자는 황실 기사단의 기사단장입니다. 저를 무척 아끼시는 분이니,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실 만큼 야박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서 공작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관찰했다.

        

       만약 공작이 단순히 식민지인을 찍어누르기만 하는 캐릭터라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쾌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더 강하다면 떡밥을 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주인공의 ‘부모 세대’는 게임에서 중심적인 스토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가끔은 체제의 대변자로, 가끔은 사랑의 훼방꾼으로, 가끔은 든든한 지원자로 표현될 뿐. 얼굴이나 이름 정도는 나오지만, 스토리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주인공 일행이다.

        

       설정상으로 존재하는 텍스트라면 읽었고, 기억하고 있다.

        

       공작은 인종차별주의자고, 제국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그렇습니까.”

        

       공작은 웃었다.

        

       —그래, 공작은 동시에 권력욕이 강한 기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공작은 의자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걸었다. 그리고 커다란 창문 앞에 서서, 가만히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농장은 이제 어둑어둑했다. 드문드문 불빛이 보이긴 했지만, 그게 침입자를 경계하는 불빛인지 아직 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있는 불빛인지는 잘 모르겠다.

        

       “황녀님, 이 체제가 얼마나 갈지 알고 계십니까?”

        

       “영원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의외의 말을 들어서 눈을 조금 크게 떴지만, 다행히 창밖을 내다보는 공작에게 들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식민지에는 인구가 많으니 원료를 헐값에 사 가공해 비싼 가격에 팔아도 살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어떤 집단이 가질 수 있는 부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죠. 그걸 계속 뜯어내다 보면 결국 끝도 없을 것 같던 금광도 메마르게 되는 법입니다.”

        

       공작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저는 요즘 들어 그걸 느끼고 있습니다.”

        

       “반란이라도 일어날 것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나의 질문에 공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 아십니까? 본국의 사람들은 식민지 원주민을 노예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법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제국에서 노예제는 한참 전에 폐지되었지요. 그 노예들의 피부가 우리와 같은 색일 때도 있었고, 다른 색일 때도 있었지만, 법적으로 더 이상 노예는 없습니다.”

        

       “식민지인들이 자유민이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아니지요. 법적으로는 제국의 적법한 신민입니다만, 그뿐입니다. 함부로 이사할 수도 없고, 투표권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희가 이미 그들을 노예화할 시기를 놓쳤다는 말입니다.”

        

       공작은 다시 창문 밖을 보았다.

        

       “저희가 이쪽으로 오기 전, 저들은 여러 나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계급이 나뉘어 있었고, 그렇기에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감대가 전혀 없는 것은 또 아니지요.”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자.

        

       “이 땅에도 한때 거대한 제국이 존재했습니다. 수백 년 전에 갈라지긴 했지만, 적어도 한 번은 대륙 전체를 호령하는 대제국이, 문화를 꽃피우던 제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이제 그 역사를 조금씩 다시 수집하고 있습니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같은 문화권의 같은 인종’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죠.”

        

       이 세상은 이제 막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있는 참이었으니까.

        

       “법적으로는 자유인이고, 필요하다면 일하지 않을 수 있고, 일단은 사법권의 범위 안에 들어있는 자들이 하나의 공감대를 가지고 단체를 형성하기 시작하면……”

        

       “…….”

        

       “나름대로 조절하려고 애를 쓰고 있긴 합니다. 겨우 먹고 살 만큼 임금을 주면, 여유가 사라지니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어지지요. 어쨌거나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업을 하면 너희는 굶어 죽는다, 그런 인식을 심어주면 조금은 늦출 수 있겠습니다만.”

        

       “언젠가는 들고 일어나게 되겠죠.”

        

       내 말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황녀님의 그 일은 무척 대단한 일입니다. ‘식민지 출신이라도 공을 세우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어…….

        

       아뇨,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요.

        

       “황녀님의 계산대로라면 로티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겠지요. 먼 훗날에 교과서에 이름이 실릴 수 있을지 모르는.”

        

       그게…… 그렇게 되나?

        

       나는 그냥 공작가 아들이랑 결혼하기 좋은 최소한의 조건이라도 만들어주려고 했을 뿐인데.

        

       “황녀님은 저희 아들이 로티와 결혼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작은 알 것 같다는 듯 웃었다.

        

       “황녀님께서 어떤 생각인지는 대강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생각인데요?

        

       아니, 나는 그냥 고구마 커플이 얼른 이어져서 염장이나 지르고 돌아다녔으면 했을 뿐인데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희 아들이 피부색 다른 인종과 결혼하는 것이…… 심적으로는 조금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공작은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나에게 말했다.

        

       “제 아들이 로티를 특별히 아끼는 것도 사실이니, 어느 정도 조건만 맞는다면 아들을 사랑하는 아비로서 허락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그 어느 정도의 조건이라는 건, 작위 이상의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희가 이쪽으로 건너와 살게 되었는지도 세월이 꽤 오래 지나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본국에 아무런 애정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다고 신하 된 자로서 황녀님께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도 없지요.”

        

       공작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저희는 황실과의 ‘진실한’ 우정을 원합니다. 부디 로티가 그 증인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직접 시간까지 제시하고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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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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