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5

        

       하북팽가는 점심때쯤 장원시에 도착해 장원도문에 짐을 풀었다.

       장원도문은 장원시 서열 오 위에 불과했지만, 도객은 당연히 도문에 들어야 한다는 팽가주 팽헌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덕분에 노가 난 장원도문주만 신이 나서 큰 손님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이로써 무림대회의 용봉지회 회합에 아끼는 장제자가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소개는 한 번이니 이후 개인적인 교분을 쌓는 것은 전적으로 장제자의 몫이었지만,

         

       대충 짐을 풀고 난, 정확히는 손가락으로만 지시를 마친 팽초려가 저자의 왈패들처럼 낄낄거리며 제 동생을 놀렸다.

         

       “인상 좀 풀어라. 그러다 미간에 주름 잡혀. 내 동생 미모 상하면 어떡해. 비단 네 문제가 아니라 천하 무림의 손실이란 말이다.”

         

       “다음에는 아버지께 맞선 상대 세 명 구해서 누님과 같은 마차에 태워야 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명 사나이는 쟁취해야 하니 네 말이 정녕 옳다, 하시며 반기시겠지요.”

         

       “그래도 두 명이여야 공평하지 않을까. 여인도 한 명 넣어줘야-”

         

       “사내와 눈만 마주치면 누님에게 살기를 뿌리는 여인으로 말이지요.”

         

       “음. 미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팽초려가 몸서리를 치며 순순히 사과했다.

         

       그 후에는 으레 손님이 해야 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덕담 나누기, 점심 식사 함께하기.

       먹고 나선 차 마시며 다시 덕담 나누기.

         

       한편, 팽가주 팽헌의 별호는 도군자라 하며, 이는 같은 정파 도문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데에 매우 너그럽기 때문이었다.

       팽헌이 장원도문 실력 좀 보자고 나서니 거의 천자를 본 충신처럼 황송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릴 기세였다.

         

       사실, 팽헌도 나름 경쟁상대로 여기는 남궁세가의 가주 검왕 남궁대로처럼 도왕으로 하고 싶었더란다.

       하지만 북경을 지척에 두고 감히 별호에 왕을 쓸 수는 없어서 포기했다고.

         

       평소라면 팽대산 역시 아버지 따라 연무장에 가서 수련을 함께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피로가 큰 탓에, 특히나 정신적인 피로감이 너무나 커서 그냥 방에 들어가 조용히 운기하며 명상에 빠졌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하인이 팽대산을 찾아 전하기를, 밖에 손님이 손님을 찾으시는데 어찌하느냐는 것이었다.

         

       “지금 피로하니 거절해 드리게.”

         

       “그것이…….”

         

       하인이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감히 제가 막을 수 없는 분이라서, 이미 와 계십니다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핫, 그래. 그이도 어쩔 수 없었으니 너무 탓하지는 말고. 그래, 왜 이 좋은 봄날에 이런 골방에 처박혀 있단 말이야?”

         

       “조 형.”

         

       바로 흑룡조가의 후계자, 조학체였다.

         

       “자, 답답하게 이러지 말고, 우리 나가세.”

         

       “아침까지만 해도 이를 그렇게 갈아대더니. 그러고도 아직 이가 남았습니까?”

         

       “하핫! 미안하네, 미안해. 하지만, 지난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내가 그러던 것이 하루이틀인가?”

         

       “조 형은 제발 신경을 쓰십시오. 도대체 여인만 봤다 하면 정신을 차리질 못하니.”

         

       “거기 쓸 신경이 남지 않는데 어찌하나. 온 신경이 그저 꽃에게 쏠리는 것이 사내의 슬픈 운명이 아니겠나.”

         

       팽대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바로 조학체라는 인간이었다.

       용봉지회의 사내들 모두 조학체를 평가하기를 일행에 여인이 없는 상태라면 닮고 싶은 참된 사내라고 평가했다.

       혹은 ‘그 여인에 미친 새끼’라고도 불렀다.

         

       그 뒷담을 어찌 전해 들은 조학체가, ‘그래, 나 사나이 조학체 여인에게 목숨 바친 미친놈이다.’ 하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넘겼으니 아량이 넓기는 하다.

       하지만 열흘 내내 팽대산을 향해 살기를 쏘며 이를 갈아댄 장본인이었다.

         

       “자, 가세나.”

         

       “짐을 풀자마자 기루라니, 도대체 세상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어찌 생각하긴, 벌이 꽃 찾아가는구나 하고 말겠지. 그런데, 이번엔 아니야.”

         

       “기루에 가잔 말이 아니란 말이십니까?”

         

       팽대산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차라리 술꾼이 술을 끊지, 이 인간이 기루를 안 갈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실은 말이야. 내가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지 무언가.”

         

       “정작 재미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만.”

         

       “아냐, 들어봐. 팽 아우도 이번엔 재미있을 거야. 이 도시에 유일한 여자 거지가 있는데 말이야.”

         

       “벌써 재미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팽대산이 딱 잘랐다.

         

       “아니아니, 들어보라니까?”

         

       “듣고 싶지 않습니다만.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창빈 형님 오시면 그때 풀어놓으면 될 것이 아닙니까.”

         

       “창빈 형은 정작 여인이 끼면 석상이 되어버리지 않나. 입으로는 천하제일 화화공자가 따로 없는데.”

         

       “두 분 합쳐다가 반반 나누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만.”

         

       “하핫! 그럼, 일방적으로 내 손해가 아닌가!”

         

       팽대산의 눈썹 사이에 세 줄기 고랑이 팼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조 형.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고급 창기까지야 저도 이해하겠습니다만, 여자 거지라니. 분명 조 형이 말하는 쪽은 몸 파는 치들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아우 말이 맞아. 여자 거지까지 이야기했지. 들어보라니깐.”

         

       팽대산이 이마를 꾹꾹 눌렀다.

       사람이 말을 하면 왜 듣지를 않지?

       혹시, 실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얼굴 가린 여자 거지가 하나 있는데.”

         

       “맙소사. 얼굴까지 가렸답니까.”

         

       “그런데 몸의 태가 끝내준다는군. 그야말로 호리병, 살아있는 호리병이 따로 없다고. 벌써 재미있지 않나? 얼굴은 추녀인데 몸은 미인의 것이라니.”

         

       “전혀 재미없습니다.”

         

       팽대산이 또다시 딱 잘랐다.

       물론,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래, 재미있지? 그런데 그 여자 거지가 밤기술이 그렇게 뛰어나다는군. 극락에 다녀왔다 하는거야.”

         

       “그걸 믿으십니까? 매번 창빈 형님이 하시는 말씀이랑 크게 다르지 않잖습니까.”

         

       “아니아니, 놀라지 말게. 여자 거지가 화대를 즐거웠던 만큼 내라고 하는데, 가장 적은 돈이 은자로 한 냥이고, 열 냥 스무 냥씩 낸 사내가 수두룩하니 심지어 금자 네 개를 낸 이도 있다더군.”

         

       그에 팽대산이 눈썹을 까닥거렸다.

         

       “……확실히, 그건 좀 놀랍군요. 사내가 원래 볼일 보고 나면 마음이 바뀌는 놈들인데. 그걸 순순히 내어줬단 말입니까?”

         

       심지어 기루에서도 화대 떼먹으려다 몽둥이 찜질을 당하는 놈이 한둘이 아닌데, 고작 여자 거지 한 명에게 그만한 돈을 순순히 낸다고?

         

       “그러니까 극락에 다녀왔다고 할 정도로 좋았던 거지. 추울 때 뒹굴다가 따뜻하니 영업을 개시한 모양인데, 겨우 보름 만에 도시 사내 절반이 극락을 맛보았다더군.”

         

       팽대산의 표정이 확 썩었다.

         

       “그게 말이 되는……”

         

       “그래서 더 놀라운 거야. 거사 치르는 데에 반의 반 각도 채 안 걸린다고 하니, 하루에 일백 명씩 손님을 받는다더군. 반 각이라니. 그렇게 짧은 찰나에 그렇게도 만족하여 금은을 바칠 수가 있나?”

         

       팽대산의 표정이 더욱 썩어들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썩은 표정이 더 썩을 수도 있다는데 놀라고 말 표정이었다.

         

       “조 형은 비위도 좋으시군요. 더럽지 않으십니까? 시궁창에 구르는 창녀 아닙니까? 아니, 차라리 시궁창이 그보단 깨끗할 겁니다.”

         

       “걱정하지 말게. 이태까지 병에 걸린 이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하더군.”

         

       “병의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병이 아니면 저어할 것이 무언가. 부인으로 들일 여인도 아닌데. 여튼, 가세나.”

         

       “안 갑니다.”

         

       “자네도 즐기라고는 안 할 테니 그냥 같이만 가 주게나. 어차피 반의 반 각이면 잠깐 서서 기다리면 될 일이 아닌가? 내 부탁하지. 응?”

         

       팽대산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차피 거절한다고 듣는 인간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 거지만 보고 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기루로 가자 하지 마십시오.”

         

       “하핫, 그야 그 여자 거지에게 달린 일이지. 소문대로 극락에 다녀와 만족하고 나면 기루가 더 땡기겠나.”

         

       “죽어도 안 하겠단 말은 안 하시는군요.”

         

       “거짓을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야. 하핫!”

         

         

         

       결국 억지로 끌려나온 팽대산의 표정이 그저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꺅꺅 어쩜 멋있어 어찌 찡그린 표정도 저리 멋있으실까 우르르 몰려든 여인들의 장벽은 그저 얼굴 붉히며 옥기린의 옥면을 몽롱하게 쳐다보기 바빴다.

         

       “조 형. 이래도 정녕 그 여자 거지를 안아야겠습니까? 온 도시의 여인들이, 도시를 넘어 저 지긋지긋한 미행인들이 조 형을 거지와 붙어먹은 놈으로 온 중원에 알리고 다닐 겁니다.”

         

       “음. 사나이 낙장불입이지. 그리고 어차피 나야 여자에 미친 새끼 아닌가. 극락을 경험할 수 있다면야.”

         

       “진짜 미쳤군요.”

         

       팽대산이 고개를 저었다.

       그야말로 광증이 따로 없었다.

       저걸 광증이라 하지 않으면 달리 어떤 것을 광증이라 하겠는가.

         

       그리하여 사내 둘과 여인 수백이 우르르 몰려 대로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 거지의 거처에 도착했다.

       거적떼기 깔아놓은 것을 거처라고 할 수 있다면야.

         

       볕 드는 구석에 둘이 닿으니 수백의 여인들이 반원으로 포위하여 감쌌다.

       천라지망을 이리 펼치면 도망칠 자가 아무도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자리에는 거적때기 두 장뿐, 자리는 텅 빈 상태였다.

         

       “없는 모양입니다만.”

         

       “음. 기다려야 하나? 손님이라도 받는 것이 아닌가? 아, 오.”

         

       거지 자리 조금 옆으로 난 좁은 골목에서 사내 한 명이 머리를 문지르며 시뻘건 눈을 하고 걸어나왔다.

       불쌍한 사내는 나오자마자 펼쳐진 여인들의 성벽에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그에 조학체가 사내를 붙들었다.

         

       “이보게, 친구. 저쪽에 그 여자 거지가 정붕을 차린 모양이지?”

         

       “아, 예, 옙! 그, 그렇습니다!”

         

       “그래? 아니, 세상에. 자네 울었나?”

         

       조학체가 사내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보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얼마나 감동하였길래 사내대장부가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그래, 자네는 화대를 얼마 주고 나왔나?”

         

       “그것이, 금자 한 개에 은자 일곱, 동전으로 서른두 문을……”

         

       “세상에! 미묘한 단위를 보니 가진 돈을 전부 내놓은 모양이구먼! 맞나?”

         

       “예, 예, 그렇습죠…….”

         

       “좋아. 정말로 극락에 다녀온 것 같던가?”

         

       사내는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머리는 머리대로 처맞고, 돈은 아주 가진 돈 다 바쳤는데, 그러고 나니 온 도시의 여인네들 앞에서 거지랑 붙어먹은 사내가 된 것이다.

       그러고 나니 또 나만 당할 수 없었다.

         

       “예. 아주 돌아가신 조부님을 잠시 뵙고 왔지 뭡니까. 확실히 극락에 다녀왔지요. 그럼, 소인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차마 여인의 성벽을 뚫지 못하고 벽을 따라 딱 붙어 빠져나갔다.

         

       “거 보게. 확실하구먼.”

         

       “됐으니 들어가서 일이나 보시지요.”

         

       “예끼, 이 사람아. 일 치르고 났으니 여인도 처리할 것이 있지 않나. 대뜸 들어가면 도대체 그게 사내가 할 짓인가.”

         

       “지금도 사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계십니다만.”

         

       “오, 저기 나오는군. 과연, 풍만하니 아주 태부터가 달라. 자네 보기는 어떤가?”

         

       “……”

         

       “이봐, 팽 아우? 옥기린?”

         

       “……”

         

       대답이 없으니 조학체가 돌아보고는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 친구 아주 얼이 나갔군. 왜, 눈으로 보니 또 마음이 동하나?”

         

       그때 팽대산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러고는 여자 거지의 손목을 콱 붙들고 좁은 골목길 너머로 박력 있게 데려가는 것이었다.

         

       “어, 어디 가나? 팽 아우! 순서는 지켜야지!”

         

       졸지에 새치기당한 조학체가 곤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말도 안 돼!”

       “옥기린님! 안 돼요! 돌아오세요!”

       “꺄아악! 어떻게 이런 현실이……”

       “얘, 정신 차려! 눈 좀 떠봐!”

         

       온갖 비명, 비통하기가 간장을 찢는 듯한 아우성과 통곡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일부는 혼절하고 실신하여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으니, 격분한 일부는 곧장 골목길로 돌진하려 하였으나.

         

       “허어. 소저들. 사내의 운우지락을 감히 방해해서는 안 되는 법이오. 내 꽃과 같은 그대들에게 감히 칼을 겨누려니 마음이 불타는 것과 같이 아프지만, 가장 아끼는 동생의 첫 경험을 망치게 둘 수는 없지.”

         

       좁은 골목길 막아선 조학체가 검기를 좍좍 뽑으니 어쩔 수 있겠는가.

         

       다만, 운우지락, 첫 경험이라는 말에 다시 혼절하는 여인이 속출하니 아닌 대낮에 끔찍한 절규만 하늘을 찢을 듯이 메아리칠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이 아니라 한 편 썼는데 구천자가 나왔길래 두개로 나눠서 올렸을 뿐입니다..
    다음화 보기


           


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