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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이, 이게 도대체…”

         

       최마리는 믿을 수 없었다.

       눈앞에 징다람이 보였다.

       틀림없는 진짜였다.

         

       정교한 환각 같은 게 아니었다.

         

       최마리가 이리 놀라는 이유는 약 1시간 전.

         

       징다람이 분명 다른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트, 틀림없이…’

         

       그녀의 뒤통수까지 확인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러다, 징다람의 손에서 꾸물거리는 <슬라임>에 다시 움찔거렸다.

         

       생각해 보니 저 금지 물품, <거짓된 거죽>이 단 하나만 있으라는 보장은 없었다.

         

       “…설마, 지금 시험 보러 들어간 존재는…”

        “대타야~뭐 본인은 대타인지도 모르겠지만.”

       

       징다람은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곧 거짓말처럼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나지막한 신음이 들려왔다.

         

       틀림없이 피를 흘리는 신빛가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징다람은 혀를 찼다.

         

       손에 들린 메이스를 붙잡아, 둘러싼 얇은 막을 벗기며 투덜거렸다.

         

       “나름대로 전력을 다한 내려찍기였는데,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는데…”

         

       신빛가람은 그걸 무방비하게 맞았음에도 죽지 않았다.

         

       징다람은 절로 화가났다.

       자신의 위대한 첫 시작은, 피와 뇌수를 흘리는 <수녀원장>의 시체에 발을 올리고 싶었는데 말이다.

         

       “역시 <수녀원장> 자리는 딱지치기로 얻은 게 아니다 이거지?”

       “…마우우!”

       

       최마리는 침을 삼켰다.

       당혹스러움을 숨기며, 냉정하게 판단하였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하지?

         

       ‘우, 우선 시간을 벌자!’

         

       최마리는 조심히 신빛가람을 내려놓으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양팔을 위로 올리며 조금씩 다가갔다.

         

       “다, 다람아. 우리 말 좀…?!”

       

       그러다 곧 코를 타고 풍겨오는 역한 냄새에 절로 질겁하였다.

         

       메이스에 감긴 막을 풀자, 풍겨오는 진한 검은빛 연기.

         

       동시에 징다람의 몸에서도 그와 흡사한 냄새가 풍겨왔다.

         

       틀림없었다.

       응, 틀림없다.

         

       분명, 농밀하게 압축된…

         

       <마기>였다.

         

       최마리의 안색이 파랗게 질렀다.

         

       “다, 다람이 너?”

       “그래, 맞아.”

         

       징다람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어졌다.

       흔히 역안이라고 불리는 마족안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나, <마인>이 되었어.”

         

       인간이기를 포기했지.

         

         

       * * *

         

         

       때는 아직 징다람이 <마인>이 되기 일보 직전의 일이다.

         

       징다람은 과거를 회상했다.

         

       눈앞에 보이는 소년을 향해 온갖 울분을 토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폭로했다.

         

       소년은 천사처럼 하나하나 모든 걸 들어줬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징다람의 마음이 개운해졌다.

         

       어, 근데…

         

       ‘…기억이 잘 안 나네.’

         

       소년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분명…

       이름도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이 흐릿한 안개처럼 사라져갔다.

         

       ‘상관없지.’

         

       징다람은 고개를 털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의 도움 덕에 자신이 <궁극의 힘>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다.

         

       그 남자가 건네준 이 힘.

       몸에 흐르는 정체불명의 ‘약물’과 함께 손에 들린 메이스이자, 성유물이었던 것.

         

       마지막으로…

         

       ‘지금 내 몸 안에 있는…’

         

       ‘그것’까지.

         

       징다람으로서는 한평생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힘을 너무나도 쉽게 손에 넣었다.

         

       징다람은 기쁨만큼이나 약간의 허탈함을 느꼈다.

         

       그동안의 노력이, 발버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느낌이었으니까.

         

       ‘상관없어.’

         

       이거라면 모든 울분을 풀 수 있었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저벅저벅.

         

       한 걸음씩 걸어오는 징다람.

         

       누워있던 신빛가람이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소리쳤다.

         

       “당신…! <마인>으로 전락할 줄이야. 설마 그렇게까지 본성이 썩어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어이없는 소리를…알고 있었잖아?”

       

       내가 개년인 거.

         

       “…이러고도 무사할 거로 생각하시나요? 곧 교수들이 몰려올 겁니다.”

        “그런 거였으면 진작에 채점하는 분이 들어왔을 텐데?”

       “…!”

       

       신빛가람은 마른침을 삼켰다.

         

       실제로도 지금 그녀가 이리 소리치는 건 징다람에 대한 규탄도 있지만, 시간 끌기의 목적이 더욱 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교수는 오지 않았다.

         

       아니, 당황하는 자매님들을 보았을 때 연락 수단 자체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수를 쓴 건가.’

         

       아마 이게 가능한 이유는 불길하게 빛나는 저 메이스겠지.

         

       그리고 이러한 신빛가람의 모습에 징다람 진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힘이 발동 안 되나 봐?”

       “……!”

       “내가 건네준 손수건…효과 좋지?”

       “…당신, 그냥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제대로 된 곳에 지원받았군요.”

         

       신빛가람은 하나라도 더 정보를 알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한 의도를 눈치채는 징다람.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어차피 그녀는 오늘 죽을 테니까.

         

       “맞아. 나…”

         

       <타르타로스>에 들어갔거든.

         

       “……!!!”

       

       생각 이상으로 큰 거물에 최마리, 신빛가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냥 적당한 범죄 클랜인 줄 알았는데…’

         

       설마 뒤 세계의 왕으로서 군림하는 악인들의 눈에 들었을 줄이야…

         

       징다람은 절망하는 둘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능감이 전신을 타고 맴돌았다.

         

       쿠구구-!

         

       메이스를 타고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마기가 용오름 쳤다.

         

       그것은 징다람의 몸으로 스며들며 그녀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다.

         

       [타락한 성유물 ‘칸의 미로’에게 생명을 바칩니다.]

       [영구적으로 수명이 줄어듭니다. 신성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5씩 상승합니다.]

         

       모든 힘에는 대가가 있는 법.

         

       징다람이 느끼는 전능감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생명을, 미래를 담보하여 가져오는 힘이었다.

         

       평소의 정신머리가 똑바른 징다람이었다면 죽어도 쓰지 않았겠지만, 이미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할 수 있어!”

         

       징다람은 크게 소리쳤다.

         

       마치 누군가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태도였다.

         

       “당신 말대로 이거라면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요!”

       “…당신?”

       “최마리에게 복수하고, 신빛가람을 죽이고!”

         

       더 나아가 내가 <수녀원장>의 자리에 차지해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 그런 미래를!

         

       허무맹랑한 말에 신빛가람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웃기지 마십시오!”

         

       외침은 곧 신호가 되었다.

         

       삽시간에 징다람의 주변을 둘러싸는 다른 수녀들.

         

       다들 처음에 놀라서 얼을 탄 거지.

         

       전원 <시스터 후드>의 2학년 전투 수녀들이다.

         

       비록 괴수와의 싸움으로 지쳤다고 하나, 이런 불신자 하나 처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징다람은 개의치 않았다.

         

       “누가 혼자래?”

       “……!”

         

       신빛가람은 뒤늦게 눈치챘다.

         

       사라지지 않은 보스들의 시체 정중앙.

         

       어느새 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올랐다.

         

       삽시간에 사체를 집어삼킨 마법진은, 검은빛 충격파를 일으키며 한 마리의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켰다.

         

       “꺄아아악!”

       “뭐, 뭐야?!”

         

       쾅-!

         

       -카아아아아악!!!!

         

       소환진 안에서 걸어 나온 것은 독수리의 얼굴과 날개, 사자의 몸통, 염소의 다리와 뱀의 머리를 가진 존재.

         

       흔히, <키메라>라고 불리는 괴수였다.

       베이스는 아마 A급 괴수 <그리폰>.

         

       그러나 이 존재가, 단순한 괴수가 아닌 전혀 다른 무언가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드러났다.

         

       “마, 마기? 설마 마수!?”

         

       <마수>.

         

       이계의 힘이자, 마왕들이 권능을 발휘하는 데 쓰는 고농축 에너지.

       <마기>를 머금은 새로운 종.

       확실한 건 동랭크 괴수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인류의 주적이었다.

         

       -카이이이익!!!!

         

       통칭, <키메라 그리폰>의 굉음이 퍼져나갔다.

         

       소리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무언가의 스킬이었는지 괴성을 들은 수녀들의 몸이 점점 느려졌다.

         

       “자, 놀이 상대야. 재미있게 놀라고.”

       “카이이익-!!!”

         

       <키메라 그리폰>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 2학년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사방팔방 날뛰기 시작한다.

         

       한번 발톱을 휘두를 때마다 수녀들의 성스러운 체인 메일이, 성자의 기름을 발라 제련한 은제 버클러가 부서졌다.

         

       <키메라 그리폰>도 공격할 때마다 성력이 몸에 감돌며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특유의 터프함과 재생력으로 커버하였다.

         

       “마, 막아!”

       “다들 조심…꺄아악!”

         

       아비규환의 비명.

         

       이미 대부분의 힘을 시험에서 쓴 수녀들이다.

         

       여기에 냉철하게 지휘하고 인도해 줄 신빛가람의 부재가 결정타였다.

         

       그나마 2학년들이기에 접점을 유지하지, 얼마 가지 못할 거다.

         

       신빛가람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부들거리면서도 최마리를 향해 또렷이 말을 전한다.

         

       “…마리 후배님. 도망치세요.”

       “서, 선배님!”

         

       징다람은 비웃었다.

         

       “푸하하! 도망치긴 뭘 도망쳐! 이미 이곳 주변에는 <인식 저해 미로>가 펼쳐진 지 오래야!”

         

       너희들 단 한 명도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거야.

         

       “오늘 여기서 다 죽는-”

         

       “-닥치십시오!”

         

       “……!”

         

       “그리 많은 기회를 줬음에도 주신님의 뜻을, 자매님의 호의를 거절한 당신 같은 배교자가 함부로 소리칠 장소가 아닙니다!”

         

       본인의 열등감에 두 눈이 먼 어리석은 자여.

         

       “주신의 13번째 철퇴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신빛가람의 두 눈에 단죄라는 감정이 활활 타올랐다.

         

       강렬한 패기에 공포에 질린 징다람이 뒤로 물러섰다.

         

       이내 그 사실을 알고 얼굴을 팍 구겼다.

         

       제대로 힘도 못 쓰는 허수아비를 상대로 겁을 먹었다고?

         

       또?

         

       징다람은 격노하였다.

       부들부들 몸이 떨리며, 당장이라도 죽일듯한 살기를 뿜어댔다.

         

       그래…

       그리 죽고 싶다면…

         

       “가장 먼저 죽여주지.”

       “……”

         

       징다람은 달렸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을 거다.

         

       이 가증스러운 수녀원장의 뚝배기를 확실하게 날려버릴 거다.

         

       징다람은 메이스를 높게 치켜들었다.

         

       구석에 있던 최마리가 ‘안돼!!!’하고 비명을 지른다.

         

       “잘 가라고 수녀원장 양반.”

       “……”

         

       붕-!

         

       닥쳐오는 파공음.

         

       신빛가람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녀가 생각하는 건, 부디 다른 자매님들이 무사하기를 비는 것이었다.

         

       ‘부디, 주신이시여…’

         

       지켜보신다면…

       그들을 도와주세요.

         

         

       *

         

         

       그 순간.

         

       신빛가람의 귓가에 선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배. 고개 숙여요.”

       “……!!!

         

       파지직-!

         

       핏빛 같은 붉은색의 번개.

         

       고개를 숙인 신빛가람은,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그것을 증명하는 신의 사도가 지금 눈앞에 등장했으니까.

         

       콰르릉-!

         

       슈컥-!

         

       신빛가람 조차 움찔하고, 놀란 만큼 날카로운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뭔가가 잘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징다람의 입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졌다.

         

       “꺄아아악!!!”

         

       신빛가람은 ‘아…’하고 짧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것은 옆에서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마우우!’거리는 최마리도 마찬가지였다.

         

       몰락한 용의 잔재, <해룡>을 상대할 때 보여주었던 그 굳건한 등이 다시 한번 찬란한 빛을 내었다.

         

       “마우우, 마우우! 세, 세하 후배님!”

       “쿨럭, 후배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유세하.

         

       [성자의 검]을 붙잡은 그가, 징다람의 양팔을 통째로 잘라버리며 등장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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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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