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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

     

    달빛조차 들지 않는 어둑한 골목, 우두커니 서있는 가면을 쓴 남성이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꽤 늦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그냥 돌아가야겠군.’

     

    약을 사기로 한 시간이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약쟁이가 약시간을 늦을 리 없으니, 어디서 약 잘못 먹고 죽었거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것이라면 아무리 기다려봤자 오지 않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마나의 움직임에, 그는 곧장 두어 걸음 발을 뒤로 뗐다.

     

    화륵!

     

    그러자, 발걸음을 향하던 골목이 검은 불길로 인해 완전히 막혀버리고 말았다.

     

    ‘말도 안돼, 위협은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벽면을 타고 흐르는 검은 불길은 그를 완전히 포위하듯 감싸버리고 말았다.

    단 하나의 길을 빼고 말이다.

     

    퇴로를 막은 것이 명백한 행위.

    무언가 심상치 않다.

     

    잠시 후, 골목을 가로막으며 다가오는 검은색 차 한 대.

    평범한 자가용처럼 보이지만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수준급의 마법방어 코팅이 된, 자가용의 탈을 쓴 전차인 것을.

     

    ‘마법을 써봤자, 저건 생채기도 못 내겠군.’

     

    그렇다면 어디로 도망을 쳐야 할까, 도주경로를 찾고 있는 그에게, 차 안의 남성이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

     

    “이봐,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거니까 안심해, 일단은 말이지.”

     

    찰칵, 검은 차의 문이 열렸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차에서 내린 것은 하얀 정장을 빼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험상궂은 사내.

    그리고 그를 따라 차에서 내리는 검은 정장의 떡대 몇 명.

    그는 다가오려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을 제지하고는 먼저 가면을 쓴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을 건넸다.

     

    “이야기는 들었다만, 생각보다 더 어리군? 그 나이에 그 정도면 수완이 꽤 좋은 모양이야. 아니면, 어디서 ‘좋은 사냥개’를 구했던가.”

     

    “……누구지?”

     

    “맙소사, 이 친구 진짜 어리네. 나야, 나. 딜런트. 네가 지금 운영하는 그 빌어먹을 시설의 원래 주인이라고.”

     

    딜런트? 맙소사, 바로 그였다.

    그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이 끝난 즉시, 그가 취할 행동은 정해져있었다.

     

    심장의 고리를 돌리며, 심상을 전개한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를 뒤흔들고, 현실의 법칙을 다시 쓰는 권한, 바로 마법의 발현.

     

    남자의 손에서 뻗어져나가는 현상의 제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상급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마법, 파이어볼트였다.

     

    팡-!

     

    지팡이 없이 마법을 쓰는 것은 서클이 있다고 해도 목숨을 담보로 건 기예와 같은 행위였으나, 그는 전혀 아랑곳 않고 비릿한 미소를 지은 표정 그대로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붉은 빛의 구체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그것은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다는 듯이.

     

    “우리, 일을 귀찮게 하지 말자고, 서클러. 내가 이야기만 한다고 했잖아.”

     

    백색 정장의 가슴께에 꽂힌 검푸른색의 브로치가 스산하게 빛났다.

    그리고, 딱.

    남성의 손가락 튕기기에 날아가던 불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마법의 해석과 분해? 아니.

    그것은 단순한 마법의 파괴행위였다.

     

    “……큭!”

     

    마법을 거칠게 파괴당한 탓인지, 반동으로 그의 심장에 가해진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평소 심장에 가해지는 충격에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를 수준.

    그는 심장을 쥔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흔들리기 시작한 서클을 겨우 붙잡아들면서.

     

    그런 그를 향해 다가온 딜런트는 그의 얼굴을 걷어찼다.

     

    -빡!

     

    “크헉!”

     

    그의 가면이 거의 벗겨질 뻔 했지만, 다른 손으로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가면에 금이 간 상태임을 알려오고 있다.

    “자,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

     

    꾸욱…….

     

    “윽.”

     

    쓰러진 남성의 가슴팍 위에 구둣발을 올린 채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딜런트는 문득 콧잔등을 어루어만지며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음? 우리,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가?”

     

    “흔한 얼굴이라서, 그럴 지도…….”

     

    가면에는 자신을 ‘흔한 인상’으로 바꿔버리는 마법이 인챈트되어 있었다.

     

    비록 금가서 부숴지기 직전이지만,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은 듯 목소리를 지어내며 말했다.

    이 마법을 인챈트한 마법사의 역량을 떠올리며, 이정도 충격으로 마법이 지워질 리 없다고 속으로 몇번이고 되뇌이면서.

     

    “흠, 확실히.”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직 가면의 마법은 통했다.

    무심코 내뱉을 뻔 한 한숨을 집어삼키며, 그는 물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지?”

     

    “아, 별거 아냐.”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말을 이었다.

     

    “’서드’라는 놈을 아나?”

     

    멈칫.

     

    “……글쎄.”

     

    “푸하하, 시치미 떼려고? 그러지 말자고, 우리.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남성의 발이 그의 가슴에서 서서히 어깨로 이동했다.

    그리고…….

     

    -콱!

     

    뿌득, 하는 울림이 어깨로부터 전해져온다.

    반드시 부서졌다는 느낌, 그는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그게 지금 네놈이 ‘쓰고’있는 ‘서클러’ 새끼지? 난 그 놈만 받아내면 돼. 알겠나?”

     

    “……윽, 대체 넌 그 녀석이 왜 필요한거지?”

     

    “흐음……. 그냥 화풀이야. 그것도 상당히 나를 빡치게 했지. 그 녀석이, 예전에 나를 꽤 곤란하게 했거든?”

     

    그는 어깨를 짓밟은 구두에 더욱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놈의 위치를 알고 싶다고. 말하기 싫나? 음, 그럼 여기서 죽으면 돼.”

     

    -꾸욱…….

     

    엄습하는 고통, 그는 쥐어짜내듯 외쳤다.

     

    “……당장은 안돼! 하지만, 불러낼 수 있을 거야!”

     

    “그래, 이제야 좀 협조적으로 나오시는군.”

     

    스윽, 그제서야 어깨에서 치워지는 그의 발, 그는 뒤의 사내들에게 손짓으로 그를 일으켜세워주라 명령했다.

    억지로 세워지느라 부서진 어깨에서 통증이 올라왔지만, 이빨을 씹으며 참아냈다.

    그 모습이 꽤 만족스러웠던 건지, 딜런트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불러내.”

     

    “잠깐만 시간을 줘, 그는 지금 바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던 딜런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를 바라보던 딜런트.

    그는 문득 입을 열었다.

     

    “흠. 그래, 나라고 마냥 불가능한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아. 시간은 주지, 3일? 어때, 이 정도면 넉넉하겠지?”

     

    “……좋아.”

     

    “아 참, 만약 그 시간에 네가 도망을 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마. 결국 추적해서 잡히면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될 테니까. 그 서드라는 녀석도, 결국엔 이렇게 우리가 알게 됐잖아? 그 녀석이 숨어서 생활할 수 있었던 건 그 놈이 잘 숨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굳이 놈을 찾지 않아서’ 였다는 걸 잘 알아두라고.”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듯 그는 검은 차의 뒷좌석에 몸을 싣고 문을 닫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그동안 네 사업장들도 싹 넘길 준비해. 어차피 네놈도 내게서 약탈로 얻어낸 거니까 너무 억울해하진 말라고.”

     

    부우웅-.

     

    곧 울려대는 마력엔진의 소리.

    검은 차는 금방 골목을 떠나 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어느새 사라진 검은 불길로 그을린 벽을 바라보며 그는 씹어 뱉듯 중얼거렸다.

     

    “……제기랄.”

     

    그리고 그 골목의 어귀, 추레한 행색의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나 들킬세라 빼꼼히 내밀었던 머리를 집어넣은 그는, 안도한 숨을 내뱉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휴우, 참 무서운 세상이구만…….”

     

    약팔이가 있길래 한번 말이나 걸어보려고 했는데…….

    뭔가 위험한 것에 발을 들이게 될 뻔 했다.

    오늘만큼은 자신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으리라.

     

    ——

     

    다음날 아침, 예르나는 미뤄두었던 책장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막상 사서 꽂아 놓고서는 펼쳐보지도 않은 책들은 또 왜 이리 많은 지, 정리를 시작하고 보니까 그제서야 보이는 책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하나하나 꺼내볼 때마다 추억이 떠오르는 것들이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 이거 기억난다.

     

    ‘숲의 드라이어드와 함께.’

     

    제목은 이렇지만 이건 몬스터가 나오는 소설이 아니고, 숲 속에 살지만 못생겼다며 ‘드라이어드’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인간 여인과 엘프 영주의 만남을 묘사한 로맨스소설이다.

    내용은 굉장히 멀쩡하고 재미있는 내용이었지만 제목만 보면 몬스터와 이렇고 저런 것을 하는 내용으로 보이기 때문에 항의를 받은 건지, 개정판에서는 이름을 ‘숲의 마녀’로 바꿔서 나왔다고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이름을 달고있는 책은 꽤 희귀한 책이 되었다고 하던가?

     

    “…….”

     

    뭐, 자신은 그냥 망해가는 서점에서 묶음으로 팔던 것을 구매했을 뿐이지만은.

     

    그런 생각을 하며 예르나는 정리를 위해 쏟아 놓은 책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지만, 한때 저것들을 보고 웃었고, 두근거렸고, 아련한 감정을 받기도 했다.

    이왕 책들 정리하는 거, 이참에 필요 없는 책들은 버리려고 했는데 저 종이뭉치들 하나하나에는 모두 자신의 추억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이미 다 읽은 책들도 그냥 버릴 수 없었다.

     

    비록 서점 재고정리에 떨이로 구매했다고 해도말이다.

     

    마치 숲 속에서 예상치못한 만남으로 알게된 10살짜리 여자아이처럼.

    예르나는 꺼냈던 책들을 다시 일일이 집어서 아이들이 손 닿지 않는 곳에 잘 끼워놓고 있다가, 문득 침대 밑에 구겨진 채 버려져있는 종이뭉치를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이게 뭐지?”

     

    뭔가 싶어서 구겨진 종이를 펼쳐보니, 그것은 더하기와 빼기 문제를 적어 둔 종이였다.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이 필체는 분명 루크의 필체인데……. 루크가 뭐하러 덧셈과 뺄셈을 이렇게 한단 말인가?

    이미 전국 마법 경시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마당에.

     

    그 때, 안방의 책장정리를 위해 거실로 내보낸 아이들이 꽤 소란스러웠다.

     

    “디아나, 왜 공책이 조금 찢어져있는 게냐? 남은 페이지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아, 그, 그거? 모, 모르겠는데.”

    “디아나, 거짓말은 안된다. 어디에 숨겼는지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또 다시 처음부터 문제를 풀게 할 수 밖에.”

    “으앙! 공부 싫어! 나 신부 안 될래!”

    “디아나, 도망치지 말거라!”

     

    아하, 이거. 디아나가 풀던 문제였던 모양이다.

    공부라도 시키고 있었던 모양이지?

    루는 정말 성실하다니까, 그냥 사이좋게 놀기만 해도 충분할텐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

     

    휴대폰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익숙한 번호였다.

     

    -아, 저번에 보내준 사진은 잘 받았나?

    “네, 혹시 또 새로운 사실이라도 발견하셨나요?”

    -아니, 이번엔 새로운 정보는 딱히 없어. 하지만, 이건 네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뭐죠?”

    -딜런트가 지금 에이레스에 있다고 하는구나. 며칠 전에 ‘단탈리온’이라는 가명으로 입국했어. 입국을 딱히 숨길 생각도 안 했던데.

    “딜런트가……. 말인가요?”

     

    익숙한 이름에 예르나는 급격히 표정을 굳혔다.

    딜런트, 그 ‘고아원’의 원장.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

     

    구깃, 예르나의 손에 잡혀 있던 공책 페이지가 예르나의 손에 다시 한번 구겨졌다.

     

    무기징역은 어떤 녀석들에게는 명백히 쓸모없는 제도임이 틀림없다.

    그때 무리하더라도 마무리를 지었어야 했는데…….

    혼자 남을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미안해서 그만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그래. 그 녀석, 너를 찾는 중일지도 몰라. 조심해.

     

    “……알겠어요.”

     

    하지만, 그가 과연 자신을 찾고 있는 게 맞을까?

    확실히 요즘은 옛날보다 흔적을 많이 남기며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딜런트 같은 뒷세계의 인물이 자신과 카리나를 연관지을 수 있을 정도로 막 살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에이레스에 있는 줄은 모를텐데…….

     

    “…….”

     

    그 순간, 예르나는 머릿속에서 일전에 받은 ‘고양이’사진과, 뿔 달린 고양이가 어쨌다는 둥 하던 인신매매범의 이야기를 연관지었다.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든다.

    혹시 그가 루크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저, 대장님?”

    -응?

    “그 녀석,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봐주실 수 있을까요?”

    -네가 직접 나서게? 그건 위험할텐데?

    “그래도요.”

    -……음, 그래. 내가 곧 연락하지.

     

    찰칵, 전화기를 끄자 때마침 안방의 문이 열리며 루크가 들어왔다.

     

    “저, 예르나. 정리중에 미안하네만, 혹시 여기서 찢어진 공책을 보지 못했나?”

    “아, 혹시 이거 말하는 거야?”

    “어디, 한번 보세나.”

     

    루크의 물음에 예르나는 곧장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던 종이조각을 건네주었다.

     

    “아, 맞아. 바로 이거일세, 고맙군. 디-아-나-!”

     

    루크는 그것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지어내며 디아나를 외쳤다.

     

    “벌써부터 이런 잔꾀나 부리다니, 대체 어찌 되려는겐가! 안 되겠다, 너는 또 100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니, 그리 알거라!”

     

    “흐아아앙!”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도 사실 구몬 풀다가 몰래 한두장 찢어서 버린기억이 새록새록…
    다음은 오랜만에 서드랑 만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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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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