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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4

        

         방아쇠는 오차 없이 당겨졌다.

         저 여자가 뛰쳐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칼같이 반응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단발성으로 들은 총성이 실은 양측 공격이 겹친 소음이었다는 것과, 저쪽의 전투 센스가 내 예상을 웃돌았기에 사격과 진입이 구분되지 않은 수준이었다는 점이 내 일차 저지선을 무너트린 결과로 이어졌다는 게 문제지.

         

         “끄흡…!!”

         “큿……!”

         

         나는 불에 데인 듯한 화끈함이 어깨에서 느껴져서, 그녀는 관자놀이를 스친 탄환의 감촉에 각자 이를 악물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 자체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주장하겠다.

         하지만 탄속의 영역에서는 그 작은 차이조차 치명적인 간극으로 발전한다고, 내 권총이 발포되기 직전에 입은 충격 때문에 조준이 흔들린 건 너무하지 않나? 나도 나름 최선의 대응을 한 건데.

         

         그리고! 십, 구르듯이 튀어나오면서 그렇게 정확하게 쏘는 법이 어딨어!?

         바닥을 파낸 견제 사격을 제외하면 빗나가거나 낭비된 탄약조차 없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자신 또한 피부가 벗겨지고 휘말린 머리카락들이 뿌리 채 뽑혀 나가며 꽤나 고통스러운 와중이었을 텐데도.

         

         피격당한 내 타점이 겉보기에 멀쩡한 걸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게, 수트의 방탄 성능을 감지한 것 같아서 오싹하기까지 했다. 마치 다음에는 보호받지 않는 목 위쪽을 노리겠다 예고처럼 보여서.

         

         그리고…… 아, 시발. 멀쩡하긴 무슨. 더럽게 아프네 진짜.

         

         “아으…!!”

         

         최초로 올라왔던 화끈함이 점점 가시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쓰라림과 욱신거리는 통증이 그 자리를 메꿨지만. 절대 팔이 부러진 건 아니리라 믿는다.

         

         아직 넘어야 할 위기가 남았으니까, 벌써부터 전투력 손실을 입어서는 안 된다. 안 되고 말고…!

         

         쿠당탕!

         

         팔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환부를 붙잡은 나는 디디고 있던 턱을 박차는 것으로 뒤로 굴러서 방 안으로 대피. 저 집념 넘치는 미친 년의 사선으로부터 벗어났다.

         

         조금 무리를 했다면 날듯이 움직이며 벽을 짚는 걸로 급제동한 헤이롱 자객에게 한두 방 꽂아 넣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내가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재조준하는 동안, 저게 또 얼마나 표독스럽게 덤벼들지를 떠올리니 시도조차 안 하는 게 맞아 보여서 참았다.

         

         되도 않는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기회 비용으로 목숨을 거는 건 아무리 봐도 수지타산에 어긋나 보여서.

         

         어? 이번에야말로 잘 쏴서 적을 침묵시켜버리면 되지 않냐고? 쫄았냐고?

         ……네, 맞습니다. 그럴 견적이 도저히 안 나와서 포기했어요 그냥.

         

         빡! 한 대 맞고 나니까. 사이버 엔지니어라는 후위 직종 종사자의 몸으로 왜 정정당당하게 싸워주려 들었나… 하는 후회가 마구 샘솟고, 눈물이 핑 돌고 그러더라고.

         

         솔직히 방금도 자세를 조금만 대충 잡았더라면 어깨가 아니라 볼이나 눈을 관통 당했을 게 절절하게 느껴져서 간담이 서늘했으니.

         

         쾅!!

         

         그런 만큼… 조금이라도 유리한 전장으로 끌어들여서 싸워야지.

         

         “출입문 폐쇄! 화재 차단용 셔터 작동…! 또 뭐냐… 아, 보호 격리 프로그램(Protective Isolation Program) 가동 개시!!”

         

         방문을 부서져라 거칠게 닫아버리고, 만료되려는 홈 시스템과의 접속의 연장.

         

         컨트롤이 탈취되었던 흔적을 없애느라 만든 로그 공백이 이상한지 자가진단을 실시하려던 메인터넌스 절차를 취소한 다음, 어떤 식으로던 복도와 여기를 분리하는 장치는 모조리 켜버렸다.

         

         아쉽게도 자동 포탑 같은 능동적인 자위 체계는 등록된 게 없었으나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상대의 무장은 겨우 권총. 군복을 차려 입었더라도 이런 행사에 입고 오는 예복에 여분 탄창이 가득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끽해야 저런 모자란 화력으로 돌파를 시도해봐야… 셔터나 간신히 부수려나?

         탄약을 아끼려고 서투르게 몸을 써서 부수려 들면 내밀어진 팔이나 다리를 내가 벌집으로 만들어줄 예정이니, 이것으로 이차 방어선이 완성이다.

         

         ……부디 삼차까지 물러나게 만들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몸의 안전은 확실히 보장될지 몰라도, 면전에다 망측한 고백을 박은 쇼우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보나마나 대답을 요구해올 텐데 나는 그걸 감당할 자신이 절대 없었으니까!

         

         “후…… 좋아, 한 번 덤벼보던가.”

         

         상대를 견제한다는 행위 또한 시간과 탄약, 정신력 등 유한한 자원을 있는 대로 소모하는 전략적 투자와 유사하기에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부담은 걸리겠지만.

         

         제 발로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방에 들어와야 하는 그녀에 비하면 우스울 수준일 터인 데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부분의 이점은 모두 내가 취하고 있으니 더 이상의 변수는 없다고 여겼다.

         

         그래, 분명 그랬어야 했는데….

         

         드가가가가갓—!!

         투쾅…!!

         

         “어!? 야 이 미친, 뭔데? 어디서 갑자기 그런 걸 잔뜩 공수해왔는데…?!”

         

         잠긴 나무문, 방화 셔터, 가스 유출이나 생화학무기를 대비한 그래핀 차폐막의 총 세 겹으로 틀어 막힌 출입구에 미칠듯한 철과 납의 소나기가 퍼부어지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일순간 공기는 물론 바닥까지 통째로 흔들린 마지막 폭발음은 절대 소총으로는 낼 수 없는 고폭성 화약이 터져 나간 충격량을 내포하고 있었고.

         

         울리는 쇳소리로 보건대 이미 제일 바깥에 위치한 문짝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장담할 수 있다.

         

         헤이롱의 지원군이라도 도착했나? 그건 말이 안 되는데.

         그런 불길한 통신이나 첩보는 일절 없었을뿐더러, 지금 주변은 우리가 끌고 온 포위망이 교전하는 와중이라 저들이 대대적으로 군사 활동을 벌일 형편이 못 된다.

         

         게다가 저런 화력을 진작 퍼부었다면 아마 나 같은 비전투원은 여기까지 물러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붙잡히지 않았을까? 왜 지금에서야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 거지…?

         

         “…아, 맞네. 당연히 방금 막 손에 넣었을 수밖에.”

         

         시발. 아까는 없던 무장이 생길만한 구석이 있었다.

         돌아다닐 사용인이나 청소부가 부재중인 탓에, 앞쪽 복도에는 에나마 특수 부대원 4인분의 무장이 여기저기에 고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사수할 저지선을 사장실로 변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저 여자는 널려 있던 유실물들을 점유해서 멋대로 사용하는 거지. 음.

         

         깡!! 까강!!

         

         “아오…!”

         

         반투명한 차폐막 너머로 움푹움푹 파이는 방화벽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그냥 이참에 확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버려? 여기가 몇 층이더라… 층수로는 4층쯤이긴 해도, 규격화된 건축물이 아니라 훠어어얼씬 높아 보이는데.

         

         이런 높이에서 함부로 도약했다간 오히려 매끄럽게 움직이지 못하고 고정 표적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려나? 그리고 바깥 상황도 거센 총격전이 한창이라 눈먼 총알도 경계해야 하는 만큼 별로 썩 좋아 보이진 않아서… 으….

         

         쿠궁!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수류탄으로 인해 조각난 셔터 조각이 카펫 위를 나뒹굴었고.

         찌이익! 그 틈으로 들이친 발사체가 질긴 탄소막을 찢어 놓으며 어찌저찌 사람이 들어올 공간을 확보했다.

         

         “…….”

         “……….”

         

         그리고는 숨이 막힐듯한 정적.

         저쪽은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나는 뭘 내밀어야 중무장으로 강화된 저 년을 멈출 수 있을까 미친듯이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는데.

         

         “……?”

         

         예상보다 정적이 길었다.

         공격자가 풍기는 노골적인 망설임의 기미가 매캐한 화약 냄새에 섞여 실내로 흘러 들어왔다.

         

         불과 초 단위만 되도 판도를 바꿔 놓았을 그 시간은, 어째서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점점 늘어져 1분에서 무려 2분까지…… 어라? 이러면 싸우기도 전에 내가 이겼는데요?

         

         쟤는 왜 여태까지 잘만 압박하다가 막판에 손을 느슨하게 해서 승산을 깎아 먹고 화를 자초한대.

         …크흠! 안일하기는.

         

         

         

         ★ ☆ ★ ☆ ★

         

         

         

         “……소위, 자네가 헤이롱의 이름 밑에서 복무한지 얼마나 지났지?”

         

         “정확히 8년하고도 232일째입니다. 연수 기간을 제외하고 다시 계산해서 말씀드릴까요?”

         

         싹둑!

         

         흡사 단두대 마냥, 가운데 물건의 머리 부분을 집어넣을 동그란 홈이 있는 전용 커터로 두툼한 시가(Cigar; 잎말이 담배)를 잘라낸 티엔 중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시시콜콜하게 기간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상념에 곁들이고자 한 안주거리를 요구한 것이었던 만큼 대략적인 햇수만 알면 충분했기에.

         

         “8년 7개월이라… 거의 9년이 다 됐었나.”

         

         회장에 있는 서비스 바에서 주문해온 크리미한 위스키를 한 모금. 거기에 미처 목으로 넘어간 그 향과 뒷맛을 즐기기도 전에, 어두운 색채를 띤 마두로 시가의 스파이시함이 가득 담긴 연기를 또 한 모금 담아버렸다.

         

         서로 다른 두 가치를 모두 손에 쥐려면 찬찬히, 시간을 두고 즐겨야 하는 법인데… 자신은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사이버웨어로 ‘앞으로 좋은 인연을 희망하는’ 모 비서가 전해준 기밀 자료를 열어놓고는 중요 대목들을 다시 한 번 쭈욱 훑었다.

         

         현재 집행이 진행 중인 제재안, 관련된 에나마 고위직, 그리고 관련자들에게 내려질 처벌.

         

         자금과 비즈니스는 예로부터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그런 면에서 카사네의 특제 약은 여태까지 그 자체로도 상류층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되었고, 유통처만 괜찮게 고르면 꾸준한 수입원도 되었지만… 너저분한 정치 문제에 엮였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더군다나 상임 이사의 최측근이라는 괜찮은 대체재가 생겼다면 더더욱.

         

         “……민 소위? 조용히 따라줘야 할 명령이 있네.”

         

         “삼가, 배명하겠습니다. 티엔 중장님.”

         

         공손하게 모아진 양손이 등 뒤에서 맞닿고, 곧게 당겨진 발뒤꿈치처럼 그녀의 척추와 목도 일직선으로 쫙 펴졌다.

         

         안 그래도 풀어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던 수행인이, 명령이라는 단어 하나에 병사로 바뀌었다.

         

         헤이롱은. 딱히 메가 코프 간 분쟁을 꺼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원수元帥나 그에 준하는 장성 일동의 찬성이 있었을 경우에 한해서지, 일개 중장의 인맥 관리 때문에 에나마와의 대외 관계가 틀어졌다고 하면… 좋은 말이 나올 리 만무하니.

         

         “아까 에다마츠 이사와 같이 있던 소녀를 기억하나? 현재 소재지는 본관 건물 위쪽에 있을 거라는군. 가서 죽이도록, 헤이롱의 적이다.”

         

         무사 귀환 방법에 대한 논의도, 수단에 대한 확고한 지시도 없는 강압.

         사실 죽이기는커녕 다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호위로 추적자가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현장에서, 집행자 역할을 담당한 상임 이사가 아끼는 이를 습격하는 행동을 한 헤이롱 인사가 죽었다는 결과 자체는 남을 테니 상관없다. 그거 하나면 많은 여죄를 더는 말하지 못하게 된 입에 물릴 수 있기에.

         

         “공식적인 행사입니까?”

         

         “…’조용히’ 라 말하지 않았나? 유감스럽지만 따로 지원은 없다네. 방법은 알아서 생각하고….”

         

         ‘가서 모든 걸 껴안고 죽어라.’ 까지 입에 담으려던 중장은 말을 끊었다.

         

         딱히 충성스러움이나 영특함을 평가해서가 아닌, 대단한 고지식함을 높이 사서 키우던 인재인 만큼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구체적인 분부가 필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차마, 아무리 그래도 키우던 개를 요리하는데 양식 없게 끓는 물과 도마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파벌을 탔다는 뚜렷한 자각도 없으리라.

         

         그저 직속 상관에 대한 절대 복종이 평가받은 줄로만 알고. 묘하게 다른 동기들보다 승진이 빨랐고, 미세하게 능력을 선보일 기회가 더 많았으며, 이상하게 중장의 동행인으로서 이런저런 행사에 많이 불려 다닌다고 생각했겠지.

         

         덕분에 ‘티엔 중장’과 ‘민 소위’는 기록에 남은 방문지마저 상당수 일치하니 희생양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재목으로 낙점되었다.

         

         “훌륭히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때로는 너무 충실한 것도 결격 사유가 되는 세상에서 자아가 없는 군인은 딱 쓰기 편한 소모품이나 마찬가지.

         

         적어도 남겨질 그녀의 가족들은 챙겨줄까… 하고, 슬슬 술기운이 도는 중장은 새로 뽑을 수행원 목록을 점검하면서도 감수성 넘치는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굉장히 만족했다.

         

         

         

         타앙!

         

         “!!”

         

         새된 비명이 귀를 울린다.

         모종의 폭발물이라 여기고 기껏 신경 써서 격추했거늘, 묘한 단내만 풍기며 비산하는 덩어리를 본 민 소위가 미간을 좁혔다.

         

         행복한 표정으로 과자나 들고 산보하던 소녀가 암살당해야 할 헤이롱의 적이라니,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가 찰 노릇이었으나 저래 보여도 에나마 소속 인물이었다는 걸 상기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딘가 뒤틀린 사고방식, 겉모습이나 분위기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무력은 깔끔한 개조 기술을 자랑하는 에나마의 전매 특허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많은 건 자신의 권한이 충분하지 않은 탓.

         단독 임무를 많이 수행하는 건 신임받고 있는 까닭에.

         언제나 최소한의 정보만 주어진 채로 움직여야 하는 건 보안 상의 이유로.

         

         타당!!

         

         무엇보다 책임 완수야 말로 군인 정신의 귀감이 아니던가?

         사소한 의문 때문에 명령을 그르쳐서는 안 될 말이다. 설령 그게 어린 애의 손목을 비트는 과정을 포함하더라도.

         

         가볍게. 그렇지만 신중한 사격을 통해.

         대상이 물러난 경로와 자신의 진입각을 조절하는 것으로 목표물을 막다른 통로로 몰아넣은 민 소위가 숨을 고르고는 오랜 버릇대로 눈을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전장의 흐름이 직접 그녀의 피부에 와닿고 이내 조각난 정보로 변해 대뇌로 입력되었다.

         

         상대의 호흡, 작은 움직임. 그걸로 도출되는 같잖은 노림수까지.

         귀여운 수준의 반항이다. 마모된 정신에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리만치.

         

         살아있는 인간이 그 위치에 있음으로서 흘리는 막대한 정보량을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함정치고는 열악한데.

         

         이런 걸 개인 킬 카운트에 추가해도 될까 하는 머뭇거림도 잠시.

         그냥 단숨에 끝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민 소위는 몸을 날리며 권총의 조준선을 소녀에게 정렬했고.

         

         ‘……뭣?’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손이 어긋났다.

         

         첫번째는, 최초 조우시엔 얼굴을 확인하느라 놓쳤던 목표가 입은 수트, 예전에 연구소 시찰에 동행했을 때 본 기억이 있는 일품으로. 윤기 흐르는 묵광이 자랑인 특수한 신소재가 사용된 자사의 전투복이다.

         

         지나치게 비싼 생산 단가로 인해 제식화는커녕 공개 주문 계획도 백지화된, 소재만 남은 물건이라는 걸 스캐닝 기능이 부가된 의안이 확인해주었다.

         

         결정적으로 두번째는, 사방에 널린 에나마 추적자들의 사체가 흡사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큿…!”

         

         절대 성공했어야 할 승부수를 빗맞혔다는 사실이 뇌리에 박혔다.

         찢어진 두피로부터 흐르는 피는 인지했으나, 무너진 자세를 바로 하느라 객실로 사라지는 목표도 놓친 마당에 그런 상처를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너는 태도가 추적자 새끼들과 닮았다.’는 말도 듣는 입장이었던 만큼, 민 소위는 자신의 한계를 똑똑히 알았다.

         

         장비를 갖춘 야전이라면 몰라도 이런 좁은 곳에서 싸운다면 일대일조차 어렵다는 것을.

         

         ‘멍청하게, 함부로 방심하다니….’

         

         적은 헤이롱의 장성도 전부 구비하지 못한 첨단 전투복으로 무장한 미지의 상대.

         에나마 최고의 특수 요원을 넷이나 참살하고 그 무덤 위에서 한가롭게 디저트나 즐기던 정체불명의 악마.

         

         고로… 전력을 다해서 죽인다.

         

         찰칵…!

         

         지체없이 모서리에 처박혀 있던 전술 조끼를 휘두르듯이 착용, 주인을 잃은 소총도 군홧발로 차올려 낚아챈 뒤 상태를 점검. 개머리판과 덮개 쪽에 혈흔이 좀 많이 남기는 했어도 총구, 약실, 탄창에 흘러 들어간 기색은 없으니.

         

         스멀스멀 가슴 한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려는 공포를 총성으로 억눌렀다.

         나는 지금, 죽음의 덫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게 아닌가하는 예감을.

         

         이중 삼중으로 봉쇄된 출입문을 기계적으로 돌파한다.

         시원하게 탄창을 비우고 약실이 비면 새 걸로 갈아 낀다. 총신이 과열되면 미련없이 세워놓고 다른 녀석을 견착했지만.

         

         화약의 열기로 인해 덥혀져 가는 공기와 달리 그녀는 약간의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반드시 저 소녀와 추적자들을 도륙 낸 괴물이 동일 인물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걸 깨달은 정도로. 동시에… 그들이 같은 편이라면 지금 덮쳐올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도.

         

         뭐, 사체에 남은 무기 상흔이 다 다르다고? 혹시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을 일으킨 건 아니냐고?

         그러면 또 헤이롱의 적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진다.

         

         “…….”

         

         어디까지가 망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기 직전에. 민 소위는 스스로 중심을 찾았다. 병사는 멋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명령을 따를 뿐!

         

         끼이이익…… 쿵!!

         

         기어이 나무문 뒤에 숨겨져 있던 철문이 넘어갔다.

         정확히는 도중에 삼중막에 잠깐 걸쳤지만, 거의 걸레짝이 되어서 그런지 견디지 못하고는 바닥에 그 조각을 흩뿌렸다.

         

         과격한 진입으로 망가진 입구 부근을 빼면 난장판이었던 복도와는 다르게 안은 깨끗했다.

         경계하던 적은… 방 끄트머리에서 금속제 책상을 정면을 향해 엎어 놓은 채 엄폐하고 있었고.

         

         서로 허망한 최후를 피하고자 머리카락만 언뜻언뜻 내비치며 신경전을 벌이는 광경을 비웃을 사람은 여기엔 없었다. 대부분은 은엄폐를 소홀히 한 대가로 한 발 먼저 저세상에 갔지.

         

         “야 이 미친 년아…! 서로 죽고 죽이기 전에, 뭐 하나만 물어보자!! 왜 나한테 지랄인데!?”

         

         아직 밖에서 기회를 엿보는 그녀를 향해.

         비명이라기보단 헛웃음, 질문이라기보단 일방적 통보에 가까운 그 말을 받은 소위는 과연 저 고함 뒤에 숨겨진 저의가 무엇일까 고민했지만.

         

         어차피 제복조차 갈아입지 않고 곧바로 달려온 몸이기에 정체를 감출 수도 없다. 증언을 토대로 소문이 퍼진다면 막기도 힘드니, 반드시 목적을 완수한다는 집념을 담아 대답했다.

         

         “당신이. 헤이롱의 적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입니다.”

         

         “……염병.”

         

         짚이는 바가 있는 것처럼. 혹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뇌까린 소녀는 지긋지긋한 대치를 포기하겠다 선언하듯 팔을 뻗어 유리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콰드득!!

         

         보통 유리를 소리보다 빠른 투사체로 가격했을 때 날만한 경쾌한 파쇄음은 들리지 않았다.

         

         “……하. 이런 저택은, 외부를 나누는 유리창이 당연히 아치형 강화 유리로 되어있습니다.”

         

         실력은 미지수였을지 몰라도, 경험은 상당히 부족한 모양이라는 실망감을 내심 삼킨 그녀는 담담하게 더는 물러날 길이 없다는 의미를 담아 최후 통첩을 날렸다.

         

         결국 중요한 순간에 맞서기보단 등을 보이길 택하는 약자.

         정확한 연유는 몰라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면 민 소위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

         

         “응? 그건 나도 아는데? 그저 손님이 오는데, 아무 것도 안 하고 있기는 뭐해서 한 손 거든 것뿐이야.”

         

         여태 치밀하던 상대의 오해를 가소로워하는, 그 이죽거리는 미소를 제대로 인지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조명과 총염으로 만들어진 불야성의 저편으로부터, 애타게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강직한 그림자가 날아들었기에.

         

         ——!!

         

         좌중의 고막이 꿰뚫렸다. 흡사 대기가 찢어지고 암반이 으스러지는 굉음이 장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총알이 박혀서 흉한 거미줄이 친 유리 정중앙에, 중력을 통한 가속을 정말 극한까지 받은 처형검이 틀어박히고 곧이어 기반 질량이 500kg은 우습게 넘어가는 포탄이 내리 꽂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여간.

         

         – …물러나시지 않는다면. 즉각 사살하겠습니다. –

         

         그렇게, 특수 유리창을 일격에 박살내며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을 지키는 문지기를 자처하는 드로이드가 세상 화려하게 강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삼차 방어선 = 환기 장치를 킨 상태로 에베벱! 하면서 금고 안에 숨어버리기.
    민 소위는 사회에 남은 가족이 없다(…).

    휴재라 해놓고 깨작 거리다가 두 편 분량이 나오기 했는데, 정작 몸은 여전히… 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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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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