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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또 수십일이 흐른다.

     

    날씨는 점차 추워져가고 있었다.

     

    나는 아담 형을 만나러 온 상태였다.

     

     

    “날씨가 추워지네.”

     

    내가 형에게 말했다.

     

    그러며 그의 묘비석에 떨어진 낙엽을 치웠다.

     

     

    아직도 나는 형이 떠났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다.

     

    형이 죽었다기보단…마치 어디로 잠시 이동해 있는것만 같은 느낌이다.

     

    곧 다시 나타나 나에게 인사를 건네올 것 같았다.

     

    나는 그러면 아무런 저항없이 웃으며 그를 맞이할 수 있을 듯 했고.

     

     

    그런 이유에서일까.

     

    나는 아직 그의 묘비명을 채우지 못했다.

     

    떠난 것 같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별의 말을 적을 순 없는 노릇이다.

     

     

    “…또 올게.”

     

    나는 한 동안 묘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걸음을 옮겼다.

     

     

    -짹! 짹!

     

    걸음을 옮기는 동안 최근들어 친해진 동물이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파랑새.

     

    신기하게도 나를 따르는 그 모습에 ‘루아’라는 이름마저 지어주었다.

     

    “오늘도 왔구나, 루아.”

     

    속삭이듯 그 친구에게 말을 걸며 나는 새를 쓰다듬었다.

     

    최근 들어서는 이상하게도 시엔이 곁에 없을때만 다가오는 루아였다.

     

     

    “날씨가 추워지네. 안그래?”

     

    -짹! 짹!

     

     

    잠시 멈춰서서 나는 루아와의 시간마저 보냈다.

     

    동물과의 교류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기도 했다.

     

     

    부드러운 깃털. 귀여운 외형. 말하지 못하는 동물과 나누는듯한 마음.

     

    루아는 쓰다듬는대로 나의 손길을 받아내다, 토도독 내 어깨를 타고 올라오더니 제 얼굴을 내게 비볐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 부드러운 촉감을 즐겼다.

     

     

    “자, 이제 가.”

     

    나는 루아에게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고, 그 새를 날려보냈다.

     

    새는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멀리 날아오른다.

     

    “…”

     

    다가올 추위에 저 파랑새가 대비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따스한 곳을 찾아 이제는 날아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친해진 친구와 또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오늘도 게일과 남겨진 일을 해결하려 했다.

     

     

    라이커 가문에는 새로운 가신들도 많이 들어왔다.

     

    나를 돕는 하녀들. 집사들. 그리고 서기관까지.

     

    내가 부족한만큼, 인재들로 가문을 채워가고 있었다.

     

    바란도 마찬가지로 내 곁에서 나의 선택들을 도왔다.

     

    내게 딱히 후계자가 없는만큼 바란이 라이커 가문에서 다음가는 힘을 지니기도 했다.

     

    …바란은 딱히 그걸 원하지 않는 듯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가문이 커가며 새로운 집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왔다.

     

    원래 내가 생활하던 집을 허물고, 대저택을 짓는게 어떠겠냐는 제안들이 들어왔다.

     

     

    온 마을과 홍염단이 그에 찬성했고, 게일과 서기관, 시엔까지도 그걸 찬성했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내키지 않았다.

     

    사실 이유 또한 나도 알고 있었다.

     

    그저 입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이었다.

     

     

    게다가 당장은 달리 힘을 쓸곳이 많았다.

     

    집을 허무는 것은 먼 미래의 일로 밀어두어도 괜찮을 것이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일하다보니 금방 밤이 다가왔다.

     

    영지에 내려질 규칙들을 새로 다잡고, 주위에 돌아다니는 도적과 용병단들의 행태를 확인하고, 끝없이 날아드는 정략혼 관련 편지들을 치워냈다.

     

     

    그러자, 숲을 개간하던 홍염단 대원들이 복귀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웃음소리와 장난기 넘치는 그 소리가 하루의 끝을 알렸다.

     

     

    “게일, 일어나시죠.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 소리에 나는 하루의 끝을 선언했다.

     

     

    “그래. 오늘도 수고했군.”

     

    나는 일어서는 게일을 보다 말한다.

     

    “…항상 감사합니다.”

     

    게일은 그 말에 언제나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난 아담에게 속죄하는 것 뿐이야.”

     

     

    그 날은 밖으로 나가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로 여성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게일도, 집사 데스몬드도 놀란다.

     

     

    가장 앞에는 등쌀에 밀리며 다가오는 시엔이 있었다.

     

    뒤에 있던 시어도어의 아내가 외친다.

     

    “단장님! 아니…라이커 공! 하아…호칭이 입에 안붙네…”

     

    “단장님으로 괜찮습니다.”

     

    “그러면 단장님! 오늘 시엔이 부탁할게 있어요…!”

     

     

    성녀였던 시엔의 노력하에, 마을 주민들은 모두 그녀를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시엔을 내려다보며 의문을 품었다.

     

    부탁할게 있다던 시엔은 얼굴만 붉히고 있었으니.

     

     

    “…무슨 일이야, 시엔?”

     

    내가 묻자, 뒤에 있던 여인들이 환호성을 흘렸다.

     

    내 머릿속에는 더한 의문만 피어올랐고, 시엔은 보다 더 표정을 감추었다.

     

    머리카락을 베베 꼬는 그녀.

     

     

    “…”

     

     

    시엔이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멈춰 있자, 시어도어의 아내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단장님,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데…시엔이 자고 있는 곳이 너무 허름해요. 햇빛도 잘 안들지…곰팡이도 펴 있지…침대도 위태롭지…”

     

    “…”

     

    “근데… 단장님의 집에는 방이 남잖아요…?”

     

     

    나는 그제야 대화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웃음을 터트리자, 그걸 수용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두가 또 간드러지는 소리를 냈다.

     

     

    시어도어의 아내가 가장 신나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단장님만 괜찮으시다면…시엔에게 방을 하나 내어주면 어떨까 해서요.”

     

     

    몰려있는 인파에 단원들마저 하나 둘 모였다.

     

    나는 구경꾼들이 늘기전에 시엔을 내려다보았다.

     

    시엔은 나의 침묵에 뒤늦게 불안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보이니 내가 그제야 묻는다.

     

    “그런거야?”

     

    시엔은 잠시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내게 물었다.

     

     

    “………안돼?”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또, 고민할 이유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가볍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가자.”

     

     

    .

    .

    .

     

     

    함께 시엔과 집에서 생활하는 며칠이 흘러간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억지로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한두번씩 터지긴 했다.

     

     

    집에 혼자 있다고 판단해 윗옷을 벗고 돌아다니다보면, 시엔이 화들짝 놀라 주저앉는 경우가 있었다.

     

    어렸을때는 몸을 많이 봤을텐데도 그녀는 그토록 놀랐다.

     

    그런 모습도 하나의 웃음거리가 되어주었다.

     

     

    “전쟁에서 별에 별거 다 봤을거 아니야.”

     

    “그…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의 맨몸은 못봤지…”

     

    “…”

     

     

    시엔은 이따금씩 굉장히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치 이전의 거짓말에 대한 사죄처럼.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말들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그녀와 함께하는 일상이 익숙해지면서도 행복해져가고 있었다.

     

    .

    .

    .

     

    또 시간이 흘러, 어느날 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악독한 생각들은 밤에 찾아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별의 상황들을 곱씹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네르와 아르윈의 생각은 안하려 했지만…술로 경계를 내려놓으면 나는 말없이 그녀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소식이 끊긴지 한참이 지났다.

     

    잘 살아가고 있을까.

     

    분노와 화가 보다 잠잠해진 지금은…진심으로 행복히 살아가고 있길 바라고 있었다.

     

     

    나를 배신하려 했던 것도, 나를 죽이려 했던것도 이제 어느 정도 놓아줄 수 있었다.

     

    어려웠지만 그렇게 하고자 했다.

     

    좋은 기억들만 추억하려 했다.

     

    -스윽.

     

     

    그렇게 홀로 생각을 이어가고 있자니 시엔이 내 옆에 앉는다.

     

    어두운 거실에 촛불 하나 피워놓고 술을 마시는 내 곁에 자리한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어두운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또…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었어…?”

     

    “…”

     

    시엔이 물어왔다.

     

     

    그녀에게는 그 어떠한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

     

    때로는 내가 아파하는 것보다 더 아파하기도 했다.

     

     

    내 흉터들을 쓸어주는 날들이 많았고, 그 흉터에 울상을 짓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신체적인 흉터보다, 가슴속에 내려앉은 흉터들을 보다 면밀히 봐주는 시엔이었다.

     

     

    그 아픔을 언제나 감추려는 내게 시엔의 행동은 낯간지러우면서도….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우리의 관계가 예전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날이 올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벨.”

     

    시엔이 말했다.

     

    “…힘들어해도 괜찮아.”

     

    “…”

     

    “이제는 내가 곁에 있잖아.”

     

    “…”

     

    “…우리…앞으로 행복하게만 살아가자.”

     

     

    시엔은 천천히 내 머리카락을 쓸다, 내 볼에 손을 올렸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우리의 눈이 동시에 서로의 입술로 향했다.

     

    조용한 방 안.

     

    촛불만이 일렁이고 있는 공간.

     

     

    시엔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눈을 감으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의 입술이 오랜시간 끝에 포개어졌다.

     

    *****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나무 뿌리들이 아르윈의 등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아르윈의 힘없는 신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퍽!

     

     

    아르윈의 몸이 축축한 동굴바닥과 맞닿았다.

     

    그녀는 마치 시체처럼 그 지저분한 곳에 누워 있어야했다.

     

    의식이 끝났지만, 어떠한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고통을 견디느라, 끝없이 비명을 지르느라 그녀의 몸은 탈진한지 오래였다.

     

     

    마치 세계수가 죽기 직전까지만 그녀를 고문한 것처럼.

     

    “……아………..아….”

     

    아르윈은 가녀린 숨만 내쉬며 바닥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온몸이 추위에 덜덜 떨렸다.

     

     

    식은 땀이 몸을 적시고 있다.

     

    어떠한 온기도 그녀에게 닿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윈의 힘없는 눈이 이내 무언가를 발견한다.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그녀의 눈 앞에 떨어져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상징하는 그 세계수잎들.

     

     

    하나의 잎은 시들어가듯 오그라 들어있었으나, 나머지 한 잎은 이제 점점 초록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툭…투둑…

     

    베르그가 아픔을 지워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면서도, 자신을 잊어가는 것만 같은 베르그의 상황에 가슴이 아파왔다.

     

     

    아르윈은 자꾸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베르그가 본다면….예전처럼 걱정해주고 화를 내어줄까?

     

     

    아르윈은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너무…아파요, 베르그…”

     

    바닥에 누운채 오지 않을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힘들어요…”

     

     

    베르그와 이별한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르윈은 시간 관념이 이상하게 뒤틀려버렸다.

     

     

    벌써 베르그와 이별한지 몇 년이 지나간 듯 하다.

     

    짧은 인족의 수명을 생각한다면…빨리 그에게 돌아가야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베르그와 이별한 이후, 아르윈은 매일 같이 희생의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대장로들이 결국 수명을 나누는 법을 알아보겠다며 협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아르윈은 그렇게 동굴 바닥에서 숨을 돌리다, 마법을 되뇌었다.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원동력.

     

    바로 자신의 새가 보여주는 베르그의 모습이었다.

     

     

    새의 모습을 통해 베르그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건 도박이었다.

     

    때로는 굉장히 행복한 감정에 휩싸일 수 있었다.

     

    베르그는 그 파랑새에게만큼은 예전처럼 미소를 지어주며 친절히 대해주었기 때문에.

     

     

    그 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아르윈은 베르그에게 많은 애정표현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그에게 쓰다듬어지기도 했고…그에게 키스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최근에는 느끼지 못했던 심장이 터질듯한 행복과…그리고 그걸 잃은것에 대한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의식이었다.

     

     

    아르윈은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마음을 졸이며 마법을 건다.

     

     

    -슈우욱…

     

    그녀의 파랑새는 베르그의 집이 보이는 한 나무 위에 앉아있었다.

     

    -짹! 짹!

     

    세상은 지금 밤이었다.

     

    이 세계수의 뿌리 밑에 자리하고 있으면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베르그에게 다가가줘.’

     

    아르윈이 새에게 부탁했다.

     

    시야만 공유받는 것이었기에, 여전히 동굴 바닥의 차가운 감촉은 생생히 느껴지고 있었다.

     

     

    새는 짹짹대며 베르그의 집으로 날아갔다.

     

    이내 창을 통해 보이는 베르그의 모습.

     

     

    아르윈은 동굴 바닥에 힘없이 누워, 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심장이 왜 이렇게 아픈지는 알 수 없었다.

     

     

    “오늘도…보고 싶었어요…”

     

    아무도 듣지 못할 말을 아르윈이 속삭였다.

     

     

    공허한 손을 뻗어 그를 만지려고 했지만…그녀의 손은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베르그는 책상에 앉은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홀로 아픈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앉아있었다.

     

     

    고작 그 모습인데 왜 이렇게나 눈물이 나올까.

     

    아르윈은 고장난듯한 눈물샘을 이제는 고칠수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욕심을 부려본다.

     

    베르그를 위로하기 위해 다가가는 건 어떨까.

     

    파랑새의 귀여운 모습에 미소를 짓던 베르그였다.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짧은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집에 들어가 줄래…?’

     

    그러니 아르윈이 새에게 부탁했다.

     

    새는 가볍게 창문을 부리로 두드리려 했다.

     

    -저벅…저벅…

     

    그때, 성녀가 어디에선가 나타났다.

     

     

    아르윈은 베르그와 함께 사는 성녀의 모습에 잠시 숨이 멎었다.

     

    “……..어?”

     

    저 집은…자신과 베르그의 것이었다.

     

    베르그와 자신의 보금자리였다.

     

    그런데 왜 저 여성이 있는걸까.

     

     

    성녀와 베르그가 가까워져가는 걸 최근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새를 통해 베르그의 모습을 보는게 도박이었다는 것이다.

     

    저런 모습을 마주한다면, 이후 다가올 아픔은 그 무엇에 비할바가 되지 못했다.

     

     

    ‘…내 자리인데.’

     

    아르윈이 속으로 속삭였다.

     

    ‘…내 위치인데.’

     

    어느새 주먹이 말아쥐어가고 있었고, 이는 악물려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때로는 상상력이 가장 거대한 괴물이 된다.

     

    여기서 눈을 떼면 마찬가지로 괴로울 것이다.

     

    어쩌면 둘은 아무일 없이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걸 끝까지 바라며 아르윈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성녀는 베르그와 대화를 나누다 그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만지지마…”

     

    아르윈이 어느새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눈은 서로에게서 떼어지지 않았다.

     

    지친 베르그는 성녀에게 심적으로 기대고 있었다.

     

    그게 멀리서도 보이는 아르윈이었다.

     

     

    “…베르그…제발…”

     

     

    아르윈은 어느새 아무것도 닿지 않는 허공에 손을 뻗으며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녀의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아…..아….!”

     

     

    베르그의 상체도, 천천히 그런 성녀에게 다가갔다.

     

     

    “아으윽…..제….제발….!”

     

    둘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베르그는 성녀와 길고도 애정 넘치는 입맞춤을 이어갔다.

     

    서로의 뒷목을 끌어당기며, 사랑의 표현을 나눈다.

     

     

    “하지마!!!”

     

     

    아르윈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찢어질듯한 아픔에, 마법이 끊어진다.

     

     

    “하아….! 하아….!”

     

    아르윈은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듯, 마법이 끊기며 동굴바닥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곁에는 베르그도 없었다.

     

    그녀 혼자 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 뿐이다.

     

     

    “….아….아아…”

     

    이 시궁창같은 현실을 믿을수가 없었다.

     

    과거 베르그의 옆에서 따스함을 느끼다…지금 이런 상황까지.

     

     

    베르그와 입을 맞추는건 그녀의 미래였어야 했다.

     

    그 성녀의 자리에 자신이 있었어야만 했다.

     

     

    “으흑….흐윽…”

     

    그와 온기를 나누고, 그와 입술을 맞췄어야 했다.

     

    서로에게 밤이면 밤마다 사랑을 속삭였어야 했다.

     

     

    어떠한 기분일까, 그와 입술을 맞추는 건.

     

    얼마나 따뜻할까, 그의 곁에 머무는 건.

     

    “흐극….읍…흐흑…”

     

    하지만 그건 놓쳐버린 미래였다. 더는 잡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걸 알기에, 그녀는 눈물 밖에 흘리지 못했다.

     

     

    긴 시간 이후.

     

    아르윈은 천천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베르그가 만져주었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안짱다리로 한참이나 앉아있던 그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몸을 일으켰다.

     

    내일 있을 희생의 의식을 위한 준비를 맞춰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고통을 경험하며, 아르윈은 스스로에게 어떠한 변화가 생겨가고 있음을 느꼈다.

     

    160년간의 고문을 견뎌냈던 아르윈에게도 이건 너무나도 힘든 아픔이었다.

     

     

    그녀는 공허한 눈을 깜빡이며…걸음을 옮겼다.

     

    마음과 정신이 뒤틀려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코박스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그러면 안심이네요ㅎㅎ
    다음화 보기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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