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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성실하다는 말은 중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서 그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진다.

        

       ‘성실하다’라는 의미 자체는 특별히 비꼬는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닌 이상은 보통 긍정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같은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공부에 성실하다는 설명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떠올리면서 ‘범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운동에 성실하다고 한다면 건강하고 활달한 성격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규칙을 지키는 데 성실하다고 한다면 다소 딱딱한 인상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사교활동에 성실한 사람도 있다. 이건 마냥 놀기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명시적인 계급이 사라진 현대 사회라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에서 사교활동은 중요하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모든 모임을 빠지면 수업 들을 때 정보가 없어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고, 회사생활 하면서 모든 회식에서 빠지게 된다면 후에 진급 같은 데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하물며 아예 명시적인 계급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상류층들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사실 어린 시절 공부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교의 장을 무시해버린 앨리스가 특이한 것이지, 보통 귀족 자녀는 십 대 초반부터 온갖 사교회에 드나드는 것이 상식이다.

        

       뭐…… 물론, 일부 사교회는 ‘성실하다’라는 의미와는 여러모로 동떨어진 이미지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게 진짜라고?”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제이크를 가만히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래, 이 남쪽에서는 특별히 이상한 일도 아니라니까. 네가 같은 반 다른 애들이랑 별로 대화를 안 해서 그렇지, 실습지가 이쪽으로 정해진 이후에는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고.”

        

       “…….”

        

       시대가 어느 때건 최신 유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최신 유행이라는 것은 아무리 불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옛 상식으로 보기에는 다소 부도덕하고 상스러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네 말에 따르면.”

        

       앨리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안가에서, 그것도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남들도 다 갈 수 있는 평범한 해안가에서—”

        

       “누구나 다는 아니지. 우리가 갈 곳은 린드버러 소유인 곳이니까. 적어도 아카데미 학생이나 선생이 아닌 외부인이 훔쳐볼 일은 없다고 단언할게.”

        

       “—어쨌거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 그런 곳에서.”

        

       앨리스는 제이크의 설명을 무시한 채 말했다.

        

       “신체의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린 옷을 입고 물놀이를 즐기겠다는 거 아니야? 그것도 남녀가 죄다 섞여서?”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의 표정은 참 형언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혐오감이라기보다는…… 그래, 노인들이 요즘 어린애들이 노는 방법을 들었을 때 짓는 표정과 흡사했다.

        

       “어라. 너희는 본 적 없어? 널찍한 실내나 뒷마당에 수영장을 만들어놓고 즐기기도 하는데.”

        

       그것참 현대적인 파티 방식이구만.

        

       정작 현대에서 살던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긴 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종종 봤던 것 같다.

        

       “그래서.”

        

       하지만 앨리스는 여전히 제이크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말했다.

        

       “그 수영복이라는 거, 그거잖아? 요즘 유행하는 화보에 종종 나오는 거. 사실상 속옷이나 다름없는 거 아니야?”

        

       “아니, 속옷이랑은 다르지.”

        

       앨리스의 말에 제이크가 정색했다.

        

       “뭐가 다른데?”

        

       “방수가 되거든.”

        

       “…….”

        

       제이크의 말에 앨리스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보여도 천연고무 양쪽에 천을 덧대 압축한 물건이야. 일단은 속옷보단 훨씬 두껍다고.”

        

       “아니, 그래도—”

        

       “저는 반대예요!”

        

       그리고 놀랍게도, 선생들이 앉아있던 테이블에서도 깜짝 놀랄 만큼 큰 목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다시 한번 놀랍게도, 그 대화의 내용은 지금 제이크와 앨리스가 나누는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남녀가 그렇게, 맨, 맨, 맨살을 드러내고! 물에 젖은 채로!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 미안한데, 넌 ‘노스우드’ 가의 여식이 아닌가? 그런 장소를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랐던 사람이 이런 평범한 일에 그렇게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 이상하군.”

        

       “이익……!”

        

       캐롤린과 제니퍼였다.

        

       캐롤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고, 제니퍼는 태연하게 의자에 앉은 채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에이다는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큰 관심 없다는 듯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책을 읽고 있었다.

        

       “그, 그것과 이건 다르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몸을 팔기도 하는 사람들이지.

        

       차마 그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얼굴이 붉어지는 캐롤린을 제니퍼는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은, 저, 적어도 배 정도는 가리고 다니잖아요!”

        

       “…….”

        

       캐롤린의 그 말에는 제니퍼도 할 말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던 에이다마저 시선을 들어 캐롤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변이 적막에 휩싸인 것을 조금 뒤늦게 깨달았는지 캐롤린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무튼, 선생 하나가 이제 와서 반대한다고 해도 이미 정해진 일이다. 학생들은 이미 신났고. 그런데 우리 같은 어른들이 갑자기 그 즐거움을 막아버리면 앞으로 학생들이 잘도 말을 듣겠군.”

        

       “주로 제니퍼 당신이 꾸민 일이지만.”

        

       에이다는 별로 상관없다는 듯 제니퍼에게 쏘아붙이고 다시 시선을 내려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것 봐. 이미 정해진 일이라니까.”

        

       제이크가 앨리스에게 말했다.

        

       그 와중에 나와 눈이 마주친 제니퍼는 내 쪽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뭐,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본국은 겨울에 가깝지만, 여기는 이렇게 따뜻하다. 이 시기에 이런 완벽한 휴양지를 얻었는데 바다를 만끽하지 못하면 학생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라는 것은 그냥 여기 와서 느낀 바이고, 실제로는 이미 이런 이벤트가 나올 거라는 것을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애초에 게임 자체가 오타쿠를 겨냥한 애니메이션풍 JRPG였다. 배경이 근대이고 산업혁명이고 자시고 간에, 몸매 좋은 히로인들의 수영복 이벤트 하나 없으면 그게 어떻게 일본 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풍 RPG겠는가.

        

       “……너는 말이 없네.”

        

       내가 말없이 차만 홀짝이고 있자, 앨리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았다.

        

       그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네 자매가, 불특정 다수의 남자 사이에서 맨살을 드러내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미안하다, 앨리스.

        

       이렇게 보여도 나는 꽤 문란한 사회에서 살다 와서 말이다.

        

       물론 내가 그 문란함에 끼어있을 정도로 잘생기고 돈 많은 잘난 인간은 아니었다만.

        

       뭐 상식으로는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끼지는 못하더라도, 친구들과 바닷가나 수영장에 놀러 간 적은 종종 있었고.

        

       “……스스로 ‘언니’라고 주장하면서,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으윽.”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는 아픈 곳이라도 찔린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오히려 언니가 동생을 지켜야 하는 일이 아닐는지요.”

        

       “…….”

        

       내 말에 앨리스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듯 고개를 돌렸다.

        

       실제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본인이 그렇게 주장하고 다니니 대우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뭐, 나는 이미 빠질만한 이유를 생각하는 중이었지만—

        

       “언니.”

        

       대략 잡혀있는 계획을 구체화하려는데, 옆에서 우리 둘 사이에 불쑥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그 말, 나한테 하는 말이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클레어가 그렇게 물어서,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단순히 내가 도망갈 것을 예상해서 잡아두려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

        

       너라면 차라리 나보다 자기 몸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장담하건대, 그 이벤트에서 갑자기 양아치가 하나 튀어나와 히로인을 채간 뒤 한 시간쯤 뒤에 다시 나타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비주얼만으로 완벽한 양아치가 우리 사이에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양아치는 사실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순정남이었고.

        

       그리고 제이크가 제니퍼의 농담 어린 말을 이렇게 실제 사건으로 일어나도록 손을 쓴 이유는, 로티 때문이기도 했다.

        

       평소에 웬만해서는 피부가 드러나는 옷을 입지 않는 로티에게 합법적으로 최신 유행 비키니를 입힐 기회이지 않은가?

        

       실제로 이 이벤트는 제이크가 얼굴을 붉히며 어버버 대는 몇 안 되는 이벤트이기도 했다.

        

       나는 제이크 뒤쪽에 서있는 로티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로티는 시선을 살짝 내리고 있었기에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응? 응? 언니?”

        

       저렇게 말하는 클레어의 태도는 사실 그렇게 짜증 나진 않았다. 애초에 악의가 없으니까.

        

       다만 저 뒤쪽에서 실실 웃고 있는 앨리스의 표정은 좀…… 화나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수영복은 오늘 사두도록 하죠. 내일 입어야 할 테니까.”

        

       내 말에 앨리스의 기대감이 와장창 무너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 뭐, 좋아.

        

       바니걸도 입었는데 수영복이라고 못 입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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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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