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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4

    폭, 조그만 연기가 새어오른다.

    병에 담겨져있던 액체는 마치 물감을 푼 듯 연붉은 빛에서 급격히 검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또 실패다.

     

    “흠, 이건 곤란한데.”

     

    물약에서 원하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루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찾아보아도 ‘참수된 죄인의 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드에게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은 손상된 영혼의 치료제.

    대부분의 재료는 마력초와 마법, 또는 마력으로 흉내내거나 대체할 수 있었지만 오직 한가지, ‘참수된 죄인의 피’는 그럴 수 없었으니까.

     

    ‘절대’ 대체해선 안되는 재료, 대체할 수 없는 재료.

     

    참수된 죄인의 피는 특별히 커다란 죄를 지은 영혼을 대가로 사용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재료이기에 대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뭔가 다른 식으로 구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을까.

     

    ‘단지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으론 부족한건가…….’

     

    루크는 이제 몇 방울 남지 않은 세계수의 진액이 담긴 통을 흔들어보았다.

    이제 남은 건 단 한번의 기회.

     

    예르나에게 똑같은 향수를 또 사달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눈치가 보인다.

    꽤나 비싸기도 했고, 어차피 이미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방식은 이미 다 실험해보았기에 의미가 없기도 하다.

     

    “흠.”

     

    루크는 곰곰히 ‘영혼 회복제’의 실패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영혼에 관련된 마법은 대부분 사령술, 즉 흑마법의 한 갈래이다.

    흑마법은 주로 희생과 역행, 그리고 공허와 영혼을 다루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이 차원의 법칙과 동떨어진 작동방식을 지닌다.

     

    사람들은 흑마법이 정상적인 마법보다 더욱 빠르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멍청한 소리다.

    금방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흑마법은 정확한 계산을 거치지 않더라도 현실을 비틀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용자의 실수도 포용하는 마법, 꽤 자애로운 마법이 아닌가?

     

    하지만 그게 정상적인 방식이라면, 흑마법이 ‘금지’당했을 리 없다.

    오히려 권장되었겠지.

     

    흑마법과 백마법(보통은 그냥 마법이라고 부르나, 비교를 위해 임의로 백마법이라 칭함)의 차이점은 바로 ‘통제 가능성’에 있다.

    백마법에서는 오차가 생기면 애초에 마법이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훨씬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으며, 100% 마법사의 능력 안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나 흑마법은 오차가 있더라도 시전된다.

    다만,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마법사가 의도한대로 정상적인 마법이 될 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토끼를 소환 하려다가 이계의 괴물을 타 차원에서 꺼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오차를 못 잡는 자가 흑마법을 썼다가 자기파멸하는 경우를 루크는 수도 없이 보았다.

    흑마법은, 지불능력이 없다고 사용자에게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상냥함을 갖추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루크는 그 실패의 오차마저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흑마법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흑마법이라고 해도 결국 마법은 마법. 당연히 루크의 연구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흑마법을 연구하는 것은 금지이지만, 마법사들은 감히 ‘루크 이루시’가 흑마법을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 없었기에 언급자체를 삼갔다.

     

    그야 그렇겠지.

    모든 시대를 통틀어 마법적 재능으로서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인 ‘루크 이루시’에게 그 누가 마법으로 훈수를 둘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따라서 마법사들은 루크 이루시가 흑마법을 연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심지어 그가 흑마법을 연구해서 후에 잘 정리해낸다면 그것에 조금이나마 득을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마저 하는 마법사도 존재했다.

     

    따라서 루크는 금지된 마법을 연구하면서도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사실은 애초에 마법사들에게는 그를 제어할 수단이 없었다는 점이 겹친 결과였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마왕을 처치한 영웅의 칭호도, 10서클의 압도적인 권한도, 화려한 인맥과 재화도 없었으니까.

     

    고작 조금 특이한 생김새를 지니고, 온전한 3서클과 이제는 슬슬 과거에 9서클을 넘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나량, 그리고 5000년 전 최고의 마법적 지식을 담은 기억과 마력시 한쪽을 지닌 꼬마일 뿐이니까.

     

    고양이귀와 뿔과 꼬리는 생략하겠다. 그건 지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이니.

     

    “이걸 어쩐다…….”

     

     

    단순히 참수만 해서도 안되고, 명백히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자가 참수되며 흘린 피가 필요했다.

    그게 아니라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테니까.

     

     

    이럴 땐 이 시대에 사형제도가 폐지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 옛적에는 꽤 구하기 쉬운 편에 속하는 재료였는데 말이다.

     

    “…….”

     

    루크는 골몰히 생각해보았다만, 딱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

     

    “……흐음.”

     

    루크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검색을 해본 결과, 당연하게도 판매한다는 곳은 없었다.

    애당초 금지된 마법 중 하나인 흑마법의 재료인데다가, 사형제도가 폐지되며 참수형도 자취를 감춘 이 시대라 더욱 그런 듯하다.

     

    그럼 아무래도 죄인을 직접 찾으러 다녀야 하는 건가?

    그렇지만 참수형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죄인을 어디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범죄자 수용시설이라도 찾아가면……. 안되겠지.’

     

    잠깐만 생각해봐도 무리다.

     

    어느날 범죄자 하나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면?

    탈옥범이 생긴 것이니 당연히 난리가 나겠지.

    그러면 간수들은 반드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힘을 쓸 것이다.

    그러다 만약에 거기서 누군가 목이 잘려서 발견된다고 하면 더욱 큰일이다. 또는 살해 흔적이라던가.

    현대의 마법과 기술은 아직 루크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었으므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추적해올 수 있을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아마, 결국 자신은 잡히지 않을까?

     

    만약 그러면 예르나를 비롯한 많은 지인들이 크게 실망할 것이며, 아마 당분간은 감옥에 처박혀서 평소에 간간히 하던 마법의 연구도, 현대 지식의 추구도 전혀 할 수 없게 되겠지.

    잡히지 않고 도망친다는 것도 문제다.

    그럼 평생을 세상을 피해 살아야 할텐데, 그건 그것 나름대로 내키지 않는다.

    고작 참수된 죄인의 피 하나 얻자고 평화로운 일상을 포기해야 한다니.

     

    그건 절대로 루크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럼 대체 어디서 죄인을 구하고 참수까지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간만에 루크의 골머리를 썩히는 문제다.

     

    그렇게 한동안 고민을 이어나가던 도중, 누군가 루크를 불렀다.

     

    “저, 루크님. 이미 와 계셨습니까.”

     

    “아, 그대여. 꽤 오랜만…….”

     

    멈칫.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던 루크는 돌연 몸을 멈췄다.

     

    “맙소사, 그 가면. 어쩌다 그런 꼴이 되었는가? 바른대로 말해보게.”

     

    당황한 목소리, 루크는 그의 얼굴에 씌워진 가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쩍쩍 갈라져 부숴진 가면을,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서 고정해둔 처참한 모습이었다.

     

    “얼른 말해보래도?”

     

    서드는 거듭된 추궁에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밝히지 않을 수 없으니.

     

    “……맞았습니다. 딜런트, 제가 손에 넣은 약 제조시설의 주인에게요.”

     

    “약 제조시설?”

     

    “예전에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제대로 된 일을 가져야 한다고요. 잊으셨습니까?”

     

    “아하. 그 얘기로군, 물론 기억하고 있네.”

     

    서드는 그동안 열심히 직업을 알아본 결과, 아무래도 제약시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제약시설은 일반인도 꽤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고, 뒷골목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5000년 전의 기준으로는 약을 만드는 마법사가 조수를 구할 때에는 전문성보다 말을 잘 듣는지 여부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뒷골목에서 자라온 서드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루크는 별달리 의심을 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였다.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그러자 서드는 더욱 자세히 설명했다.

     

    “그……. 제가 실수를 좀 했습니다. 예전에도 저와 일이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제가, 제길. 제가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옛날의 기억을 후유증으로 대부분 잃어버려서……. 그 사람의 얼굴을 제가 기억하지 못했어요. 알았더라면 진작에 도망쳤을 텐데…….”

     

    서드는 침통한 목소리로 말을 끝마쳤다.

    말하기 시작한 이상, 거짓말은 할 수 없다.

    그는 심장에 서클을 품은 자였으니까.

     

    그래서 전부 사실대로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치부를 낱낱히 밝히는 느낌에,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는 곧 다가올 질책을 기다리며, 루크의 시선을 피했다.

    점차 다가오는 손길에 서드는 거의 체념에 가까운 감정마저 들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목소리는 놀랍게도, 그를 탓하는 소리가 절대 아니었다.

     

    “아니, 아무리 실수를 했다고 해도 그렇지, 어찌…….”

     

    루크는 걱정스러운 손길로 서드의 부서져가는 가면을 어루만졌다.

    인챈트는 아직 가까스로 작동하고는 있으나, 곧 있으면 그 효력이 다할 것 같았다.

     

    “그 가면은 벗어야겠구나, 곧 완전히 부숴질 테니. 하나 더 만들어줄 테니 안심하고.”

     

    “……예?”

     

    “그럼 그대의 얼굴은 괜찮은가?”

     

    달칵, 서드의 얼굴에서 가면이 떨어졌다.

    가면 너머의 얼굴을 바라본 루크는 다행히 얼굴은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다며 안도의 목소리를 내었다.

    분명 가면의 안쪽은 보기에 끔찍한 모습일텐데도, 루크의 표정엔 일말의 불쾌감이나 혐오감도 없었다.

     

    그런 대우는 그동안 뒷골목에서 자라온 서드에게는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 같은 걸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그럼, 당연하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대는 나의 제자인것을.”

     

    루크는 그야 당연한 물음이라는 듯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스승님.”

     

    서드는 조금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낯선 느낌이지만, 나쁘지 않았…… 아니. 그것은 분명히 좋은 느낌이었다.

    그의 서클이 조금 덜컹거리며 요동쳤다.

     

    “하하, 사내가 되어서 고작 이런 걸로 감동을 받기는, 그대도 참 감수성이 뛰어난 아이로구나!”

     

    루크는 서드의 감동받았다는 표정에 장난스레 팔을 툭, 쳤다.

    그러자, 부서진 어깨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이 신경을 빠르게 타고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끄헉!”

     

    “어, 엇? 갑자기 왜 그러는가?”

     

    갑작스럽고 고통스러운 서드의 비명에 루크는 크게 당황해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꼬리와 귀는 이미 한껏 곤두세운 것 같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는 자기가 평범하게 의지할 수 있는 친구 비슷한게 되고싶은 모양이지만 서드입장에선 그게 절대 아닌…
    이야기가 어떻게 튈까요.

    일요일에 삽화만 잔뜩 그렸는데 과연 이거 다 쓸 수 있을런지…
    그래도 삽화 먼저 그려놓으면 글이 빨리 나와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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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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