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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4

     경룡 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

     경룡 대회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제국어로 ‘쇼케이스’에 가깝다.

     일종의 홍보이자, 시범경기.

     경룡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홍보.

     -나도 보고 싶어!!

     오로솔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왕국의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어느정도냐고?

     -실시간으로 어떻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느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오로솔과 지브롤터 사이에 실시간으로 마도 영상을 중계할 만큼 마석 케이블이 두껍지 않아서.

     -아쉽군…. 녹화영상이라도 보내다오.

     그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경룡 경기를 멀리서라도 보고 싶어 했을 정도.

     어머니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버지 개인으로서도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겠지.

     ‘은근히 경룡은 자주 챙겨보셨단 말이야.’

     나라가 망한 뒤, 매국노 가문이 된 뒤.

     아버지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취미생활은 경룡이었다.

     날개를 꺾인 채 바닥을 기어가는 용기병의 모습에서 자신을 빗대기라도 한 게 아닐까 싶지만, 지금의 경룡은 바닥을 기지 않는다.

     오히려, 바닥에 닿는 순간 ‘실격’처리된다.

     오직 공중만을 달리며, 고도를 높여 달리더라도 좌우로 지정된 트랙 구역 안에서만 달려야 하는 초고속 레이스.

     

     아버지가 관심을 보인 것처럼-

     “오랜만이구나, 아들아.”

     “오셨습니까, 어머니.”

     이 경룡 대회의 출자자 중 한 명, 카르멘 왕비 또한 경룡에 제법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이제는 네가 보고 있는 그림이 슬슬 보이더구나.”

     “예?”

     “형편없는 용기병의 실전 감각을 일깨워 주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니?”

     모르가니아의 혈통에는 중요한 부분에서 착각이라도 하는 기질이라도 있는 걸까.

     “노스트럼의 자랑인 용기병이 그동안 실전훈련은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제국의 매직 미사일 화망도 제대로 넘어서지 못하는 머저리 집단이라는 걸 네 덕분에 알게 되었잖니.”

     “카르멘 어머님. 그건 그냥 우연의 일치였을 뿐입니다.”

     “우연?”

     “저도 비룡기사단이 이런 오합지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지브롤터 변경백이 협곡 문을 열고 제국에 붙은 것과 결이 같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죠. 저는 그저 비룡들이 서로 경쟁하는 걸로 도박을 하면 제법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뿐입니다.”

     “겸손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저 어린 아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잘못이지. 우리의 생각이 짧았어.”

     “그게 아니라….”

     “아니면? 아버지의 말대로, 네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경룡을 하자고 말했던 거니?”

     “여기에서 더 말하면 머리가 아파질 것 같으니, 그런 걸로 하시죠.”

     “후후후. 솔직하지 못하기는.”

     이쪽은 답답해서 피를 토할 것 같지만, 그런 부분조차 ‘그레이가 아스타시아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경룡대회를 준비했다’라는 부분에는 도움이 되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레이. 이번 학기 동안은 비룡기사단이 경룡장을 주로 사용할 거지만, 내년부터는 학생들이 직접 정규교육과정으로 비룡 기승 훈련을 시작할 거란다.”

     본론이 시작되었다.

     “나리아가 선두에서 비룡을 이끌고 훈련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겠지. 마음 같아서는 너를 그 교관으로 써먹고 싶기는 하지만….”

     “저는 이사장입니다. 학생들의 기승 실력을 평가하고, 장학금을 줘야 할 객관적인 입장의 존재죠.”

     “비룡 기승의 마스터이자 경룡 대회의 ‘챔피언’으로서?”

     “…….”

     대외적으로, 나의 실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용의 협곡에서 적당한 체격을 가진 비룡 니드호그의 주인이 되었다는 건 어느정도 소문이 나 있지만, 그마저도 ‘별난 짐승이 별난 주인을 선택했다’라는 정도로 이야기가 퍼져있을 뿐이다.

     “아직 챔피언인 건 아닙니다.”

     아는 사람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번 경룡대회에 참가하는 비룡 기사단 전원보다 더 빠르게 하늘을 날아가지 않는 한.”

     아직, 나는 대외적으로 증명한 건 아니니까.

     “그렇구나. 그런데…조금 의외긴 해.”

     “의외요?”

     “나는 네가 네 힘을 드러낸다고 한다면, 그 검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검은 이미 어느정도 검증되었기에, 큰 문제 없습니다.”

     검술 실력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고, 이 또한 아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어필하는 걸로 분란이 일어날 요소는 틀어막았다.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암살은 통하지 않는다.

     상급기사 이하의 실력으로는 그저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역으로 살해당하여 그 시체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마법 같은 현상을 겪게 될 뿐이다.

     암살하려고 하는 입장으로서는 시체가 사라진다는 게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어딘가에 사로잡혀서 고문당해서 자기네 정체가 드러나거나 꼬리가 밟힐까봐 아주 기겁을 해대는 거지.’

     자기가 마도자동선을 가장 먼저 받지 못했다고 빈정 상한 인간이 암살자를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그 암살이 제대로 성공도 하지 못하고 암살자는 증발해버렸다?

     중간책임자로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다.

     

     임무는 실패했는데 그 꼬리가 잡히게 생겼으니까.

     물론 당사자나 중간책임자는 자신들의 꼬리는커녕 대가리까지 그대로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그레이.”

     그렇기에.

     “조심하렴. 이번에 경룡 시범경기에…’그자’가 나온다고 하더구나.”

     당사자가 이렇게 대담하게 나올 수 있는 거겠지.

     “제로스 바르셀, 황금여명 기사단의 단장이라도 직접 나온단 말씀이십니까?”

     “…….”

     “자신의 애룡, 베히모스를 데리고?”

     “조심하거라.”

     아무리 카르멘 왕비라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어떻게 제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자는, 오직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말만 듣는 자니.”

     나라가 몰락해도 노스트럼의 국왕을 따르는 충성병자들.

     그 대표가 바로 제로스 바르셀 후작이다.

     * * *

     

     늦은 밤. 오로솔 아카데미 인근, 마도자동선 기동연회장 [더 퍼펙트 고져스 세인트 지오].

     “아름다운 밤이로군.”

     

     속이 훤히 비치는 하얀 가운을 입은 금발적안의-남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테르시안 제국산이라는 라벨이 떡하니 박힌 위스키를 병째로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경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세인트 지오의 뒤, 전신갑옷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쯧. 여전한 인간 같으니라고.”

     무뚝뚝하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기사단장의 답에 세인트 지오는 빈정거리며 위스키병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래서 그 건방진 놈은 언제 죽일 건가?”

     “폐하.”

     “이제는 아예 테르시안 제국의 황위 계승자니 뭐니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더군.”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어렸을 때는 나름 좋게 보셨지 않습니까?”

     “그래.”

     세인트 지오 국왕은 유리병 안에 절반 정도 남아있던 위스키를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놈이 어렸을 때는, 그놈을 통해서 샤를로트에게 다가갈 수 있을 줄 알았지!”

     “…….”

     “그런데 그 영악한 놈은 카르멘을 꼬셔서 자기 뒷배로 만들더니, 오히려 카르멘과 그 자식을 엮어버렸어. 심지어 본인은 제국 황제의 눈독에도 들었지. 귀찮은 놈.”

     “…….”

     “진작 죽여버릴 걸 그랬나? 아니야. 그랬다가는 샤를로트가 나를 영영 바라보지 않고, 저주하고 증오하겠지. 그건 안 돼. 물론…그런 걸 꺾는 것도 나름 맛이 있기는 하지만.”

     기사단장의 눈초리가 잠시 파르르 떨렸으나, 세인트 지오 국왕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설령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지만.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아직도 찾지도 못했나?”

     “그 녀석이라고 하심은….”

     “하, 참. 그걸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건가? 자네가 보낸 그 실패자 말이야, 실패자.”

     “…백방으로 찾는 중입니다.”

     기사단장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으나, 그 또한 세인트 지오 국왕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체 찾는 게 그렇게 어려워?”

     “아직 시체가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시체라고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당시 주변 정찰병의 말에 따르면, 이사장실에 진입한 기사들은 잠복 이후로 소식이 끊겼던바….”

     “그러니까, 그 녀석들이 어디로 갔냐고. 어? 시체가 하늘로 사라졌겠어, 아니면 땅으로 꺼졌겠어? 그도 아니면, 아예 이사장실에서 시체를 소각하고 뼛가루를 만들어서 하늘로 날려 보냈다고 하지 그러나?”

     “…….”

     “찾아. 그놈들, 분명 모르가니아가 몰래 빼돌렸을 것이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레이 지브롤터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터는 거 하나는 잘 하지 않느냐.”

     세인트 지오 국왕은 한 손을 자기 입에 대고 마구 휘적거렸다.

     “분명 설득당한 게 틀림없어. 공간이동 마법을 썼든 뭘 했든, 제국으로 넘어간 게 틀림없다.”

     “그들은…!”

     “혹시 모르지. 이미 그때부터 제국 황태자였을지도. 그런 권력의 뒷배 정도는 되어야 왕국 제1기사단의 최정예라는 놈들이 배신을 하고 이렇게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잠적한 게 아니겠어?”

     “…….”

     “정 궁금하면, 내일 직접 만났을 때 물어보든가.”

     “알겠습니다.”

     기사단장, 제로스 바르셀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외에는 따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하.”

     세인트 지오는 노스트럼의 국왕이니까.

     

     * * *

     결전의 날-까지는 아니고, 그냥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이 밝았다.

     “그렇게 나가시게요?”

     “그럼?”

     

     출격 전,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앞에 나서기 전에 나와 만난 아스타시아는 나를 위아래로 보며 입을 떡 벌렸다.

     “그게 용기병의 옷인가요…?”

     “이게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스타시아는 내가 입고 있는 의복을 위아래로 훑었다.

     “평소랑 다를 바 없는데요.”

     “평소랑 다를 바가 없다니? 여기, 단추를 풀었잖아.”

     “그런 걸 두고 우리는 평소랑 다르다고 하지 않고, 그런 옷을 두고 우리는 레이싱 복장이라고 하지 않아요!”

     아스타시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손거울을 꺼냈다.

     “그냥 평소에 입던 정장이잖아요!”

     “그렇지.”

     “헬멧은 어디로 갔죠?”

     “머리카락 망가지는 것도 있고, 아래는 정장 입었는데 머리만 헬멧 쓰면 그건 또 그거대로 이상할 것 같은데.”

     “으으….”

     아스타시아는 어떻게든 내 머리에 헬멧을 씌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은 가렸으면 좋겠는데….”

     “응?”

     “우승하고 우쭐거리는 거 여자들이 보면, 괜히 또 이상한 파리들이 더 꼬일 거란 말이죠. 안 그래도 지금 제국 황태자라고 건방진 왕국 영애들이 자기들이 후처라면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데!”

     “하하, 그 무슨 멍청한 소리를.”

     나는 아스타시아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제가 차기 황제가 될 수 있다면 그건 아스타시아의 반려가 될 거라서 그런거죠.”

     “후처라니까요?”

     “……아스타시아. 제 인생에 두 번의 결혼은 없습니다.”

     나는 아스타시아의 손을 들어 그녀의 왼손 약지에 입술을 맞췄다.

     “우승으로 증명하도록 하죠. 왕국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 비룡을 잘 다룬다고 하는 용기병들을 전부 제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해 보이겠습니다.”

     “…그, 혹시 미신을 믿으시나요?”

     아스타시아는 내 손을 꽉 붙잡으며, 좌우를 빠르게 훑었다.

     “제국의 경마장에서는 말이에요, 기수가 사랑하는 여인과 키스를 하고 경기에 들어가면 무조건 우승한다고 그러던데요.”

     “그건 그냥 키스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아니거든요. 한…20년 전? 그때 경마장에서 우승한 사람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키스한 이후로, 제국에서 내려오는 전통 같은 거거든요?”

     “제국 신문에 그런 거 한 번도 나온 적 없고, 여기는 노스트럼입니다만.”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요?”

     “그럴 리가요.”

     나는 아스타시아가 도망가지 못하게, 두 손을 꽉 붙잡았다.

     “그런 징크스랑 관계 없이, 저는 그냥 공주님과 키스하고 싶다면 어쩔 겁니까?”

     “…….”

     째깍, 째깍.

     “…출전 전까지만.”

     나는 그대로 아스타시아를 향해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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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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