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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이건 뭐야?”

     

    내가 형형색색의 액체가 담긴 병을 주르륵 늘어놓자 샤를이 관심을 보였다.

     

    “뭐일 것 같아요?”

     

    “향이 되게 좋다. 그리고… 익숙해.”

     

    “좋아하시지 않을까 했습니다. 깊숙이 들이마셔도 좋아요.”

     

    샤를이 플라스크 하나에 대고 코를 킁킁대더니 표정이 밝아졌다.

     

    “아핫, 술이었어.”

     

    “옙.”

     

    늘어놓은 액체는 각종 리큐르와 증류수, 그리고 합성할 재료들이었다.

     

     

    샤를에게는 스트레스 감소를 위한 치료가 필요하다. 리셰에게 처방한 약만으로는 그녀까지 치료가 되진 않는다.

     

    마냥 강한 약제는 정답이 아니다. 신경계에 작용하니 부작용도 심하고 몸을 공유하는 리셰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나를 완전히 신뢰하는 리셰와 달리, 샤를은 방금 행동만 봐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처방을 거부할지도 모르지.

     

    여러 약제를 고려하다가 찾아낸 방도가 바로 이것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술.

    동시에 카운슬링을 진행한다.

     

    재료는 내 방에 보관하고 있었기에, 타냐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술 좋아한다고 얘기했던가.”

     

    “지나가듯 하셨죠. 뭐부터 하실래요?”

     

    “얼음은 어디 없어?”

     

    나는 통에 담긴 물을 대상으로 [성질변화] 주문을 사용했다.

    분자구조를 변화시키니 열방출과 함께 바스락거리는 각얼음이 만들어졌다.

     

    “진짜 웃긴다. 네가 이런 주문을 쓰는 모습은 처음 봐.”

     

    기분이 즐거워졌는지 샤를의 입가에서 가벼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근데 나한테 막 술을 줘도 되겠어? 눈이 돌아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막 드리진 않아요. 오더는 안 받고 있거든요. 바텐더가 주는 대로 드시죠.”

     

    “어디 줘 봐봐.”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

    ◎ 연성 목록

    · 에일 + 엘프의 꿀 = 상급 온화주

    · 그루트 + 성수 + 세로토닌 = 회포주

    ―――――――――――

     

     

    연성으로 조합할 수 있는 술에는 재밌는 리스트가 많았다.

     

    샤를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줄 수 있는 아이템 중에서도 그녀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종류다.

     

     

    가장 먼저 온화주를 만들어본다.

     

    재료가 담긴 두 플라스크를 중심으로 주문진을 그려 올리니 빈 잔에 사르르, 고운 빛깔의 액체가 채워졌다.

     

     

    ―――――――――――

    · 상급 온화주

    · 스트레스 –2, 화가 줄어듭니다.

    · 상당히 달콤합니다.

    ―――――――――――

     

     

    “먼저 한 잔 하시죠.”

     

    “흐흥, 좋아.”

     

    샤를은 잔을 들어 능숙하게 빙글 돌려보고는 향을 맡았다.

    한 모금 들이키고 눈을 반짝이는 샤를.

     

    “좋다아. 벌꿀 맛이 특히 좋아. 뒤끝이 없어 깔끔해.”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군요.”

     

    샤를은 잔을 쭉 들이켜 순식간에 비워내고는 눈매를 찡그렸다.

    나는 그녀의 입에 라임 조각을 물려주었다.

     

    “기분 좋아…”

     

    샤를이 테이블에 얼굴을 기대며 나를 빼꼼 올려다보았다.

     

    “라스, 그거 알아?”

     

    “알죠.”

     

    “어, 진짜? 아는구나….”

     

    시무룩해지는 표정. 도수가 좀 있었나, 벌써 취기가 도는 모양이었다.

     

    “농담이에요. 뭔가요.”

     

    “응. 너는 모르겠지만… 나, 가끔 너랑 이러고 술 먹곤 했었다?”

     

    내게는 꽤 많이 있는 경험이었다. 몇 번은 리셰가 아니라 샤를이었구나.

     

    “보통은 잠들면 거기서 끝이니까… 기를 쓰고 깨어있으려고 했었어.”

     

    리셰는 다음 날 필름이 날아갔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게 샤를이었던 모양이다.

     

    “아쉽네요. 저였다면 아침에 해장을 준비했을 텐데요.”

     

    “내 말이! 원래 해 뜰때까지 마시고 해장까지 하는 게 술자리 코스잖아. 으으, 좋은 건 리셰가 다 독점하고….”

     

    탁, 내가 다음 잔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해장술까지 준비해 놨으니 다 드시고 주무세요.”

     

    “진짜? 그래도 돼?”

     

    “네. 말씀하신 대로 상 드리는 자리니까요.”

     

    “라스….”

     

    샤를은 헤프게 웃고는 내가 준비한 두 번째 잔도 쭉 들이켰다.

    어깨를 움츠리고는 실없이 히히 웃는 모습이 도무지 전장에서 활약하던 용사님 같진 않았다.

     

     

    [No. 010 : 성검 파괴 96% → 92%]

     

     

    꽤 진전이 있다. 이쪽도 확률이 감소한 걸 보면 스트레스가 금방 많이 감소했다.

     

    “그럼 마저 팔을 볼까요.”

     

    “아, 그게 있었지. 응, 부탁해.”

     

    샤를의 오른팔을 확인한다. MRI로 스캔해서 구조를 파악한다.

     

    “아핫, 간지러.”

     

    외형은 멀쩡해 보여도 확실히 치유주문이 조직을 재구성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힘줄 신경이 상완이두근에 파묻혀 버렸군요. 팔을 올리면 신경을 건드려서 통증이 생겨버려요.”

     

    “응, 그거 엄청 아파. 근데도 리셰 걔는 말도 안 하고 꾹 참는 거 있지. 나야 익숙하니 그렇다 쳐도. 하긴 전부터 그랬어.”

     

    “대단한 분이에요.”

     

    “…나도 옛날엔 그랬었던가. 기억이 안 나.”

     

    “대단하죠. 세상을 위해서 그 지경이 되도록 싸웠잖아요.”

     

    샤를은 볼이 찐빵이 되도록 테이블에 눌러붙어서는 나를 지긋이 응시했다.

     

    “이번엔 리셰에게 맡기고 쉬고 계세요. 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지금처럼 또 한 잔 말아드리죠.”

     

    “쉰다… 생전에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안 해봤네.”

     

    샤를이 눈을 꿈뻑거렸다.

     

    “너는 한결같구나, 라스. 어쩌다 여기서 만나게 됐을까. 궁금해졌어. 잠깐 이것 좀 만져볼래?”

     

    샤를이 내게 성검의 손잡이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잡았다가 뭔지 모르겠다는 척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은 안 나오네… 아쉬워라.”

     

    “무슨 말씀이신지.”

     

    “그냥 내 얘기.”

     

    샤를이 술잔을 연달아 들이키고는 내게 말했다.

     

    “팔, 내가 있는 동안 고쳐줘.”

     

    “지금요? 가벼운 수술이 필요한데요.”

     

    “괜찮아, 그 정도는. 술 취해서 아무것도 안 느껴져.”

     

    샤를이 싱글대며 라임을 물었다.

     

    터프하시네.

     

    “잠깐이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맨정신인 사람의 생살을 찢을 순 없어서 부분마취를 하고 간단하게 작업했다.

     

    팔뚝 아래를 작게 절개해 힘줄을 원래 위치로 되돌린다. 치료는 금방 끝났다. 짼 부분을 봉합해 치유주문을 쓰니 금방 아물었다.

     

    “아, 뭔지 알았다.”

     

    마무리 작업을 하고 도구를 정리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라스, 황제… 아셀라랑 오래 만났어?”

     

    “나름요.”

     

    “그게 신기하단 말이야.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댔는데.”

     

    샤를은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것만은 알아야겠다고 큰 결심을 내린 듯,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 아셀라 좋아해?”

     

    지금은 그 질문에 즉답할 수 있지 싶었다.

     

    “그럭저럭요.”

     

    “흐응… 알았어.”

     

    샤를은 무언가 체념한 듯 배시시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간이 침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졸리다, 잘래.”

     

    “고생하셨습니다. 그대로 계시면 침소로 옮겨드릴게요.”

     

    “응. 또 보자.”

     

    그리 말하고 샤를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

    대상 : 샤를

     

    스트레스 안정    ■■■■■□□□ 긴장

    자율신경 부교감 ■■□□□□□□ 교감

    피  로  도 건강   ■■■■■■□□ 피로

    ―――――――――――

     

     

    스트레스도 꽤 감소했고, 자율신경의 반응도도 돌아오고 있다.

     

    치료는 효과를 보고 있다. 이대로 별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네.

     

    “켈록.”

     

    상태창을 체크하는데 별안간 기침 소리가 들렸다.

     

    “으으, 선생님…? 저, 속이 안 좋아요… 저주에 걸렸나 봐요….”

     

    “어이쿠.”

     

    샤를이 잠들고 깨어난 리셰가 입안에 남은 쓴맛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연신 혀를 낼름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무심코 얘도 자고 있을 줄 알았네.

     

    “숙취입니다. 이걸 마시고 주무시죠. 깨어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숙취요…? 저 술 먹은 적 없는데… 아, 아으… 언니 미워….”

     

    리셰는 내가 넘겨준 숙취 해소제를 먹고는 쓰러졌다.

     

     

     

    ***

     

     

     

    “후우.”

     

    아셀라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평소처럼 일과 끝에 가진 자신만의 마법 연습 시간이었다.

     

    일주일이 넘는 연습 끝에 아셀라는 술식 동기화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한때 그녀의 손을 떠났던 마법이었지만, 잠시 숨어있었을 뿐, 어디로 도망가진 않았다.

     

    “2진, 작성.”

     

    오늘은 드디어 한계에 도전해보려 하는 아셀라였다.

     

    그간 열지 못했던 5위계의 벽.

     

    대가를 바치는 고위계 주문 시전이다.

     

    그녀의 시나리오를 실행하려면 연무회에서 고위계 주문을 직접 시연하는 건 필수였다.

     

    그때를 위해 한 번은 감각을 익혀놓을 필요가 있었다.

     

    우선은 익숙한 주문.

     

    그녀가 몇 번이고 시전했던 특기 마법.

     

    천리안의 진을 배치해 나간다.

     

    ‘…여기부터는 수명을 지불해.’

     

    따져보면 대단한 양은 아니라고 시모어는 말했었다.

     

    술자의 실력과 열어야 하는 문의 개수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의 주문에 소모되는 수명은 보통 1개월이 되지 않는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아셀라에겐 있었다.

     

    그녀도 바보는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이 마법사라도, 마법에만 눈이 멀어 스스로 파멸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위계를 돌파하는 건 정말 필요할 때만.

     

    지금처럼.

     

    ‘…천리안.’

     

    아셀라의 시전과 함께 주문진이 빛난다.

     

    다섯 번째 진에 그녀의 마나가 흘러들어가는 순간.

     

    ―쿵!

     

    “윽.”

     

    심장과 연결된 1진에서, 마나와 더불어 무언가가 함께 빨려 나갔다.

     

    그 원리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며, 동시에 아셀라의 시야가 빙글 돌았다.

     

     

    ‘…아핫.’

     

    아셀라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눈앞에 보이는 선명한 빛의 나무.

     

    시간선이다.

     

    세세하게 가지 하나하나를 모두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어느 때보다도 천리안이 완벽한 효능을 지니고 시전됐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여기야.’

     

    아셀라는 자신의 위치를 금방 찾아냈다.

     

    그를 따라 조금 시선을 올리니, 금방 무수하게 분열한다.

     

    ‘연무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보가 필요해.’

     

    달력도 아니고, 정확한 숫자가 쓰여있진 않았기에 어느 정도는 감으로 선택해야 한다.

     

    아셀라는 대략 6개월에서 10개월 후라고 추측되는 위치를 짚어 힘차게 잡았다.

     

     

    ―파앗!

     

    시야가 변하고.

     

    ‘여긴.’

     

    아셀라는 자신의 방에 있었다.

     

    …밤, 은 아니다.

     

    늦은 오후?

     

    창밖에서 붉은 노을이 핏빛처럼 침실을 물들였다.

     

    “황녀님.”

     

    익숙한 목소리에 아셀라가 홱, 고개를 돌렸다. 반가움이 삽시간에 몰아쳤다.

     

    라스가 자신을 마중하러 왔다.

     

    심지어 백의를 입었다. 자신이 아는 그 라스였다.

     

    한참 전에 분기한 무수한 가능성만 봤던 지금까지와 다르게, 확실히 지금에서 이어지는 미래를 관측하고 있다고 알 수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진료를 보러 온 걸까, 했지만 아셀라는 지금이 일상적인 장면이 아니라고 금방 깨달았다.

     

    어딘가 진지하고, 조금은 무섭게 가라앉은 라스의 표정.

     

    평소와는 다르다.

     

    이어 그가 꺼낸 문장에, 아셀라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치의 직에서 사퇴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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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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