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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저 아이를 가지고 싶다.

       

        제자로, 가족으로, 다른 무언가라도 좋으니 집안에 들이고 싶다. 그것이 레너윌이 에테르를 만나 대화를 뒤 품은 감정이었다.

       

        “뭘 그리 고민하고 계십니까?”

        “가주님답지 않으십니다. 돈 주고 데려오시지요.”

       

        레너윌을 보좌하던 집사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레너윌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쉽지만은 않네. 딸이 사고를 쳐 놓았거든.”

       

        레너윌이 알아본 바로는, 그의 딸인 클라이스가 에테르를 노예시장에서 구매한 뒤 줄기차게 부려먹었다고 한다.

       

        노예를 부려먹는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적어도 제국에서는 그런 행위가 합법이었다.

       

        레너윌은 정통파 귀족이었으므로 노예제를 합당하게 보았다. 엘프국 사람들이 보면 경악성을 내지를 만한 사고방식이었지만, 제국에선 레너윌 같은 사람이 도처에 만연했다.

       

        하지만.

       

        제 딸은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제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렇지…. 어떻게 2황자에게 팔아버릴 생각을 했더냐, 클라이스….’ 

       

        논검을 펼치면서 에테르에겐 처음부터 플레어를 만들 능력이 있었음을 확신한 레너윌이었다.

       

        제 딸은 그런 그녀를 3년이나 보아 왔으니 에테르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진작 알고 있었을 터.

       

        제아무리 노예 신분이더라도 능력만 좋다면 잘 대우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 그런 취지에서 제국도 틸레트 아카데미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틸레트는 계층이동의 사다리였다.

       

        레너윌은 실리를 따지는 사람이었다. 그가 에테르를 거두었더라면 틸레트에 입학시킨 뒤 잘 구슬려서 수양딸로 들였을 것이다.

       

        “딸의 대응이 미흡했군.”

       

        레너윌은 나지막이 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지금 황궁의 정원을 거닐며 산책하는 중이었다.

       

        귀족 회의는 끝났지만, 영지로 떠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았다. 레너윌은 그동안 에테르를 예의주시하며 어떻게 해야 환심을 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공작인 그에게는 수십 년 간 쌓아온 정치 경험이 있었다. 포섭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진작 몸에 배어있었다.

       

        그래, 이럴 땐…….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한다.’

       

        가장 단순하고도 명쾌한 전략.

       

        그 뒤로 레너윌은 하인을 부려 에테르를 지켜봤다.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숙사까지 들어가진 않았지만, 학교에서 학업을 하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를 취합하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하인으로부터 보고받았다.

       

        “가주님, 마력수가 필요하답니다.”

        “구해오게. 당장.”

        “하지만 일정이 빠듯할 텐데…….”

        “제이크.”

       

        레너윌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보필하는 집사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하스펠트 공작이네.”

       

        마력수가 제아무리 비싸고 공신력 있는 자만 구매할 수 있는 희소품이면 뭐 어찌할 건가?

       

        레너윌은 하스펠트 가문의 수장인 것을.

       

        그의 가문은 북부 전선에서 제국의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수많은 마수를 도륙내고, 그들에게서 얻은 마석으로 제국 경제의 상당량을 먹여 살렸다.

       

        자본도, 명성도, 정령족에 대한 신뢰도.

       

        모든 것이 충분했다.

       

        “이그네스에게 핫라인을 연결하게. 공간이동진을 통해 백 병 정도 선불해 달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마력수 백 병이면 작은 영지 하나 정도는 사고도 남는 양이다. 이조차도 정령들이 선심을 베풀어 가격을 깎아준 것이었고.

       

        그러나 하스펠트에게는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자본이 있었다. 플레어가 개발된 덕분이었다.

       

        플레어가 개발된 이후로 하스펠트 영지는 풍족해졌다. 재앙급 마수가 무더기로 죽어나갔고, 1차 저지선은 쉽게 뚫어버릴 정도로 군의 사기가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전리품을 챙겼다.

       

        어찌 보면 에테르가 영지를 부유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소녀에겐 백 번 넘게 감사해 줘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더 풍족해지려면…….

       

        ‘어떻게든 영입해야 한다.’

       

        이것이 레너윌이 에테르에게 마력수를 선물해 준 과정이었다. 그 뒤로 철과 폴리스틸렌을 즉각적으로 준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생색내지는 않았다.

       

        저쪽에서 먼저 미끼를 물 때까지 기다릴 뿐.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가주님, 예의 금안족 소녀가 가주님을 만나뵈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제이크가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나타나 말했다.

       

       

        **

       

       

        약속 장소는 아카데미에 위치한 단출한 식당.

       

        일부러 황궁이나 다른 곳을 잡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엘프 유학생이 잔뜩 있는 곳에서 대화를 나눠야 로즈마리가 스코프를 켜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내식당인 만큼 일리야드에서 온 엘프들도 많았다. 로즈마리에게 도청당할 위험은 없다.

       

        좋아.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겠군.

       

        “찻잎이 좋구나.”

       

        코앞에 있는 금발적안의 아저씨는 레너윌 하스펠트. 옛날에 내 주인 역할을 하던 클라이스 하스펠트의 아버지다.

       

        이번으로 두 번째 만남이다. 아직 나와 하스펠트 공작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탁.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일단 한 가지 묻지. 왜 내 하인들을 스태프로 찍었나?”

        “후려쳤습니다.”

       

        레너윌은 끄응, 하며 신음을 흘렸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제 사생활을 도청하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다소 저돌적인 발언이었지만, 레너윌도 알고 있겠지. 남을 멋대로 도청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첫날부터 교환학생으로 온 엘프들과 대련을 벌였다고 들였는데…….”

       

        레너윌은 말끝을 흐렸다.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그랬나?”

        “힘 조절을 잘못했습니다.”

        “혹시 매일 푸쉬업을 하나?”

        “아뇨.”

       

        레너윌과 나는 당분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높으신 분들이 자주 쓰는 기법, ‘시간 끌기’였다.

       

        정부 부처의 고위인사와 식사 자리를 가질 때 이랬던 경험이 종종 있었다. 다 친목을 다지기 위한 일이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슬슬 본론을 말할 때가 되었군.”

       

        올 것이 왔다.

       

        “학생. 우리 집안에서 연구할 생각 없나?”

        “없습니다.”

        “질문을 바꾸지. 자네가 친구들과 하고 있는 연구는 어떤 연구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갑자기 신입사원 면접이 되어버린 느낌인데.

       

        일단 튕기듯이 답했다.

       

        “개인적으로 하는 공부에 불과합니다.”

       

        높으신 분 상대로도 대화의 주도권을 뺴앗겨선 안 된다. 최대한 상대방을 급박하게 만들어야 의중을 이해하고 대처하기 쉬워진다.

       

        “듣자 하니 무슨 폭탄 같은 거라고….”

        “모형일 뿐입니다.”

        “모형?”

        “네. 예술제에 출품할 모형이지요.”

       

        레너윌은 탁한 비음을 흘렸다.

       

        ‘이 새끼 대체 뭐 하는 새끼지?’

       

        아마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지 않을까.

       

        [맞아요! 예술제에 원자폭탄을 전시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대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양장본이 툴툴거리며 태클을 걸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그때였다.

       

        탁.

       

        음식이 나왔다.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코스요리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단출한 식당은 아니었구나. 부유층 자녀들이 주로 이용하는 간이 레스토랑이었다.

       

        이 코스요리 비용은 공작이 전부 지불하기로 했다. 과연. 생색내지 않는 모습을 보니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줄 수 있다 이건가.

       

        클라이스에 비하면 파격적인 행보다. 사람 다룰 줄 아시는데.

       

        어떻게 이런 아버지 밑에서 그런 딸이 나왔는지 원.

       

        “이쪽에서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포크를 들며 물었다. 레너윌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귀한 마력수는 대체 왜 백 병씩이나 주신 겁니까? 틀림없이 비쌀 텐데요.”

         

        어떻게 봐도 환심을 사려는 의도로밖에 안 보였다. 이건 나도, 레너윌도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변명하느냐겠지.

       

        “내 밑에서 연구하면 그 정도 지원은 해줄 수 있다는 뜻이네.”

       

        오호라, 정면 돌파를 선택하시는구나.

       

        그래. 진솔한 게 차라리 낫지. 내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벌써 파악이 끝나신 모양이다.

       

        그나저나 지원이라. 그렇다면 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가문의 구성원이 된다면 시급을 주겠네.”

        “시급이라뇨?”

       

        공작은 손을 활짝 펼치며 씨익 웃었다.

       

        “시간당 금화 50장.”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맥락인데.

       

        그래, 클라이스가 클리온이랑 쌍으로 지랄하던 시절에 날 가지고 경매를 해댔었지.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은 맞나 보다.

       

        일급도 아니고 시급이라.

       

        하루 10시간만 일해도 금화 500장이다. 인기 축구선수나 영화배우 급으로 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로 돈이 남아도시나?

       

        어쨌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착복 같은 건 결단코 안 하네. 르퀴네스 여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여신의 이름까지 걸 정도면 진심이라는 소리다.

       

        그나저나 하스펠트 집안에 들어오라니. 마치 식구가 되라는 듯한 뉘앙스로 말씀하시는데…….

       

        “혹여 당신을 아버지처럼 대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거기까지 되면 내 시급을 두 배로 늘려주지.”

        “양녀로 들이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나는 포크로 샐러드를 탁탁 두들겼다.

       

        시간당 금화 백 장이라. 이러면 마왕성에 죽치고 있을 이유도 없는데.

       

        얼마 전 세워놓은 ‘계획’이 하나 있었다. 그 계획을 달성하려면 마왕성에 들어가긴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면 마음이 조금 흔들린다.

       

        “아카데미 졸업하고 들어가도 된다는 뜻입니까?”

        “문은 언제든지 열려있네.”

        “그러면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해도 괜찮겠습니까?”

       

        사실상 수락 선언이라고 생각했는지, 하스펠트 공작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빠르게 주억거렸다.

       

        내가 말했다.

       

        “저 보증 좀 서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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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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