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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인간들이 모두 도망친 쓸쓸한 전장.

    그 한복판에서 황금 사신은 전신으로 빛을 뿜어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고통에 살짝 일그러진 미소였다.

    인간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인간을 지켜냈다는 기쁨의 미소였다.

    거대한 괴물의 주먹이 황금 사신을 향해 날아오자, 황금 사신의 머리카락이 거센 바람에 흩날리며 어두운 숲속에서 반딧불처럼 반짝였다.

    인간들은 괜찮을까?

    전부 도망가서 안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 주먹이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생각을 해서 그런지, 황금 사신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

    이곳은 너무 멀어서 엄마가 알아챌 리가 없을 텐데,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를 보고 싶은 희미한 의지의 파동은 하얀 불꽃에 불타버렸다.

    허공에서 하얀 꽃잎처럼 의지가 흩날리는 순간, 익숙한 그림자가 황금 사신 위로 드리웠다.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존재감이 퍼져나가며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엄마!’

    황금 사신은 익숙한 존재감을 느끼고 해맑게 웃었다.

    엄마가 왔어!

    ***

    푸른 사신과 클론 군단이 격돌하기 직전, 희미한 감정의 파편이 흘러들어왔다.

    신기하게도 그 방향은 클론 군단들 쪽.

    클론 군단들은 희미하게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어딘가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미니 사신의 감정이었다.

    태양처럼 밝은, 용감한 그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듯한 감정.

    나는 깜짝 놀라서, 검은 펭귄의 능력을 사방으로 펼쳤다.

    서울, 한국 그리고 바다를 넘어 전 세계.

    대부분의 미니 사신은 행복했지만, 저 멀리 미국에 있는 황금 사신의 장작이 꺼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장작을 향해, 순간 이동을 사용했다.

    엄청난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며 장작이 빠르게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도착하는 순간, 거대한 주먹이 나를 향해 들이닥쳤다.

    우드득.

    물리 면역을 얻은 뒤로 절대로 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내 몸속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많이 다쳤을 것이 분명한 황금 사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황금 사신은 깨진 도자기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도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데굴데굴 굴러가면서도, 황금 사신을 품에 안고 최대한 다치지 않게 보호했다.

    상당히 먼 거리를 구른 뒤에야, 구르는 걸 멈출 수 있었다.

    혹시라도 황금 사신이 다치지 않았을까 싶어서 품 안을 살펴보자, 황금 사신은 멀쩡해 보였다.

    헤실헤실.

    상처투성이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황금 사신은 품속에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황금 사신의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 긴장이 풀렸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미소를 머금은 채 황금 사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며, 장작을 잔뜩 밀어 넣었다.

    깨진 도자기 같았던 황금 사신은 순식간에 원래 모습을 되찾고, 양팔을 번쩍 들고 만세 했다.

    마치 ‘부활!’이라고 외치는 것 같은 제스처였다.

    ***

    쾅!

    푸른 사신의 보호막이 마치 깨질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고통만이 육신의 구원이 되리라.”

    낮게 중얼중얼, 끊임없이 읊조리기만 하는 클론 교주 군단은 묘한 이질감과 꺼림칙함을 풍기고 있었다.

    인간 같지만, 인간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중얼거리는 클론 교주 군단이 물방울을 후려칠 때마다, 물방울이 사정없이 튕겨 나가며 통로를 데굴데굴 굴렀다.

    그때마다 푸른 사신들은 굳은 표정으로 허공에 문자열을 늘어놓고 있었다.

    <우리들을 지켜주세요!>

    <모두를 지켜주세요!>

    푸른 사신들은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반격을 최소화하면서 방어막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쾅. 쾅.

    얼마나 지하 통로를 굴러다녔을까, 푸른 사신들은 통로 깊숙한 곳에 있는 넓은 공터까지 굴러오고 말았다.

    통로의 끝이자, 막다른 골목.

    그리고 넓어서 물방울을 둘러싸고 때릴 수 있는 곳.

    교주들은 넓게 퍼져나가며 물방울을 둘러싸고,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요. 고통을 통해서만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요. 고통을 통해서만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요. 고통을 통해서만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교주들의 목소리가 넓은 공터에 불길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불리한 상황처럼 보였지만, 푸른 사신은 커다란 모자 밑에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푸른 사신 10기가 모여서 커다란 문자열을 허공에 수놓았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엄마 골렘!>

    <골렘!>

    커다란 공터에 걸맞은 커다란 회색 사신이 나타나서 울부짖었다.

    “크아아앙!”

    5m 높이의 거대한 물 덩어리의 포효였다.

    ***

    교주는 고통을 거부하고, 육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위해 직접 나섰다.

    신의 존재를 깨달은 뒤에는 언제나 눈동자의 안에 머물고 있었으니, 이례적인 일이었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수많은 사람의 염원이 보였다.

    “아아, 육신의 미몽에 휩싸인 불쌍한 자들이여.”

    정돈되지 못한 염원으로는 신에게 닿을 수 없다.

    고통.

    그리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만이 신에게 닿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고통의 축복을 내리려는 중, 교주는 불쾌한 존재를 보았다.

    신의 불꽃과 닮았지만, 불쾌하게 뒤틀린 존재.

    신과 닮았기에, 더욱더 기분이 나쁜 존재였다.

    황금색과 회색빛 피부를 가진 오브젝트를 내려다보며 교주는 한탄했다.

    “아아, 신이시여.”

    한탄하는 교주가 딛고 선 땅 위에는 거대한 눈동자가 펼쳐져 있었다.

    ***

    황금 사신이 부활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았다.

    거인은 여전히 나와 황금 사신을 죽일 것처럼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대처할 방법은 여전히 없었다.

    콰앙.

    거대한 주먹에 부딪힌 바닥이 폭탄에 직격당한 것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아아, 신이시여. 올바른 인도를 보여주소서.”

    거대한 거인의 목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황금 사신을 머리 위에 얹은 채로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뀩’

    공간을 움켜쥐려고 허공을 강하게 잡아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공간을 움켜쥐어야 할 내 손아귀에는 하얀 불꽃이 벚꽃처럼 흩날릴 뿐이었다.

    물리 면역인 황금 사신이 다친 것처럼,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었다.

    능력을 차단하는 오브젝트가 존재했다니.

    아마 원인은 내 몸에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하얀 불꽃.

    이 하얀 불꽃 때문에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사실 본능적으로 능력을 쓰는 방법을 알 것 같았다.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 불꽃을 삼켜서, 직접 장작으로 쓰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다.’

    이런 확신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불꽃을 삼키는 순간 큰 문제가 생기겠지.

    자동차에 휘발유 대신 식용유를 넣으면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폴짝폴짝.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거인의 주먹을 전부 피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저 바닥에 내리꽂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계속 맞는 상황만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국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제대로 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뭘 시도해 볼 수도 없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하얀 불꽃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저 거인에게서 멀리 떨어질 필요가 있겠어.

    나는 황금 사신에게 ‘꼭 잡고 있어’라고 당부했다.

    황금 사신은 그 말을 듣고는 내 더듬이를 양팔, 양다리로 끌어안고 입으로 냠하고 물었다.

    황금 사신이 단단히 나를 붙잡자, 거인을 향해서 돌진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휘둘러오는 커다란 주먹.

    나는 그 주먹을 최소한의 궤적으로 피하며 더욱 앞으로 나갔다.

    주먹에 스친 팔이 그대로 찢겨서 허공에서 흩어져 버렸다.

    내려치는 궤적의 주먹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나는 거인의 발밑을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순식간에 재생이 가능한 팔다리가 날아가는 것을 감수했다.

    땅바닥에 처박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상황만 피하면 돼! 

    쾅. 쾅.

    거인은 짜증이 난다는 것처럼 발을 굴렀다.

    “아아, 안타깝구나. 고통은 신으로 향하는 계단인 것을.”

    화려한 옷을 입은 거인은 끊임없이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구르는 발을 피하며, 도망치는 것처럼 거인에게서 멀리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인은 습관적으로 축구공을 차듯이 나를 향해 발을 휘둘렀다.

    후우욱.

    주변 나무가 뿌리째 뽑힐 정도로 흉악한 바람이 불었다.

    분명 저 발에 맞으면 산산조각이 나버리겠지.

    하지만 나는 오히려 폴짝 뛰어서 거인의 발을 향해 뛰어들었다.

    으드득.

    끔찍한 고통과 함께 다리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총알처럼 공중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숲속을 빠른 속도로 날아가며 해맑게 웃었다.

    축구공처럼 차인 나는 온몸이 갈라지고 부서졌지만,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이게 바로 내 도주 경로다!’

    거리가 멀어지면 질수록 하얀 불꽃이 떨어져 나갔다.

    마침내 몸에 붙은 하얀 불꽃이 모두 사라지자, 나는 양손을 거인에게 뻗었다.

    검게 물든 두 손.

    이겼다.

    ‘뀩.’

    나는 공중을 움켜쥐고 그대로 거인을 찢어버렸다.

    하지만 거인이 쓰러진 자리에서 심상치 않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인이 딛고 있던 대지 위로 마법진 같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 같은 눈동자는 불길한 빛으로 빛나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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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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