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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올리비아는 다시 한 번 암주의 단서를 사용해 황녀궁으로 향했다.

         

       고고함과 위압으로 가득했던 ‘현재’의 아리아와는 다르게, 지금 눈 앞의 아리아는 귀여운 동시에 모자라보이기까지 했다.

         

       “후후!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하거라!”

       “화, 황녀 전하. 부디 체통을…….”

         

       다리가 아프다며 수호기사들에게 업어달라고 하는 저 모습을 보고 누가 황녀를 세기의 천재라고 생각할까.

         

       “흠흠. 오늘도 재밌었구나. 그럼 다들 돌아가보도록 해라.”

         

       저무는 석양 아래서, 다시 품위를 되찾은 아리아가 홍차를 마신다.

         

       옆에 서 있는 시녀는 나름대로 아리아의 신임을 얻은 자인지, 눈에 현기를 가득 머금은 아리아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신기한 눈동자네.’

         

       특이하게도, 눈동자의 색깔이 보라색이었다. 혹시나 하여 체내에 마력을 불어넣어 보았지만,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했다.

         

       후룩.

         

       올리비아 또한 대충 이 형식상의 다과회에 어울려 주었다.

         

       시간이 한 시간 언저리쯤 남았기에 이 정도 사치는 부릴 수 있었다.

         

       아무튼.

         

       황녀와 이렇게 다시 과거에서 만난 이유는 하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대충이라도 예측하기 위함이다.

         

       “아리아.”

         

       아리아가 고개를 치켜든다. 점심까지만 해도 쿠키를 세 개씩 집어먹던 애같은 황녀는 어디가고, 고아한 손짓을 가진 황족이 그곳에 있었다.

         

       그녀가 지금처럼 본 모습을 드러낼 때는 하루의 극히 일부 뿐. 친우인 올리비아를 만날 때를 제외하면, 기껏해야 체스를 둘 때 뿐이다.

         

       자신이 못난 모습을 보일 수록 오라비들이 황위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벌이는 행동이다.

         

       그녀는 말로만 ‘인연’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평판을 낮춰서라도 오라비들을 띄워주려는 그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질문을 아무렇게나 던질수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훗날 일어날 ‘몰살’을 이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오해를 사게 될 지도 모른다.

         

       “질문 하나만 해도 돼?‘

       

       아리아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너라면, 네 정적(政敵)을 어떤 식으로 공격할거야?”

         

       노골적인 표현은 최대한 자제한다.

         

       원수가 아닌 정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정적?”

         

       그렇게 되묻는 아리아의 얼굴은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다.

         

       ‘무능한’ 자신에게 정적 같은 것이 생길 리 없다는 확신에서 생기는 의구심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야. 세상 일은 모르는거니까.”

       

       그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아리아가 묻는다.

         

       “그 정적이 나보다 강해?”

        “강해. 그리고 너만큼 똑똑해.”

         

       묘한 눈빛으로 올리비아를 쳐다보는 것도 잠시, 아리아가 입을 연다.

         

       “내가 생각한 전략을 그 사람도 생각해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이기겠지. 결국 가진 힘이 많은 쪽이 이길테니까. 하지만……네가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게 아니라 ‘이기는’ 방법이잖아. 그렇지?”

       “맞아.”

        “그러면, 도박수에 걸 수밖에 없어.”

       

       말이 도박이지, 그것이 가장 확률이 높다면 그건 더 이상 도박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묘수가 된다.

         

       “유리한 쪽은, 절대로 도박수를 사용하지 않아. 설령 그 도박수의 존재를 안다고 해도 사용할 이유가 없어. 왜냐면-.”

        “유리하니까.”

         

       올리비아의 대답에 아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그 도박수가 뭔데?”

        “……그야 모르지? 내가 그 정적과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설명도 못 들었는걸?”

       

       아리아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인다.

       

       “흠, 근데 아무리 봐도 이 정적의 정체는 올리비아 너 같은데?”

       “…….”

       “물론 이럴 일은 없겠지. 너랑 내가 왜 싸워? 심지어 정적(政敵)? 너 정치할 생각이니? 궁정 마법사라도 할 생각이야? 애초에 네 실력이면 정치따위 할 필요 없을텐데?”

       

       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들켜버렸다.

         

       올리비아는 괜히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한 번 꼬아 말했기에 망정이지, 원수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했더라면 정말 끔찍한 오해를 사게 됐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샀을지도.

         

       저 여우같은 눈빛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었다.

         

       “……마음대로 생각해.”

       “무슨 일인데에. 저번에 네 파르페 뺏어 먹은 것 때문에 그래? 마음 상했으면 말을 하지!”

         

       올리비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저나, 도박이라…….’

         

       자신은 알아도 실행하지 못하는, 오직 아리아만이 실행할 수 있는 도박수.

         

       더 질문할 수는 없었다. 이 이상은 위험하다. 오늘은, 그 도박수의 존재를 알아낸 것으로 족했다.

         

       “오늘은 먼저 가볼게.”

       “……벌써?”

       “미안, 요즘 일이 많아서.”

         

       올리비아는 복잡한 얼굴로, 문을 열고 빠져나간다.

         

       아리아는 그런 올리비아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을 대하는 그녀에게는 무의식적인 거리감이 있다. 무슨 말을 할때 특히 더 조심하려고 하고, 본능적으로 제 본심을 들키지 않으려는 반응을 내비친다.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

         

       아리아는, 옆에서 그릇을 정리하는 제 시녀를 바라본다.

         

       사흘 전에, 그녀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아리아에게는, 그 기억의 부재가 낯설었다.

         

       그렇다면, 물어볼 수밖에.

       

        아리아는 시녀의 이름을 부른다.

         

       제국 남부, 헤인 남작가의 삼녀.

         

       아리아는 이것이 가짜 신분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수천 명이 넘는 귀족 계보를 꿰뚫고 있는 그녀가 아니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사실.

         

       헤인 남작가의 삼녀가 7년 전에 사망했다는 것을, 영민하신 오라버니께서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신 모양이지만……그런 것 따위, 아리아에게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이 ‘시녀’가 엘리트인 것만큼은 분명했으므로. 유능하고, 또 눈치가 빠르다면, 시녀로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리아는 시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우렐리아.

         

         

       *****

         

         

       멜리나의 막사.

         

       해가 밝았음에도, 올리비아는 아직 굳게 잠들어 있다. 멜리나는 곤히 잠든 제자를 깨우는 대신 진행하던 연구를 계속했다.

         

       뎅-.

         

       동시에 울려퍼지는 시계추 소리.

         

       멜리나는 마법의 연구로 한창이었다.

         

       가끔씩 주변인들도 망각하는 사실이지만, 멜리나의 주 분야는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이다.

         

       고작 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 차이는 방대하다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하다.

         

       한 때 진리에 직접 닿았던 덕분일까, 멜리나는 이제 지나간 과거를 ‘관측’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멜리나는 아직 다른 세계선을 엿볼 정도의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닿고자 했다.

         

       단순히 마법사로서의 학구열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제 제자 때문이었다.

         

       그녀는 올리비아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암주의 행태에 분노했지만, 눈동자만큼은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목숨 바쳐 지켜왔을 이 세상이.

         

       그 사람들이.

         

       제 눈 앞에서 스러지는 고통을 다시 겪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수 밖에 없었다.

         

       ‘……스승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황녀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시도해보았기에 안다.

         

       만약 세계선을 넘어, 전생의 과거에 개입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올리비아의 학살극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면.

         

       이 전쟁 또한, 없던 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로서 과거에 개입한다는, 말도 안되는 가정을 증명해야 하지만.

         

       [받으세요. 스승님.]

         

       이미, 올리비아도 해냈던 일 아니었던가.

         

       “……할 수 있다.”

         

       멜리나는 다짐하듯 말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멜리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연구에 쏟았다.

         

       원래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이미 한 번 경험해 보았기에 가능했다.

         

       츠츠츠츠츳!

         

       멜리나의 마력이 한 곳으로 모여든다. 한계까지 응집된 마력은, 이제 작은 공의 수준을 넘어 점과 비슷한 수준까지 축소됐다.

         

       멜리나의 마력 속성은 시간. 고로 그녀의 마력을 응집시키는 것은, 시간을 응집시키는 것과 동일했다.

         

       뎅-.

         

       꾸준히 왕복 운동을 반복하던 시계추가 점차 느려진다. 그 변화는 매우 미약하여서, 멜리나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느려지고 있다. 그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휘몰아치던 바람이 점점 옅어진다. 이제는 시간이 느려진 것이 체감이 될 정도다.

         

       두근-.

         

       점점 속도를 잃는 세계 가운데, 오직 원래의 박동을 유지하는 것은 멜리나의 심장 뿐.

         

       두근-. 두근.

         

       다만 심장의 박동 속도가 빨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세계가 그만큼 느려졌기 때문이리라.

         

       세계를 속인다.

         

       육체를 맥동하는 마력의 속도를 더이상 빠르게 할 수 없다면, 세계 자체를 느리게 하면 그만이다.

         

       우우우우웅……!

         

       마력은 멜리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느려지는데, 멜리나의 마력 흐름은 갈수록 빨라진다.

         

       시계추가 완전히 멈춘 그 순간.

         

       멜리나의 의식이 어디론가 빨려들어갔다.

         

       쿠구구구구…….

         

       매섭게 흐르는 시간의 격류. 찰나가 영원이 되는 우주의 흐름 가운에서 멜리나는 가까스로 의식을 붙잡았다.

         

       눈 앞에 무수한 문들이 스쳐지나간다. 멜리나는 본능적으로 저 문들의 본질을 이해했다.

         

       무수한 세계선들. 아직 진리에 도달하지는 못했기에 그 너머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명의 일부. 전부 바칠 필요는 없었다. 전생처럼 무수한 회차를 읽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딱 한 개만 읽으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10년치 정도면 충분했다.

         

       특색 없는 문들 가운데, 멜리나는 유독 황금색으로 빛나는 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잡은 순간, 탈력감과 함께 생명력이 빠져나간다.

         

       “……후우.”

         

       덜컥.

         

       문을 열어젖힌 순간, 멜리나는 전혀 다른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한 공간.

         

       과거에 몇 번 업무차 방문했었던 공간.

         

       황궁 서고.

         

       대륙의 모든 역사서와 마도서가 보관된 장소.

         

       다만 그 크기가 멜리나가 기억하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멜리나가 기억하던 황궁 서고는 분명 이것보다는 작았다.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던 멜리나의 표정이 어느 순간 굳는다.

         

       “…….”

       

       서고 끝에 선, 한 여성 때문이다.

         

       고고한 손짓. 현기를 가득 머금은 눈동자. 그 아래에 위치한, 자그마한 눈물 점.

         

       이곳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

         

       “……아리아 황녀?”

         

       터억.

         

       그녀는 읽던 책을 덮고, 멜리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흠……확실히 짐이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보군.”

         

       짐(朕).

         

       황녀가 사용하기에는 광오한 자칭에, 멜리나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다.

         

       “이 눈으로 과거의 망령을 보게 될 줄이야.”

       “무어라? 망령?”

        “그럼 망령이지 뭐겠나. 멜리나 자네가 죽은지 30년도 더 지났건만.”

         

       ……도대체 어느 세계선에 떨어진 거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멜리나가 묻는다.

         

       “넌……누구지?”

       “방금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짐은 제국의 43대 황제, 아리아 락테아다.”

       

       그 순간 멜리나의 눈이 크게 뜨인다.

         

       아리아는 그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로, 또 고고한 음색으로 말했다.

         

       “키엘 대공.”

         

       턱.

         

       그 순간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키엘.

       

        “예, 폐하.”

       “저 망령이 네게도 보이느냐?”

       “예, 폐하.”

       “당장 짐에게 데려오라.”

         

       그 순간, 멜리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빌어먹을 세계에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올리비아가 들렀던 그 세계 맞습니다.

    다만 그보다 십 몇년이 흐른 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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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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