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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4

        

         

       그렇게 리세는 간만에 숙면하며 쌓인 피로를 모두 해소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리세는 깨어난 직후 정열적으로 움직이며 정보를 수집했고, 경호회사 사장을 비롯해 시현류와 인맥으로 묶여있는 부자와 정치인들을 통해 여러 가지 귀중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만족스럽구나.”

         

       다행히 리세가 열심히 모아온 정보는 진성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이었다.

         

       “특히나 시현류와 야태도아랑류 무인들의 수련 장소에 대해서 알아 온 것이 참으로 만족스럽구나.”

         

       진성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정보가 적힌 종이를 건네준 리세에게 칭찬해주었다. 그러자 리세는 물질 상태로 변화시켜 내놓은 여우 귀를 쫑긋거리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래. 무인들이라면 자연에서 수련하는 경우가 많지.”

         

       진성은 손에 들린 종이에 눈길을 주었다.

         

       종이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채워져 있었는데, 가장 위쪽에는 굵은 글씨로 한자 세 글자가 있었다.

         

       黑劍峰

         

       일본 발음으로는 쿠로츠루기미네.

       한국 발음으로는 흑검봉.

         

       “검은 검의 산이라.”

         

       『 가고시마와 난사쓰에 거쳐 있는 산. 높이는 1,760m, 검을 닮은 뾰족한 봉우리가 솟아있으며, 그 아래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빼곡하게 나무가 가득 차 있다. 기록에 따르면 본래 존재하지 않는 산이었으나 쇼안(正安) 3년경 갑자기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

       『 전설에 따르면 대륙에서 건너온 바다를 헤엄치는 거대한 용이 꼬리를 내려쳐서 생겼다고도 하고, 섬 하나를 너끈히 삼킬 수 있는 거대한 바다의 괴물이 뭍에 올라와 숨이 끊긴 것 위에 흙이 쌓이고 나무가 자란 것이라고도 한다. 』

       『 지역민들은 검은색의 날카로운 바위 봉우리가 마치 검 같다고 하여 쿠로츠루기미네(黑劍峰)라 불렀으며, 봉우리가 만들어낸 예기(銳氣)가 마치 하늘을 향해 검을 치켜세운 것과 같다고 하여 불길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모습이 마치 주군에게 검을 치켜세우는 불경한 모습과 같아 그렇다고 한다. 그 때문에 쿠로츠루기미네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곧 산의 정기를 받아 주군에게 칼을 들이대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았다. 』

       …

       …

       …

       『 대일본제국이 세계를 호령하게 되어서야 그 안에 공식적으로 사람이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마을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국이 미제에 의해 패망하였고, 쿠로츠루기미네 안에 마을이 세워져 예기가 천황폐하께 닿았다고 여겨 마을은 폐촌이 되고 주민들은 가고시마와 난사쓰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

       『 사람이 다시 사라지게 된 쿠로츠루기미네 안에는 예기를 억누르기 위해 곳곳에 불상이 세워지게 되었고, 토기(土氣)를 억누르기 위해 나무를 빼곡히 심고, 나무 모양의 전신주를 세우게 되었다. 』

       『 현재는 시현류와 그 분파의 무인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수련장으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허가 없이 들어가거나 안의 임산물을 채취하려 한다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

       『 나무가 빼곡하게 있기에 원시림에 가까우며, 방향감각을 잡기가 힘들어 안에서 조난을 당하기 쉽다고 한다. 또한 안에 멧돼지 같은 맹수도 있을 수 있으니 들어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실제로 자신의 담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조난을 당하는 사람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시체조차 찾지 못한 사례들이….』

       …

       …

       …

         

       “수련장으로 사용하는 산이라.”

         

       진성은 리세가 종이에 찍힌 쿠로츠루기미네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산의 형상은 꽤 이상했다.

       마치 대충 언덕을 쌓고, 검 모양의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푹 꽂아서 산의 기준을 맞춘 듯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나무가 자라나 있는 부분은 꽤 완만한 경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오직 그 사이에서 검은색의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무덤에 칼이 꽂혀있는 것처럼 보여 섬뜩하기도 하고, 모래를 끌어모아 만든 언덕에 뾰족한 막대기 하나를 꽂아 넣은 것처럼 우습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핏 기이하게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안은 그야말로 원시림 그 자체였으니.

       나무가 너무 많아 제대로 햇볕조차 들지 않는 바닥에는 음지에서 자라는 것들이 가득했고, 바닥을 삽으로 한 번 뒤집은 듯한 사진에는 지네와 이름 모를 벌레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습기 때문에 썩어버린 듯한 나무들에는 버섯이 빼곡하게 자라나 있기도 했고, 그늘을 찍은 듯한 사진에서는 동물의 눈으로 보이는 불꽃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종이를 다음 장으로 넘겨보면 지장보살 사진이 가득했다.

         

       한때는 정성을 다해 만들었을 지장보살들은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지 음산하기 짝이 없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곰팡이가 피어있기도 하고, 이끼가 가득 끼어있기도 했고, 반쯤 부서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종이를 넘겨보면 수련장으로 보이는 장소가 보였다.

         

       1900년대 초반에 지었을 것 같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는데, 세월의 풍파를 제대로 맞은 것인지 볼품없는 외관이었다. 하지만 건물의 외관과는 다르게 안은 관리를 잘한 것인지 무인들이 단련에 사용하기 위한 시설들은 꽤 깔끔해 보였다.

         

       그리고 종이를 다시 넘겨보면….

         

       “태양광 시설이라?”

         

       태양광 패널이 가득한 산의 한 면이 보였다.

       마치 탈모라도 생긴 것처럼 나무가 빼곡한 숲속 한가운데에 패널이 가득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시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 흠.”

         

       사진 아래에는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당시 일본은 환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이슈에 편승해서 태양광 발전 시설을 유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지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공사를 밀어붙여서 산의 한 면을 패널로 가득 채웠다고 한다.

         

       “투자 비용을 뽑지는 못했으나 어찌어찌 불만은 봉합되었다, 라.”

         

       진성은 피식 웃으며 리세에게 물었다.

         

       “어차피 지어진 것, 괜히 들쑤시지 말라는 분위기가 생성되었으리라. 그렇지 않으냐?”

       “네.”

         

       리세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공사를 할 당시에도 모두가 반대했던 것은 아니에요. 환경이 파괴된다, 산을 함부로 건드리면 재앙이 마을에 내려온다 등의 의견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반대로 전기를 싸게 쓸 수 있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해요. 게다가 시현류가 직접 나서서 무력 시위를 막기도 했고요.”

       “흠.”

       “무력 투쟁 시도가 분명히 있기는 했어요. 화염병을 만들어서 던지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중장비를 끌고 와서 공사를 하지 못하게 막으려고도 했고, 시민들이 뭉쳐서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길목을 막으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정부는 나리타 국제공항 건설을 막았던 나리타 투쟁(成田闘争)에서 교훈을 얻었답니다. 산을 소유하고 있는 시현류의 도움을 받아 무력 투쟁을 하려는 주민들을 제압하고, 매스컴을 움직여서 공사에 반대하는 사람을 비국민처럼 매도했거든요.”

         

       리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덕분에 공사는 무사히 끝마쳐졌고, 시위의 중심이 되었던 사람들은 무라하치부(村八分)의 대상이 되어 집단 따돌림을 당해 다른 지역으로 떠났답니다.”

         

       진성은 리세의 말을 들으며 종이를 계속 넘겨보았다.

         

       종이 뭉치의 뒷장에는 태양광 패널을 중국산으로 사용했다는 폭로 기사, 공사에 관련된 정치인과 공사 업체가 어마어마한 횡령 축제를 벌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진성은 리세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좋구나, 아주 좋은 자료를 주었어. 훌륭하구나.”

         

       진성은 리세를 한껏 칭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사 밖으로 나갔다.

         

         

         

         

        * * *

         

         

         

       “흉하기도 하지.”

         

       진성은 태양광 발전 시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태양광 시설은 사진에서 본 것과 같았다.

         

       하지만 사진과 다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흙이었다.

         

       사진에서는 갈색으로 찍혀있었지만, 실제로는 황무지에서나 볼법한 누리끼리한 흙이었다. 어찌나 푸석푸석한지 손으로 슬쩍 집어 올리면 물기가 한 방울도 느껴지지 않았고, 살짝 힘을 주면 부서져 내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게다가 진성이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땅이 쉽게 파였고, 습기를 머금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 흙의 무게가 다른 곳을 팔 때마다 가볍게 느껴졌다.

         

       ‘좋구나, 좋아.’

         

       진성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더 볼 것이 없다는 듯 그대로 몸을 홱 돌려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 안쪽에 발을 들이자 내리쬐는 태양은 나무가 만드는 그늘에 가려져 버렸고, 건조하기 짝이 없던 태양광 발전 시설의 공기와 정반대의 축축하고 가라앉은 습기 가득한 공기가 그를 반겨주었다.

         

       곰팡이의 냄새.

       낙엽이 썩는 냄새.

       버섯의 냄새.

       곤충이 내는 냄새.

       썩어가는 나무의 냄새.

       동물의 배설물이 내는 코를 찌르는 냄새.

         

       온갖 냄새가.

       그리고 그 냄새를 풍기는 것들을 숨겨주는 그늘의 음습함이.

       썩어가는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습기가.

         

       그를 맞이해주었다.

         

       진성은 그 음습한 공기가 반갑다는 듯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길조차 나 있지 않은 땅을 거침없이 걸으며 그늘로, 숲의 안쪽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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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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