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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4

       백화령은 인내심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녀는 화산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있는 바루를 보고는 너무도 귀엽다 소리를 치더니 내게 안아 봐도 되겠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그녀가 지닌 갈망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나는 바루의 허락을 구한다면 괜찮다는 답을 내어주었다.

       

       녀석도 짐승의 털을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얼마나 참고 살았겠느냐.

       

       백화령은 내 말을 듣자마자 자고 있는 바루를 흔들어 깨우더니 무작정 이렇게 물었다.

       

       “쓰다듬어도 되겠느냐?”

       

       잠결에 눈을 뜬 바루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백화령의 얼굴을 보고는 나라 착각을 한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리 답했다.

       

       “네가 언제 허락을 구했다 그러느냐. 맘대로…”

       

       바루는 말을 하다가 무언가 기이함을 느낀 듯 말을 멈추고 다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이미 천마의 마수는 그녀의 주변으로 뻗어져 있었으니.

       

       아무리 바루가 재빠른 짐승이라 한들 무림 최고의 반열에 든 무인의 손에서 빠져나가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그렇게 바루는 반강제로 백화령의 인형이 되어야만 했다.

       

       “민가야! 무얼 보기만 하고 있느냐! 도와다오!”

       “싫다.”

       “왜냐! 우리의 사이가 그토록 가벼웠던 게냐?!”

       “그건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본인과 백화령이 아무리 닮았다한들 착각을 하다니.”

       “그걸로 삐진 게냐?! 이 속좁은 인간 같으니!”

       

       바루는 내게 따지듯 소리치며 발버둥을 쳤지만 나는 그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딱히 삐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백화령과 본인은 외모에 한해서는 동일한 인물이니 헷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 그를 가지고 무어라 하겠는가.

       

       그럼 어찌하야 바루를 도와주지 않는가 하면 그냥 백화령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내 신교에 머무를 적에는 자그마한 행복을 찾기도 어려웠는데 그 경험을 백화령에게까지 이어갈 필요는 없잖은가.

       

       이런 식으로라도 좋은 추억을 주어야지.

       

       그를 위해 바루에게 불쾌한 경험이 쌓이고 있는 것 같긴 하다만 뭐 어떠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추억이거들.

       

       뭣보다 바루 그대도 쓰다듬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느냐.

       

       어쨌든 백화령의 손도 나의 손과 다를 것이 없으니 얌전히 희생당하거라.

       

       “민가! 이 놈! 두고 보자꾸나!”

       

       그래도 바루의 화를 풀 방법 정도는 생각을 해두어야겠군.

       

       하린이나 설아에게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나 물어보아야겠어.

       

       정파의 영역이 아닌 곳에 한하여서 말이다.

       

       바루는 신령임과 동시에 짐승인지라 여러모로 단순한 구석이 있다.

       

       그러니 적당히 맛있는 걸 먹여주면 툴툴대면서도 화를 풀 것이라고 본다.

       

       적어도 이전까지는 그랬으니까.

       

       백화령의 행복한 시간은 내가 불러낸 한서우가 화산에 도착함으로써 끝을 맞이했다.

       

       “제자야! 이 여우를 보아라! 나를 보고도 겁을 먹지 않는 아이가 있다!”

       “어… 겁은 안 먹었지만 기분은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

       

       한서우는 웃음이 가득한 백화령의 얼굴과 부루퉁한 바루의 얼굴을 번갈아서 보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묻는 것이 훤히 보였다.

       

       저 눈을 외면해버리면 재밌는 풍경이 될 것 같지만 그랬다가는 바루의 감정이 슬슬 짜증에서 증오로 바뀔 것 같으니 슬슬 그만하자꾸나.

       

       백화령의 품 안에서 바루를 빼내자 백화령이 아쉽다는 듯 바루를 쳐다보았다.

       

       “아아. 갈색 여우가.”

       “다음을 기약하거라. 이 이상 미움을 받으면 다음 번엔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미워하고 있다마는?!”

       “으으. 알겠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마.”

       “다음 같은 건 없다! 내가 다시 안겨줄 듯 싶으냐!”

       

       다음이라는 단어에 한서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어쩌겠는가.

       

       백화령을 스승으로 둔 본인을 탓해야지.

       

       아쉽다는 티를 툭툭 내며 백화령이 떠나간 후에 바루가 내 손에서 빠져나와 한 바퀴를 돌더니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

       

       “민가야. 그대는 도대체 천마와 무슨 사이더냐.”

       “무슨 사이냐. 라.”

       

       애매하군.

       

       백화령이야 본인을 또 다른 자신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라는 것을.

       

       굳이 설명하자면 본인과 백화령의 관계는 육신을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의 관계이긴 하다만 그리 말을 하는 건 너무 섬뜩할 듯싶으니.

       

       으음. 그래.

       

       “형제정도로 생각하거라.”

       “형제? 자매가 아니라?”

       “아아. 호칭을 따지자면 그렇겠군.”

       

       서로의 생물학적인 성별은 양 쪽 다 여성이니 말이다.

       

       “하아. 어찌되었건 난 저 녀석이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만.

       

       그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구나.

       

       백화령의 눈은 결코 포기하려는 자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

       

       스승께서는 화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미련이 남은 듯 몇 번이고 화산파의 건물을 올려다봤다.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도 생기가 넘치던 동물의 존재가 그녀에게 크게 다가온 것 같았다.

       

       평소 볼 수 없었던 스승의 모습에 한서우는 다음에도 스승께서 말을 꺼내신다면 화산에 데려와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평소 진심을 담아 웃는 일이 드문 스승의 웃음을 볼 수 있다면 고생을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스승님. 오늘은 만족스러우셨습니까?”

       “그래. 요 몇 년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흥미로운 날이었다.”

       “민가와 무를 나누어 보셨습니까?”

       “그래.”

       

       역시나. 재능 있고 강한 사람이라면 일단 눈독을 들이고 보는 스승님답다.

       

       화령님 같은 경우에는 세상을 잘못 태어난 것 같은 재능을 지니고 계시니 당연히 흥미의 대상이 되었겠지.

       

       스승님한테 시달리느라 고생하셨겠네.

       

       나중에 불평하시는 거 아닌가 몰라.

       

       그럼 치킨 기프티콘이라도 보내드려야 하나.

       

       “본인이 졌다.”

       “…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서 한서우가 되묻자 백화령이 클클대며 웃음을 흘렸다.

       

       “이 스승의 패배의 치욕을 계속 입에 담아야 하겠느냐?”

       “정말…입니까?”

       “설마 내가 거짓으로 패했다 할 듯 싶더냐.”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스승께서 무라는 부분에 한하여 거짓을 입에 담을 리 없음은 한서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승패와 관련된 부분이라면 더더욱.

       

       그렇단 소리는 화령님은 진정으로 스승님을 쓰러트린 거겠지.

       

       한서우가 아는 바 내에서 스승님은 무림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자다.

       그런 스승님에게 현대의 사람이 패배를 안겨주다니.

       

       화령님은 도대체 무얼 하는 사람인 걸까.

       

       정말 세상을 잘못 태어나셨네.

       

       만약 무림에서 태어났다면 그 재능으로 천하를 재패하셨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백화령이 한서우의 앞에 무작정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백화령과 지낸 것이 한 두 해가 아닌 한서우는 동작의 뜻이 무엇인지를 순식간에 파악을 하곤 바로 품 안에서 곰방대와 담뱃잎을 꺼냈다.

       

       이윽고 화산의 적막한 숲에 백화령이 피우는 곰방대의 연기가 퍼진다.

       

       “재밌는 날이다. 내게 새로이 부수어야 할 하늘이 생겼고, 또한 귀여워 할 것도 생겨났으니 말이다.”

       

       백화령은 그리 혼잣말을 하고는 한서우 쪽으로 시선을 돌려 말을 더했다.

       

       “제자야. 혹여 이 세상에 오기 어려울 때에 조언을 구해야 한다면 민가에게 연락을 하거라. 녀석이 해주는 조언은 그 누구보다도 정확할 터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화산의 계단을 완전히 내려왔을 때 하늘에는 아침의 태양이 떠 있었다.

       

       신교로 돌아가기 위해 게임의 기능을 만지작거리던 한서우는 너무 충격적인 광경과 발언이 연속된 탓에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 참. 스승님.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만 교주가 집무실에 찾아왔었습니다.”

       “놈이?”

       

       그 말을 들은 백화령은 한 쪽 미간을 찌푸리며 대놓고 귀찮다는 티를 냈다.

       

       “무얼하러?”

       “스승님께서 두루마리를 보지 않으시기에 직접 보고를 하겠다 했습니다.”

       “…허.”

       

       백화령은 잠시간 말을 하는 대신에 곰방대만을 피우다 허술한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제자야. 나 대신에 교주 그 놈과 어울릴 생각은 없느냐?”

       “그게 되겠습니까. 스승님.”

       

       *

       

       게임 속 본인과 관계된 일은 어디까지나 화룡무인에 관한 일이었고 현실의 내가 당장에 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엔리의 팀원들을 굴려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운 그들을 사람으로 만드는 일.

       

       그 중에서도 내가 집중한 것은 아래에 있는 이들을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선 위보다는 아래를 보는 편이 낫다.

       

       위에 존재하는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자신의 재능을 개화한 상태다.

       

       부족하다는 부분이 있단 부분에선 동일할 지언정 성장의 속도는 아래에 있는 이들보다 빠를 수 없다.

       

       어느 정도 자신만의 기질을 지닌 이들을 급히 바꾸려 하다가는 머릿속에 혼란이 와 이전보다 실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

       

       그러니 위에 있는 이들 같은 경우엔 괜히 건드리는 것보단 정신적인 부분만을 잡아주는 것이 옳았다.

       

       그에 반해 아래에 있는 이들은 어떤가.

       

       저들은 백지다.

       

       나름대로 자신이라는 종이를 칠을 해두었지만 그 영역이 너무도 자그마하여 칠해진 곳보다 칠할 곳이 넘쳐나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 같은 경우에는 기본을 때려 박아 주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성장을 할 수 있지.

       

       그랬기에 나는 아래에 있는 이들을 부여잡고 그들에게 기본을 심어주는 데에만 관심을 뒀다.

       

       “화령님. 저희 꼭 현실에서 봅시다.”

       “맞아요! 뒤풀이 할 때 꼭 나오세요. 안 나오면 넷카마라고 생각을 할 거에요!”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내가 굴려주었던 이들의 눈에 새겨진 원망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짙어졌다.

       

       구체적으로 배민황과 나비린이 그러했다.

       

       나희 같은 경우에는 마법사인지라 본인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고.

       

       바니나 엔리는 나보다 달빛을 만날 일이 더 많았으니.

       

       둘의 원망이 가장 짙은 게 당연했다.

       

       다만 저들은 분노를 하는 와중에서 이성을 잃진 않았다.

       

       그 동안에 성대하게 굴렀던 두 사람은 VR의 세상 속에선 도저히 본인을 이길 수 없다 판단을 내렸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해 어떤 식으로든 나를 현실로 끌어들이려 노력을 했다.

       

       저 둘은 모를 것이다. 현실의 나와 비교하면 VR속의 내가 더 하수라는 것을.

       

       한창 무림에서 깽판을 칠적의 나와 기나긴 여정 끝에 은거를 택한 내가 어디 같을 리가 있나.

       

       그러니 현실에서 본인과 그대들이 만난다 하여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그대들이 어디 본좌를 무력으로 이길 수 있겠느냐?

       

       아니면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르러서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할 수 없는 몸이 된 본인을 술로써 이기겠는가.

       

       어느 쪽이건 불가해한 이야기였다.

       

       난 이를 알면서도 굳이 언급을 하진 않았다.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은 옳은 방향으로만 뻗는다면 상승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저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굳이 의욕을 빼앗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대들이 성적을 거둔다면 내 바깥에 나가는 것도 생각을 해보마.”

       “정말이시죠?”

       “저 이거 녹화 해 놨어요! 마이 튜브에 올려서 박제 할 거니까 도망칠 생각 마요!”

       

       …음. 다소 과하게 의욕을 나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루의 고난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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