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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4

       

       

       

       

       어렸을 적.

       호기심에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아빠가 만든 수많은 이야기였다.

         

       그중에는 세상에 공개된 것도 있었고,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아마 남들의 눈에는 그 장소가 보물창고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포함되는 얘기였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보물들을 향해 저절로 손이 뻗어졌고, 천천히 그 이야기들을 읽어봤다.

         

       ……재밌었다.

       

       무어라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재밌었다.

         

         

       “재밌었니?”

         

         

       바로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하지만 아버지는 서재에 몰래 들어온 것도, 보물 같은 이야기를 읽는 것도 혼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단지, ‘재밌었니’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다행이네.”

         

         

       그제서야 아버지는 조금 안심한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재밌는 이야기를 읽어버린 탓일까. 언제나처럼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빠가 이때만큼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어떻게 아버지는 이런 엄청난 이야기들을 이렇게나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냐고.

         

         

       “글쎄……”

         

         

       아버지는 자신의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의외인 대답을 하셨다.

         

       

        “아무래도 인생 2회차여서 그런 게 아닐까? 아, 이건 엄마들도 모르는 아빠의 엄청난 비밀이거든. 그러니까 비밀로 해줄 수 있지?”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농담을 건넨 것일까? 아버지가 자신을 속일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

         

       어쨌든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내게 있어서 좀 더 대단한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좋아한다.

         

       당연히 아들로서 아버지같이 대단한 사람을 싫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단지, 언젠가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존경에서 비롯된 생각이었으며, 물론 지금에 와서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포기한 이유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압박감,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등등.

         

       뭐… 고작 이런 시시한 이유밖에 없었더라면 진작에 각본가의 길을 걸었을 테지만.

         

       내가 각본가의 길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은 단순하게 대본을 적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백지에 검은 글씨를 채워가는 그 과정이 너무 난해하고, 어렵다.

         

       그리고 조금 모순되는 말이지만, 대본이라면 얼마든지 적을 수 있다. 그저 아버지와 같은 수준의 대본을 못 적는 것일 뿐.

         

       그렇기에 글을 적을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점점 커져만 갔다.

         

       도대체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런 내용과 인물들을 생각해내는 것일까? 어쩌면 인생 2회차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허나……

         

         

       ─빈말이 아닌데? 내가 봤을 때는 진짜 많이 닮았어.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너희 아버지랑 같은 길을.

         

         

       며칠 전, 차무식 삼촌에게서 제법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나랑 아버지랑 많이 닮았다고…?

         

       남들이 하는 얘기였다면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삼촌의 말이었기에 조금 다르게 들려왔다.

         

       삼촌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러니 누구보다 아버지에 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성장 과정까지 대부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아버지와 닮았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은 내게 있어서 제법 큰 의미가 있었다.

         

         

       ─더럽게 청춘이잖아,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때가 아니면 살면서 언제 도전이란 걸 해보겠냐고!

         

         

       그리고……

         

         

       ─그러니 일단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남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마음껏 해봐. 후회라는 건, 너 같은 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말이니까.

         

         

       삼촌으로부터 정말 좋은 조언을 듣게 되었다.

         

       역시나 그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은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왜 아버지가 삼촌을 엄청 신뢰하고, 편하게 대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삼촌은 훌륭한 어른이었다.

         

         

       ─이왕이면 한빛예술고등학교를 추천할게.

         

         

       추가로 삼촌은 내게 진학할 고등학교까지 추천해주셨다.

         

       한빛예술고등학교.

       삼촌과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들이 함께 다녔던 모교.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금 구미가 당겼지만……

         

         

       ─그곳이라면 분명 다양한 인연과 경험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조금 그리운듯한 삼촌의 눈빛을 보니, 뭔가 이런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빠가 다녔었던 고등학교에서라면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라면 자신의 글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결정은 빨랐다.

         

       그날 부모님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상당히 환한 미소로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뭐? 엄마랑 아빠가 한빛예고에 다녔었다고요?”

       “음… 우리가 안 말했었나?”

       “그럼 나도 갈래!”

         

         

       서다빈.

       다짜고짜 녀석이 따라붙은 것이었다.

       그리고 서다빈이 그런 발언을 크게 한 이상, 옆에 있던 서은빈이 그냥 흘려들을 리가 없었다.

         

         

       “그럼 나도.”

         

         

       ……역시나.

         

       이미 확정을 내린 것은 같은 둘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녀석들은 내가 신중하게 고민해보라고 말해봤자 대충 흘려들을 놈들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급발진하는 녀석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역시 부모님들뿐.

         

         

       “엄마는 완전 찬성!”

       “그래. 한빛예고 정도면 괜찮겠지. 그리고 엄마 아빠의 모교를 너희가 다니는 건, 우리에게도 제법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고.”

         

         

       사실 기대도 안 했다.

         

       애초에 내가 그곳에 입학하고 싶다는 말을 흔쾌히 허락해준 시점부터, 당연히 녀석들에게도 그 허락이 적용되겠지.

         

       나는 반포기한 상태로 아버지 쪽을 슬쩍 쳐다봤고,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어째서인지 아버지는 내가 한빛예고로 간다고 말한 시점부터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처럼 부드러운 미소로.

         

       평소였다면 그 미소의 방향이 서은빈이나 서다빈 쪽이었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나한테 무언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건가.’

         

         

       아마 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굳이 아버지가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나를 향한 아버지의 부드러운 미소와 눈빛에는 ‘대견함’이라는 것이 담겨 있었으니까.

         

       어쩌면 아버지는 내가 선택한 길을 존중하고, 또 응원해주고 싶은 게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신입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사장직과 교장직을 동시에 겸임하고 있는 송하율이라고 합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한빛예고의 입학식 날이 다가왔다.

         

       송하율.

       한빛예고의 이사장인 그녀가 등장하자 조금 어수선했던 강당 안이 단번에 침묵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문득 차무식 삼촌이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송하율 이사장은 천재를 사랑하고, 한없이 관대하게 대한다고. 그러니 이용할 수 있으면 최대한 이용하라고 전해 들었다.

       

       뭐…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그녀의 안에서 정해진, 천재의 기준점에 들어서야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음? 근데 어째 단상에 서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든다.

       물론 기분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대놓고 우리 쪽 열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하긴, 그녀만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긴 했다.

         

       신입생과 재학생, 심지어 교사진들까지 우리 쪽 열을… 정확하게는 1학년 2반의 학생들이 서 있던 열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나랑 서은빈, 서다빈이 모두 1학년 2반에 함께 배정된 순간 이 정도 관심은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와, 미쳤다. 같은 반에 서은빈이랑 서다빈이 있다고? 나 한빛예고 오길 진심으로 잘한 것 같아…….

       

         

       적어도 지금처럼 나보다는 서은빈이나 서다빈 쪽에 훨씬 관심이 쏠리겠지.

         

       당연한 경우다.

         

       쟤네들은 현시점 청소년들의 우상이자 인기 연예인, 거기에다가 그 사람들의 귀한 딸이다.

         

       여학생들이라면 조금이라도 대화를 해보며 가까워지고 싶을 것이고, 남학생들에게 있어선 말 그대로 절벽 위의 꽃이겠지.

         

       그에 비하면 나는 허들이 조금 낮은 편이 아닐까 싶다.

         

       서은빈과 서다빈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의 아들이라는 대단한 사실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인기 연예인은 아니었으니까.

         

         

       “네가 서준우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혼자 걷고 있었는데 어떤 여학생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봐라.

       지금도 이렇게 대놓고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허들이 낮은 편인가 보다.

         

       참고로 눈앞의 여학생이 내 이름을 아는 것도, 지금처럼 말을 걸어오는 것도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솔직히 중학교 때도 이런 일은 많았으니까.

         

       아무래도 이런 면에서 어머니의 외모적 유전자를 잘 물려받은 덕분이겠지.

         

       다만… 솔직히 조금 놀랐다.

         

         

       ‘더럽게 예쁘네.’

         

         

       당장에 어머니들이나 서은빈과 서다빈의 얼굴만 한평생 보고 살아왔던 나다. 쉽게 말해 이성을 보는 눈이 더럽게 높아졌단 뜻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여학생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저절로 커질 정도로 예뻤다. 그리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누구랑 조금 닮았는데?’

         

         

       분명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그녀와 닮은 얼굴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안녕? 나는 박하민이라고 해. 올해 너랑 같이 한빛예고에 입학하게 된 1학년이고.”

         

         

       그때 여학생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니, 조금씩 옛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그 사람도 아버지를 향해 저런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내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여학생에게 한 가지 질문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초면에 조금 실례지만, 혹시 가족분 중에 배우 일하시는 분이 있어?”

       “응. 맞아. 우리 오빠가 사실 배우야. 나름 유명하기도 하고. 뭐… 너희 아버지보다는 아니겠지만.”

       “잠깐만… 그럼 설마 오빠분 성함이?”

       “박하준. 나 늦둥이거든.”

         

         

       여학생의 입에서 인기 남배우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순식간에 의문이 풀려버렸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았던 것 같다.

         

       하긴, 인기 남배우인 박하준과 같은 핏줄이면 저 얼굴이 납득이 된다.

         

       물론 왜 그녀가 나를 찾아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네가 박하준 배우의 동생인 건 잘 알겠어. 근데 왜 갑자기 나를 불러세운 건데?”

       “음? 그거야 오늘 너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라고?

         

       그렇게 곧바로 되묻고 싶었던 찰나, 자신을 박하민이라 소개한 여학생은 어째서인지 내게 천천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곤……

         

         

       “너, 나랑 연극·영화부에 들어가지 않을래?”

         

         

       싱긋 웃으며 다짜고짜 이상한 제안을 해왔다.

         

         

       “연극·영화부? 거길 내가 왜?”

       “당연히 거기서 나랑 작품 만들어야지. 너랑 내가 함께라면 분명 엄청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야. 927 작가님과 우리 오빠가 학창시절에 그랬었던 것처럼.”

         

         

       한없이 순수한 소녀의 꿈처럼.

       거짓 없는 그 대답을 듣고 있으니, 나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사람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여기서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싫어.”

       “응. 역시 그럴 줄 알았어.”

         

         

       ……?

         

       조금 의아한 표정이 지어진다.

       저건 처음부터 내 대답을 정확하게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의문에 답을 주듯, 박하민이 이어서 말했다.

         

         

       “만약 네가 927 작가님을 닮았다면 오빠가 한 번 정도는 튕길 거라고 했거든.”

       “그래?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건 앞으로 천천히 알게 해줄게. 왜냐하면…”

         

         

       동아리 활동 신청이 마감되는 날까지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박하민은 그 말을 끝으로 내게서 천천히 물러섰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나를 먹잇감처럼 노려보는 그녀의 눈과 똑바로 마주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한빛예고에 괜히 입학한 게 아닐까……

         

       라고.

       

       

       

       

       

       

       

       

       천재의 아이들 (完)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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