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5

       아무리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한 명문 학교 학생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키르쿠스의 신도였다.

         

       관행을 부수는 발상에 경이적인 재주.

       거기다 곡예사로서의 정체성을 자극하는 한 마디까지.

         

       그들은 마야의 말과 행동에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외모도 그러한 자극에 한몫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 상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저 최고 학년들의 눈치를 보며 떨떠름하게 있을 뿐이었다.

         

       클라라는 장내의 분위기가 변하는 것을 감지했다.

       그것도 그녀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그녀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손 하나가 5층 창문턱을 짚었다.

         

       “으갸걋!”

         

       괴상한 기합과 함께 사람의 몸이 불쑥 솟아났다.

       붉은 머리카락의 눈매가 사나운 소녀가 고개를 쳐들었다.

       카렌이었다.

         

       그녀는 숨을 씩씩 몰아쉬며 창문을 기듯이 넘어왔다.

         

       “크허헉, 헉헉, 죽는 줄 알았네.”

         

       그녀는 흐르는 침과 땀을 대강 소매로 닦으며 마야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녀의 오빠와 동료들이 들었으면 기겁할 정도로 징징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히잉, 너무 하잖아, 마야. 혼자 가버리고.”

         

       마야는 그녀를 바라보며 무신경하게 답했다.

         

       “너한테는 따로 방법이 있다며.”

       “계단으로 올라간다는 게 그 계단일 줄 몰랐지.”

         

       카렌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클라라는 시뻘겋게 물든 그녀의 손바닥을 봤다.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말 몇 마디를 들었다.

         

       그녀는 카렌이 어떻게 올라온 건지 알아차렸다.

         

       그녀는 무려 1층에서부터 대나무 하나를 골라 붙잡고 그대로 타고 오른 것이다.

       오로지 악력 하나로 말이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클라라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끈기(Endurance)는 SPECIAL 중에 땅재주를 상징하는 덕목이었다.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땅재주 전공생들의 특기였다.

         

       그런데 그것 하나로 30m나 되는 대나무를 타고 오르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카렌은 손바닥을 비비며 창가 앞에 섰다.

       그리고 아래를 노려보며 외쳤다.

         

       “올라오는 길에 다 들었다. 이 새끼들아. 반칙이 뭐가 어째? 웃기는 놈들이네.”

         

       방금 마야와 말할 때와 달리 술이라도 한잔 마신 것처럼 걸걸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나는 땅재주밖에 몰라. 그런데 내가 왜 줄광대 년처럼 여기를 뛰어다녀야 해?”

       “줄광대 년?”

         

       뒤에서 들려오는 클라라의 싸늘한 대꾸에 카렌은 아차 싶어 돌아봤다.

         

       “아, 그, 그게 그…… 서, 선배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저, 말 함부로 하는 애들이 그래서……음…….”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를 보고 그녀는 찔끔 놀라서 우물거렸다.

         

       마야 외의 여자애들은 여전히 대하기 어려워하는 그녀였다.

       특히 클라라처럼 웃으면서 따가운 눈빛을 던질 수 있는 재주를 지닌 사람에게는 더욱 약했다.

         

       그러는 사이 아래는 소란스러워졌다.

       마야와 카렌의 퍼포먼스에 자극받은 청강생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맞는 말이야! 나는 차력사인데 왜 대나무를 타고 뛰어야 해?”

       “나도 나도. 나는 곡마사인데 줄타기는 영……. 엘리트들께서야 고루고루 잘하는 게 장기겠지만.”

       “앞으로 한 달은 다닐 곳인데 지금 무리해서 5층까지 뛸 필요는 없겠지.”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당당히 계단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그들에게 비웃음을 던지기로 되어 있던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가 길을 비켜주었다.

         

       그렇게 청강생들은 모두 5층을 향해 이동했다.

       딱 한 사람을 빼고는.

         

       침묵의 메렌은 다시 대나무 앞에 섰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녀는 줄타기 곡예사로서의 명예 회복에 나섰다.

         

       이번에는 클라라도 그녀를 제지하지 못했다.

         

       그녀가 대나무를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모두 아무 말 없이 그녀가 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녀는 이전과 같은 루트로 4층 높이까지 올랐다.

       여전히 발소리는 없었다.

       몸놀림 또한 다친 사람답지 않게 안정적이었다.

         

       그녀는 아까 실수했던 곳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어차피 그곳은 가지가 부러져서 지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새로운 루트를 탐색했다.

         

       그녀는 가지 하나를 발판 삼아 다른 나무로 이동했다.

       처음의 길보다 조금 돌아가긴 했지만, 그곳에는 5층 창문에 닿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다.

         

       그녀는 신중히 새로운 가지 위에 몸을 올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부러지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클라라처럼 일부러 부러뜨리려 들거나 힘 조절에 미숙한 힘자랑 전공생이 아니라면, 이 대나무가 망가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정원사가 매일 상태를 점검하고 돌봤기 때문이다.

         

       그녀는 건너편을 향해 점프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쇼가 끝났음을 알리는 행동을 곁들였다.

         

       일부러 마지막 걸음에 소리를 내는 것이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두 발이 5층 창문턱에 닿았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정원을 돌아봤다.

         

       계단을 오르던 청강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레카체프의 재학생들까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나마 박수를 보냈다.

       최고 학년들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하고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와아아!”

       “대단하다! 메렌!”

       “두 번의 시도만으로 죽림을 돌파할 줄이야!”

         

       카렌이 들뜬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용기를 짜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대, 대단해! 훌륭…….”

       “줄광대 년이라며?”

         

       메렌은 그녀를 향해 톡 쏘아붙였다.

       장난기를 담아 던진 말이었지만, 카렌은 기가 팍 죽어서 뒤로 물러났다.

         

       메렌은 그녀를 지나 멀뚱히 서 있는 마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마야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그녀는 멀리서 엘라가 자신을 향해 엄지를 척 올리는 것도 봤다.

         

       왜 저래?

         

       청강생들이 모두 5층에 도착했다.

       동시에 쉬는 시간을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다.

       학생들은 수업을 듣거나 연습을 하기 위해 우르르 흩어졌다.

         

       얼마 후, 아무도 없는 정원에 정원사 노인이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대나무 가지를 발견하고 고함쳤다.

         

       “이, 이게 뭐야! 그새 또 나무를 부러뜨렸어!”

         

       정원사 노인이 텅 빈 중정을 둘러보며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고얀 놈들!”

         

       청강생들은 교감이자 줄타기 교수인 엘파라의 연구실에 입장했다.

       그녀의 집무실 창 너머로 중정이 내려다보였다.

         

       엘파라는 창문을 닫음으로써 노인의 욕과 투덜거림을 차단했다.

         

       “죽림을 멋지게 통과했더군요.”

         

       검은 고깔모자에 긴 검은 로브를 걸친 그녀는 그 엄격한 태도 덕에 학생들에게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현재 그녀의 입에는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번 보기 힘들다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클라라를 지그시 바라봤고,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교수님의 시선을 피했다.

         

       청강생들에게 장애물을 제공하는 것을 허락 맡았지만, 일부러 쉬는 시간과 맞아떨어지게 해서 그들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녀가 제멋대로 저지른 일이었다.

         

       그 착한 클라라가 몇 달 만에 이렇게 변하다니.

       서커스 그랑프리라는 압박감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입맛이 썼다.

       엘파라는 요즘 따라 점점 옛 친구가 그리워졌다.

         

       엘리트 의식으로 유명한 레카체프였지만,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초기에는 학교의 위상이 이렇게 높지도 않았다.

       사회에 나간 졸업생들은 곡예를 무슨 학교에까지 가서 배우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현재의 엘리트 의식은 모두 17년 전, 제2회 그랑프리의 테러 이후로 시작된 것이었다.

       길들이기의 우르수스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말이다.

         

       5인방은 각자 뛰어난 재주를 익힌 곡예사였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끄는 것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 시대의 곡예사들이 다 그렇듯 도제식으로 기술을 배웠다.

       수십 명의 10대를 대상으로 교육 과정에 따라 지도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그들 모두 2, 30대로 젊었다.

       그들은 아직 인격적으로 미숙한 존재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랐다.

         

       어렵고 도전적인 과제들을 준비해서 학생들을 경쟁시켜 실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한계였다.

         

       그러나 우르수스만은 달랐다.

       그는 길들이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곡예사였다.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달래는지, 어떻게 무리를 통제하는지, 어떻게 각자의 적성을 파악하는지, 교육이라는 것은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는 다른 교수들이 기술을 전수하는 동안, 뒤에서 학업 외적인 면으로 학생들을 보살폈다.

         

       그가 있는 동안은 몰랐다.

       그의 작은 행동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에 걸쳐 학생들의 세대가 교체되면서 그들 내부 문화가 점점 변질하는 것을 보고 교수들은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어떻게든 수습해보려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학교의 규모는 몇 배로 커졌고, 그들의 능력은 부족했다.

       새로 온 길들이기 교수들도 그들의 친구만 한 역량이 없었다.

         

       그나마 엘파라가 교감을 자처하며 어떻게든 질서를 세워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이번 세대는 교수들도 서커스 그랑프리 준비에 바빠서 제대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클라라가 쉽게 아이들을 부추기고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사정에 기반한 것이었다.

         

       엘파라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사무실을 나온 청강생들은 계속해서 다음 교수의 집무실을 향해 이동했다.

         

       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몇몇 난관을 더 맞닥뜨렸다.

       레카체프는 서커스 학교답게 학교 곳곳에 기술을 활용하여 건널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열리지 않는 두꺼운 쇠문도 그중 하나였다.

         

       그 문은 아무리 강하게 밀어도 밀릴 듯하다가 갑자기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열 명이 넘는 학생들이 힘을 줬지만, 쇠 긁는 소리만 내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방금 안내하던 학생들이 밀고 들어갈 때는 쉽게 움직였는데.

         

       “이게 뭐야?”

       “저쪽에서 잠근 거 아냐?”

         

       당황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엘라와 레이나는 그 원리를 알아차렸다.

         

       “이거 입학시험 14번 과제의 원리를 이용한 거네.”

       “맞아.”

         

       두 사람의 말에 시험을 치렀던 아이들은 곰곰히 기억을 떠올려 봤다.

       이윽고 한 명의 학생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소리쳤다.

         

       “정지 마찰력?”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쇠문의 위를 가리켰다.

         

       쇠문의 너비는 1m에 높이는 2m였다.

         

       그런데 쇠문을 감싸는 형태로 벽에 어떤 홈이 파여 있었다.

       그것은 너비가 2m에 높이가 4m 정도 되어 보였다.

       그리고 또 그것을 감싸는 형태로 너비가 4m에 높이가 8m인 지점에 홈이 또 파여 있었다.

         

       “잘 봐.”

         

       엘라가 쇠문 한 짝을 밀었다.

       레이나가 그 반대쪽을 밀었다.

         

       쇠문이 끼긱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밀려나던 쇠문이 갑자기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에 걸린 듯 멈춰 섰다.

         

       엘라의 손짓에 몇몇 학생들이 문을 여는 데 힘을 더 보탰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1mx2m 문을 감싸고 있던 2mx4m의 벽이 같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벽이라 생각했던 것은 사실 숨겨진 문이었다.

         

       청강생들이 놀라서 웅성거리는데, 문에서 다시 찰칵하는 소리가 나며 다시 무언가에 걸린 듯 멈췄다.

         

       그들은 자연스레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4mx8m의 문을.

         

       엘라와 레이나가 문에서 손을 뗐다.

       함께 힘을 주던 아이들도 뒤로 물러났다.

         

       문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천천히 힘을 주면 처음의 문은 제2의 문, 제3의 문에 걸려 같이 무게가 실려 버리는 구조야. 14번째 시험 기억나지? 정지 마찰력과 운동 마찰력을 이용한 과제 말이야. 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힘을 운동 마찰력에 맞는 수준으로 빼버리면 안 돼. 그럼 제2의 문에 걸쇠가 걸려버려. 정지 마찰력을 뛰어넘는 힘을 문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계속 줘야지. 이렇게.”

         

       그녀는 문 앞에 다가가더니 으럅 하고 기합을 지르며 온몸을 던져 전력을 다해 문을 밀었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문이 활짝 열렸다.

       그녀는 재빨리 벽 뒤로 넘어갔고, 문은 금방 닫혔다.

         

       레이나는 덩치 있어 보이는 남학생들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차력사였다.

         

       그들은 각자 문 한 짝을 잡고 그녀의 신호에 따라 문에 힘을 주었다.

       그들의 기본 완력은 당연히 엘라보다 셌다.

       문은 손쉽게 열렸다.

         

       이것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힘자랑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문을 열고 나서도 계속 쇠문에 달라붙어 다른 청강생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그것을 붙들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재주를 활용해 서로 도와가며 몇 가지 관문을 더 통과해서 교수들의 연구실들을 돌아봤다.

         

       이제 남은 곳은 마지막 하나.

       길들이기 교수의 방뿐이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