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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173화. 북부 원정대 ( 3 )

       

       

       

       

       

       절그럭.

       

       쇠사슬이 흔들린다.

       

       묵빛의 쇠사슬은 잔인하리만큼 묵직한 몸으로 한 생명을 얽매이며 자유를 박탈했다. 무의미한 몸짓을 따라 쇠사슬이 무겁게 끌려다니며 소음을 만들어냈다.

       

       절그럭- 절그럭-

       

       쇠사슬의 끝을 따라가면 보이는 것은 작은 생명들.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아이들이 제 몸보다 훨씬 무거운 쇠사슬을 달고 있었다. 

       

       채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절망, 두려움 따위의 감정이 뚜렷했다. 저들끼리 고사리 같은 손을 맞잡고, 구석에 모여서 오들오들 떠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물을 자극하기 충분했지만-

       

       휘익- 철썩!

       

       “이 녀석들! 떨어져! 서로 떨어지라고!”

       

       불행하게도 허공을 가르는 채찍에게는 동정심을 품기 위한 심장이 없었다. 무자비한 그 손길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원초적인 폭력.

       

       사내가 거칠게 외치며 채찍을 휘둘렀다.

       

       “꺄아악!”

       

       “으아…!”

       

       채찍이 아이들 주변의 땅과 벽을 사정없이 두들기며 공기 찢어지는 소리를 갈겼다. 채찍의 손길이 조금이라도 스친다면 아이들이 보드라운 살은 갈기갈기 찢기고, 여린 뼈는 나뭇가지처럼 부서질 것이다.

       

       아이들은 오들오들 떨며 사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였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필사적으로 서로에게서 멀어졌고, 충분한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야 사내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그래, 그렇게 빠릿하게 움직이면 얼마나 좋냐. 응?”

        

       사내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채찍을 허리춤에 감았다. 어린놈들은 이래서 관리하기 편하다.

       

       ‘허공에다 채찍 몇 번 휘둘러주면 지레 겁먹고 시키는 대로 하거든. 대가리가 굵어진 놈들이랑은 난이도가 다르지.’

       

       서로 떨어져 앉은 채 떨고 있는 아이들. 피부색과 눈동자와 머리카락.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었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에게 자라난 동물 귀와 꼬리.

       

       여자아이에게는 고양이의 것이, 남자아이에게는 늑대의 것이 달려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사람한테서 동물 귀가 자라난다니.’

       

       사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글을 읽지 못하는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 아이들은, 그리고 다른 상품들은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노예 상인에게 상품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큰 기회라는 뜻.

       

       이것들은 필시 변태 같은 성벽을 가진 귀족이나 허영심 많은 졸부에게 비싸게 팔릴 것이다. 

       

       “흐흐흐. 그때가 되면 케이건 두목도 나한테 한몫 크게 챙겨주겠지?”

       

       사내는 벌써부터 떡고물을 상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어마어마한 금화를 나눠줄 것이다.

       

       그간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칼을 휘두르고 도망친 노예들을 잡아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가. 두목의 상단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데,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번쩍이는 금화를 상상했더니 허리춤이 뻐근하게 묵직해졌다. 사내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감옥을 둘러봤다.

       

       ‘몸에 직접 손만 안 대면 되는 거잖아? 흔적만 안 남게 하면 누가 알겠어.’

       

       뱀 같은 시선을 피해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아이들. 그중 제법 곱상한 계집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꺄아악! 시, 싫어요! 꺄아아악!”

       

       “이 년이! 조용히 못 해!”

       

       거친 반항에 손이 허리춤의 채찍으로 향했다. 그때 구석에 웅크려 있던 사내아이가 그의 팔에 달려들어 이빨로 콱 물었다.

       

       “으아악!”

       

       “우으읍…!”

       

       “이, 이 건방진 애새끼가!”

       

       “끄학!”

       

       거친 손짓에 벽까지 날아간 사내아이가 거친 숨을 토하며 쓰러졌다. 계집아이가 쇠사슬을 질질 끌며 사내아이에게 기어갔다. 무릎으로 열심히 기어가는 꼴이 제법 우습다.

       

       “테리온!”

       

       째지는 비명소리. 저 애새끼의 이름이 테리온이었나? 아무래도 좋다. 

       

       “흐, 흐흐. 둘이 아는 사이냐? 좋아. 한 년은 내가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건방진 애새끼는 딱 죽지 않을 만큼 괴롭혀주마.”

       

       주섬주섬 허리춤의 벨트를 풀으며 다가간다. 공포에 질린 계집아이의 표정마저 이 상황을 자극하는 향신료처럼 느껴졌다.

       

       계집아이의 얼굴에 체념과 두려움의 그림자가 짙어질 때.

       

       푸욱ㅡ!

       

       “끄흐윽?! 우아아악!!”

       

       사내의 가슴팍에서 길쭉한 검날이 자라났다. 비 젖은 땅에 자라난 죽순처럼, 올곧고 높게 솟아오른 강철의 말뚝은 사내의 심장을 무자비하게 짓이겼다.

       

       “우, 쿠흡! 누, 누구… 어떻게…”

       

       파르르 떨던 사내가 짧은 의문을 뱉으며 허공을 더듬었다. 가슴팍에 작열하는 고통. 사내의 머릿속은 뒤엉킨 실타래 같은 혼란이 가득했다.

       

       “널 죽이러 온 사신이다. 이 더러운 새끼야.”

       

       사내의 귓가에 누군가 속삭였다. 이윽고 깊이 찔러넣은 검을 뒤로 빼냈다. 

       

       사내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털썩 쓰러졌다. 아이들은 엉덩이를 끌며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에서 최대한 떨어지려 애썼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인영은 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구… 딸꾹! 누구… 세요?”

       

       아이들 중 용기 있는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자신을 구하러 온 기사님일까? 

       

       빛을 등진 사내의 머리 위에는 삼각형의 귀가 보였다. 어린 남자아이들의 작고 앙증맞은 늑대 귀보다 훨씬 크고, 날렵하게 자라난 성인 늑대의 것.

       

       자기들과 똑같은 동물 귀를 본 아이들이 경계를 유지하며, 조심스레 사내에게 다가갔다.

       

       “이리 오렴, 얘들아.”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피 묻은 검을 뒤로 숨기며 아이들을 향해 팔을 뻗었다. 목에 걸린 만신전의 표식이 반짝인다.

       

       “집에 가야지.”

       

       늑대의 귀가 자라난 전 사도 부대원.

       털북숭이 로한.

       

       돌연 늑대 귀가 자라난 로한은 셀리나의 직속 부대로 소속을 옮겼고, 얼마 전 북부에 도착했다. 비밀리에 전달받은 그의 임무.

       

       노예로 잡힌 수인의 구출과 노예 상인의 말살.

       

       “으, 우와아아앙ㅡ!!”

       

       “엄마, 엄마아!!”

       

       “어잇, 이런.”

       

       그제야 긴장이 풀린 아이들이 로한의 품에 뛰어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로한은 어렵지 않게 아이들을 받아내고는 조심스레 녀석들을 토닥였다.

       

       다행히도 아이들에게서 다치거나 병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구먼.’

       

       로한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북부 원정대가 몬테그로스에 도착했다.

       

       

       

       *****

       

       

       

       며칠간의 행군 끝에 북부 원정대는 몬테그로스에 도착했다. 이스칼이 배정받은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려고 주섬주섬 보따리를 푸는 순간.

       

       쾅ㅡ!

       

       “이스칼! 밥 먹으러 가자!”

       

       “예? 아니, 지금요?”

       

       “엉, 얼른 따라와. 빨리 가자.”

       

       패기 넘치게 등장한 프리가가 이스칼을 끌고 나왔다. 아직 짐 정리도 못 했지만, 이스칼에게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순순히 끌려갈 뿐.

       

       “공녀님! 오랜만에 뵙네요!”

       

       “어, 아저씨. 오랜만이네!”

       

       “프리가 아가씨! 어디 멀리 사냥 갔다 오셨어요?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요?”

       

       “그런 게 있어. 나중에 얘기해 줄게.”

       

       “휘익ㅡ! 아가씨, 옆에는 서방님이에요? 어휴, 인물이 착하게 생겼네!”

       

       “조, 조용히 해!!”

       

       길에서 프리가와 마주치는 이마다 아는 체 안부를 건네며 지나간다. 그간 가깝게 지내왔는지, 격식 없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공녀님은 백성들하고 친하게 지내셨나 봐요.”

       

       “뭐, 여기는 땅이 워낙 지랄맞으니까. 같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살기 어렵거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커다란 성문 앞에 도착했다. 으리으리하게 거대한 강철의 문. 그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뜬 경비병들의 기세가 날카롭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이스칼. 동공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 어… 공녀님? 아까 분명 밥을 먹자고 하셨던 것 같은데ㅡ”

       여긴 누가 봐도 공작성 아닌가?

       

       마른침과 함께 꿀꺽 삼킨 뒷말.

       

       이스칼은 손에 식은땀이 촉촉하게 배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분명 더럽게 추운 날씨일 텐데, 어째서 땀이 나는 걸까.

       

       “맞아. 밥 먹자고.”

       

       프리가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 어쩐지 눈빛이 번들거리는 것 같았다면 기분 탓일까.

       

       “우리 집에서.”

       

       “예, 예?! 아니, 공작가에서요? 맛집, 맛집이라면서요!”

       

       “맛집이지. 우리 집 전속 요리사가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데. 네가 먹고 싶다고 하는 건 전부 다 해줄 거야. 자, 자. 얼른 들어가자.”

       

       “자자자잠깐만요! 적어도, 적어도 마음의 준비라도 할 시간을!”

       

       이스칼의 등을 떠미는 프리가. 그의 애처로운 비명이 공작가 높이 울려 퍼졌다.

       

       “에헤이. 그럴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우리 아빠도 아직 밥 안 드셨다니까 같이 먹자고.”

       

       “고고고고고공작님이랑요?!”

       

       이스칼의 눈은 이제 튀어나올 듯 커졌다. 공작가에서 밥을 먹는 것도 미칠 노릇인데, 루샨 공작과 겸상이라니! 

       

       뭔가, 뭔가 잘못됐다.

       

       이제 이스칼의 등은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이 느낌은 마치… 알몸으로 짐승의 소굴에 잡혀가는 느낌이었다. 무엇이 위험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본능이 아무튼 위험하다며 경종을 울려댔다.

       

       “흐흥ㅡ 야, 너 뭐 먹을래? 매운 거 좋아하나? 우리 집 요리사가 매운 그루시아 찜을 기가 막히게 하거든.”

       

       이스칼이 패닉에 빠지거나 말거나, 프리가는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좋은지 작게 콧노래도 부르며 복도를 나아갔다.

       

       그렇게 복도를 가로질러 도착한 응접실. 미리 사람을 보내놨으니 루샨 공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쾅ㅡ!

       

       패기 가득하게 문을 열어젖힌 프리가.

       

       “아빠! 우리 왔… 어…”

       

       프리가의 힘찬 인사는 뒤로 갈수록 점차 작아졌다. 반가움이 가득했던 눈빛에는 의문이 들어찼다.

       

       응접실에는 그녀의 아버지, 루샨 닉스 공작을 제외한 선객이 있었다.

       

       심지어 익숙한 얼굴이고, 여기서 볼 줄은 더더욱 몰랐던 얼굴이다.

       

       호롭ㅡ

       

       “아, 공녀님 오셨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공녀님. 프리우스입니다.”

       

       태연하게 차를 마시며 인사를 건네는 여인. 까만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 옆에는 기품이 가득한 노인이 앉아있다. 꼿꼿하게 앉은 자세는 강철과도 같고, 건네는 인사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프리가의 입에서 잘게 떨리는 말이 흘러나왔다.

       

       “…셀리나? 여긴 어떻게ㅡ”

       어떻게 우리보다 빨리, 도대체 언제, 아니 여기에는 왜ㅡ

       

       묻고 싶은 건 산더미였지만, 딱 하나는 확실했다.

       

       ‘다시 보자는 말이 이거였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엄청 커다란 힘이 됩니다.

    – ‘신선우’님!!! 뜨끈한 국밥처럼 든든한 후원!!! 감사합니다!!! 에…? 예? 어… 사실 저도 발을 좋아하긴 합니다. 스타킹보다는 맨다리가 더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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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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