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4

     

    아셀라의 마법 사건으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결국 그날 내게 썼던 마법이 뭐였는지는 끝까지 안 알려주더라.

     

    딱히 느껴지는 몸의 변화도 없었기에 별 신경 안 쓰고 넘어가기로 했다.

     

    시모어에게 배운 타개책이 효과를 제대로 봤는지, 아셀라는 신나서 매일같이 마법 연습을 이어갔다.

     

    마력회로 상태도 전보다 좋아졌고, 활기가 넘쳐 흐른달까.

     

    수족관에 갇혀있던 물고기가 강으로 돌아간 마냥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전에는 아셀라의 마법 하면 일단 위험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세상을 멸망시킬 용도로 쓰지 않으리라 알고 있어서 그런가.

     

    본인이 즐거우면 좋은 일 아닌가 싶다.

     

    “허, 참.”

     

    “왜 그러십니까?”

     

    혼자 헛기침을 하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타냐가 내게 물었다.

     

    “그냥. 사람 생각이 바뀌긴 바뀐다 싶어서.”

     

    “수도 없이 바뀌죠.”

     

    아셀라에 대한 내 태도가 이렇게까지 바뀔 줄은 몰랐지.

     

    “황녀님도 많이 바뀌셨고요.”

     

    타냐는 내 말의 의미를 바로 눈치챘는지 그렇게 말했다.

     

     

    둘이서 궁을 나서려 하니 브루노의 큰 덩치가 눈에 띄었다.

     

    그의 옆에는 세 명이 더 붙어있었다. 엘프 경비대다.

     

    “아, 의사!”

     

    발렌이 나를 향해 허겁지겁 뛰어와서는 억울한 표정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지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입은 한참이나 막혀버렸는데, 발렌이 구운 옥수수 따위의 길거리 음식을 잔뜩 품에 들고는 끊임없이 입에 쑤셔 넣었기 때문이었다.

     

    “말부터 하실래요, 먼저 드실래요?”

     

    “옴뇸뇸.”

     

    발렌이 내게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음식을 브루노에게 다 맡겨버리고 내 앞에 다시 섰다.

     

    그래놓고 아쉬웠는지 튀긴 감자를 한입 더 베어 물었다.

     

    “대체 뭐야, 광장 시장은. 여기 보이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어! 말도 안 돼!”

     

    수백 년 만에 숲을 나오신 엘프께서는 인간 문명의 지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너 저기 성벽 위에 올라가 봤냐? 거기서 활을 쏘면 그리폰의 이마도 맞추겠더라고!”

     

    신이 나서 자랑하던 발렌은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혹시 하이엘프 놈들도 이런 걸 보고 타락했나…? 야, 의사. 너 다른 꿍꿍이 있는 거 아냐?”

     

    재밌네.

    새하얀 도화지에 첫 먹물을 뿌린 기분이야.

     

    “하하, 그럴 리가요. 저희를 먼 길 호위해주셨으니 보답이 되었으면 했습니다만. 관광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어, 보답. 그렇지.”

     

    발렌은 난폭해 보이지만 의외로 순수하다. 재미있는 엘프다.

     

    “휴식도 푹 취하셨을 테니 돌아가실 땐 말씀해주시죠. 텔레포트 게이트를 쓸 땐 허가가 필요해서요.”

     

    “돌아가… 그치, 돌아가야지.”

     

    발렌이 음식을 힐끔거리며 혀로 입술에 묻은 소금을 핥았다.

     

    “시기는 언제쯤으로 예상하시는지요? 일주일 후 정도일까요?”

     

    “음. 본래 그 정도 기간으로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던 파멜름이 대신 대답했다.

     

    “다음 주라.”

     

    발렌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하는 태도로 팔짱을 끼었다.

     

    지금이 타이밍이겠어.

     

    “뭐, 제국이 마음에 드셨다면야 짧은 기간 정도는 더 체류하셔도 괜찮습니다.”

     

    “정말?”

     

    발렌이 내 제안에 눈을 반짝였다.

     

    “예. 손님은 정성으로 모시는 풍습이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6개월 정도는 어떠신가요. 일주일과 큰 차이도 없잖아요?”

     

    “6개월이라. 그 정도면 뭐.”

     

    발렌이 파멜름의 눈치를 보았다.

    파멜름도 반대 의견은 아닌 모양이었다.

     

    방금 대화에서 브루노만 이상함을 느꼈는지 사이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조금만 더 신세 질까.”

     

    “예, 얼마든지 편히 계시지요.”

     

    “그럼 그러지 뭐.”

     

    발렌은 신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다란 귀 끝을 쫑긋거렸다.

     

    “근데 너희들 지금 어디 가냐.”

     

    “지금부터 광장에 큰 행사가 있습니다. 같이 구경해보실래요?”

     

    “행사, 좋지! 어쩐지 어제보다 사람이 많더라. 파멜름, 빨리 가보자.”

     

    발렌이 신나서는 앞장섰다.

     

    브루노가 내게 슬쩍 물었다.

     

    “6개월입니까?”

     

    “엘프들은 느긋하지.”

     

    “흠. 천둥족은 안 저랬는데요.”

     

    “다행 아니겠어.”

     

    기슈타가 엘프 같은 시간감각을 가지고 있었으면 아직도 북부에 처박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내의원으로 향했다.

    제도 광장과 황궁 구역에 걸쳐 위치한 건물이라, 내의원 옥상은 광장을 구경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미 소문이 다 났는지 의사고 치유사고 일하다 말고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선생니임! 자, 자리이, 맡아놨어요오!”

     

    클로에 덕분에 광장 전체와 황궁 쪽 성루 양쪽이 다 잘 보이는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그새 사람이 더 많아졌잖아. 무슨 행사인데 이래?”

     

    발렌의 질문에 브루노가 대답했다.

     

    “행진입니다. 외부에서 큰 공적을 세운 기사단이 귀환할 때 이렇게 제국민이 환영해줍니다.”

     

    “허, 어디서 드래곤이라도 잡았나.”

     

    “드래곤은 아니고 히드라였다고 합니다.”

     

    “…진짜? 그거 재해급 마물이잖아.”

     

    발렌과 브루노는 더 질답을 이어가지 못했다. 성루의 상층 테라스의 문이 열리자 제국민이 환호하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기 때문이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자리다.

    나도 가끔은 황제인 아셀라와 싸우러 저 뒤편까지 뛰어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황제가 옥체를 드러내자 수많은 제국민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다.

     

    공식 석상에 나서는 그의 모습은 제국 그 자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굳건하다.

    당장 병상에서 주치의들이 24시간 돌봐야 하는 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어 보인다.

     

    그가 힘차게 팔을 뻗자 관악대가 연주를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광장으로 말을 탄 기사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월광궁 산하인 2연대다.

     

    “귀환하신다!”

    “세기의 영웅이 나타나셨어!”

     

    제국민들이 환호를 보내며, 준비한 꽃을 뿌린다.

    행진하는 기사들은 말의 속도를 늦추며 민중에게 화답한다.

     

    행렬이 이어지던 도중, 클로에가 눈을 크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

     

    “선생님, 저기! 저기 계셔요!”

     

    “오, 안색 좋아 보이네.”

     

    멀리서도 백의를 입은 우리 의사진은 확 눈에 띄었다.

     

    그 선두에서 휴고가 긴장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서 있다.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클로에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이번 던전 원정은 상당히 큰일이었다고 하더군요.”

     

    타냐가 말했다.

     

    “던전브레이크가 발생해서 갑작스레 위험한 마물과 싸우게 됐습니다. 자작령 하나가 통째로 날아갈 뻔했는데, 다행히 마물이 탈출하기 전에 막아냈답니다.”

     

    “저희 의사진도 엄청 활약했대요! 사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지 뭐에요.”

     

    클로에가 흥분해서는 덧붙였다.

     

    별안간 환호성이 커졌다.

    행렬의 중앙, 새하얀 백마 위에 당당하게 앉아있는 그녀.

     

    리셰가 활짝 웃으며 팔을 흔들었다.

     

    그녀를 다시 본 건 한 달 반 정도일까.

    어느덧 리셰는 누가 봐도 용사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는, 늠름한 전성기 시절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비범한 능력으로 제국민의 안전을 지켰으며 황제가 직접 나와서 공을 치하할 정도다. 상당한 영광이다.

     

    입궁 전, 기사단이 잠시 행진을 멈추고 황제의 치하와 명을 기다린다.

     

    광장에 모인 제국민 모두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며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는다.

     

    민중에게는 안심을 주고, 대외적으로는 용사가 제국 소속임을 확인시킬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행사다.

     

    거리가 멀어서 진단은 쓸 수 없었지만, 리셰는 건강해 보였다.

     

    아까부터 왼팔만 쓰고 있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황제가 리셰와 기사단을 향해 짧은 연설을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는 확성 마법을 통해 모든 제국민에게 전파됐다.

     

    ―제국의 안위, 나아가 대륙의 평화를 가져올 용사여. 제국은…

     

    그 도중,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던 리셰가 별안간 얼굴에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

     

    아, 정확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리셰는 황제의 연설을 듣다 말고 말에서 내려 내의원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군중이 술렁거린다.

     

    내의원 1층까지 쏜살같이 뛰어온 그녀는 옥상, 즉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우레 같은 목소리로 냅다 외쳤다.

     

    “고트베르크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그래, 나도.

     

    이런 식으로는 말고.

     

     

     

    ***

     

     

     

    월광궁으로 돌아와 휴고에게 간단한 보고를 받았다.

    꽤 위험한 상황이긴 했어도 우리 의사진에게도 좋은 경험이 됐겠다 싶었다.

     

    다만 한 가지. 리셰가 히드라를 쓰러트리며 부식독에 부상을 입어서 치료한 차트를 확인했는데, 그게 좀 걸렸다.

     

    “용사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타냐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고 자시고 아셀라의 명령이 있으니까, 오래 얘기하긴 좀 그렇지.”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잠깐 진료는 해야겠는데. 장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의료진이 처치를 잘못해놨어.”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셀라가 뭐라고 하겠지?”

     

    “그렇죠. 심지어 용사님이 선생님부터 찾고 계셨다는 걸 이제 제국민이 다 아는데요.”

     

    타냐가 어깨를 으쓱했다.

    광장이 난리가 나긴 했지.

     

    뭐, 그래도 카운슬링으로 경과도 확인하고 싶고.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리셰를 만나러 갔다.

     

    “아, 선생님!”

     

    휴게실의 간이침대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던 리셰는 나를 보더니 돌아온 주인을 본 강아지 마냥 폴짝 뛰어올랐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용사님.”

     

    “정말요. 제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세요?”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는 리셰의 표정은 확실히 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외부 활동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까. 컨디션도 좋고 자세도 절도가 있었다.

     

     

    [No. 010 : 성검 파괴 68% → 55%]

    [No. 014 : 공명 해제 61% → 42%]

    [No. 042 : 용사의 최후 16% → 8%]

     

     

    리셰에게 발생하는 배드엔딩도 전반적으로 확률이 많이 감소했다.

     

    그녀가 얼마나 용사로서 성장했는지 충분한 증거가 됐다.

     

    “저도 반가웠습니다만, 아까는 좀 놀랐군요.”

     

    “헉, 죄송해요. 그만 참지 못하고… 헤헷.”

     

    리셰가 혀를 빼물고 머리를 긁적였다.

     

    “진료부터 볼까요. 오른팔이 불편하시죠.”

     

    “와, 어떻게 아셨어요?”

     

    “행진 내내 왼팔로만 인사하셨으니까요. 용사님은 오른손잡이시잖아요. 히드라의 부식독에 상완근과 삼각근이 손상됐었는데, 아마 초동 대응이 덜 된 채로 치유주문이 들어가면서 위치가 뒤틀린 것 같아요.”

     

    “으헷, 선생님은 항상 제대로 지켜봐 주시네요.”

     

    리셰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번엔 일부러 다친 거 아니죠?”

     

    “아, 아니에요! 진짜진짜 아니니까요. 저 많이 반성했어요… 선생님이 주신 약도 잘 먹었고요.”

     

    리셰가 손가락을 마주치며 시무룩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전처럼 나랑 같이 있어도 [성역화]에 엄청 집착하는 모습은 안 보인다.

     

    “좋습니다. 오른팔을 보죠.”

     

    “아, 네엣.”

     

    씩씩하게 대답하는 리셰. 그녀의 증상은 순조롭게 호전되고 있다.

    딱히 더 손댈 필요도 없이 리셰는 훌륭한 용사로 성장하겠지.

     

    리셰가 침대에 앉아 툭, 가죽조끼를 벗어 건강한 어깨와 쇄골을 드러냈다.

     

    내가 오른팔을 들어 올려 스킬을 쓰려고 하니 탁, 그녀가 내 팔을 잡았다.

     

    나를 돌아보며 농염한 미소를 흘리는 리셰.

     

    “라스, 나 잘 참았지.”

     

    아니, 샤를.

     

    “나, 상 받고 싶어.”

     

    그래, 네게 줄 거라면 많지.

     

    나는 [연금술] 항목을 열었다.

     

     

     

    다음화 보기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