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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4

       

       “나는 그대의 말을 따르겠소.”

       

       이유하의 그 말과 함께, 모두의 눈이 분대장인 나를 향했다. 그 눈길에는 분명, 일말의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제길, 백철연이! 이런 상황이지마는 자네라면 분명 수가 있지 않겠나. 어서 말해 보게!”

       “마, 맞아맞아! 시라바야시 군은 경험이 많으니까……”

       

       송병오 녀석과 양복자의 말대로, 나는 그동안 여러모로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그야 21세기에서 헌터로 굴러먹다가 온 놈이니, 이 시대 또래 학생들 눈에는 경험이 많은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당연하리라.

       

       하지만,

       

       ‘……젠장, 나도 좀비같은 것은 상대해본 적 없단 말야.’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창궐하며 기업들이 각종 마력공학으로 만든 전쟁무기가 난무하던 21세기에서도, 저런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좀비는 실존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로서도, 처음 만나보는 유형의 적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대책이 서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릴 수도 없어서,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냉철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역시 전염병 바이러스 같은 건가?’

       

       내가 그동안 봐 왔던 좀비 영화들을 떠올려보자면, 그게 가장 현실적이겠지. 20년 전에 죽은 시신들 치고는 상태가 좋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패한 시체에 불과하니 하나하나 상대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위안이 되었다. 

       

       게다가, 이곳에는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었다.

       

       이유하의 빙결로 좀비들을 얼려서 무력화하거나 움직임을 늦출 수도 있고, 양복자가 염동력으로 멀찍이 날려버릴 수도 있으며, 송병오의 마력탄도 있고, 부족한 마력이나 체력을 아이까와가 보조해줄 수도 있다.

       

       저 좀비들의 행동을 추측해보자면 무식하게 공격만 해올 것이고, 신체적 스펙만 따지면 아마 중형 하급이나 중급 마수 정도이려나. 우리 분대원들의 실력이라면 그리 위협적인 적은 아니리라.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

        

       아까 송병오 녀석이 했던 말에 따르면 학생이 백여 명 넘게 죽었다던가. 하지만 그것은 그나마 발표되고 알려진 숫자일 뿐 실제로는 더 죽었을 것이고, 실제로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어림잡아 세어도 백은 훨씬 넘어보인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감안하면 더 있을 것이다. 

       

       아무리 부패한 시체에 불과하다고 해도, 저 정도 숫자가 되면 지금의 내가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나 뿐만 아니라 이유하, 양복자, 그리고 아이까와도 마력과 체력의 한계가 있고, 송병오는 탄약의 수에 제한이 있다. 저렇게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인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대원은, 아이까와를 제와하면 나를 비롯해서 모두 조선인들. 

       

       눈 앞의 저들 역시, 지금은 비록 좀비지만 그 본질은 일제에 저항하다가 희생당한 조선인들이었다. 저들을 적대시하고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분대원들이 가지는 심리적 거부감도 크리라. 나 역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뒤로 빠질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는 것은 나름대로 굳건한 콘크리트 막사. 막사로 도망쳐 들어간다면 당장은 방어할 수 있겠지.

       

       하지만, 결국은 포위되어 둘러싸이고, 막사 내부의 다 삭아빠진 나무 문 따위는 밀려드는 좀비를 막아주지 못 할 것이다.

       

       ‘……젠장.’

       

       길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고, 나는 짧은 고민 끝에 결국 입을 열었다.

       

       “돌파한다.”

       “……!”

       “저 좀비들을 전부 상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뚫고 갈 수는 있을 거야.”

       

       무모한 방법이긴 해도,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저, 정말로? 혼또니? 시라바야시 군, 정말로 돌파할 셈이야? 아따시, 아따시 달리기만큼은 정말 느린데…… 잘못하면……”

       

       나도 알고 있었다. 자기는 달리기가 느리다며 울먹거리는 양복자의 말처럼, 돌파 과정에서 뒤쳐지는 분대원은 희생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나부터도 신체능력 자체는 보잘것 없어 이런 험지에서의 주파는 자신이 없었으니, 내가 먼저 고꾸라져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살아서 도망치더라도, 잘못 물려 감염이라도 되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모두가 살아서 탈출할 가능성은 정말로, 정말로 희박했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이라도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얘들아.”

       

       나는 나의 분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냉철한 이유하, 불평꾼 송병오, 맹랑한 양복자, 소심한 아이까와…… 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밀려올라왔다.

       

       이 시대에 홀로 떨어져 처음 생긴 친구들인데.

       

       한달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정 든 녀석들인데. 

       

       이 아이들과 더 친해지고,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런 녀석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이런 나를 따라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나를 믿고 따라와 줘. 우리 모두 살 수 있을 테니까.”

       

       거짓말이었다. 당연히, 모두가 살 수는 없었다. 친구라는 녀석들에게 거짓말이나 한다는 것이 몹시 마음이 아팠지만, 생사가 달린 돌격을 앞두고 리더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도 없었기에, 다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힘을 합치면 전부 살아서 나갈 수 있어.”

       

       물론, 이 녀석들도 내 거짓말을 순순히 믿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송병오는 장전한 교총에 마력을 주입하며 비장한 얼굴로 내뱉었다.

       

       “쳇!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이유하에게 내 말을 통역해서 들은 아이까와도,

       

       『나, 나도 짐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

       

       라고 말하며 주먹을 꼭 쥐었고, 이유하도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가 이르는 대로 행하겠소.”

       

       나는 녀석들의 시선을 받으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좀비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좀비들이 아직 바로 코앞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좀비들이 이곳을 포위한 동심원이 좁아질수록 좀비의 벽도 두터워지기 때문에, 늦으면 늦을 수록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나는 한 방향을 가리키며 분대원들에게 말했다.

       

       “방향은 저기, 보이지? 성벽이 허물어진 쪽. 내가 셋둘하나, 하고 신호하면, 나부터 앞장설테니 모두 그쪽을 향해서 달리는 거야. 다들 준비하고. ……그럼, 셋, 둘—”

       

       그렇게 내가 신호를 내리려는 찰나, 

       

       “흑…… 정말, 이렇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어. 난 몰랐어, 시라바야시 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양복자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주…… 저주라는 거, 정말로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우, 울지 마, 도미꼬! 흑!……』

       

       마음 약한 아이까와는 양복자를 따라서 울기 시작했고, 송병오도  “제기랄! 끝까지 저러는군!” 하고 투덜거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상태로는 돌격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젠장, 기껏 다들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지금같은 때에 또 저주 타령이나…… 어?’

       

       하지만, 방금 양복자의 저주 타령을 들은 나는 문득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양복자에게 물었다.

       

       “잠깐, 뭐라고?”

       “흐윽, 저주, 말이야!”

       “저주라니? 자세히 얘기해 봐!”

       “내, 내가 예전에 봤던 영화…… 《공포성(恐怖城)》에서도 그렇고…… 살아움직이는 시체들은 저주에 걸린 것이 당연하잖아! ……저 시체들도 분명, 조종당하고 있는 거야……” 

       

       양복자의 말을 들은 나는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저주……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다고?’

       

       처음에는 그저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느껴졌지만, 생각해보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미래의 많은 매체에서는 좀비를 전염병에 의해 이성을 잃은 괴물로 묘사하지만, 본래 좀비라는 것은 남미의 토속종교인 부두교에서 기원했다. 미래의 좀비 매체에만 국한되어 생각했기에 떠올리지 못했을 뿐, 오리지널 좀비라는 것은 본래 주술사에게 조종당하는 시체였던 것이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저것이 21세기 매체의 좀비처럼 전염병이나 바이러스 같은 것에 의한 좀비였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이 산골짜기에만 퍼져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방역이 발전된 시대도 아니었으니 진작에 온갖 곳에 퍼져서 난리가 났겠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의 이 좀비들도, 설령 ‘저주’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유형의 좀비가 맞으리라. 

       

       ‘이것도 대동아공영회 소속의 교수들이 벌인 일인가?’

       

       아마 그렇겠지. 이 학교 내에서 이런 일을 꾸밀 자들이 달리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 많은 시체들을 대체 누가, 어떻게 조종한단 말인가? 염동력으로? 아니면 세뇌해서? 

       

       비록 어떤 방식으로 조종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저 정도 규모라면 분명 가까운 곳에 조종의 주체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주체만 찾아내서 제압하면, 저 좀비들과 격돌하지 않고도 무력화시킬 수 있으리라.

       

       ‘하지만 대체, 어디에?’

       

       오스에 정도로 기척을 숨기는데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주변의 각성능력자 혹은 일반인의 존재를 내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시라바야시 군! 나, 나도 마음의 준비가 됐어! 그치만 시라바야시 군이 준비 요이 땅을 하지 않으면……”

       “백철연 자네, 뭘 하나! 어서 돌격 신호를 외치게!……”

       

       좀비들은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닥쳐와, 십여 미터 앞까지 다가온 좀비들을 이유하와 양복자가 빙결과 염동력으로 멈춰세우고, 송병오가 마력탄을 때려박고 있었다.

       

        ‘젠장! 어디야? 어디서 조종하고 있는 거냐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급히 주위를 둘러보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설마?’

       

       안테나. 막사 옥상에 세워진 안테나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보긴 봤지만, 그냥 군사용 건물이라 있는 것이겠거니 하고,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있던 안테나.

       

       그 안테나에서 미약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마력 자체는, 그냥 자연적으로도 대기중에서 느껴지는 정도의 미약한 마력이어서 전혀 특별할 것이 못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안테나로부터 마력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주변의 마력 방출을 찾던 나의 눈에 띄이지 않았던 것이겠지.

       

       하지만, 이곳의 대기중에 분포되어있는 미약한 마력은, 저 안테나를 중심으로 마치 물결과도 같은—일종의 파장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저거다!’

       

       저것이 좀비를 조종하는 주체임을 확신한 나는 분대원들에게 외쳤다.

       

       “돌파는 취소! 다들, 막사 옥상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60화의 TMI에서도 나왔습니다만, 양복자의 입에서 언급된《공포성(恐怖城)》은 1932년 미국영화 《White Zombie》의 일본판 제목으로, 일본에는 1933년에 개봉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제목에 좀비라는 단어가 들어간 원조 좀비 영화 중 하나죠.

    현대에는 좀비라는 것이 ‘마음편히 죽일 수 있는 살육 타겟’ 정도로 여겨지지만, 좀비의 유래를 생각해보면, 죽어서도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이용당하는 피해자였죠.

    그럼 전 목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당!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전 치킨을 먹을게요 엘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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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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