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4

       

       

       

       꿀꺽.

       

       ‘마, 맛있겠다.’

       

       밖에서 자신의 전매특허인 투시 마법으로 그들을 관찰하던 알렉스는 회오리 감자와 우유 튀김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 아니. 이게 아니라….’

       

       흘러내릴 뻔하던 침을 소매로 닦은 알렉스는 지금까지 자신이 본 장면들을 떠올렸다. 

       

       ‘일단,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분명히 저 은색 비늘을 가진 와이번인지 드래곤인지 모를 생명체는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다. 

       

       ‘발음이 좀 새긴 하지만, 저 정도면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된다고 봐야지.’

       

       아무리 테이머와 사역마가 영혼의 계약을 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사역마는 테이머에게서 전해지는 의도와 자주 하는 말의 관계를 학습해서 의사소통을 하기 마련이었다. 

       

       사역마가 저렇게 무슨 외국어 배우듯이 오로지 언어만을 매개로 해서 의사소통을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드래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하는 거 보면 아직 어린애 같은데 벌써 저렇게 인간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다니.

       

       -히히히! 레온 핥짝!

       

       저렇게 장난도 칠 정도라면, 이미 언어는 완전히 마스터했다고 봐야 했다. 

       

       -레온.

       -응?

       -일으켜 조!

       

       ‘장난도 치고, 어리광도 부리고. 사이가 좋긴 좋군. 레키온 말이 맞았어.’

       

       하긴, 자기 사역마를 모델로 비싼 돈 들여서 인형까지 만들어 줬다는데 사이가 안 좋을 수가 없긴 하다. 

       

       -쀼후훙~

       

       ‘근데 그런 것치고도 사이가 정말 좋아. 나름 사역마와 교감하며 잘 지내는 테이머도 몇 봤지만, 이 정도로 긴밀한 관계는 처음 봤어.’

       

       하지만 알렉스가 진짜로 놀란 건 그 다음 장면에서였다.

       

       -레온, 모 꺼내 조? 말만 하묜 바로 꺼내 주께!

       -어디 보자. 그러면….

       

       레온이 재료 이름을 나열하자, 아르가 공중에 손을 뻗었고.

       

       우우웅.

       

       열린 아공간에서 아르는 레온이 불러 준 재료들을 착착 꺼내 전달했다.

       

       그리고, 이쯤에서 알렉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드래곤이다.’

       

       사실 이미 아르가 본모습으로 변신한 걸 본 순간부터 확신했어야 했지만.

       

       드래곤치고는 순둥순둥 동글동글한 외모인 데다가 하는 행동 역시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이때까지 판단을 미룬 것이었다. 

       

       하지만, 9서클의 마법사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아공간 마법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유자재로 쓰는 걸 보면, 아르는 드래곤이 확실했다. 

       

       게다가.

       

       -아르가 시간 빨리 돌려 보께!

       

       ‘시간 가속 마법을 요리 하는 데에 쓰다니….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일이야.’

       

       이전에 고기 염장 및 숙성을 시키는 데에 시간 가속 마법을 썼다는 걸 알았다면 알렉스는 이미 기절초풍했을 것이었다. 

       

       ‘저걸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인데.’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마법이든지 어렸을 때부터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건 아닐 터.

       

       그만큼 마법에 재능이 뛰어난 드래곤이라고 봐야 했다. 

       

       ‘저런 드래곤이…. 대륙에 있었나?’

       

       알렉스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지만, 아무리 애써 보아도 저런 은색 비늘을 가진 드래곤에 대한 정보는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봤다면 알렉스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는데, 원체 드래곤에 대한 기록이나 정보가 적다 보니 은색 드래곤에 대한 건 아예 없었던 모양이었다. 

       

       ‘여튼, 드래곤인 건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젠 레키온이 걱정이군.’

       

       알렉스가 아는 레키온이라면 아마 아르가 드래곤이건 곤드레만드레건 바로 달려와서 귀엽다며 껴안으려 할 게 분명했다. 

       

       ‘심지어 작게 폴리모프를 한 상태가 아니라도 그럴 것 같아.’

       

       아직 레키온의 반응을 본 건 아니지만, 알렉스의 판단으론 저렇게 덩치가 큰 모습도 레키온이 말하는 ‘귀여움’에 상당히 부합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저렇게 말까지 한다?’

       

       레키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두려웠다. 

       

       ‘그래, 물론 레키온과 처음 만났을 때는 작은 모습으로 있고 말도 못 하는 척하는 상태겠지. 하지만….’

       

       알렉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걸 레키온에게 알려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래도 알려주는 게 낫겠지.’

       

       정보원으로서의 본분 같은 건 차치하고라도, 알렉스는 친우인 레키온을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황실인데.’

       

       레키온은 그렇다 치고, 황실의 드래곤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안 좋은 편이었다. 

       

       ‘이해는 하지. 드래곤은 개체 하나 하나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드래곤 한 마리가 갑자기 어느 날 심기가 불편해서 레어에서 나와 도시 하나를 쓸어 버려도 인간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제국에 있는 네 명의 ‘검성’들이 전부 전성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와도 동시에 덤벼야 해볼 수 있을까말까한 정도.

       

       황실에서 ‘용사 레키온’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고 키우려고 하는 것에는, 아마 드래곤에 홀로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될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만약 황실이 아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면, 위험 인자로 인식해 처리하려고 할 거야.’

       

       반대로 레키온은 절대 저 귀여운 생명체를 죽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가 먼저 시민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멸망시키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럼 황실의 입장과 레키온의 입장은 충돌할 거고.

       

       그게 제국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지금의 알렉스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다. 

       

       ‘후우…. 일단은 솔직히 말하면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황실로선 저걸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

       

       폴리모프는 ‘그 어떤 변신보다 완벽한 변신’이다.

       

       지금 알렉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걸 투시로 보고 있어서 그렇지, 알렉스가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알아차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든 생각이지만, 아까 저 실비아라는 사람이 내 은신을 간파할 뻔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냥 말랑하고 쀼 소리 내는 와이번인 줄로만 알았던 아르가 드래곤이었으니, 그냥 평범한 아내 역할을 하고 있는 실비아도 까고 보면 엄청난 실력자일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아까 회오리 감자를 만들 때 보여줬던 단검술이 심상치 않아.’

       

       알렉스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단검술.

       

       보통 한손검이나 양손검 계열을 사용하는 검사가 보여줄 수 있는 손놀림이 아니었다. 

       

       ‘잠깐만. 실비아…. 레온…. 그러고 보니!’

       

       알렉스는 최근 대륙 남부에서 뒷골목 세력들을 정리하고 시민들을 도와주며 맛집 탐방을 다니는 한 가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적이 있었다. 

       

       ‘실비아, 레온, 그리고 아르라는 딸로 이루어져 있는 가족이라고 했는데.’

       

       실비아도 레온도 흔한 이름이고, 아르도 딱 보니 애칭이라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마침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딸이라는 아이도 저 아르가 폴리모프를 한 모습인 거겠군.’

       

       일단 그들과 이들이 동일 인물이 맞는다면, 아르가 위험한 드래곤일 가능성은 더더욱 내려간다. 

       

       -쀼우! 이거 완젼 마시써!

       

       저러면서 입가에 치즈 가루 묻히고 순수한 얼굴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알렉스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일단은 레키온에게 알려주되, 웬만하면 황실에는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해 놔야겠군.’

       

       거짓말을 잘 못 하는 레키온 성격에 언제까지 황실에 숨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황실에서도 레키온이 반대하는 이상 아르를 대놓고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야.’

       

       이미 종합적인 전투력으로 따지면 레키온은 ‘검성’을 넘어서기 시작했으니까.

       

       ‘…후우. 일이 복잡해지긴 했네.’

       

       알렉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일이 복잡할 때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먼저 앞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알렉스가 지금 맡은 임무는, 친우인 레키온이 맡긴 임무였다.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

       

       알렉스는 여전히 그들의 다음 행선지를 알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관찰을 했다. 

       

       “쀼우웃! 넘 마시써…!”

       

       바삭, 바삭, 바삭.

       

       알렉스는 아르가 남은 회오리 감자를 야무지게 먹어 치우는 모습을 관찰했고.

       

       “냠. 우유 튀김두 마시써. 헤헤.”

       

       우유 튀김을 꿀에 듬뿍 찍어 먹는 모습도 관찰했고.

       

       “레온, 후식으루 로빈슨 아조씨가 주신 아이스크림 먹쟈!”

       

       웬 커다란 통에 담긴 먹음직스러워보이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도 관찰했다. 

       

       ‘…….’

       

       꿀꺽.

       

       ‘아니, 진짜 배고파 죽겠네.’

       

       안 그래도 레온이 우유 푸딩을 만들었을 때부터 맛있어 보였는데, 기름에 차르르르 튀기고 그걸 아르가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자 침샘이 마구 자극을 받았다.

       거기다가 후식까지 야물딱지게 해치우니, 숙련된 정보원으로서의 인내심이 없었다면 이 모든 걸 보면서 은신과 투시 마법을 완벽히 유지할 수 없었으리라.

       

       ‘안 그래도 아침 못 먹었는데. 아르는 왜 저렇게 맛있게 먹는 거야. 복스럽긴 한데 괴로워 죽겠군.’

       

       그렇게 알렉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아르와 레온, 실비아는 소파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마침내.

       

       “레온 씨, 이제 슬슬 동부로 떠날 때 되지 않았어요?”

       “맞아요. 안 그래도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내일 아침에 베나콘으로 출발하려고요.”

       “쀼우! 그래두 그동안 빵 마니 사 놔써!”

       

       아르는 잠시 아공간을 열어 든든한 빵 창고를 확인하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헤에 웃었다. 

       

       ‘드디어!’

       

       목적지를 들은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투시 마법을 해제했다. 

       

       ‘베나콘이라. 파메라 성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 곳이군.’

       

       잘하면 시간을 딱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레키온. 네가 그리 원하던 아르 실물이다. 네 입장에서 보자면, 후회는 없을 것 같군.’

       

       타앗!

       

       알렉스는 레키온이 기다리는 파메라 성을 향해 움직였다.

       

       꼬르륵.

       

       ‘아.’

       

       그러다 잠시 멈춰서 투호르반의 빵집을 바라보았다. 

       

       ‘…가는 길에 빵이라도 좀 사 먹고 가야겠군.’

       

       ***

       

       “뀨우….”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나는 실비아가 목욕을 하러 간 동안 아르를 안은 채 뚠뚠한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행복하구만.’

       

       그사이에 투호르반에 정이 들어서인지 떠나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눌러앉을 수도 없는 노릇.

       

       ‘그나마 파메라 성에 가까운 베나콘으로 목적지를 정하긴 했는데….’

       

       문제는 역시 레키온과 어떻게 접촉을 하느냐다.

       

       여러 가지 방법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해 보던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에휴, 모르겠다. 일단 가서 생각하자. 가서.’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