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4

       뭔가 거대한 오해를 산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대충 넘기기로 했다.

        

       인제 와서 되돌리기에는— 아니, 되돌릴 수야 있다만, 그러기에는 내가 들인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돌린다고 큰 손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껏 공작을 설득해놨는데 다른 방법을 다시 찾는 것도 너무 귀찮고.

        

       무엇보다 어차피 작품 후반에 가면 식민지도 슬슬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거기에 제국은 거의 전 세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였고, 결과적으로 황제가 죽으면서 전쟁 자체는 무마되지만, 이미 개판 오 분 뒤인 상황에서 서로 전쟁을 원하지 않는 이들끼리 대충 봉합한 휴전이고, 식민지에서는 연속해서 유혈사태가 터지고, 법국은 엄청나게 수상하게 움직이고…… 하는 상황이 내가 플레이한 곳까지의 스토리였다.

        

       게다가 주인공 일행 중 일부가 죽어서 상황도 완전 우울했고.

        

       ……뭐, 여기서는 거기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진실한 우정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뭐, 우정이라면 줄 수 있지.

        

       일부러 말을 모호하게 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말을 모호하게 하면 그만이다.

        

       정치적인 수사니, 뭐니 하는 것들이 있기는 하겠다만, 나중에 뭉개버려도 뭐 어쩔 거야? 황실에 반란을 일으킬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이면 이쪽 코가 석 자일 텐데.

        

       “훗날 제 친우가 이 가문의 아들과 결혼한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죠.”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공작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희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

        

       어떻게든 상황을 매듭지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게 끝난 것이 아닌가?

        

       고성이 오가고, 재떨이가 날아다니는 상황이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물론 그 재떨이를 나한테 던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무슨 대화를 한 거야?”

        

       방에서 나오는 나에게 제이크가 물었다. 자기 아버지가 같이 나오지 않은 것이 의아한 모양이다.

        

       “여러 가지 긍정적인 논의가 오갔습니다.”

        

       그런 대답을 하는 나를 앨리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라보았지만,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어차피 오늘 돌아가면 같은 방에 있을 테니 말해줄 수밖에 없잖아.

        

       내가 오늘 나눈 대화를 듣고 이마를 짚을 앨리스가 눈에 훤했다.

        

       “그으래?”

        

       제이크가 말을 끌면서 그렇게 되묻기는 했지만, 다행히 더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

        

       그 외에는, 딱히 대단한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레오는 꽤 무거운 분위기였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내가 다가가 물어보자, 레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바깥에 고정되어있던 눈을 거두었다.

        

       “아니, 뭐. 대단한 일은 아니고.”

        

       “그런 것 치고는 아까부터 바깥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데.”

        

       나를 따라온 제이크가 말했다.

        

       “저렇게 넓은 농장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일하는 게 그렇게 보기 어려운 일이야?”

        

       “…….”

        

       제이크의 말에는 별다른 의미가 담겨있지 않았지만, 목소리에는 이 상황이 별로 달갑지는 않다는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겉모습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러 여자를 꾀어서 가지고 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 여자만 바라보는 순정남에 동물을 좋아하고 식민지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너 왜 히로인 아니냐? 차라리 로티 쪽이 남자 캐릭터인 게 훨씬 매력적이지 않나?

        

       말없이 그런 고민을 하는데,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제국에서도 저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꽤 있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농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선이 자기에게 몰리자, 앨리스는 조금 무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대답했다.

        

       “그게 잘됐다는 소리는 아니야. 그저…… 그렇다는 거지. 그런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외로 귀족들은 모르고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니까.”

        

       “벨부르에서도 린드버러 이름이 붙은 과일은 꽤 유명해요.”

        

       레오처럼 말이 없던 샤를로트도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싸고 맛있으니까…… 만약 그런 것을 벨부르 땅에서 재배하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런 식으로 따라 하지는 못하겠죠.”

        

       벨부르 국민을 직접 써야 할 테니까.

        

       물론 벨부르가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민생이 대단히 좋다는 것은 아니다. 국토 산업의 대부분이 농업이고, 그 농업은 대지주가 소작농을 착취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터였다. 그리고 그 대지주는 당연히 대부분 귀족이고.

        

       착잡한 거겠지.

        

       그렇게 사람을 쥐어짜서 국력을 올려도, 이런 식으로 식민지를 만들어낸 제국에 비해서 발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제 와 식민지를 만들고자 하면 전쟁을 일으켜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낸 식민지에서는 다시 사람을 착취하는 것이 반복된다.

        

       뭐, 그 좋은 시절의 ‘좋은’을 누가 만들어냈겠는가.

        

       “…….”

        

       그리고 그 착취당하는 인물 중 가장 아래쪽에 있게 되었을 클레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 손님방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볼일은 끝났습니다.”

        

       내가 입을 열자,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보았다.

        

       “슬슬 돌아가 볼까요. 공작께서는 여기서 묵어도 된다고 하시긴 했습니다만.”

        

       만약 여기서 하루를 묵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갈 때는 더 대단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훨씬 더 우울한 광경이겠지.

        

       “……아니, 그냥 돌아가자. 더 있어 봐야 볼 것도 없을 테니까.”

        

       앨리스도 내일 아침에 볼 광경이 어떤 광경일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다들 앨리스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

        

       “황녀님.”

        

       로티가 제이크보다 나를 먼저 불렀다는 건 여러모로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소리일 텐데.

        

       분명 함께 따라왔는데 로티가 손님방에 없었던 건…… 딱히 차별을 받았기 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로티는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대는 메이드복을 입은, 로티의 어머니였다.

        

       이곳 하녀는 전부 백인인 줄 알았는데.

        

       뭐, 한 명만 특별 취급하고 있을지 모르지. 백작 눈으로 보기에 로티는 나와의 연결점일 테니까.

        

       연회장에 있었던 건…… 그건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자.

        

       로티의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이야기는 잘 끝났습니다.”

        

       “그렇습니까…….”

        

       로티는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표정을 뚫고도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음, 어쩌면 앨리스가 내 표정을 이런 식으로 알아차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로티의 어머니는 허리를 숙인 채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만약 로티가 기사 작위를 받게 되면 로티와 그 어머니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것도 염두에 둬야겠네.

        

       시선을 살짝 돌려보니, 앨리스 역시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럼, 돌아가도록 하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로티의 어머니가 살짝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그쪽을 향해 고개를 조금 숙여 보이자, 그녀는 황급히 얼굴을 숨겼다.

        

       *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서성인 뒤에야 앨리스는 입을 열었다.

        

       “로티는 린드버러의 딸이야?”

        

       “‘린드버러’의 딸이라면 맞습니다. 하지만 ‘린드버러 공작’의 딸은 아닙니다.”

        

       “…….”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뭐, 좋아. 그런 걸 네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둘째치기로 하고.”

        

       그렇게 한숨 섞인 말을 하더니 내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말해봐. 로티가 린드버러의 딸이라면, ‘어느’ 린드버러의 딸이야?”

        

       “로티는 제이크와 육촌 관계입니다.”

        

       한국이라면 근친상간으로 결혼도 못 할 촌수이기는 하다만. 이쪽 세계에서 귀족이라면 결혼하지 못할 관계도 아니다.

        

       무엇보다, 국제적으로 따지면 사촌 간 결혼이 허용되는 나라가 더 많다던가…… 법이 그렇다는 거지 세간의 인식은 개차반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결혼하려고 일부러 핏줄 섞인 다른 가문을 찾아다니는 이곳에서는 또 이야기가 다르다.

        

       제이크의 아버지인 린드버러 공작의 사촌께서 십 대 식민지인을 범해 낳은 딸이 로티였다. 당연히 린드버러라는 이름은 쓰지 못하고, 신분에 대해서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아예 그런 일이 없었던 셈 치니까.

        

       바깥에서 멋대로 방탕하게 굴다가 생긴 아이를 린드버러 가문에서 아량을 베풀어 메이드로 고용해주었다……라는 것이 세간에 알려진 내용일 것이다.

        

       “…….”

        

       내 말을 들은 앨리스는 이마를 짚었다.

        

       “아니, 뭐, 그래, 좋아.”

        

       전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앨리스가 말했다.

        

       “너, 알고는 있지? 아무리 황실의 권위가 대단해도 공작가의 가문의 집안 사정에 끼어들면 일이 엄청나게 지저분해질 수 있다는 거.”

        

       “…….”

        

       어.

        

       아, 알고는 있었는데.

        

       나를 보는 앨리스의 눈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그쪽에서 너한테 뭘 요구했어?”

        

       “진실한 우정입니다.”

        

       결국 앨리스는 이마를 짚었다.

        

       “진실한 우정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서 한 일이지?”

        

       “…….”

        

       “이쪽에서 뭔가 일이 터지면, 제국 황실에서 나서서 함께 해결해줄 정도의 우정을 말하는 게 당연하잖아?”

        

       “…….”

        

       아, 그런 건가?

        

       “아니, 마음 놓인 표정 짓지 말고…… 참 나.”

        

       황제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는 표정을 앨리스에게 들킨 모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시 한 번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ㅠㅠ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