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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루크는 서드의 어깨가 부숴진 상태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제대로 된 부목도 대지 않은 채, 단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대충 고정해놓았었던 모양.

     

    “왜 바로 병원을 가지 않고…….”

    “병원은 갈 수 없어요.”

    “어째서?”

    “돈도 없고, 알려지고 싶지도 않거든요.”

    “흠…….”

     

    돈이라, 역시 일반적으로는 그게 가장 큰 문제가 되겠지. 누군가에게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꺼려지는 모양이다.

    이런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아이에게, 부상은 약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긴, 자신도 아마 예르나가 없었다면 병원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병원비를 대신 지원해줄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병원을 강요할 수는 없겠지.

    죄인을 가려내는 종교재판조차 열리지 않고, 신전과 신관, 성기사와 사제가 자취를 감춘 현대다.

    덕분에 의료마법은 꽤 비싼 축에 속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과거에 큰 실수를 했다고해도, 그것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 될 수 없으리라.

     

    그래도 며칠동안 거리연주에 집중한다면 가까스로 내줄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이 시대에서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거라면, 자신도 거의 동일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는 부상에 루크는 바로 근처의 은신처를 향해 자리를 옮겼다.

    은신처는 허름한 폐가였는데, 내부를 둘러보니 고물상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루크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는 그동안 이런 곳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걸까?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하아…….”

     

    서드의 상의를 벗겨본 루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어쩌다가 얼굴을 한 대 맞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꽤 강도높은 폭력을 당한 게 아닌가 싶다.

    대체 어떤 실수를 했길래 사람을 이렇게 다루는 건지, 루크는 안좋은 의미로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후유증으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사람에게 말이다.

     

    벗겨보니 꽤 상당한 부상이었다.

    이런 상태로 여기까지 나온 것인가, 얼마나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생각하는 아이인지.

    미리 이야기했더라면 다른 날로 미루던가, 자신이 직접 찾으러 갔을 텐데 말이다.

     

    일단 급하게 응급조치를 했다.

    딱히 의학에 파고든 것은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인체의 구성을 알고 있는 마법사이니까.

    부서진 뼈를 맞추고 고정해두는 작업은 3서클의 마법사여도 충분히 가능했다. 서클로 부족한 권한은 클래스마법의 언령을 해체해 즉석에서 보완했다.

    그렇게 붕대와 부목에 회복속도 증가를 위해 헤이스트까지 인챈트하고 나서야, 루크의 작업은 끝을 맺었다.

     

    그 일련의 과정에 서드는 크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앞서 겪어본 적 없는 수준의 응급처치기술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자신의 어깨를 감싸는 붕대를 지켜보던 서드는, 이내 루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자, 되었구나. 어떤가, 이제 불편하지는 않지?”

     

    잠깐 어깨를 시험삼아 움직여본 그는 고통스러운 감각과 뼛조각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크게 감탄했다.

    그가 감탄하는 모습을 본 루크는 뿌듯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렇게까지…….”

     

    또 그렇게까지 감동했다는 표정을 하기는, 대체 얼마나 호의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인지.

    루크는 손을 내저었다.

     

    “굳이 신경 쓸 것 없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마. 너는 이제 안정을 취해야 할 터이니. 마법은 다음에 가르쳐주도록 하겠다.”

     

    그렇게 루크가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아, 저기, 잠깐만요……. 윽.”

    “어어, 갑자기 움직이지 말거라. 왜 그러느냐?”

    “저번에 말씀하셨던 약의 샘플을 가져 가시라고…….”

    “아, 그거 말인가. 당장은 필요 없는데. 흠, 어디 있지? 내가 직접 가져가겠네.”

    “저쪽 서랍에 있습니다. 제가 이런 상태라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냥 편히 있게나.”

     

    루크는 서드가 가리키는 서랍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서랍의 안쪽을 열어 확인해본 루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수많은 주사기, 이것은 문제가 될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함께 들어있는 수많은 궐련들.

    딱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대충 만들어진, 담배라고 부르기에도 미묘한 물건.

    그것도, 심각하게 질이 낮아 사용자의 건강을 크게 해치는, 마약과 다름없는 형태의 것이었다.

     

    루크는 한 개피를 집어들고는 코밑으로 가져가 스윽 훑었다.

    대체 어떤 열악한 시설에서 마구잡이로 만들어낸 것인지가 머리에 그려지는 듯 하다.

    루크는 한숨을 쉬며 그것을 들고 서드에게 물었다.

     

    “이게 다 뭔가? 전부 쓰레기 같은 품질이군. 어디서 났지?”

    “그, 제 시설에서 만들던 물건입니다만…….”

    “이런 쓰레기가?”

     

    루크는 경악했다. 그동안 대체 어떻게 이런 것을 팔고 있었다는 말인가?

    서드는 역시 제대로 된 시설에 취업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뒷골목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상품이었는데요…….”

    “하아, 이런 걸 파니까 뒷골목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거라네.”

    “…….”

     

    그 말은 사실이다. 괜찮은 상품이라면 고작 뒷골목의 약쟁이들에게 팔아넘기는 수준이 아니었겠지.

    그것을 연기를 피워보지도 않고 향으로 바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정말 굉장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건 전부 버려버리게.”

     

    “하지만…….”

     

    하지만 거리의 부랑자들이나 데려다가 만드는 제품이 어떻게 고품질로 나오겠는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무어라 반박하려던 순간, 루크가 말했다.

     

    “대신, 제약이라면 내가 가르쳐줄 테니까, 이제 그 시설엔 가지도 말게나.”

     

    서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내 레시피가 이딴 쓰레기보다는 훨씬 나을게다. 만드는 과정도, 그대에게는 더 쉬울테고. 일단 이것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은 여기 적어둘테니, 나중에 한번 실험해보게.”

     

    루크는 바닥에 대충 굴러다니는 광고지 하나를 집어 비어있는 면에 레시피를 빠르게 적어내린 뒤, 서드에게 건넸다.

    레시피를 읽어보던 서드는, 경악했다.

     

    “그렇……군요!”

     

    그에게는 슬쩍 본다고 레시피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내는 능력따위는 없었지만, 보면 안다.

    꽤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적힌 제조법과 제조과정은 충분한 설득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데다가,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맙소사, 더 쉽게 더 좋은 품질의 약을 제조하는 방법이라니?

    대체 그녀의 시설이 불에 타기 전에는 어떤 설비와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단 말인가?

     

    분명 엄청난 시설이었겠지. 불에 타버려서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레시피를 받은이상, 그는 루크가 말했던 그 ‘약을 연구하던 곳’이란 것이 단지 가정집의 평범한 화장실이라고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레시피가 있다면 분명 엄청나게 팔려나갈 것이 분명하다.

    만약 루크가 단언한 품질이 맞다면 이 약은 동네 뒷골목이 아니라, 어쩌면 전 대륙을 상대로 유통을 넘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터, 그러면 스승님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

     

    아니, 아마도 자신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 ‘딜런트’에게 목숨을 부여잡힌 상태이니까.

    명백한 부주의의 대가였다.

     

    아마 곧바로 죽이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죽을 때 까지 ‘사용’당하겠지, 그는 결코 자원을 낭비하는 자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죽음과 다름없는 상황임은 틀림없다.

     

    2일 뒤, 자신을 찾아올 딜런트가 떠오른 서드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 변화를 바로 캐치한 루크는 곧장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표정이지? 레시피에 뭔가 문제가 있는가?”

     

    “그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말씀드려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어서 말입니다.”

     

    “문제? 말해보게나. 대체 무슨 일이지?”

     

    “그것이…….”

     

    ———–

     

    시간은 흘러, 또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일출을 기약해야 하는 어둠의 시간이 다가왔다.

    손쉽게 잘 준비를 마친 예르나는 살짝 들뜬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루크랑 함께 자는 느낌이야.‘

     

    실제로도 그렇긴 하다.

    어제는 뒤늦게 피곤함이 몰려와서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떨어져버렸으니, 지금은 또 새로운 느낌인 셈이다.

     

    예르나는 심호흡을 하듯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게 하니 좋은 향이 코로 물씬 풍겨왔다.

    아마 루크의 몸에서 나는 향기이리라.

     

    루크와 함께 자는 침대에선 언제나 좋은 향기가 나서 기분이 좋았다.

     

    루크에게서 나는 향기는 언제나 다른 향기였지만, 하나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은 꽃의 향기, 또 어느 날은 달콤한 과일의 향기. 또 어느날은 조금 씁쓸한 풀의 향기도 풍겼다.

    아마도 루크가 평소에 사용하는 포션과 샴푸, 기타 관리용품과 목욕용품이 이루는 냄새일 것이다.

    그날그날 때와 상황, 장소나 기분에 따라 루크는 사용하는 것의 종류가 달랐으니까.

     

    최근에는 자신이 사주었던 향수나 화장품의 냄새도 풍기고 있었으니, 루크는 다양한 매력만큼이나 다양한 향기를 품은 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 이제 슬슬 잘까?”

     

    “……그래.”

     

    그렇게 예르나가 불을 끄고 루크의 옆에 누워 이불을 덮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루크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목소리도 별로 힘이 없고.

    뭔가 우울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고민?

    루크의 상태와 상황이 상황이니, 예르나가 걱정이 되지 않을 리 없다.

    “루, 혹시 무슨 고민 있어? 할 말이 있으면 해봐. 내가 상담해줄테니까.”

     

    예르나가 몸을 돌려 볼을 손바닥으로 받치고 루크를 바라보며 묻자, 루크도 이내 몸을 돌렸다.

    대화할 생각이 있다는 뜻이었다.

    “예르나, 예컨대. 기억이 나지 않을 적에 행한 잘못은 진실로 잘못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예르나가 루크의 질문의 의미를 깨닫는 것에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기억을 잃은 루크, 과거에 행한 떠오르지 않는 잘못.

    오늘 서드를 만나고 오더니 뭔가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루크가 말을 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그것을 처벌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옛날에 저지른 실수가 있는데, 자신은 완전히 잊고 있는 상태였지만 상대가 그것을 잊지 않았다면. 용서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질문일세.”

     

    “아.”

     

    루크는 그것이 꽤 고민이었던 모양인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표정은 여전했다.

    서드랑 옛날일로 싸우기라도 한 모양이다.

     

    “역시 당사자하고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는게 제일이 아닐까?”

    “그렇겠지? 그대도 역시 이야기를 해 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을 하는군?”

    “응, 혹시 긴장돼? 그럼 언니도 같이 가줄게! 같이 이야기해보자!”

    “그래주겠느냐? 고맙구나. 정말 큰 의지가 됐어.”

     

    한결 편해진 표정을 짓는 루크, 그래. 아이는 이런 표정을 지어야지.

    예르나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서드랑은 언제 다시 이야기할 생각이야?”

    “응? 아니. 서드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세, 서드의 직장 상사와 이야기하러 갈 생각이다만.”

    “어?”

     

    예르나의 얼빠진 표정에, 루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차, 이야기를 하지 않았군. 그러니까…….”

     

    루크는 예르나에게 서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만나서 제대로 된 일을 구해보라고 조언을 했는데, 그가 구한 직장의 상사를 대면하자 하필이면 예전에 큰 실수를 범한 사람이었고, 그 벌로 크게 얻어맞은 뒤, ‘죽거나, 아니면 죽을 때까지 부려먹힐’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현재 일을 관두는 것도 쉽지가 않은 모양이네. 가급적이면 그 상사를 좋게 설득하고 싶었는데, 역시 내 몸이 이토록 어린 몸이니 설득에 애를 먹을 것 같아서 고민을 하고 있었지 뭔가. 헌데 그대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큰 도움이 되겠군. 내일은 그대도 함께 서드에게 가보는 게 좋겠어.”

     

    “어……? 어, 어어……. 그렇네. 그래. 그렇게 하자.”

     

    당황스럽긴 한데, 이 정도쯤이야…….

    서드는 루크와도 친한데다가 비슷한 처지의 불쌍한 사람이니까, 뭐.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곧 삼자대면 하겠네요.
    과연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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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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