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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청강생들이 모두 온 것이 확인되자, 견학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상급생들의 인도에 따라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을 반긴 것은 까마귀 가면을 쓴 사람의 석상이었다.

         

       교정에 있는 황제의 동상은 후원자에 대한 예의로 세웠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이 석상에 가해진 정성은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석상 자체에 들어간 노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천장의 높이, 기둥의 배치, 조명의 각도 등.

         

       입구의 모든 구조가 석상이 주는 경건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것 같았다.

         

       문 앞에 서서 석상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어떤 거룩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석상의 주변에는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려주는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돌로 만든 표지석 위에는 <황립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청강생들은 석상의 모습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청 중요한 인물 같기는 한데, 누구지?”

       “저런 곡예사도 있었나?”

       “곡예사보다는 광대 쪽 같은데…….”

         

       그들의 웅성거림에 클라라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모르셔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에요. 이분은 서커스와 관련된 인물이 아니니까요.”

         

       그 말에 청강생 대부분은 “그럼 왜 여기 있는 거야?” 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왜 없는지도.

         

       “이분은 성자 빅터입니다.”

         

       레카체프는 28년 전, 한 명의 궁정 광대와 다섯 명의 곡예사에 의해서 세워졌다.

       당시 황제는 정교회(丁敎會)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온갖 술책을 다 동원했다.

         

       그가 진행했던 사업 중 하나가 유서 깊은 성당들을 사들여 서민들을 위한 문화 시설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레카체프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이런 으리으리한 석조 건축물이 고작 서커스 학교를 만들기 위해 지어졌을 리 없었다.

       이곳은 한때 정교회의 대성당이었던 곳이다.

         

       “네. 우리가 사용하는 이 건물의 원래 이름은 ‘성 빅터 대성당’입니다. 다른 말로 ‘기적궁’이라 칭해지는 장소죠. 성 빅터에 대해서는 다들 아실 겁니다. 흑사병 퇴치와 더불어 역병 군주라는 마귀를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분이시죠.”

         

       클라라는 그렇게 까마귀 가면을 쓴 남자의 동상 앞에 서서 성 빅터의 업적과 대성당의 연혁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서커스와 관련 없는 내용이었지만, 클라라의 말솜씨가 좋았기에 다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설명을 경청했다.

         

       “그런데 성 빅터를 왜 이렇게 무섭게 표현했죠? 까마귀 가면이라니요.”

       “그러게요. 보통 성당의 색유리에 있는 성 빅터는 금발 미남자로 그려지던데요.”

         

       청강생들의 질문에 클라라는 레카체프 최고의 모범생답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답변해주었다.

         

       “물론 보통 성 빅터는 준수한 미남자로 그려지지요. 하지만 이곳 예테린푸르크는 성 빅터께서 기적을 행사하신 땅입니다. 실제로 그분이 병자들을 구호하셨다는 활동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요. 그분은 역병이 창궐한 땅에서는 항상 까마귀 형태의 가면을 쓰고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이 근방 교회들의 색유리에는 성 빅터의 자리에 금발 미남자 대신 까마귀 가면을 쓴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클라라는 학생들을 이끌고 학교 건물 곳곳을 돌며 거기에 얽힌 내력이나 현재의 쓰임새 등을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주는 능력이 뛰어났다.

       느닷없는 질문도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덕분에 레카체프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지닌 아이들조차 그녀에 대해서는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 건물의 개략적인 부분을 훑은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학교 중심부에 있는 정원이었다.

         

       “우와아.”

       “이게 다 뭐야?”

         

       정원에 들어서 아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곳은 40m 정도 되는 높이의 건물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정원이라는 이름답게 나무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보통 정원처럼 다양한 수목은 없었다.

         

       오직 한 종류.

       대나무만이 있었다.

         

       “저희 레카체프의 명물인 ‘정글짐’입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정원은 대나무들이 듬성듬성 수십 미터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그러나 듬성듬성하다는 것은 수직으로만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수평과 대각선까지 포함한다면, 이 숲은 제법 빽빽한 편에 속했다.

         

       정글짐의 대나무들은 위로 곧게 뻗다가 중간에서부터 사방팔방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엘라는 죽림의 정경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녀가 자랐던 학교 앞마당에도 이것과 비슷한 물건이 있었다.

       사부님이 직접 목재를 구해와 끈과 망치를 이용해 복잡한 형태의 골조를 짜 올렸다.

       아이들에게 근력과 균형 잡기 훈련을 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사부님이 만들었던 그것은 이것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곳 대나무들에는 인공적인 결합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대나무를 대각선으로, 수평으로 자라게 한 거지?”

         

       한 청강생이 던진 질문에 답한 것은 구석에서 튀어나온 지저분한 차림새의 노인이었다.

         

       “바로 나다!”

         

       그는 풀과 흙투성이의 앞치마에 원예용 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는 이 학교의…….”

       “정원사죠?”

         

       엘라가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늙은 정원사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으잉, 어떻게 알았지?”

       “그냥……그런 느낌을 받아서요.”

       “호오, 자네 혹시 원예를 배워볼 생각은 없나? 여기 녀석들이 나무를 어찌나 험하게 다루는지. 매일매일 부러지거나 떨어진 부분을 돌봐줘야 해. 접붙인 부분의 강도와 탄성의 유지를 위해서 사용되는 약물은 연금술 길드에서 개발한 건데…….”

         

       갑자기 끼어든 노인의 두서없는 설명에 청강생들은 급격히 분위기가 지루해지는 것을 느꼈다.

         

       엘라가 재빨리 끼어들어 그의 말을 잘랐다.

         

       “됐어요. 서커스 얘기하는 데 정원 일에 대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이 학교 애들만 버릇없는 게 아니었군! 하여간 곡예사라는 애들은…….”

         

       정원사는 그녀를 한 번 흘겨보고는 툴툴거리며 교정 방향으로 사라졌다.

         

       클라라는 학생들을 향해 난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원사님이 이 죽림에 투정을 부리시는 이유가 있어요. 저희가 워낙 자주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죠. 이 죽림은 단순히 관상 용도가 아니에요. 저희 레카체프의 학생들은 이 정글짐을 학교를 이동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데 쓴답니다.”

         

       그녀는 정원 한가운데에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정원을 둘러싼 건물 외벽에는 층마다 사람 두 명은 너끈히 통과할 수 있는 커다란 창문들이 뚫려 있었다.

         

       “다음 견학할 곳은 교수님들 집무실이라고 했죠? 그곳은 5층이랍니다.”

         

       클라라는 근처에 있는 대나무 하나를 수직으로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수평으로 뻗어 있는 대나무 줄기 하나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녀는 대나무를 꽉 붙든 채 앞뒤로 몸을 흔들며 시계추 운동을 했다.

       그러다 적당한 높이로 오르는 순간 줄기를 붙든 손을 놓으며 허리를 튕겨 몸을 날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그녀는 대각선으로 뻗어 있는 줄기를 밟았다.

         

       그녀의 체중을 실은 고탄성의 대나무는 밑으로 휘어졌다가 위로 튀어 올랐다.

       그녀의 몸은 비스듬한 사선을 그리며 공중을 향해 날았다.

         

       중간에 그녀의 경로를 방해하는 나무가 있었지만, 그녀는 다리를 가슴 쪽으로 끌어안아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녀는 그렇게 10m 상공에 수평으로 나 있는 줄기 위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치 지상을 달리는 것처럼 그 위에서 몸을 움직이더니 방금 보인 것과 비슷한 움직임으로 다시 그보다 높은 곳을 향해 치달았다.

         

       그렇게 그녀는 불과 20초도 안 되는 시간에 5층 창문턱에 착지할 수 있었다.

       원래 대성당이었던 건물이라서 그런지 5층인데 그 높이가 30m는 넘어 보였다.

         

       그녀는 저 아래에서 그녀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청강생들을 내려다보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이곳에 와서 줄을 맞춰서 서주세요.”

         

       여전히 친절한 표정과 말투였지만, 그 너머에는 싸늘한 조소가 깃들어 있었다.

         

       클라라는 우쭐한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우리가 네놈들 안내인 노릇을 호락호락하게 해줄 줄 알았어?

       우리에게 손님 대접을 받고 싶다면 이 정도는 통과해야지.

       아니면 그냥 버러지에 떨거지 취급을 당해도 할 말 없지 않아?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곧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위를 바라보고 있는 각도였다.

       심지어 안내를 맡은 상급생들조차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있는 곳보다 조금 더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이게 재밌는데.”

       “매일 이렇게 다닌다면 확실히 훈련으로 괜찮겠군.”

         

       두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클라라보다 위층에서 들렸다.

         

       위를 올려다본 그녀는 그만 표정이 굳어졌다.

         

       대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 걸친 대나무 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를 까딱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엘라와 레이나였다.

         

       “어느새……?”

         

       클라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엘라가 손을 흔들었다.

         

       “아, 선배님이 대나무를 밟고 몸을 튕기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못 참고 달려들었어요. 그러자 레이나도 같이 뛰어든 거예요.”

       “진로에 방해가 안 되도록 시야가 닿지 않는 반대 루트를 골라 달렸어. 못 보는 게 당연하지.”

         

       클라라의 눈가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보다 늦은 스타트?

       최적 루트를 달려도 힘들 건데 자신을 배려해서 돌아서 올라왔다고?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시간에 더 높은 곳까지?

         

       클라라는 엘라와 레이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경외감과 동시에 절망감,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데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는 간신히 안에서 치솟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상급생들은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바로 청강생들을 은근한 말과 표정으로 도발하는 것이다.

         

       “힘드시면 저기 옆의 계단으로 올라가셔도 됩니다.”

       “마침 휴식 시간이라 학생들이 많을 테니 좀 막힐 겁니다.”

       “큭큭,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말대로 중정 한쪽에 난 개방형 계단과 난간, 창문 곳곳에는 재학생들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청강생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클라라의 노림수였다.

         

       정글짐을 통해 5층까지 올라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입생들도 몇 달간의 연습을 통해 간신히 해내는 게 보통이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반복 학습을 통해 공략법을 체득하는 영향이 컸다.

         

       그런데 오늘 죽림을 처음 본 청강생들이 이것을 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엘라와 레이나가 특별한 것이다.

         

       그들이 5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레카체프의 재학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굴욕적으로 걸어서 오르는 그들을 보며 한껏 비웃어주기 위해서.

         

       레카체프에 청강을 들으러 온 10대들은 모두 서커스단을 나올 때 격려와 주의를 들었다.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레카체프에 가서는 너희가 서커스단의 대표가 되는 거라고.

         

       곡예사라 자부하는 그들이 선뜻 못하겠다고 계단으로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클라라의 수는 교묘했다.

       이것은 엄밀히 보면 ‘모욕’이라고 따지기는 힘든 것이었다.

         

       그녀가 보인 시범은 어디까지나 “우리 학생들은 보통 이렇게 다니는데요.”라고 소개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따라 하고 싶으면 자유지만, 못하겠으면 계단으로 오라는 것도 상식적인 제안이었다.

         

       올라가는 길에 있는 학생들 역시 대놓고 그들에게 욕을 던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벼운 한숨, 작은 수군거림, 희미한 비웃음 등으로 그들을 모욕줄 것이다.

         

       “견학 시간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 주세요!”

         

       위층에서 클라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재학생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났고, 청강생들의 얼굴은 썩어들어갔다.

       그러나 누구 하나 먼저 나서지 못했다.

         

       모두가 주저하고 있는 그때,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도로시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도로시 님도 즐거운 연휴 되세요!

    악스빌의 뱃사람, 루즈의 도스빌 남작, 드발체프의 교회 청년, 레카체프의 클라라.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즐겨 쓰는 빌런 상도 드러나는 것 같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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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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