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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앞으로 보름 후에 열린답니다.”

       “보름이라?”

       “네. 항상 이맘때쯤이면 열리거든요. 우리 신사와도 꽤 연이 있답니다.”

       “어떤 연이 있느냐?”

         

       리세는 그의 물음에 약간은 씁쓸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역에 공헌도 하고, 자신의 성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뜻에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련하기도 하거든요. 그 덕분에 사람들이 대련을 보러 몰려들고, 자연스럽게 거기서 자그마한 축제가 열린답니다.”

       “자그마한 축제라고 하는 것을 보니 불꽃놀이 같은 것은 하지는 않을 것 같고, 아마 가게가 열리는 정도에 그치겠구나.”

       “네에. 음식을 팔거나 금붕어 낚시, 사격…. 이 정도가 고작일까요. 그리고 우리 신사는 거기서 대련을 참관하곤 했답니다.”

         

       진성은 리세의 말을 듣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겠지. 성과를 자랑하고, 그 지역에 공헌하고 이름값을 알리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지역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진성은 그 말을 듣고 무언가 고민이 되는 듯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고민했고, 리세의 손으로 되돌아간 스마트폰과 천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엇이 고민되시나요?”

       “고민이라.”

         

       리세는 그 모습에 걱정스러운 듯 슬쩍 진성을 향해 몸을 붙이며 물어보았다.

         

       “모든 조건이 다 좋은데, 변수가 하나 있는 것이 걸리는구나.”

       “변수라면, 혹시?”

       “그러하다. 환골탈태의 무인이니라. 그런 작자가 있을 줄은 몰랐음이니. 달갑지 않구나.”

       “어머, 모르셨…나요?”

         

       리세는 진성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TV에서 일본의 최강자를 꼽을 때 항상 나오는 분인데요….”

         

       최강.

       남자라면 피가 끓고 몸에 힘이 절로 들어갈 단어다.

         

       당연히 시청률에 미쳐있는 방송사들이 이것을 놓칠 리가 없었고, ‘일본의 무인 최강자는?’, ‘마법사 중 최고의 지능을 가진 사람은?’, ‘일본을 대표하는 소환수들의 전투력 대결! 최강의 배틀!’ 같은 포맷을 이용해 방송을 심심찮게 짜곤 했다.

       물론 사골 소리를 들으며 지겹다는 반응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본래 강함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법.

         

       유망주가 어엿한 제 몫을 하는 무인이 되고.

       한때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 퇴물로 바뀌고.

       기대하지 않았던 이가 절치부심하여 힘을 쌓고 돌아오고.

         

       시간은 방송국에 있어서 바라마지 않던 변화를 보여주었고, 같은 소재라고 하더라도 다른 맛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처참하게 패배했던 사람이 복수에 성공하고.

       그냥 구석에 처박혀 제대로 된 관심도 받지 못했던 마법사가 논문 하나로 학계의 별이 되어서 나타나기도 하고.

       귀엽게 보였던 병아리가 뭔 약이라도 먹었는지 벌크업을 해서 호랑이를 한입에 씹어먹을 크기로 돌아오고.

         

       예전을 알던 시청자라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모습일 것이고,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 번 보게 되면 늪에 빠진 것처럼 사골처럼 우려먹는 이 포맷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마치 한 번 입에 넣으면 봉지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먹게 되는 스낵처럼, 최강을 가리는 프로그램은 그런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관심이 없느니라.”

         

       하지만 매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

         

       진성에게 있어서 누가 최강자의 자리에 어울리고, 무인이 어떤 기술을 쓰고, 무공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무공과 상성이라는 정보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만큼의 가치도 지니지 못했다.

         

       주술 이외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령 주술 이외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저런 포맷이 크게 진성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으리라.

         

       결투를 통해서 최강자를 가리고, 전문가라고 거들먹거리는 이상한 사람들이 나와서 떠들어대고….

         

       그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당장 진성은 세계 3차 대전에서 용병 일을 하던 사람이다.

         

       그가 용병으로 일하면서 봤던 ‘자칭 유명한 능력자’가 어이없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게 몇 번이고, 이름은커녕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마을을 부수고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본 것이 몇 번이겠는가?

         

       게다가 미래에도 크게 활약했다면 진성이 알고 있기라도 해야만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즉, 진성의 정보력과 영향력이 형편없었던 세계 3차 대전 초반에 탈락했다는 이야기다.

         

       ‘한국과 전쟁을 할 때 죽거나 불구가 되었겠군.’

         

       어쩌면 카즈오만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무대에서 사라진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시현류 자체가 박살이 났을 수도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넓혀도 되게 경쟁력이 있으신 분이라고…. 일본의 자랑이라고 하던…데….”

         

       리세는 진성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며 진성의 표정을 살폈다.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야.’

         

       진성의 표정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넘어, 아예 태어나서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 자신에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정보가 귀를 스치고 지나갈 때 저런 표정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래, 시현류라는 이름 자체는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으니….”

         

       진성은 어느새 자신에게 꽤 가까이 붙은 리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시현류를 후원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준 적이 있었지. 그렇지 않으냐?”

       “네? 네.”

       “경호회사 사장.”

         

       리세는 진성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자 당황했다. 하지만 몸을 뒤로 빼지는 않고, 대신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민망함에 슬쩍 눈동자만 다른 곳으로 옮길 뿐이었다.

         

       “보아하니 방어나 호위에 적합한 무공이라 할 수는 없고. 이름만 ‘경호원’으로 해두고 다른 곳에 사용할 때 그 효과가 가장 좋겠다. 그렇지 않으냐?”

       “네, 신주님의 말이 맞습니다.”

         

       진성은 손을 리세의 머리 위로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보자. 그렇게 합법의 탈을 쓴 악은 한 가지의 특성을 가지게 되느니. 그것은 바로 그들 사이의 유대요, 그들 사이의 끈끈함이라. 언제든 서로의 등 뒤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얄팍하기 짝이 없는 것이니 선한 이들 사이의 유대에 비할 바는 못 하리라. 하지만 그것은 한없이 얄팍할지언정 쉽사리 사라지지 아니하며, 시선을 주지 않으면 해충이 숫자를 불리듯 창궐하여 무리를 이루는 특성이 있느니라.”

         

       진성은 손을 뻗어 쫑긋 움직이고 있는 여우 귀를 슬쩍 잡았다.

         

       “힉!”

         

       진성의 손가락이 여우 귀에 닿자 리세는 어깨를 들썩이며 놀랐다. 게다가 진성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묘한 간지럼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슬쩍슬쩍 몸을 떨기까지 했다.

         

       하지만 몸을 빼거나 진성의 손을 쳐내는 등의 거부하는 몸짓은 보이지 않았고, 도리어 간지러움을 억제하려는 듯 그 자세 그대로 몸을 굳히곤 눈동자만 움직여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말인즉 나의 축복을 받았던 사람을 통한다면 꽤 깊은 곳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인즉. 정보를 얻는 것에는 큰 불편함은 없을 것이니….”

       “시, 신주님…?”

         

       진성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 손가락을 움직여 리세의 여우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의 만지작거림이 반복될수록 그의 손가락에 여우 귀에서 나온 듯 보이는 털이 손가락에 붙어 점차 크기를 불려 나갔다.

         

       진성은 손에 붙은 털이 어느 정도 모이자 만족한 듯 그대로 손을 떼었다.

         

       “하아아….”

         

       그러자 리세는 몸의 긴장이 팍 풀려버렸는지 몸에 힘을 빼고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축 늘어진 리세의 몸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머리 위에서 쫑긋거리던 여우 귀 역시 납작 누웠다.

         

       리세는 마치 여름철 더위에 녹아내린 오리처럼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고개만 진성 쪽으로 돌렸다. 그리곤 약간 나른해진 듯한 눈초리로 진성에게 물었다.

         

       “신주님. 갑자기, 귀는 왜…?”

       “별것 아니니라.”

         

       진성은 리세의 물음에 간단히 답해주었다.

         

       “내가 꼬리털을 받아 가는 것과 같은 이치로다.”

       “네? 아….”

         

       리세는 진성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한 탄성을 내었다.

         

       “무언가에 쓰실 생각이신가 보군요.”

       “그렇다.”

         

       진성은 리세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세는 그 모습이 익숙해진 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일단 제 몸에 힘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흠.”

         

       그는 리세가 정성스럽게 걸어놓은 정장 재킷을 챙기곤 다시 리세를 향해 돌아왔다. 그리곤 의아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리세의 뒷덜미를 왼손으로 잡고, 허리뼈 부근에 오른손을 얹었다.

         

       “신, 주님?”

         

       그리곤 당황하는 리세를 무시한 채 태극을 끌어올려 따뜻한 기운을 몸 안쪽에 불어넣었고, 리세의 몸이 따스한 기운 덕분에 노곤하게 풀리기 시작하자 진언을 외웠다.

         

       “옴 끼르라라 모드라 훔파트.”

         

       그러자 리세에게 어마어마한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리세는 갑자기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내려고 했으나, 따뜻한 물에 몸을 풍덩 빠뜨려 녹여버리는 듯한 편안함과 나른함은 도저히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리세는 아까 진성이 보았던 동영상에 나오는 철거용 쇠구슬처럼 무거워지는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리세가 완전히 잠에 빠져들기 전.

         

       “별로 급하지 않은 일이니라.”

       “아….”

       “그러니 몸에 쌓인 쓸데없는 피로들을 완벽히 해소하도록 하거라.”

         

       그녀의 귀에 진성의 타박이 들렸다.

       그 타박은 리세에게는 냉랭함 속에 따뜻한 봄바람을 품은 것 같았고, 행복을 찾기 위해서인데 어찌 몸을 혹사하냐는 걱정이 섞인 말로 들렸다.

         

       그렇기에 리세는 잠에 몸을 맡기면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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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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