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4

       첫 번째 도전자가 나온 곳은 레이나를 중심으로 뭉쳐 있던 그룹이었다.

         

       그들은 이미 현역에서 활동 중인 10대 스타들로, 단독 기사에 최소 한 번쯤은 이름을 올린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지금 정글짐 앞으로 걸어 나오는 여자애 역시 나름 업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메렌!”

       “무음의 메렌이다!”

       “침묵의 12분!”

         

       청강생들이 그녀를 두고 웅성거렸다.

       레카체프의 학생들 역시 그녀가 나오자 살짝 긴장한 눈치였다.

         

       보통 정글짐을 가장 빨리 통과해내는 쪽은 줄타기 전공생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전공생들이 몇 주는 걸리는 일을 반의반도 안 되는 시간에 해내곤 했다.

         

       메렌 역시 줄타기 곡예사였다.

       그것도 현역에서 활동 중인 10대 곡예사 중에 줄타기 실력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중정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그녀의 표정에는 긴장한 기색이 비쳤지만,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까 클라라가 섰던 지점에 멈춰 섰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더니 발목에 차고 있던 무언가를 걷어냈다.

         

       짤랑짤랑.

       청명한 울음소리가 정원을 울렸다.

         

       그녀의 손에는 청동색 방울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늘 다리에 묶고 다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저걸 차고 있던 거야?”

       “소리 같은 건 전혀 안 들렸는데?”

       “과연. 그래서 ‘무음의 메렌’이군.”

         

       메렌이 장기로 내세우는 것은 바로 방울이 달린 줄 위에서의 곡예였다.

       그녀는 여러 개의 방울이 걸린 줄 위를 뛰어다니면서 절대 소리를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녀가 곡예를 시작하면 관중들은 자동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공연은 보통과 정반대로 갈채와 환호를 자제하는 게 예의였다.

         

       한 번은 공연장 전체를 아주 깊은 고요에 빠트린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순간을 ‘침묵의 12분’이라 부르며 그녀의 무음 공연에 대한 찬사를 갈음했다.

         

       정글짐을 단 한 번의 시도로 해내는 사람이 레카체프에서도 한 기수에 한두 명 정도 나오곤 했다.

       전 기수에서는 찰리가, 현 기수에서는 클라라가 그랬다.

         

       어쩌면 메렌 역시 가능할지도 몰랐다.

         

       청강생과 재학생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더니 몸을 날렸다.

         

       그녀의 걷는 방식은 독특했다.

         

       사람은 움직일 때, 보통 걸음을 떼는 것과 축의 이동을 번갈아 진행했다.

       그러나 그녀는 축의 이동과 동시에 걸음을 옮겼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몇 걸음 걷는 것만으로 “어어.” 거리면 휘청거릴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나는 훈련을 통해 그 걷는 법을 자신의 몸에 새겨넣었다.

         

       그녀는 마치 땅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대나무를 수직으로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띄었다.

         

       그녀는 클라라가 밟았던 루트를 그대로 따랐다.

       그녀가 달리고 도약하던 순간을 정확히 모방해냈다.

         

       그녀는 그렇게 1층, 2층, 3층 차례로 단계를 밟아나가며 점점 위로 올라갔다.

         

       청강생과 재학생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의 빛이 더해졌다.

         

       그렇게 대망의 4층.

       그녀는 마지막으로 위로 도약하기 위해 건너편 대나무 줄기 위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빠지직.

       그녀가 발을 디뎠던 대나무가 부러져버린 것이다.

         

       그녀의 몸이 25m 공중에서 추락했다.

       짧은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는 재빨리 낙법을 펼쳤다.

       그러나 마침 추락하는 경로에 가지 하나가 튀어나와 있었다.

         

       우직.

       그곳에 발을 부딪치고 말았다.

         

       그녀가 미처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쾅.

       정원 바닥이 들썩였다.

         

       청강생들은 안타까움에 발을 굴렀다.

         

       “저게 왜 부러지고 난리야!”

       “하필이면 그 순간에…….”

       “메렌은 어떻게 됐지?”

         

       그녀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땅에 닿은 부위가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대신 추락 중에 가격당한 곳의 뼈가 어긋나고 말았다.

         

       그녀는 다가오려는 동료들의 접근을 물리치고는 절뚝거리며 정원 구석 벤치로 갔다.

       그녀는 거기에 앉아서 자신의 발을 살피더니 이를 살짝 악물고 뼈가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았다.

         

       우두둑.

       뼈를 맞추면서 그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참았던 숨을 거칠게 내쉬고는 발을 이리저리 주물럭거리며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는 곧 자신을 걱정하는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무사함을 확인해주었다.

         

       청강생들은 그녀를 향해 환호했다.

         

       “와!”

       “안타깝다!”

       “메렌! 메렌!”

         

       그 소리에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레카체프 학생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몸을 풀고 다시 뛸 준비를 하는 메렌을 언짢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빈정대기 시작했다.

         

       “아니, 못 할 거 같으면 그냥 계단으로 가지.”

       “왜 나서서 저래? 풋.”

       “다치면 우리보고 책임지라는 거 아냐? 진짜 싫은데.”

       “무음이라는 별명치고는 좀 요란해, 큭큭.”

         

       찰리가 졸업하면서부터 레카체프의 분위기가 상당히 살벌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서커스 그랑프리를 준비하는 데 직접 동원되기도 하고, 공개 입학시험이나 드래프트 등 외부와 비교당하는 일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끼리의 단결심과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이 급증한 것이다.

       

        주변에서 흐르는 적대적인 분위기에 메렌이 살짝 위축된 듯 어깨를 떨었다.

         

       야유도 야유지만, 그녀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하는 곡예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집중력이 쉽게 흐트러졌다.

         

       엘라는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고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뭐 이런 애들이 다 있담.

       나름 잘한 편이었는데.

       왜 비웃고들 그러지?

         

       그녀는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다니던 학교도 기술을 연마하는 데 있어서 아이들끼리 경쟁이 치열했다.

       애들이 부모가 없으면 일찍 철이 든다지만, 그래봤자 아이들이었다.

         

       경쟁심에 서로 견제하거나 기 싸움을 벌이곤 했다.

         

       엘라도 몇 번 그런 수작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웃기게도 직접적인 경쟁자보다 경쟁자의 추종자들에게 당하곤 했다.

         

       주로 찰리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그랬다.

         

       엘라는 자신이 그의 경쟁 상대라서 자신의 성적이 떨어지도록 그들이 훼방을 놓는다고 여겼다.

         

       그들은 한 번은 서로 욕을 하기도 하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어려운 처지에 서로 의지하며 사는 식구들이었다. 여기 애들처럼 대놓고 사람을 모욕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엘라는 재학생 중에 누구 하나 메렌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자기네들끼리 돌아보며 웃거나 고소해하는 걸 보면 환멸이 날 지경이었다.

         

       ‘찰리는 이런 애들하고 같이 4년을 보냈단 말이야?’

         

       그녀는 클라라를 바라봤다.

         

       마지막 대나무가 부러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까 클라라가 도약할 때, ‘힘자랑’의 기술을 응용하여 일부러 대나무 안쪽에 힘을 가해 균열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이곳 학교에 있었다.

       대나무의 강도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로 힘을 가해야 겉으로 티가 안 나게 속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 정도도.

         

       그녀는 일부러 함정을 판 것이다.

       후발주자가 실수하도록.

         

       ‘원래는 나를 노린 함정이었겠지.’

         

       레이나 역시 클라라의 수를 꿰뚫어 보고 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엘라만큼 분노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레카체프를 모욕주려고 시도한 쪽은 그녀의 아버지가 먼저였으니까.

         

       클라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을 느꼈지만 무시했다.

       그녀는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나무는 종종 부러지기도 한답니다. 청강생분들은 이게 처음이라 힘 조절을 제대로 못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다른 분들도 너무 비난하지 마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뛸 준비를 하는 메렌을 향해 말했다.

         

       “메렌 씨도 그만해주세요. 또 다치시면 어쩌려고요.”

       “아니, 한 번만 더 하면…….”

       “저는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지라……. 다친 메렌 씨에게 또 기회를 드릴 순 없네요.”

       “아…….”

         

       메렌의 얼굴에 실망감이 번졌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다시 도전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클라라는 그녀의 재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안전을 염려한다는 투로, 자신의 책임도 근거로 끼워가며 말이다.

         

       “더 도전할 분이 없으면, 그만 계단으로 올라와 주세요. 일정에 늦겠네요.”

         

       여기에는 메렌 못지않은 줄타기 실력자들이 두어 명 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방금 메렌이 비웃음 당하는 것을 보고 이곳의 분위기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응원을 해주고 긍정적인 분위기에서도 성공할까 말까 한 과제였다.

       그런데 이렇게 사방에 물어뜯으려고 덤비는 적들이 가득한 곳에서 괜히 시도하기 꺼려졌다.

       다치면 또 어쩌고.

         

       모두 돌아서서 계단으로 향하려는 그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엘리트 곡예사들이 모인 첫 번째 그룹도, 입학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올린 두 번째 그룹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클라라가 떨거지로 분류한 세 번째 그룹에서 걸어 나왔다.

       

       학생들은 처음에 그녀가 마네킹이라고 생각했다.

       무표정하고 인형 같은 얼굴에 새하얀 피부가 그런 생각을 부추겼다.

         

       “쟤는 또 뭐야?

       “운동한 몸이 전혀 아닌데.”

         

       이곳에 모여 있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몸을 단련했다.

       물론 곡예사가 요구하는 몸은 군인이나 일꾼과 달랐다.

       체구가 날렵하고 다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마야의 몸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담한 체격에 소매 아래로 드러나는 물집 하나 없는 손, 그리고 마시멜로 같아 보이는 살결과 독기라곤 없는 멍한 눈초리는 곱게 자란 부잣집 아가씨의 것이었다.

         

       “마야!”

         

       엘라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죽림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클라라가 서 있는 5층 창문이 있는 벽을 향해 똑바로 걸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걷고 또 걸었다.

         

       정원의 중앙을 지나 점점 더 위로 또 위로.

         

       “저게 뭐야!”

       “사기 아냐?”

       “반칙이잖아.”

         

       학생들이 성난 벌떼처럼 웅성거렸다.

       청강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그녀는 공중을 걷고 있었다.

       그녀가 내뻗는 걸음걸음마다 널빤지 형태의 환상 계단이 생성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대나무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비켜 갔다.

       그딴 것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처럼.

         

       “저게 뭐야.”

       “환상 마법인 거 같은데.”

       “환상 마법에 물리력을 불어넣는 애가 있을 리 없잖아.”

       “그, 그래. 인스피라겠지. 아니면 마도구일지도.”

         

       마야는 마침내 5층 창문의 턱에 발을 올려놓았다.

         

       클라라는 일순간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까먹고 당황해서 소리쳤다.

         

       “무, 무슨 짓이죠?”

       “서두르라며.”

         

       차가운 그녀의 말투에 클라라는 순간 움찔했지만, 지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하, 하지만 왜 정글짐을 이용하지 않고…….”

         

       그녀의 말에 마야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왜 그래야 해?”

       “네, 네? 다, 당연히 당신의 재, 재주를 보여야…….”

         

       클라라의 말에 마야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재주는 이거야.”

         

       그녀의 말에 아래에서 떠들던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내 재주는 이거다.

       그것은 교수님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였다.

         

       레카체프의 학생들은 성적에 목을 매느라 종종 자신들의 본질을 까먹고는 했다.

       자신들이 무대 위에서 재주를 부려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라는 것을.

         

       레카체프의 시스템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막연히 기술의 레벨만 높이는 데 치중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개발하는 데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서 10대를 보낸 아이들과 대비되는 점이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자극적이고 개성적인 재주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레카체프 졸업생들이 그들과 현장에서 마주쳤을 때, 그들에게 인기로 추월당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했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내 재주는 이거다’라는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할 것을 촉구했다.

         

       마야의 말은 기술 하나만 믿고 현장에서 갈고닦은 아이들을 우습게 여기는 자신들을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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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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