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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조각. (1)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어 보이는 모용희아나.

       멈춰버린 주변의 환경보다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잉어가 말을 해…?”

       

       잉어가 말을 하고 있었다. 

       

       뻐끔거리는 입으로 선명하게 발음하는 모습은 심히 괴기스럽기 그지없다.

       

       [이 말코 놈아.]

       

       심지어 입도 험했다.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해야 할거 아니야, 어찌 나이를 그렇게 처먹어도 싸가지가 없는지 원.]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인가?”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더냐.]

       

       사람이야 많지, 움직이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정체가 뭐지?”

       [보면 모르겠나.]

       

       보는걸로 따지면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잉어였다.

       

       하얗고 비싼, 소림의 귀물이라 불리는 수백 년을 살아온 잉어.

       

       백아의어라고 했던가.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었는데.

       

       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니, 잉어는 뻐끔거리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놀란 표정이 참으로 개떡 같구나, 윤회를 거스르고도 태어난 얼굴이 그토록 사납다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상황도 상황인데 잉어 새끼한테 인신공격이나 당하고 있다니.

       

       내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말을 뱉으니, 잉어의 수염이 살랑거린다.

       

       표정도 살짝 변한 것 같다.

       마치, 비웃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신철아, 이 말코 놈아. 이 상황에도 장난을 치고 싶더냐.]

       ‘신철.’

       

       잉어의 부름에 정체가 누군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신철이라 하면 내 몸에서 집세도 안 내고 퍼질러 자고있는 노인네의 도명이었으니.

       

       ‘문제는 저 잉어가 왜 나를 신 노야로 보냐는 건데.’

       

       마치 시간을 멈춰둔 것 같은 지금의 모습도, 저 잉어의 힘인 건가?

       

       ‘귀물이라더니….’

       

       애당초 물건도 아닐뿐더러. 이게 무슨 귀물인가, 마물이지.

       

       나는 곧바로 잉어에게 말했다.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나는 신철이 아니다.”

       [똥쟁이 말코놈아. 시간이 촉박한 건 네놈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이렇게 구는 것이냐.]

       “말을 들을 생각이 없나본데…?”

       

       어이없다는 듯 말을 내뱉은 순간, 잉어의 수염이 길게 뻗어 나오더니 내 뺨을 쓰다듬었다.

       

       미끌거리는 감촉이 순간 거슬려 붙잡으려 했으나 수염은 내 손길을 피해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자마자 수염을 꾸물거리더니, 웃음을 머금고서 내게 말했다.

       

       [육신 하나는 기깔 나게 만들어 놨구나. 벽은 넘은 것은 물론이오, 초월에 이르도록 미리 바닥을 깔기 시작했어.]

       “…”

       

       잉어의 말에 등 뒤로 식은땀이 살짝 흘렀다. 

       

       그 말대로였으니까.

       

       나는 절정에서 화경에 이르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공의 경지가 절정에 이르며 벽을 넘었고, 내기가 육체와 점점 동화되어가며 초월에 이르기 위한 초석을 깔고 있다.

       

       물론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는 게 무인의 무덤이라 불렸을 던 만큼.

       

       절정에서 화경이라는 경지로 이르는 건 더 어려웠다.

       지금의 나로서도 적어도 수 년은 잡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걸 단번에 알아차린 건가.’

       [핏덩이의 육신으로 거기까지 올릴 수 있음이 네놈이라는 첫 번째 증거이고, 두 번째는 그보다 더 했지.]

       

       첨벙.

       

       잉어가 몸부림치며 튀어 오른 물방울이 내 뺨에 튀었다.

       

       [그토록 짙은 매화향을 품고도 내게 장난을 치려는 것이냐. 이 망할 말코야.]

       

       아.

       

       ‘몸에 있는 도기 때문인가.’

       

       화산의 귀물에서 신 노야와 함께 딸려 들어온 도기.

       얼마나 짙은지, 구염화륜공의 화공에 영향을 끼쳐 색을 바꿔놓기까지 했다.

       

       신 노야가 말하길, 내가 가지고 있는 도기는 매화검수인 영풍이 가진 도기보다 더 짙다고 했다.

       문제는 그걸 느꼈다고 해서, 나를 신 노야로 착각할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 다는 것.

       

       무엇보다 노야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자꾸나. 우리의 희망대로 이뤄진 것 같아 기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 분이 아니라고….”

       

       내가 다시 한 번 부정하니 잉어가 코웃음을 쳤다.

       저 맹탕해보이는 얼굴로 저렇게 확연한 표정이라니.

       

       [오냐,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내 이렇게 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뭔가를 하려는 건가?

       혹 공격이라도 올까봐, 기감을 살짝 끌어올렸다.

       

       잉어를 상대로 경계를 해야 하나 싶지만, 상대는 수백 년을 살아온 마물 같은 놈이니, 혹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한껏 끌어올린 경계와 다르게,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공격은커녕 잉어는 다짐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을 꺼내 들었다.

       

       [우리 젊을적에 일인데, 분명 기억하겠지? 네놈이 모용가의 아이를 쫓아 다니다가….]

       

       잉어의 말에 순간 단전 쪽에서 울컥거리는 느낌이 느껴졌다. 

       

       이는 통증으로 변질되어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구겨야 했다.

       

       잔뜩 조여오는 것 같은 느낌은 마치 난동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이거 설마….’

       

       기운을 죄다 처먹는 그 괴물 같은 놈이 또 날뛰려는 건가.

       

       [삼일 밤낮으로 고백해놓고 결국 명이 놈 손에….]

       

       잉어가 뭐라 말을 뱉으려 하자.

       

       [이 썩을 땡중 놈이…! 안 닥쳐!?]

       

       머릿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잉?]

       [어라.]

       

       고즈넉한 침묵이 순간 맴돌았다. 

       침묵이 지속 되던 와중에 상당히 성격 나빠보이는 목소리를 지닌 노인.

       

       […이게 되네?]

       

       신 노야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

       

       

       

       

       황아불영 철영이라 하면, 소림 역사상 가장 무위가 뛰어나다 일컫는 인물이다.

       

       가장 높은 경지에 닿았을 불자이자.

       

       혈마의 혈겁을 막아낸 다섯 고수 중에 한 명.

       

       철영은 지금의 찬란한 소림을 만드는데 가장 많은 길을 깔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뻐끔뻐끔.

       

       ‘저 잉어라고?’

       

       어벙한 표정으로 뻐끔거리고 있는 흰 잉어를 바라봤다.

       

       헤엄치는 동작이나 새하얀 비늘은 고귀하며 우아해 보이지만.

       

       잉어 특유의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 흠인 느낌이었다.

       

       거짓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름 아닌 신 노야가 그렇다고 했으니, 그런 것이겠지.

       

       노야는 한참동안 잉어를 바라보다 말했다.

       

       [철영, 지금 그 꼴은 대체 무엇이더냐.]

       

       지금까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잠만 자던 양반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당황스러운데.

       

       뭐 하느라 지금 나왔냐고 물을 새도 없다.

       신 노야는 저 잉어…. 정확히는 황아불영과 대화하기 바빴으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신철.]

       

       아까 그 가벼워 보이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뭔지 모를 무게감이 감돌았다.

       

       […너야말로 왜 그런 모습인 게지?]

       [네놈과 같은 이유겠지.]

       

       저 잉어는 소림의 귀물이라 불리던 것이다.

       

       신 노야가 화산의 귀물에 잠들어 있었듯, 철영 또한 귀물에 깃들어 잠들어 있었다는 걸까.

       

       ‘나름의 신빙성은 있어.’

       

       신 노야가 그러했으니, 철영 또한 그럴 수 있던 부분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왜 과거의 고수가 귀물에 영혼이 묶여있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전에 신 노야는 그 이유를 모른다 했었지만.

       철영이라면 알지 몰랐다.

       

       ‘노야는 이런 걸 기대했던 걸까.’

       

       혹시 모를 일이다.

       

       하남에 가게 되면, 소림을 꼭 찾아갔으면 한다고 했던 신 노야의 말이 떠올랐다.

       

       노야는 혹시, 이런 상황을 바랐던 걸까.

       

       아니나 다를까. 

       신 노야는 철영에게 물었다.

       

       [철영, 자네는 내가,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현대에 남아있는 이유를 알고 있는가?]

       

       이 시대에 노야가 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남게 된 원인.

       

       […자네. 그걸 왜 묻는 거지?]

       [모르니까 묻는 거 아니겠는가.]

       […]

       [철영.]

       

       아까까지만 해도 말을 계속 뱉어내던 황아불영이 잠시 침묵을 택했다.

       

       고요하다.

       

       시간이 멈춘 세상이란 소리가 없으니 이토록 고요한 것이다.

       

       신 노야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계속해서 철영을 재촉했다.

       

       [철영, 왜 대답을….]

       [저 아이는, 자네가 아닌 겐가.]

       [뭐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남아는, 자네가 아니냔 말일세.]

       

       이상한 물음이었다.

       

       내가 신 노야가 아니냐니?

       신 노야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지 곧바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내가 이 아이가 아니냐니.]

       

       노야의 물음에 철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뻐끔거리는 입으로 내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철영.]

       

       노야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계속 이름을 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탄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군. 역시 되지 않았던 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설명은 제대로 해줘야 알아먹지 않겠나.]

       [신철.]

       [말하게.]

       

       살랑거리던 얇은 수염이 호수 아래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마치 지금 철영의 분위기처럼.

       

       [기억이 없다 하였나.]

       [그래,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 자네가 말해줘야겠네.]

       

       신 노야는 혈마가 죽은 다음부터.

       자신이 어찌 되었는지.

       

       어째서 이곳에 혼령으로 남아 이승을 떠돌아 다녀야 하는지.

       

       신 노야는 기억하지 못했다. 

       적혀진 역사와 달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노야는 이 의문을 부디 철영이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었지만.

       

       [자네는 그 이유를 알고 있나?]

       

       노야의 물음에 철영은 입을 뻐끔거리며 답한다.

       

       [알고있지. 잘 알고있네.]

       [그렇다면.]

       [하지만 말해줄 수는 없어.]

       

       철영의 말에 신 노야가 순간 발끈했다.

       

       [지금 장난치는 건가?]

       [나도 부디 그러길 바라지만, 자네가 그런 모습인 이상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그게 대체 무슨 말….]

       [지난 수백 년. 짧지 않은 기다림 끝에 자네를 만났으나, 얻게 된 이야기는 결국 윤회는 끊을 수 없음 뿐이로다.]

       

       착각일까.

       

       잉어의 아름다운 비늘이, 조금 색을 잃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도중에도, 나는 그저 입을 닫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끼어들 틈이 없을뿐더러, 노야의 감정이 너무나 잘 느껴지고 있는 탓이다.

       

       이건 함부로 말을 꺼내 들 수가 없었다.

       

       [계속 이상한 소리만 내뱉을 건가?]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나.]

       

       철영의 물음에 신 노야는 잠시 생각하고서 답을 내놓는다.

       

       [척마산. 혈마와의 마지막 싸움. 그 순간을 기억하네.]

       

       신 노야의 말에 철영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정녕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로다.]

       

       알 수 없는 대답이 계속 되자, 결국 신 노야는 못 참고 소리를 내질렀다.

       

       [이 망할 땡중놈이…! 대답을 할 거면 똑바로 하란 말이야!]

       

       노야의 외침에도 철영의 반응은 똑같았다. 무감하고 무념하다.

       

       신 노야가 령의 형태로 나타난 순간부터 철영의 반응은 무너져내린 채였다.

       

       그 반응을 견디다 못한 신 노야는, 이를 악물고서 다른 말을 꺼내 들었다.

       

       […하나만, 딱 하나만 똑바로 대답해주게.]

       

       철영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신 노야는 말을 이었다.

       

       [혈마는 죽었나.]

       

       순간, 노야의 물음에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착각이 이른다.

       

       주변이 모두 멈춰있어 그럴 일이 없을 터인데, 어째선지 그런 느낌이 스쳐 지나간다.

       

       수염을 꿈틀거리던 철영이 이번에는 답을 내놓았다.

       

       [다행히, 이건 답할 수 있겠구나. 하나, 자네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 보이네만. 내 말이 틀린가.]

       […]

       

       철영의 말에 순간 단전 쪽에서 일렁거림이 느껴졌다.

       이는 노야가 동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철영이 덧붙이는 말에.

       

       [죽지 않았네.]

       

       단전속에서 잠을 자던 도기가 심하게 요동쳤다.

       

       “노야…!”

       

       날뛰려는 도기를 애써 잡아 진정시키려 해보지만.

       

       신 노야는 이를 듣지 못하는지, 감정을 끊임없이 표출하고 있었다.

       

       와중에 나 또한 철영의 말에 충격을 받아야 했다.

       어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혈마가 죽지 않았다고?’

       

       수세기 전, 중원을 피로 물들이려던 혈마.

       

       분명 혈마대전을 끝으로, 다섯 고수가 혈마를 죽였다고 하였는데.

       

       ‘그런 인물이 죽지 않았다니….?’

       

       철영의 말은, 혈마가 마치 지금까지도 살아있다는 듯한 말이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반응을 보니, 자네는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야.]

       […어찌 되었는지 제대로 설명하게.]

       [원하는 대답을 들었지 않은가, 혈마는 여전히 이 땅에 살아있네.]

       [그럴 리 없어, 역사는 분명….]

       [자네는 아직도 역사를 믿는가. 그토록 당해왔음에도?]

       

       철영의 날카로운 말에 신 노야가 침음을 삼켰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혈마는 분명 그 싸움에서 숨을 거뒀으니.]

       [그렇다면…!]

       [하나, 놈은 죽지 않았네.]

       

       등 뒤로 느껴지는 바람이 조금 더 강해진 느낌이다.

       

       겨울의 찬 기운과 맞지 않는, 뜨겁고 진득한.

       열기가 담긴 바람이었다.

       

       [놈은 죽어서도 이 땅에 자신을 묶어놓았으니.]

       [알아듣기 쉽게….]

       

       하얀 비늘을 가진 잉어는 천천히 헤엄쳐 이쪽으로 다가왔다.

       

       마치 노야와 눈을 마주하겠다는 듯이.

       이윽고 뻐끔거리는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혈마는 부활을 꿈꾸고 있네, 화산선검.]

       

       철영의 말에 지진이라도 난 듯, 단전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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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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