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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정말 오랜만에, 저택에 멤버가 다 모였다.

        

       멤버라 함은 당연히 나, 하늘, 수아, 소희다. 양혜인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방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저택을 내버려 두긴 했지만, 시간상으로 봤을 때는 2주가 채 되지 않았으므로 저택이 완전히 황폐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누가 침입하지도 않았던 모양이고.

        

       하긴, 사용인은 양혜인과 소희 빼고 전부 해고해버린 상황이지만 일단은 사설 경비업체에서 관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저택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저택을 비운 동안, 소희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있었으니, 당연히 저택을 관리할 사람은 양혜인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나도 사람이고, 당연히 이 거대한 저택을 양혜인 한 명이 다 청소하게 할 정도로 잔인한 성격은 아닌지라, 쓰지 않는 곳은 그냥 방치해도 된다고 말을 해두긴 했지만, 양혜인이 어디 그런 말을 듣고 그냥 둘 사람이던가.

        

       쓰지 않을 방에는 하얀 천을 덮어서 먼지가 쌓여도 나중에 처리하기 쉽게 만들어 두었고, 창고는 확실하게 잠가두었다. 로비 정도는 그래도 청소하고 있긴 했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저택은 사람이 있을 때보다는 훨씬 을씨년스러워졌다.

        

       원래 있던 사람의 수도 저택을 가득 채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거대한 저택에 건물 밖을 순찰하는 경비들을 제외하면 고작 다섯 명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집에 혼자 있을 때와는 기분이 또 다르다.

        

       그야 내가 지낼 수 있는 곳은 부모님과 동생이 있는 빌라, 아니면 내가 세 들어 사는 월세방 정도였으니까. 혼자 있어도 그리 비어있다는 기분이 들지도 않고, 무엇보다 당장 문 열고 나가면 옆집이 있고, 복도로 TV 소리와 말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불 꺼진 방이 더 많은 거대한 건물과는 그 크기부터가 달랐다는 말이다.

        

       이 방에서 나갈 생각도 없으면서.

        

       그건 또 그래.

        

       저택 안을 돌아보긴 했지만 대단한 건 없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이 건물의 크기가 대단하긴 했지만.

        

       ……그렇기는 했지만…….

        

       “양혜인 씨도 부를까?”

        

       “응?”

        

       내 중얼거림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하늘이었다.

        

       나는 내가 평소에 쓰는 거대한 침대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하늘이는 내 침대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소희는 자기 침대 아래의 수납함을 뒤적이고 있었다. 수아는 탁자에 앉아 자기가 들고 온 노트북으로 뭔가 검색 중이었고.

        

       ……어, 뭔가 그냥 흔한 자취방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여자 자취방에 가본 적은 없었고, 대학생 때도 혼자 자취하며 가끔 친구를 불러 놀았던 정도라 누구와 같이 자취해본 기억도 없긴 했지만…… 지금 이 분위기가 딱 그랬다.

        

       소희는 원래 여기서 지내는 중이었고, 수아도 사실 자기 집에서 자는 것보다 내 방에서 자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늘이도 이젠 슬슬 내 방에서 자고 가는 일수가 늘어나는 중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 사람의 짐이 은근슬쩍 하나씩 늘어나고 있었다.

        

       아예 여기서 지내고 있는 소희야 뭐 여행 가방을 몇 개씩 끌고 와서 가져다 놔도 내가 할 말은 없지만, 수아만 해도 노트북에, 옷과 속옷, 그리고 화장품까지 가져다 두고 있었고, 옷장 빈 곳에는 하늘이의 옷도 은근슬쩍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자취방이 아니라면 뭐라고 할까.

        

       뭐, 그래도 네 사람 지내는 자취방치고도 꽤 큰 편이라서 불편한 점은 없지만.

        

       “양혜인 씨는 왜? 해야 할 일이 있어?”

        

       하늘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지금 건물에는 우리랑 양혜인 씨밖에 없잖아. 사설업체 직원들이라고 해도 다 정문에 있는 경비실에 있고.”

        

       그러니까 이 방 밖에는 양혜인 혼자 있다는 말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혼자 밖에 있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이 건물은 기본적으로 사람 살라고 만든 곳이 아닌지라, 우리가 지내고 있는 여기 아니면 사람 사는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밤중에 복도를 걷고 있으면 좀 으스스할 것 같은데.

        

       “아, 그건 아냐.”

        

       드디어 침대 수납장에서 원하는 것을 찾은 소희가 다시 상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부스럭거리는 그것은 과자봉지였다.

        

       ……언제 사다 놨던 거지?

        

       과자를 몇 봉지나 꺼낸 소희는 그 봉지들을 들고 수아가 앉아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소희가 탁자 위에 과자를 쌓아두자, 수아는 노트북을 닫아 옆으로 치웠다.

        

       “하지만 사용인은 전부 해고했는데?”

        

       “사용인은 해고했어도, 이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경비 정도는 있어야지. 워낙 넓잖아? 아마 제일 위층 구석에 누가 몰래 들어와서 살고 있어도 한참 안 들킬 수도 있을 테니까.”

        

       나는 그런 상황을 상상해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라리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곳이었다면 옆집에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기는 ‘내 개인 저택’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일단 그런 곳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식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정상일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노숙자나 가출 청소년이 숨어들면 그건 그거대로 엄청나게 골치 아파지니까.

        

       한 번 들키지 않으면, 그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소문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들어오는 그룹은 점점 더 커지고……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어디의 버려진 정신병원 같은 몰골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뭐, 이 건물은 단순히 개인 소유의 저택일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등록 문화재이니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래서 경비들은 주기적으로 복도 순찰을 돌아. 경비 규모도 이전에 직접 고용하던 때보다 더 많고, 훨씬 더 본격적이고.”

        

       그런 말을 하면서 과자 봉투를 뜯는 소희는,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평소의 이미지와는 조금 괴리가 있었다.

        

       이 건물의 경비를 처음으로 뚫어본 것이 바로 소희가 아니던가. 그것도 대단한 재주나 장비 없이, 그냥 창고에 들고 온 사다리 하나로.

        

       아니, 그렇게 보안의 허점을 이용해 본 소희였으니 오히려 더 믿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경비들이 시간에 맞춰 복도를 걷는다고 해도, 결국 남이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고, 업계에서 제일 유명한 회사에 일을 맡겼으니 큰일이 일어나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엄청 쓸쓸하지 않겠냐 이 말이다.

        

       양혜인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치고는 굉장히 관대한 판단이네.

        

       사라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양혜인의 그 과거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개인적인 감정인데, 그래도 양혜인은 나를 구하러 달려와 줬으니까.

        

       그때 최나경이 나를 죽일 생각까지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입을 막고 숨을 못 쉬게 하던 상황이었다. 실수로라도 나를 죽여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죽었다면 사라도 죽었겠지. 우리 둘 다 같은 몸을 쓰고 있으니까.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몸이라고 해도, 다음에도 또 그런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자기 목숨에 연연하게 된 건 칭찬해줄게.

        

       사라의 그 말에 내심 피식 웃었다.

        

       “부르면 여기서 함께 지내는 건가?”

        

       소희가 그렇게 물었다.

        

       어…….

        

       그러네.

        

       그거랑 그거는 또 별개의 이야기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같이 자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이 방은 넓은 것과는 별개로 더 이상 마땅히 잘만한 곳이 없다. 양혜인이 오면 아마 바닥에서 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방은 기본적으로 ‘백화점’으로 쓰이던 곳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정집의 바닥을 가지지 못했다. 딱딱한 대리석 바닥이라, 설령 소희가 가지고 온 침낭을 쓴다고 해도 엄청나게 불편할 거다.

        

       ……그러면 오히려 더 민폐 아닌가? 아니, 민폐라기보다는 거의 부조리의 영역 아닐까?

        

       “…….”

        

       그래도 영 찜찜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그냥 편한 대로 해.”

        

       고민에 빠진 나를 보고, 하늘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여긴 너의 집이니까.”

        

       수아도 웃으며 그 말에 동의했다.

        

       나의 집이라.

        

       여길 사라의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사라도 별다른 말이 없는 것을 보면, 그 말에 무작정 동의하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감옥같이만 느껴질 뿐이었던 이곳이었지만.

        

       지금은 조금은 느낌이 다르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이 방에는 이제 나와 사라 말고도 세 사람이나 더 있었고, 온갖 생활감 넘치는 짐으로 가득했으니까.

        

       “일단 먹으면서 생각하자. 그냥 앉아서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

        

       어느새 탁자 위에 과자를 잔뜩 까서 펼쳐둔 소희가 그렇게 말했다.

        

       뭘 먹으면서 고민하면 해결된다는 말일까?

        

       ……그럴지도?

        

       그래봐야 그저 결정을 뒤로 미루는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들이 먹고 있을 때 혼자 먹지 않는 게 얼마나 뻘쭘한 짓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이젠 이것저것 많이 먹어도 더 들어가게 된 것 같기는 하다. 이거 하나는 정말 다행이었다.

        

       덕분에 몸무게도 좀 늘었고.

        

       ……내가 늘린 게 아니라 너가 늘린 거잖아.

        

       사라가 투덜거리는 것을 듣고,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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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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